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36
@136. 내가 꼭 필요하시다지 않나
내 말에 이아페가 그러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당신 말대로라면 그 산에 가는 건 더 위험합니다.”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코레아리아어를 세상에 돌려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사람들은 그 언어를 익힐 수 없을 거예요.”
“시샤 님, 당신이 있잖아요. 당신은 지금도 수많은 이들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걸로도 충분해요.”
“아뇨, 충분하지 않아요.”
지금은 내가 가르치는 것만 되잖아.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일 없이. 그렇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일 없이.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죽은 뒤에는 이 언어를 새로 배울 방법이 아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이 언어를 정말 좋아해요. 그러니까 이 언어를 소중하게 여기고 싶어요.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멋지게 뻗어 나가는 걸 보고 싶어요.”
“…….”
“내가 아닌 누군가가 만든 새로운 표현을 들었을 때의 기쁨을, 상황에 딱 맞는 표현을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을 함께 누리고 싶어요.”
이아페라면 이해할 것이다.
도서관을 발견했을 때 그토록 눈을 빛냈던 사람이니까. 새로운 주문과 표현을 알아 갈 때마다 흥미와 행복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던 사람이니까.
이아페가 뭐라 더 설득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여전히 탐탁지 않다는 얼굴로, 그렇지만 한결 유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가겠습니다. 위험할 것 같으면 돌아오는 겁니다.”
충만한 기쁨이 가슴에 들이찼다.
나는 그의 목을 끌어안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 * *
집에 돌아온 나는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짐을 꾸렸다. 몇 벌의 원피스를 꺼내 거울 앞에서 몸에 대어 보다가, 결국 모두 다시 옷장에 넣었다.
“그래, 역시 등산에는 바지지.”
예전에 도서관을 찾으며 수영하던 시절 사 두었던 바지들을 꺼냈다. 이걸 다시 입다니, 감회가 새롭네.
짧은 감상을 끝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아페에게는 큰소리 떵떵 쳤던 것이 무색하게, 침대에 눕자 애써 무시했던 걱정들이 밀려들었다.
‘생각해 보니까 이거… 밀입국에 불법 체류잖아. 걸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역시 수교가 답인가? 아, 아냐, 순간 이동을 하면 되겠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절로 미간이 심각하게 찌푸려졌다.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물빛을 닮은 투명한 푸른빛이 주위를 날 에워싸더니, 성별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아이야, 걱정 말거라. 곧 긴 얘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니.」〉
귀를 찌르듯 날카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한없이 흐릿한 이상한 음성.
비타 신의 것이었다.
〈「걱정 말라고요? 이거… 그린 라이트인가요?」〉
〈「…그래.」〉
〈「지금 그 긴 얘기를 하면 안 되나요?」〉
〈「지금은 힘들어. 곧 사람….」〉
〈「사람…?」〉
〈「…….」〉
〈「저기요? 저기요!」〉
뚜, 뚜, 뚜….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대체 뭐라고 말하려던 거야?”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신이 말한 그린 라이트가 곧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밀입국도, 불법 체류도 이뤄지지 않았다.
* * *
마차 창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이 꽤나 차가웠다. 벌써 겨울이 다 되어 가는 데다, 우리가 향하고 있는 동북부는 수도보다 훨씬 추웠으니까.
이아페가 창문을 닫으려 했다. 나는 그의 손을 막았다.
“감기 걸립니다.”
“그래도요.”
수도와 다른 공기에 괜히 마음이 들떴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가슴까지 와 닿는 찬 바람이 기분 좋았다.
“휴식차 여행을 간다 하고 떠난 거잖아요. 진짜 휴양 온 것 같단 말이에요. 아, 그런데 이아페랑 내가 동시에 자리를 비우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려나…?”
“오히려 좋군요.”
이아페가 싱긋 미소 지었다. 뭐가 좋다는 거야? 흠흠.
그렇게 조금 더 바람을 느끼는 사이 마차가 속도를 늦추었다. 어느새 국경의 산 아래에 당도해 있었다.
“다 온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마차가 갈 수 없었기에, 우리는 내려서 걸어갈 채비를 했다.
국경이라고는 해도 배치된 병사는 없었다.
‘들어가기만 하면 죽는다는 곳에 구태여 오가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젠마는 도시 하나 정도 크기의 작은 나라였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해 있었다.
소국이었음에도 긴 역사 동안 타국에 침략당한 일은 거의 없었다. 이젠마에 가는 산이 너무도 험준한 탓이었다. 산을 넘는 중에 죽는 군사가 너무 많으니 주변국에서 침략을 꺼린 것이다.
그리고 그 극악 난이도의 산 중 하나가 바로 저 산이다.
하늘을 찌르듯 솟은 산을 보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처음 시샤로 눈을 떴던 지난겨울, 산을 보기만 해도 죽음이 연상되어 찾아오곤 했던 두려움이 다시금 샘솟았다.
그때 손에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옆을 올려다보자 내 손을 잡은 이아페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험준한 산을 오르려니 무서워서요. 시샤 님이 이끌어 주시겠습니까?”
