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40
@140. 절실함
차가 쌩하니 내 앞으로 지나갔다.
너무 놀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조심해야지. 마차 사고가 날 뻔했을 때 그 사람이 많이 슬퍼했잖아. 절대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했잖아.
아니, 갑자기 웬 마차 타령인데.
“대체 뭐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대체….
무릎에 끌어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심장이 아팠다.
그리고 그때.
– 시샤 님.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잘못 들었나?
– 어디에 있는 거야, 시샤.
손을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 이 목소리는….
꿈에서 들었던 남자의 목소리였다.
“…누구야? 누구예요?”
물기 어린 목소리가 새어 나갔다. 그러나 남자는 내 말을 듣지 못하는 듯 절박하게 내 이름을 반복해 불렀다.
– 시샤….
잠깐… 내 이름? 왜 저게 내 이름이라고 생각했지?
심장이 조여 왔다. 너무 혼란스러운 나머지 속이 메스꺼웠다. 그 와중에도 눈물이 마구 흘러나왔다.
대체 뭐지? 뭔가 중요한 것을 잊은 것 같아. 절대 잊어버려선 안 될 소중한 기억을.
〈당신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활발히, 그리고 충실하게 나아가는 사람이니까요.〉
나지막한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이건 지금 들리는 건가? 아니면 환청?
아니… 지금이 아니야. 언젠가 들었던 기억 속의 문장들이다.
풍덩, 물에 빠진 것처럼 숨이 막혔다.
〈당신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정말로.〉
물속의 중력이 나를 아래로, 또 아래로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손발이 모두 묶인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보고 싶었어요. 버티기 힘들 만큼.〉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듯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귀가 먹먹해졌다.
그리고.
〈이름… 불러 주세요.〉
“…이아페.”
그 순간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파고들었다.
허억, 숨을 크게 들이켜는 동시에 옥죄던 모든 것에서 풀려났다. 어둠이 물러갔다. 몸속의 모든 피가 빠르게 돌았다.
“이아페…?”
기억났다. 그 소중한 기억들을 어떻게 잊고 있었던 거지?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돌아가야 하는데. 많이 기다릴 텐데. 가족들도, 단원들도, 이아페도.
그리고 그들이 기다리는 것보다….
“보고 싶어….”
내가 그들을 더 보고 싶었다. 미칠 것 같았다.
결국 그 자리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돌아가고 싶어, 이아페, 보고 싶어어….”
“돌아가길 원하니?”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너무도 익숙한 얼굴의 주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일주일 전, 이젠마의 왕궁.
“저, 시샤 님…! 이아페 님 좀 말려 보세요. 난리랍니다, 지금.”
다시 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이아페에게 알려 주고 얼마 후, 딘이 황급히 여자의 방 문을 두드렸다.
다급한 일이라기에 문을 열어 주었더니 딘이 한 말의 내용은 의외였다. 말리라고? 난리라고? 몇 달 동안 쌓인 기억 속의 남자와 실제로 마주한 남자가 아무리 다르다지만….
“난리를 피울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분 진짜 미친놈 같… 아니, 이건 말실수랍니다. 암튼 어서 같이 가요.”
“어디로?”
“신탁의 방에요. 거기에 쳐들어가서 나오질 않고 있단 말예요.”
그녀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신이랑 담판이라도 지으려나 보지? 하지만 헛수고일 것이다.
신은 언어를 다룰 수 있는 그 여자를 다시 데려올 생각이 전혀 없을 테니까.
‘차라리 나한테 부탁하는 편이 더 좋았을걸?’
마법의 제자리를 찾는 것에 기여한 대가로, 신은 그녀에게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다. 아직 그 기회는 쓰지 않았고.
‘뭐, 몸을 다시 바꿔 달라는 소원을 빌 생각은 없지만.’
죽더라도 마법이 부흥한 이 세상에서 죽고 싶었다. 그걸 위해 버티고 또 버텼으니까.
그녀는 팔짱을 끼며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
“으음, 내게는 말릴 재주가 없는 듯한데.”
“압니다. 당신이 다시 돌아온 사람인 거. 그래도 껍데기가 동일하니 당신 말을 들을 것 아니에요?”
“이를 어째? 알맹이가 다른 걸 알아 버렸어요.”
“네? 벌써요? 뭘 어떻게 티를 냈길래….”
“들킨 이유는 하나예요. 그 남자가 사랑하는 게 이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란 거.”
뭐라 더 말하려던 딘은 결국 포기하고 돌아갔다. 이제 그가 이 일로 그녀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조금 흥미가 생겼다.
외형, 목소리, 체향. 게다가 함께 겪은 일을 기억하기까지… 분명 그가 아는 시샤 아르비나와 같았을 텐데. 그럼에도 그 남자는 단번에 아니라는 걸 알아봤다.
‘사랑이라.’
아마 그에겐 ‘진짜’가 그 여자겠지. 그리고… 그 여자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서도.
그렇게 생각하니 미묘한 기분이었다.
