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37
@137. 탄생의 시간
딘이 나와 이아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는 절대 떨어질 수 없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해 이아페의 팔을 더 꼬옥 붙잡았다.
결국 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대신 언어의 결정이 있는 방에는 시샤 님께서만 들어가셔야 해요. 그래야 신께서 명확히 목소리를 전달하실 수 있으니까요. 어… 그것도… 안 되나요?”
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어 이아페를 힐끗 바라봤다.
이번에는 이아페도 마음대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럼 그 방문 앞까지는 같이 갈래요.”
“그러시겠다는군.”
이아페의 목소리에는 만족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 기선 제압을 위해 입을 꾹 다문 채 다부진 눈빛을 하고 딘을 바라보는데, 딘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렇게 하세요.”
“왜 웃어요?”
내 물음에 딘이 여전히 웃음기 띤 얼굴로 대답했다.
“귀여우셔서요.”
“죽이겠….”
이아페가 앞으로 튀어 나가려 했다. 나는 황급히 그를 붙잡았다. 딘을 향해 섬뜩하게 가라앉았던 눈길이 내게 닿자 사르르 풀렸다.
“신경 쓰지 마요. 그냥 하는 말이겠죠. 분명 엄청 세 보였을 텐데….”
“네? 귀여우셨습니다.”
“……?”
“그러니 시샤 님의 귀여운 모습을 본 자를 살려둘 수는….”
“딘? 저희 이제 이동할까요?”
나는 다가온 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무래도 이아페가 강한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모양이니, 나중에 내 팔의 알통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불편하다는 시선으로 딘을 바라보던 이아페도 마지못해 딘의 반대편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윽!”
그때 고통스러운 신음을 낸 딘이 이아페를 경악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괜찮은가? 어깨가 영… 부실한가 보군.”
이아페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끄응, 소리를 낸 딘이 꾹꾹 눌러 말을 뱉었다.
“…귀엽다는 건 농담이었어요. 하나도 안 귀여… 윽!”
“안 귀엽다고?”
딘이 울상을 지으며 어떻게 좀 해 보라는 듯 내 쪽을 바라보았다.
몰라… 난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었어.
눈을 피하자 한숨을 내쉰 딘이 말없이 손을 움직였다.
‘역시… 수화 언어로 된 주문이야.’
이내 머리가 울리는 감각이 일더니, 따뜻한 실내의 공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높은 지대로 온 것인지 귀가 먹먹했다.
천천히 눈을 뜨자 넓은 공간에 색색의 창들을 통해 쏟아지는 빛이 보였다. 규칙적으로 세워진 푸른 나무 기둥에는 이젠마의 국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확실히 비알로가 조사한 자료의 그림에서 본 건축 양식과 비슷하네.
꿈에서 봤던 코레아리아의 신전 양식과도 비슷하고.
“이젠마의 왕궁 내 알현실이에요. 잠시만요.”
딘이 그곳에 있던 사람에게 다가가 이젠마어로 뭐라 말했다. 누군가를 데려오라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중년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심플한 흰 의복 위에 은빛 수술들이 달린 푸른 천을 두른 옷차림. 머리 위에 견고히 자리한 은빛 왕관.
이젠마의 왕인 것 같았다.
왕이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그는 키론어를 하지 못했기에, 딘이 그의 말을 대신 전해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철수 디포네르입니다.”
…철수가 왜 거기서 나와?
나는 눈을 다섯 번 정도 연속으로 깜빡인 후에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 보면 한국어도 쓰는 판국에 철수와 영희쯤은 있을 수 있지. 그럼, 그럼.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샤 아르비나입니다.”
친숙한 이름에 나도 모르게 내적 친밀감이 높아져서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따라오십시오. 비타 신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철수가 앞장을 섰고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그에게서 기분 좋게 상기된 목소리가 쏟아졌다.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군요. 제 대에서 결실을 볼 수 있어 감격스럽습니다.”
“언어의 결정을 지금까지 지키고 계셨던 건가요?”
“네. 그것을 지키겠다는 사명 하에 이 나라가 세워졌으니까요. 숱한 일들이 있었지만, 저희의 신념만은 퇴색되지 않았습니다. 사명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원동력 삼아 지금까지 국가를 이끌어 올 수 있었고요.”
철수는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언어의 결정을 지켜 내겠다는 마음을 무려 5천 년간이나 간직해 온 것에 대한 자부심과, 그것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느껴졌다.
이내 우리는 커다란 아치형 문 앞에 도착했다. 기하학적인 무늬들 안에는 이젠마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신께서는 독대를 원하십니다.”
함께 선 나와 이아페를 향해 딘이 말했다. 나 혼자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이미 합의된 사항이었기에 이아페도 말없이 물러났다.
나는 이아페의 손을 꼭 잡고 그와 눈을 맞추었다.
“빨리 나올게요.”
“기다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이아페의 손을 놓고 문 앞에 섰다. 왕이 눈짓하자 딘이 무거운 문을 당겨 열었다.