이아페가 손을 꼬옥 잡으며 눈을 휘어 웃었다.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는 요망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요. 저만 따라와요.”
몸집을 부풀리던 걱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아페랑 함께라면 무서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돌연 나비 하나가 날아오더니 나풀나풀, 가볍게 이아페의 주위를 맴돌았다.
‘꽃을 알아보는구나.’
나는 한 폭의 그림 같은 광경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문제는 한 바퀴 돈 나비가 내게로 직행해, 코 위에 앉았다는 것이다.
“으악!”
순식간에 나비의 인상은 나방으로 전락했다.
다행히도, 소리치자마자 나비가 펑 하고 사라졌다.
갑자기 이아페가 내 손을 당겨 제 뒤로 보냈다.
대체 무슨 상황이야? 나는 당황해서 눈을 깜빡이며 그의 등에 붙어 섰다.
이아페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앞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왜, 왜요?”
“이렇게 다 와서야 따라잡을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여기서 기다릴 걸 그랬네요.”
이아페의 앞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참, 미안해요. 추적 마법용으로 붉은 펜촉 위 마리골드가 그려진 펜을 썼어요. 시샤 님의 책상 위에 놓여 있길래….”
“뭐? 그거 내가 아끼는 건데!”
나는 이아페의 옆으로 휙 고개를 내밀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신….”
짧았던 붉은 머리가 1년 새에 조금 길어 있었다.
하지만 분명 그 남자다.
시샤에게 이젠마의 산으로 오라 했던 정보상. 이아페가 마법사라는 것도, 그가 형을 죽이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던 사람.
“오랜만이에요, 시샤 님. 딘이에요. 아니… 어쩌면 처음 뵙는 걸까요?”
딘이 눈썹을 으쓱했다.
처음 뵙는다니. 단순한 인사였지만 내가 빙의자인 걸 알고 하는 말이 틀림없었다. 이아페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았고.
“누구지?”
“딘이에요.”
“그런 뜻이 아니야.”
“이젠마에서 마중을 나왔어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딘을 바라보았다.
원작의 내용까지 알고 있는 사람. 그리고 왠지 ‘신’과 비슷한 발음의 이름.
“혹시… 신이에요?”
딘의 눈이 등잔만 해졌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뇨….”
아, 아니야? 머쓱해하는데 딘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신의 대리인 정도긴 하죠.”
“……!”
“그보다 왜 먼저 출발하신 걸까요? 분명 사람을 보낸다고 말씀하셨댔는데.”
사람…? 그 말을 들은 순간 꿈속의 비타 신이 뭐라 말하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못 들었어요. 말을 하다가 끊으시더라고요.”
내 말에 딘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거기엔 신전이 없어서 그런가 봐요.”
“신전?”
“신의 말씀을 받으려면 본래 신전이 있어야 하거든요.”
“이젠마에는 비타 신의 신전이 있어요?”
“네. 정황상 눈치채셨을 테니 하는 말이지만, 이젠마는 5천 년 전에 코레아리아인들이 세운 나라니까요. 외부에서 비타 신의 신성력을 받은 자들을 워낙 박해하니 꽁꽁 숨기고 살았지만.”
역시 그랬구나. 이젠마가 그토록 타 국가에 배타적이었던 이유가 비로소 이해가 갔다.
아직 경계 어린 눈빛으로 딘을 노려보던 이아페가 물었다.
“언어의 결정이 그곳에 있는 건가?”
“네. 이 정도 거리면 이동 마법으로 갈 수 있겠는데요? 자, 시샤 님. 이리로 오세요. 찾으시던 것을 보여 드릴게요.”
딘이 날 향해 한쪽 팔을 내밀었다.
나는 이아페를 힐끗 보며 속삭이듯 물었다.
“어떡할까요?”
“아 참, 초대받은 것은 시샤 님뿐이에요. 안타깝지만 이아페 님은 손님 명단에 없답니다.”
뭐라고? 크게 미간을 찌푸리자 딘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썹을 기울였다.
“언어의 결정을 확인하신다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모셔 가는 거라서요. 이아페 님은 함께 가실 수 없….”
“그럼 안 갈래요.”
“네?”
“이아페랑 같이 가는 게 아니면 저도 안 가요.”
나는 이아페의 옷자락을 꼬옥 붙잡았다.
‘사람들에게 언어를 돌려주겠다는 결심은 굳건해. 하지만….’
애초에 이아페와 함께 가겠다고, 위험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출발한 거였다. 그도 나를 믿고 같이 떠나 준 거고.
내가 위험한 것은 괜찮았다. 하지만….
떠나 있는 동안 이아페가 얼마나 불안해할지 생각하면… 그건 싫었다. 그의 믿음을 깨고 싶지도, 그를 홀로 불안감에 잠겨 있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던 딘이 불현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위험한 곳이 아니니 걱정 마세요.”
딘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건 시샤 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나요? 비타 신께서 직접 목소리를 들려주셨을 테니….”
“멈춰.”
이아페의 낮은 목소리가 딘을 향해 내려앉았다. 딘이 걸음을 멈추고 이아페를 바라보았다.
이내, 이아페에게서 느긋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시샤 님께서 내가 꼭 필요하시다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