“시샤 아르비나… 좀 낯설긴 하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에 빠지는 대신 신탁의 방으로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대체 어떻게 난리를 피우고 있으려나? 죽기 전 마지막 구경거리라 생각하니 콧노래가 나왔다.
“오….”
신탁의 방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지해 있었다. 아마 이아페가 포박 마법을 걸어 놓은 거겠지.
“만나게 해 줘, 제발….”
물기 어린 절절한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차라리 빨리 신을 뵙고 포기하는 게 낫겠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신이 얼마나 짓궂고 제멋대로인 존재인지. 다른 세상으로 보내지던 순간, 그리고 그 몸에서 잠들어 있는 동안 이따금 신을 만났기에 알 수 있었다.
육체가 없거나, 육체와의 연결이 불안정한 영혼은 신어 없이도 말씀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제 운명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신의 뜻에 기꺼이 따르기로 결정한 것도 몸이 바뀌기 전 영혼이 붕 뜬 찰나였다.
‘그러니까 앞으로의 전개를 예상해 보자면.’
신은 자신이 주는 시련을 버티면 그 여자를 만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할 터다.
시련이란 화염 속에 갇히거나, 몇 초에 한 번씩 배를 찔리는 것 따위의 고문이겠지.
그리고 못 버티겠다 말하면 언제든, 어떤 대가도 없이 풀어 주겠다고도 할 것이다.
매 순간 죽을 것 같은 고통이지 않은가.
말만 하면 아무 대가 없이 그것을 끝낼 수 있다니, 포기를 부르는 달콤한 조건임이 분명했다.
아니, 포기하지 않는 편이 미련한 건가?
마음은 너무도 약하다. 낙관은 쉽게 비관으로 모습을 바꾸고, 작은 가능성만으로도 신뢰는 불신으로 돌아선다.
‘그 여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도 그럴 거야. 그러니까 다시 돌아올 때에는… 저 남자를 볼 일은 없겠어.’
그녀가 빙글 돌아서서 어딘가로 향했다. 시간은 일주일,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많이 남았으려나? 죽기 전에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 * *
“확실히 미친놈 같긴 하네.”
일주일이 지나 이젠마로 돌아왔는데도 이아페는 아직 신탁의 방에 있었다. 듣자 하니 일주일 전 마법을 몰락시켜 버리겠다고 협박해 결국 신을 만났다고 했다.
그 말은 그가 가사 상태에 빠진 지 일주일이 흘렀다는 것이었다.
‘반나절도, 하루도 아니고…. 일주일이나 그렇게 있다고?’
설마 이미 미쳐 버린 것 아냐? 그래서 고통스러운지 아닌지도 판단을 못 하는 것 아냐?
결국 그녀는 신탁의 방으로 향했다.
잠든 모습의 이아페가 공중에 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일그러진 표정, 핏기 없는 얼굴, 이마에 맺힌 식은땀, 꾸역꾸역 누르는 신음 소리.
“말도 안 돼.”
고통을… 느끼고 있잖아.
그 여자를 사랑해서? 고작 그거 하나로 견디고 있는 거야?
가슴 속에서 이상한 울컥함이 차올랐다. 동시에 미묘한 감정이 머리를 울렸다.
그녀는 한참 동안 이아페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리자 벽을 장식한 거울에 제 모습이 비쳤다.
‘표정이 좀 변했나?’
자신의 몸인데 낯설었다. 그 여자, 그동안 무슨 표정을 짓고 살았던 거야? 입가랑 눈가에 주름이 잡힌 것 같잖아.
“하지만… 밝아 보이네.”
그녀가 다시 이아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많이 절실해? 죽어도 좋을 만큼?”
나도 그랬는데. 너무 절실해서… 내 몸을 바친 건데. 내가 그랬던 것만큼이나 절실한가 봐.
“시샤….”
이아페가 신음 어린 목소리를 뱉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마법을 부흥시킬 인재가 미쳐 버리는 건 달갑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녀가 눈을 감았다. 거센 물의 소용돌이가 자신을 둘러싸는 기분이 들었다.
「소원을 말할게요.」
그녀가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저 사람이 미쳐도 곤란했고, 그 여자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가 마법을 몰락 시켜도 곤란했다.
그래서였다.
어차피 죽을 운명. 마지막을 어디에서 보내느냐보다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으니까.
단지 그것뿐이었다.
* * *
“돌아가길 원하니?”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 목소리는 분명….
〈당신에게 모든 것이 달렸어요. 부탁해요.〉
처음 이 몸속에 들어오던 날 들렸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많이, 아주 오랫동안 나는 이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너무도 익숙하면서도 한없이 낯선 목소리.
‘시샤의 목소리였어.’
눈앞에 흐릿한 연기가 모여들었다. 그것은 점차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 갔다. 이내 연보랏빛 긴 머리에 녹안을 가진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샤 아르비나.”
내가 아닌, 그 몸의 원래 주인인 그녀가 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 난 시샤 아르비나가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분명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도 거울을 통해 보던 모습과 전혀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았다.
“블리스 리버티. 그게 내 이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