침을 꼴깍 삼키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는 사이로 이아페의 얼굴이 보였다. 잘 다녀와요, 그렇게 말하는 입 모양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훅, 갑자기 강한 마력이 온몸을 휘감았다.
방 안에 켜져 있던 횃불들이 모조리 꺼졌다.
완전한 어둠 속, 발을 지탱하고 있던 바닥이 흐물흐물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으으….”
무중력 상태에서 허공에 떠올라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자니,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도 알 수 없었다.
「토할 것 같아….」
신도 참 고약한 심보를 가진 게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다짜고짜 사람을 이렇게 괴롭힐 리 없어.
그때 드디어 바로 선 자세에서 몸이 멈추더니, 또옥, 내 볼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빗소리 같은 것이 주변을 채웠다. 물방울 소리는 떨어지다가, 튕기는 듯하다가, 이내 거친 파도 같은 소리로 변했다. 쏴아, 어둠이 걷히면서 거대한 물기둥이 나를 둘러쌌다.
「아이야.」
둥글게 소용돌이치는 물 가운데, 비타 신의 음성이 고막을 울렸다.
꿈속에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또렷하고 안정적인 목소리였다. 딘이 말했던 신전이 필요성이 이제야 실감이 나네.
「비타 신…인가요?」
화가 난 듯 거칠게 요동치던 물이 조금 잠잠해졌다. 그리고 다시 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하나 네가 모든 아이들의 신어를 빼앗은 결과, 나는 나를 지탱하던 믿음의 대부분을 잃고 신이라 하기도 어려운 미약한 존재가 되었다. 이곳의 아이들 덕분에 명맥만을 이어 왔지.」
목소리는 단조로웠으나, 어쩐지 비꼬는 것 같은 투였다.
그보다 언어를 뺏었을 뿐인데 신의 힘까지 사라지다니. 조금 놀라웠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코레아리아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니까.’
지금은 마법이라 불리는 비타 신의 신성력을 세상에 내보이는 틀이자,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신어. 그것이 코레아리아어였다.
그런 언어가 하루아침에 사라졌으니 신의 힘이 약해진 것도 당연했다. 수어가 없었다면 비타 신이 사라지면서 이 힘까지 아예 세상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겠지.
「역시 그래서… 저를 이 세상에 데려온 건가요?」
「그래…. 나는 그 일이 있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 세상에 정해진 흐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동시에 이 세상 외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과, 그곳에 환생한 네가 있단 걸 알았지. 그리하여 너를 데려온 것이다.」
다른 세상. 책 속의 세계가 아니라, 내가 살던 곳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해진 흐름을 알고 있었다면.
원작의 내용을, 나아가 라카루스의 존재까지 알고 있었다면….
「더 일찍 많은 걸 도와줄 수도 있었잖아요.」
전쟁에서, 그리고 로디스 공작가에서 사람들이 죽기 전에. 그 외에도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일어났을 수많은 죽음이 있기 전에.
그러나 비타 신은 노기 어린 목소리로 받아쳤다.
「어림없는 소리. 신은 인간에게 길을 내어 줄 뿐, 직접 흐름을 바꿀 수 없다. 특히 죽음을 거스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하지만 저를, 죽은 저를 데려오셨잖아요.」
「죽었다라….」
신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친절히 알려 주듯 말했다.
「너는 죽은 적이 없다. 말하지 않았느냐. 내 힘으로 죽을 이를 살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네? 그게 무슨….」
「교환한 것이지. 너와 그 아이의 육체를.」
교환…? 순식간에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너무 놀라니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죽어서 시샤의 몸에 빙의한 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바뀐 거란 말야?
「물론 그 개입의 대가만으로도 나는 거의 소멸할 뻔했다. 아무 연결 고리 없이 두 육체를 바꿀 수도 없었지. 두 육체 간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탄생의 시간을 이어야 했다.」
탄생의 시간을 잇는다니, 이건 또 뭔 소리야?
표정을 관리할 생각도 못 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비타 신이 내 표정이 퍽 만족스럽다는 듯 이어서 설명했다.
「너와 그 아이의 탄생일이 다른 것이 걸림돌이었다. 흐름에 명명되지 않은 날짜를 조금 비트는 것은 가능했지만, 생명이 피어난 날 자체를 손보는 것은 어려웠지. 그래서 나는 그 아이의 ‘다른 탄생일’과 죽음의 날짜를 손보기로 했다.」
‘생일을 손봤다고…?’
자연스럽게 10월 2일, 그러니까 본래의 내 생일과 시샤가 20년간 챙겨오던 생일이 같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날은 시샤의 본래 생일이 아니야. 아르비나 부부가 잃어버린 그녀가 새로운 곳에서 살기 시작한 날이었지.’
그때는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부모님이 시샤를 잃어버리는 게… 본래 그날이 아니었던 건가요?」
「그래. 그 이후의 어느 날이었지.」
비타 신이 정답이라는 듯 즐거움이 느껴지는 어조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