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39
@139. 제자리
“…….”
이아페를 향한 시샤의 눈동자가 건조하게 식었다. 그녀가 눈을 내리깔며 코웃음을 치더니, 이아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이런 연극,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냐.”
이아페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제가 사랑하는 이와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확실히 다른 사람이다.
차오르는 조바심이 심장을 갉아 먹는 듯했다. 이아페는 그녀의 팔을 더 세게 쥐며 물었다.
“…시샤 님은 어디에 계시지?”
“내가 시샤야.”
“…뭐라고?”
“알고 있잖아? 그 여자가 진짜 시샤가 아니라는 건.”
이아페가 불에 덴 듯 그녀의 팔을 놓았다. 그녀가 잡혔던 손목을 쓸며 인상을 찌푸렸다.
“…….”
눈앞의 여자를 빤히 바라보며 이아페는 생각했다.
사실 이곳의 사람이 아니라던 시샤의,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그제야 이아페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시샤가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원래 살아왔던 그곳으로.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본래 이 몸의 주인.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심장이 무겁게, 그러나 빠르게 쿵쿵 뛰었다. 이아페는 벽에 기대어 선 채 허망하게 허공을 응시했다.
“덕분에 바라던 것은 보고 죽겠네….”
그를 상념에서 깨운 것은 여자의 혼잣말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그녀는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창가로 향했다. 창문을 열고 눈을 감은 채 공기를 코로 흠뻑 들이마셨다. 이아페가 그녀에게 다급히 걸어갔다.
“대답해.”
피곤하다는 듯 미간을 크게 찌푸렸던 여자가 한숨을 푹 쉬며 눈을 떴다.
“그래. 마법의 위상이 이 정도가 된 것에는 네 공도 크니까 말해 줄게.”
그녀가 이아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나와 그 여자의 몸이 바뀌었고, 나는 그 몸에서 잠이 든 채 제법 긴 시간을 보냈어. 운명이 흐르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신께서 재우신 거지. 그리고 더 이상 그 여자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 지금, 이렇게 제자리로 돌아온 거야.”
“운명이 흐르는 속도를 늦춘다고?”
“아, 나는 얼마 못 가 죽어야 할 운명이거든. 내가 거기 있는 동안 내 운명으로 그 여자의 육체가 죽어 버리면 곤란하잖아.”
“그럼 그 육체에 돌아간 그분은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그 운명이 수명에 영향을 끼치는 건….”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눈앞의 사람이 죽을 운명이라는데 안중에도 없이 다른 사람의 안위를 묻다니.
제 몸에 축적된 기억에서 보였던 사려 깊은 남자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 여자는 안 죽어. 지금 죽을 운명인 것은 나지, 그 여자가 아니니까. 지금쯤 그 몸에서 눈을 떴을 거야. 이젠 거기서 계속 살아가겠지.”
이아페가 안도한 듯 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괴로워 보였다.
“그분은… 돌아가길 원했나?”
“…….”
여자가 창밖을 빤히 바라봤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던 그녀는 이아페가 재촉의 물음을 던지기 전에 입을 열었다.
“그래. 여기보다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거든. 그렇게 그 여자가 보고 싶으면 내 품이라도 빌려줘?”
그녀가 팔을 크게 벌리는 순간, 이아페가 뒤로 물러났다. 그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누가 보면 한 대 치기라도 한 줄 알겠네. 그럼 이제 나가 주겠어?”
그녀가 문 쪽을 턱짓했다. 이아페가 곧장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왔다.
밖에 있던 사용인이 이아페를 다른 손님방으로 안내했다. 어느새 그는 홀로 방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방에 어떻게 도착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아페.’
“시샤 님?”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환청이었다.
“하하….”
이아페가 비린 웃음을 터뜨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대로 침대에 털썩 몸을 눕혔다. 팔로 눈을 가리자 세상이 어두워졌다.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곳에서 시샤가 보낸 시간은 채 1년도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마저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괴로운 일들의 연속이었고.
게다가 이아페는 그녀가 본래 있던 세상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알지 못했다. 이곳에서 쌓은 추억보다 더 대단한 기억들이 그곳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는 게 맞았다. 어쩌면 그녀는 줄곧 그러길 바랐을 수도 있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편이 훨씬 행복하겠지. 그렇겠지.
그래도, 그럼에도….
납득할 수가 없다. 이토록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니.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잘 가요, 따위의 그 흔해 빠진 작별 인사도 없이 헤어졌는데.
“하….”
이아페가 팔을 떼어 내며 숨을 뱉어 냈다. 웃음 같기도, 울음 같기도 한 탄식이 떨리듯 빠져나왔다.
‘아니.’
작별 인사가 있었다 한들.
그녀가 돌아가고 싶단 사실을 며칠 밤낮에 걸쳐 자신에게 충분히 설명했다 한들….
그래도 납득하지 못했겠지.
이아페는 그녀가 없으면 안 되었으니까.
