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41
@141. 시샤 아르비나
“블리스 리버티….”
리버티. 굳이 시샤의 기억을 더듬지 않아도 그 이름만은 알 수 있었다. 처음 시샤의 기억이 물밀듯 흘러 들어왔을 때부터 가장 강렬히 남아 있던 기억이었으니까.
‘리버티 부부.’
아르비나 후작 부부가 시샤를 잃어버린 20년. 그동안 시샤를… 아니, 블리스를 사랑으로 키워 주신 분들이었다. 그렇기에 블리스에게 있어 ‘부모님’은 리버티 부부를 말했다.
“나를 키워 준 것도, 내가 마법사임에도 안전하게 살 수 있게 해 준 것도, 이 힘을 부흥시키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것도 부모님이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분들도… 마법사셨으니까.”
리버티 부부는 연고 없는 블리스를 친딸처럼 키울 만큼 선한 이들이었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선행을 베풀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리버티 부부를 좋아했다. 그러나 마법사라는 것을 들키자 모두의 반응이 달라졌다.
대놓고 손가락질하진 않았지만 두려워하고 피했다. 언제 폭주할지 모른다며, 어떻게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며 수군댔다.
누구도 리버티 부부와 교류하려 하지 않았다. 자원의 나눔도, 일거리도 끊겼다. 서로 나누며 살아가던 좁은 마을 공동체에서 그들만이 고립되었다.
부부는 블리스가 마법사라는 것을 감추는 것에 혈안이 되었다. 블리스는 이대로 살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마을을 떠나 부모님과 함께 살 곳을 알아보러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돌아온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리버티 부부였다.
블리스는 큰 절망에 빠졌다. 그리고 다짐했다. 마법을 반드시 부흥시켜서, 리버티 부부의 명예를 끌어올리겠다고. 더는 마법사라고 해서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아르비나 후작가에 돌아간 것도 그래서였다.
자신이 아르비나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오래전 우연히 알았으나 그 사실을 숨긴 채 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후작가를 찾아갔다. 귀족이라는 지위가 있으면 목적을 이루기 쉬울 것 같아서.
“나는 마법사가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았어.”
블리스의 목소리는 담담하고도 결연했다.
“하지만 신은 말씀하셨지. 외부의 개입이 없는 한, 나의 죽음과 마법의 몰락이라는 운명은 경로를 벗어나지 않고 나아갈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기꺼이 너를 끌어오기로 했어. 네가 던진 돌이, 무한히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길 바라면서.”
“결국… 너의 바람대로 되었네.”
그녀의 몸에 빙의한 나는 사람들에게 언어를 가르쳤고, 이 힘의 위상을 높였다. 이아페가 그의 형을 죽이지 않도록 그들을 지켜보기도 했다.
“응. 그러니 내게 더 이상의 미련은 없어. 하지만… 너는 있겠지.”
블리스가 대답해 보라는 듯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의 바람은… 너의 이름으로, 너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그러나 막상 블리스의 앞에 서자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내가 이런 것을 바라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지만….
“…시샤로 살고 싶어.”
이 바람은 모른 척 묻어 둘 수가 없는 크기였다. 염치없다 욕을 먹고 손가락질당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뻔뻔해 보인단 거 알아. 하지만… 그러고 싶어.”
목소리가 떨렸다. 블리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몸을 다시 바꿔 줄게. 그 몸으로 돌아가.”
“뭐…?”
“말했잖아. 난 마법의 부흥을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야. 그리고 네가 앞으로도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 그러니까 그게 내게도 좋아.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야.”
블리스가 싱긋 미소 지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냈다는 듯 후련한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보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울렁거렸다.
뱃속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와 목까지 차올랐다.
“…블리스.”
나는 그녀에게 양팔을 뻗어 내밀었다.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 내 손을 바라보았다.
나는 한 걸음, 두 걸음을 옮겨 그녀를 꼬옥 끌어안았다.
“고생했어.”
“……!”
비타 신은 쉽게 말했지만, 분명 남에게 자신의 몸을 주겠다는 결정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
더 이상 살아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본인 손으로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더욱 힘들었을 거야.
‘그리고… 이렇게 어린데.’
너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많았을 텐데. 후작가의 편안한 생활에 안주하고 싶었을 텐데.
그럼에도 이렇게 강한 의지를 가지고 달려올 수 있다니. 너무도 대단한 일이었다.
“블리스, 이렇게 멋진 사람으로 살아 줘서 고마워. 네가 그런 사람이라서, 네 육체를 받은 나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
말없이 서 있던 블리스가 천천히 나를 마주 끌어안았다.
“…처음부터 시샤 아르비나는 너였어.”
그 순간 강한 힘에 의해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비틀거리며 뒤를 돌자, 눈앞에는 내가 있었다. 아니, 내 육체에 들어간 블리스가 있었다.
“블리스….”
“아르비나 후작님도, 후작 부군도 네 부모님이야. 그분들은 네가 그저 딸이라서가 아니라, 네가 너라서 좋아하는 거야.”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대답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살갑게 못 해 드렸지만… 넌 그분들을 정말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죄책감 가지지 마. 네 사람들이야. 걱정 마.”
“…고마워.”
“나야말로… 고마워.”
블리스에게서 조금 여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네가 남기고 간 기억이 너무 따뜻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
“무슨 생각…?”
“좀 더 마음을 열걸, 하는 후회.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나 시선들이 내 것이라는 오만. 그런 것들이 차올랐어.”
“…….”
“하지만 이제 알아. 그건 네 거야. 나였으면 절대 갖지 못했을 것들이야. 네 덕분에, 네 기억을 읽을 수 있어서 나도 행복했어. 그것만으로도 고마워.”
