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5
@15. 무슨 생각으로 보낸 거야?
“지난번에도 카일라인 공작가에서 편지가 왔었다며. 연애편지라도 주고받는 거야?”
비알로가 나를 놀리듯 은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연애편지라니. 상상도 하지 못한 추측에 헛웃음이 터졌다.
“그럼 너는 남의 연애편지 훔쳐보려고 가주 권한까지 들먹이는 거야?”
내 질문에 비알로의 한쪽 입술이 비틀렸다. 그가 한숨을 쉬며 나지막이 말을 뱉었다.
“인맥을 관리하라고 했지만 한 번에 여러 남자를 만나라는 건 아니었는데.”
“무슨 소리야?”
비알로가 안타깝다는 듯 눈썹을 기울였다.
“오빠로서 조언할게, 시샤. 지난번에 온 놈도, 공작가의 이런 편지도. 다 널 가지고 노는 거야.”
지난번에 온 놈? 누굴 말하는….
아.
문득 지난번에 이아페가 후작저를 방문했을 때 비알로와 마주친 것이 기억났다.
그놈이 공작가의 이놈인데 그건 모르네, 바보 자식.
물론 그날 온 게 카일라인 가의 손님이라는 것은 리나에게만 말했으니 모를 만도 하지만, 솔직히 좀 웃겼다.
“조심하라고 해 주는 말이야. 다 너한테서 빼낼 것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접근하는 거라고. 설마… 벌써 후작가의 정보를 팔아넘긴 건 아니지?”
마치 날 떠보는 듯한 음성이 복도에 깔렸다.
귀족 세력은 2개의 공작가를 중심으로 나뉜다. 보수적인 정통 귀족 세력의 정점인 카일라인, 신흥귀족들의 지지를 받는 로디스.
그리고 아르비나는 그 둘 중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이다.
이리도 독립적인 아르비나이기에, 황실과 신전, 모든 귀족들에게서 너무 환대받지도, 그렇다고 홀대받지도 않으며 적당히 존중받는 자리를 지켜 왔다.
특유의 우호적인 관계 스킬로 대대로 외국과 관계를 맺을 때도 아르비나가 중심이 되는 경우도 많았고.
비알로는 그러한 아르비나의 포지션을 내가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솔직한 답이 가장 최선의 답이다.
“헛소리 마. 나한테 팔아넘길 정보가 있긴 해?”
애초에 이 집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반지를 비알로가 가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데 뭘 할 수 있겠냐고.
비알로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듯 눈을 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 시샤는 아직 배우는 단계니까. 글도 아직 서투르니 편지로 정보는 못 넘기려나.”
또 저러네, 저게.
비알로는 시샤가 글을 잘 모른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었다.
물론 시샤는 후작가에 와서야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언어 습득 능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아는 언어를 글로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나는 빙의자 패치 때문인지 키론어 전문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언어 능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여기서 굳이 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빨리 반지부터 보여 줘.”
“…그래. 들어가자, 시샤.”
허리를 편 그가 다시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방문을 열기 전,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왜 또 뜸을 들이는….”
방문이 열렸다.
그의 방은 처음 가 보는 것이었다. 비알로는 제 방에 누가 들어가는 것을 싫어했기에, 원래의 시샤조차 들어가 보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으니.
비알로가 시샤의 방에 당연한 듯 불쑥불쑥 들어오던 것과 비교하면 화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한 발을 들여놓으며 눈으로 방을 가볍게 훑었다.
‘내 방보다 좁은가?’
아니, 다시 보니 아니었다. 내 방과 크기는 비슷했지만 더 좁아 보이는 건, 방을 채우는 것들이 많아서였다.
짙은 보랏빛 벽지로 둘러싸인 방에는 골동품 같은 오브제들이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다.
뭐, 여기서 더 오래 살았으니 당연히 짐이 많겠지만.
생각보다 방이 화려해서 놀랐다.
평소의 비알로는 깔끔히 머리를 묶어 옆으로 내리고, 각이 잘 잡힌 옷을 입고 다녀서 방도 미니멀라이프의 표본일 거라 생각했는데.
“자, 이제 됐어?”
어느새 비알로가 작은 상자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보란 듯 상자를 열어 내게 내밀었다.
“…….”
아르비나를 상징하는 보랏빛 보석, 알빈이 박힌 반지가 그 안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화려한 반지가 빛을 발했다. 절대 모조품을 만들 수 없을 법한 정밀한 문양의 세공까지.
이건, 부정하고 싶지만 정말로 시샤의 어머니가 끼고 있던 그것이 맞다.
“편지는 지금 바로 확인할게.”
비알로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안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들었다.
종이칼로 봉투를 뜯는 그는 콧노래까지 부를 기세였다.
분하지만 더 이상 말릴 수는 없었다. 마음 같아선 억지로 편지를 뺏어 들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오히려 정말 들키면 안 될 내용이 있다고 시인하는 꼴이었으니.
한 가지 다행인 건, 이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신중한 이아페의 편지라는 것이다.
‘이아페의 성격상 편지의 내용에 대놓고 마법에 대해 썼을 리 없어.’
그러니 혹시 의심이 가는 내용이 있다 해도, 전혀 아닌 척, 모른 척하면 되지 않을까.