밀어낸다 해도, 떨어지라고 해도 계속 옆에 있겠다고 했잖아, 시샤.
그의 눈동자에 시린 안광이 스쳤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향했다.
* * *
벨 소리가 울렸다.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받자 고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응. 당연히 괜찮지.”
– 며칠 더 병원에 있으래도. 보험 들어서 괜찮다니까.
“됐어. 그래도 전부 지원되는 건 아니잖아. 병원에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다고 했고!”
– 고집은…. 내가 정말… 너 대학원 간다는 거 절대 안 된다고, 당장 회사 들어가서 돈 벌라고 다그치고 얼마 후에 너 그렇게 돼서….
고모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고모가 나를 너무 몰아붙이던 시절에, 내가 세상에서 사라져서 고모가 잔뜩 슬퍼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이 일어나고 보니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아마도 내 생각보다는 내가 고모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지.
“괜찮아. 그땐 좀 속상했는데 고모가 나 이렇게 잘 간호해 줘서 다 털어 버렸어. 고모도 그런 것들 다 털어 내. 그리고 울지 좀 마! 끊는다?”
나는 과장되게 밝은 목소리로 고모를 달래고는 전화를 끊었다.
“벼락 맞고 열 달 동안 혼수상태였다니.”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깨어난 지 일주일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계속 잠만 잤을 테니 없는 게 당연한가?
그래도 아무 이상이 없다니 운이 얼마나 좋은 거야? 올해 삼재라더니, 다 뻥이야.
싱글벙글 웃으며 버스에 올랐다. 마침 자리까지 있잖아!
‘그래, 삼재 아니라니까?’
경쾌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무심코 창문 너머를 바라본 순간, 나는 발을 멈추고 말았다.
커다란 전광판 화면에는 요즘 인기 있다는 아동 애니메이션 광고가 재생되고 있었다. 주인공들이 팽이 돌리기 경기를 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런데 왜….
“허윽….”
저걸 보고 눈물이 나는 건지.
“미, 미안해요….”
날 지나쳐 내가 찜해 둔 자리에 앉았던 아주머니가 당황하며 다시 일어났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맨 뒷자리로 걸어갔다. 시선은 여전히 팽이 애니메이션 광고에 고정된 채였고, 눈물은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마구 흘러넘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힐끗대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이상해 보이는 것 이해해요. 다 큰 성인이 버스 안에서 팽이 애니메이션을 보며 운다니, 저도 당황스럽거든요.
준비했던 손수건을 익숙하게 꺼내 들어 눈을 꾹꾹 눌렀다.
평소에도 이렇게 눈물샘이 급발진하는 경우들이 있어서 손수건을 챙겨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팽이 보고 운 건 좀 심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벼락이 눈물샘만 관통하고 지나간 게 분명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무 데도 이상이 없는데 매일 눈물이 흐르는 걸 보면 합리적인 의심이지.
‘삼재다, 역시 삼재야.’
…아니면 그 꿈들이 문제인가?
그러니까, 요즘 매일 꿈을 꾼다.
외국 영화 속에서 본 것 같은 아름다운 공간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밥을 먹고.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고. 웃고, 웃고, 또 웃고….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항상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잠에서 깬다.
문제는 그러고 나면 그리움과 공허감이 후욱 밀려온다는 거다. 가슴에 가득 찼던 충만한 행복을 누군가 송두리째, 가슴의 살점까지 같이 뜯어 간 것만 같다.
그래서 몇 번이고 펑펑 울고 만다.
판타지 같은 꿈에 이렇게 과몰입하다니. 내가 잠들어 있던 동안 고모가 영화라도 줄곧 재생해 놨었나….
나중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집으로 걸어가는데 커다란 나무에 활짝 핀 꽃이 보였다.
“와, 만개했네.”
그 말을 하는데 또 가슴이 일렁였다.
바람이 불어 꽃잎이 잘게 날렸다. 멍하니 꽃비를 바라보는데 스윽, 누군가 내게 담요를 덮어 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따뜻한 뱅쇼 한 잔까지….
“그런 적이 있지 않았나?”
또다시 기시감이 파도처럼 덮쳐왔다.
심장이 쿵쾅댔다. 울컥한 기분이 목까지 차올라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아뇨, 당신 신발.〉
〈더 걸어도 되나 해서.〉
시작을 기념하는 물빛 구두. 내 발이 아플까 걱정하던 남자. 함께 찾은 단골 음식점.
뭐야, 이 기억은? 역시 제정신이 아닌가 봐. 다시 거리에서 울까 무서웠다. 나는 집을 향해 뛰었다.
이렇게 뛰다가 쓰러졌었지. 그래서 그 사람이 밤새 밖에 서서 내가 깨어나길 기다렸고….
그 사람이 대체 누군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더 빨리 뛰었다.
그때였다.
빠앙! 길게 울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와 함께 밝은 헤드라이트가 나를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