블리스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활짝 웃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초연해 보였던 블리스가, 이제야 내 또래처럼 보였다.
나는 블리스에게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내 영혼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걸 본 블리스가 밝게 말했다.
“나 말이야, 부모님 묘에 가서 인사도 하고 왔거든. 열심히 살다가 곧 만나러 간다고. 그러니까 이제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나는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가 터뜨리듯 내뱉었다.
“죽지 마.”
“뭐…?”
“죽음을 인정하지 마, 블리스. 운명이라는 건 없어. 부디 잘 살아 줘. 네가 하고 싶은 거, 잘하는 것들을 다 보여 줘. 그리고 100살 넘어서 꼬부랑 할머니 되면, 그때 다시 만나자.”
숨이 가빠 왔다. 내 모습이 투명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는… 그녀와 작별할 시간이었다.
“안녕, 블리스 리버티.”
내 말에 그녀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강한 의지와 올곧은 마음을 가진 소녀가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지었다.
“다시 만나자, 시샤 아르비나.”
그 말을 끝으로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뒤덮었다.
* * *
다시 눈을 뜬 곳은 이젠마 왕국의 신탁의 방도, 키론 제국의 아르비나 후작저도 아니었다.
사방을 빼곡히 채운 가시덤불. 그 사이의 드문드문한 틈으로만 빛이 새어 들어오는 어두운 공간.
바닥에는 발목 즈음까지 얕게 깔린 물이 펼쳐졌고, 눈앞에는 거대한 더미를 이룬 가시덤불이 있었다. 어지럽게 얽힌 덤불은 단 하나의 대상을 위협하듯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고 부풀렸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양팔과 허리를 덤불에 감긴 이아페가 있었다.
“……!”
뜨겁게 올라오는 숨을 삼켰다. 그사이에도 길고 날카로운 가시가 이아페의 온몸을 깊게 찔렀다. 덤불이 채찍질하듯 그를 할퀴었다. 말이 가시지, 거대한 덤불에 달린 그것은 작은 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살벌했다.
「전부 사라져.」
가시덤불을 노려보며 낮게 읊조리자 이아페의 몸을 덮은 덤불이 수만 개의 빛 조각이 되어 사라졌다.
사방을 둘러쌌던 것까지 모조리 사라지자, 밝은 풍경이 드러났다. 그곳은 끝없이 이어진 하늘과 물의 경계. 맑고 깨끗한 공간이었다.
마법으로 덤불에서 풀려난 이아페의 몸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 무릎에 눕혔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이아페는 숱한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채였다.
「엄마 손은 약손.」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상처를 치료했다. 팔이고, 다리고… 성한 구석이 없잖아.
그때, 온기 어린 부드러운 손이 내 뺨에 와 닿았다.
휙 고개를 돌렸다. 그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건강해 보이는군요.”
“지금 웃음이 나와요?”
나는 일그러지는 표정을 숨길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아페가 내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 준 뒤 몸을 일으켰다.
“그럼요. 소원이 이뤄졌는데 기쁘지 않을 리가.”
그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저 느긋하고도 다정한 미소. 물기와 함께 환한 빛을 머금은 남자는 수많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싱그럽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웠어.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
나는 이아페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당신 소원이 내가 돌아오는 거였어요? 당신에게로?”
“아니.”
그가 손을 올려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정하면서도 단호한 음성이 귀를 감싸고 들어와 가슴까지 찔렀다.
“내 소원은, 당신의 세상으로 가는 거였어. 그게 어디든… 당신이 있는 곳으로.”
“내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당신이 살아왔던 곳이든, 죽음 이후의 세계든, 먼지가 되어 떠돌아다녀야 하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당신이 있다면 내겐 천국이니까. 어디로 떠나든 상관없었어.”
“…그럼 당신은 아무 데도 못 떠나요.”
이아페에게서 몸을 떼어 냈다. 그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나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시련은 끝이에요. 여기서 내보내 줘요.」
고요하던 물이 찰랑거렸다. 이아페와 나를 둘러싸고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두렵지는 않았다. 이아페와 함께 있었으니까.
이내 비타 신의 음성이 천둥처럼 울렸다.
– 「아이야, 다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느냐?」
「반복 같은 거 안 해요! 그러니까 똑똑히 지켜봐요. 우리가 어떻게 이 힘을 일구는지, 사랑하는 것들을 어떻게 지키는지.」
우리를 둘러싼 물이 거세게 소용돌이쳤다.
이아페의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정말로 어디로 보내지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처럼. 나는 그런 그의 손을 꼬옥 잡았다.
이내 모든 물이 사라지고, 우리는 떠나왔던 장소에 돌아왔다.
이젠마의 황궁 내 신탁의 방.
언어의 결정을 세상에 돌려준 곳이자, 이아페에게 곧 돌아오겠다고 말했던 그곳.
“…당신의 세상에 남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어디에 있는지 깨달은 이아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 동안, 나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힘들고 괴로운 일을 많이 겪었다.
저 너머의 세상에선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몸서리치기도, 믿었던 친구에게서 나를 전부 지워 버리기도 했다. 신조차도 나의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나를 나아가게 하는 세상이다.
더 나은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기쁨.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감정들을 알았고, 앞으로 더 많은 추억이 쌓일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아페의 물음에 나는 확고한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었다.
“여기가 내 세상이에요.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치열하게, 그러나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얼마나 다양한 빛으로 물들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나의 유일한 세상에서.
〈빙의했는데 고대 언어가 한국어였습니다〉 마침
By.[Y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