마른침을 삼키며 편지를 펼쳐 드는 비알로의 손에 집중했다.
하지만 펼쳐 든 편지의 내용은 정말 의외의 것이었다.
「어제는」 이 편지는 잉글던스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1년에 한 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잘」 행운을 주었고 「들어가셨습니까」 지금 당신에게로 「언제」 옮겨진 이것은 「당신이」 1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말한」….
내 동공과 비알로의 동공이 동시에 지진을 일으켰다.
‘행운의 편지…?’
편지는 이 편지를 포함해 7통을 행운이 필요한 이에게 전달하라는 내용을 길게 풀어 쓰고 있었다. 편지를 안 보내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내용은 없지만, 이외에는 행운의 편지와 똑같았다.
그리고 편지 중간중간에 쓰인 짧은 글자들은… 한글, 아니 코레아리아의 글자였다.
편지를 쓴 이의 이름은 적지 않았다. 이 언어를 썼다는 것만으로 이아페라는 것이 증명이 되기에.
비알로가 어이없다는 듯 편지를 훑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게 뭐야.”
“오, 행운의 편지를 나도 받아 버렸네!”
“…공작가에서 장난 편지를 보냈다고?”
“어어, 요즘 유행이잖아.”
우습게도 이곳에서도 행운의 편지는 간간이 오가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건 아니겠지만 알 게 뭐야. 애써 트렌디세터인 척을 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비알로는 의심이 가시지 않는지 다시 편지를 훑었다.
아아, 대놓고 적혀 있는 한글에 심장이 두근대고 입 안이 말라 온다.
하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야, 이 그림들은?”
그림?
뭘 말하는 건지 몰라 편지를 다시 본 순간, 깨달음으로 입이 벌어졌다.
이 글자를 그림이라 생각하는구나. 하긴, 모르는 이가 보기에는 동글동글하고 네모난 모양이 그림 같아 보일 만도 했다.
특히 문장으로 쭉 이어 쓰지 않고 편지지를 꾸미듯 불규칙적이고 뽀짝하게 글자를 배치했기에 더욱.
“그냥 장식으로 꾸민 것 아냐?”
나는 떨리는 마음을 숨기고 천연스레 대꾸했다.
다행히도 비알로는 그것에 더 의미를 두지 않았다. 대신 창 가까이로 가 햇빛에 편지를 비춰 보았을 뿐.
“비알로, 내가 그렇게 의심이 돼? 불에도 그을려 보지 그래?”
내 말에 그는 정말로 촛불 위로 편지를 가만히 올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무런 비밀암호도 나타나지 않았다. 암호는 이미 편지에 대놓고 가득히 들어차 있었으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편지를 보낸 건지….”
나는 찝찝한 기분을 읊조리는 비알로의 손에서 편지를 쏙 빼냈다.
“내 편지에 왜 네가 심각하고 그래? 행운을 준다는데 나쁠 것도 없지. 끼고 싶으면 너도 그 많은 인맥에 편지 돌리든가.”
“…너나 해.”
태연스러운 내 말투에 비알로가 언짢은 듯 미간을 모으며 돌아섰다.
“그럼 쉬어, 비알로.”
나는 여유롭게 그에게 손을 흔들고는 방을 나섰다. 그리고 복도를 흔들림 없이 천천히 걸어 1층의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방문을 닫은 순간.
“뭐, 뭐라고 적혀 있었지…?”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다시 편지를 펼쳐서 내용을 확인했다. 중간에 적힌 한글만 따로 읽으면 이와 같았다.
「어제는 잘 들어가셨습니까? 언제 당신이 말한 사람에게 갈까요? 다른 일도 괜찮지만 내일 날씨가 좋습니다.」
미묘하게 부자연스러운 어투가 귀여워서 미소가 지어졌다.
그보다 이 말은, 날씨가 좋으니 내일 가자는 뜻이겠지?
이 나라의 날씨는 신전에서 발표한다. 매일 하는 게 아니라 간혹 한 번씩 발표했는데, 정말 확실할 때만 하는 것인지 일기예보는 한국에서보다 더 잘 들어맞았다.
“그래, 내일 가지 뭐.”
책상 앞에 가 앉은 나는 얼마 후, 종을 울려 리나를 불렀다.
“리나, 이건 카일라인 공작가에 직접, 그리고 이 편지들은 여기 이 7개 가문에 우편망을 통해서 보내 줘.”
“7개요? 다과회라도 여시려고요?”
“아니, 그냥 행운을 빌어 드리려고.”
저 안에는 각각 행운의 편지 1통씩이 들어 있다.
비알로의 의심을 제대로 피하려면 진짜 유행으로 만들어야지.
후후, 악마처럼 웃는 내 모습을 리나가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편지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날 후작저에서는 총 15통의 편지가 빠져나갔다고 한다.
* * *
“오랜만입니다.”
봄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한낮.
문이 열린 마차 안에서 이아페가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역시 칼린느를 만나는 것이 아니어서인지 엊그제 탔던 검은 마차는 아니었다.
“덕분에 행운이 가득한 하루네요, 공자님.”
그러니까 행운의 편지 덕분에.
활기차게 건넨 내 인사의 뜻을 알아챈 이아페가 작게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