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6
@16. 신혼부부가 아니라는 거요?
“비밀 암호를 숨기기에 적절할 듯하여.”
“탁월한 판단이었어요. 그놈, 아니, 제 오빠가 편지를 봤거든요. 당연히 암호를 알아채진 못했고요.”
“오늘도 카페에 가신다 하고 몰래 그곳에 가는 거라 하셨죠. 연구단에 본격적으로 출근하게 되면 괜찮으시겠습니까.”
“음, 며칠 동안만 얌전한 모습 보여 주면 돼요.”
단순한 놈이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 보면 대놓고 힘을 과시하기보단 은근한 압박을 주는 걸 즐기는 비알로가 아르비나의 반지까지 들먹이며 편지를 확인하다니.
그럴 만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음에도 나를 괜히 견제하는 것 같단 말이지.
‘며칠 후면 부모님이 돌아오시니 더 예민해진 건가?’
어머니는 사절단, 아버지는 기사단 훈련을 떠났으나 오는 길이 겹쳐서 기사단이 사절단을 호위하며 함께 온다 들었다.
어찌 됐든 당분간은 조심하는 게 좋겠지.
아직 마법이 공표되지 않은 지금, 내가 마법사라는 것을 비알로가 알고 있다는 것은 꽤 위험한 상황이니.
마차는 소문의 마법사가 있는 곳, 수도 외곽에 있는 부르쌍 마을을 향해 달렸다.
중심가를 빠져나가자 길이 조금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이만큼 좋은 마차가 아니었다면 속이 얼마나 메스꺼웠을지 상상하기도 싫은 길이다.
그리고 차를 타면 잠을 자는 나의 습관은 마차에서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하암.”
하품을 하는데 이아페가 마차 옆 좌석을 들어 올려 담요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아페네 마차는 다 파란에몽 주머니인가. 왜 이렇게 딱 필요한 물건들이 나오지.
“꽤 걸릴 테니 눈을 붙이셔도 좋습니다.”
“아녜요. 저 자면 공자님 심심하시잖아요. 하암, 계속 하품이 나오는데 지루해서가 아니라 이게 멀미거든요. 오해하지 마시라고요. 좀 졸리긴 하지만 괜찮….”
그리고 다음 순간.
“도착했습니다. 영애.”
“예…?”
화들짝 몸을 일으키자 고급스러운 때깔의 담요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이 소설… 타임리프물이었던가?
* * *
“영애?”
천천히 끔벅이던 시샤의 눈꺼풀이 완전히 감겼다. 동시에 점차 사그라들던 그녀의 목소리가 끊겼다.
이내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고개가 고꾸라졌다면 제게 기대게 했으련만. 정자세로 앉은 그녀는 너무도 편안해 보였다.
많이 피곤했던 건가.
‘그 와중에도 내가 심심할까 봐 걱정을 하다니.’
더구나 저를 그렇게 싸늘하게 대했던 이인데도.
이아페는 눈치가 빨랐다. 상대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호감이 담겼는지, 혹은 두려움이나 멸시가 담겼는지를 기민하게 파악했다.
처음 시샤에게서 느껴지던 것은 경계심과 조급함.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의 반응은 점점 예측이 힘들어졌다.
경계하는 동시에 오래전부터 알아 온 양 친근하게 군다. 몇 번이고 연습한 듯 흐트러짐 없이 대화를 이어 나가는가 하면, 호기심 가득한 아이처럼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크게 반응하곤 한다.
그 의외의 순간들에 이아페는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가면무도회에서.
이아페는 더 이상 그녀를 예측하지도, 평가하지도, 그리하여 벽을 세우지도 않기로 했다.
상대를 단정 짓는 것이 얼마나 쉽고도 허망한 일인지. 그것을 그만둔 이아페는 이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아페는 가만히 시샤를 바라보다가 얇은 담요를 펼쳐 덮어 주었다. 혹시 그녀가 깨진 않을까 조용한 손길로.
그러다 그의 시선에 그녀의 머리에 내려앉은 작은 꽃잎이 들어왔다. 시샤의 머리칼과 잘 어울리는 분홍빛이었다.
언제부터 이 꽃잎과 함께 왔던 걸까. 이아페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와, 졸도 무슨 일이야.
문득 마취를 하는데 3초까지 세라고 해서 ‘그 안에 잠이 들까? 1, 드르렁.’ 했다는 에피소드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코 골고 잔 건 아니겠지? 황급히 입가를 만졌으나 다행히 침을 흘린 것 같진 않았다. 아주 뽀송뽀송했다.
그런데 이아페의 손에 손수건은 왜 들려 있는 거지?
신경 쓰였다. 하지만 차마 확인해 보지는 못한 채, 일단 뭐가 됐든 사과부터 하기로 했다.
“죄송해요, 제가 남의 마차에서….”
“남이라뇨. 이제 운명 공동체이니 남이 아니죠.”
황망한 표정의 나를 향해 이아페가 사르르 눈웃음을 지었다.
뭐, 마법의 흥망에 따라 운명이 좌지우지된다는 점에서 묶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와 공자님이 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사람을 앞에 두고 잠만 퍼질러 잔 데다… 흠흠, 죄송한 건 죄송한 거예요.”
“괜찮습니다. 너무 곤히 주무셔서 저도 마음이 편안해지던걸요.”
비꼬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의 부드러운 말투에 내 마음도 편해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저 손수건 때문에 온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근데 손수건은 왜 들고 계세요?”
“아, 이건….”
이아페가 말끝을 흐렸다. 그가 말을 해도 될지 말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역시 저 손수건에는 내 침이 묻어 있는 것인가. 저걸 또 왜 저렇게 소중하게 들고 있는 거야.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심정이다.
“그 손수건은 지금 저에게 파세요….”
“곤란합니다. 영애가 손수건을 갖고 싶으시다면 제가 내일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손수건을 한번 보기만 해도 될까요?”
이아페가 멈칫했다. 그는 내 추했던 흔적을 최대한 감싸 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심각함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제발 보여 주세요.”
망설이던 이아페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레 펼쳤다. 그런데 그 안에는….
웬 분홍빛 꽃잎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 침이 아니네.”
“네? 저는 침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제 침을 보고 싶으셨던….”
“아뇨, 아니에요. 잘못 들으신 거예요.”
이아페의 침을 닦은 손수건을 내가 가지고 싶어 한다는 아찔한 오해를 풀기 위해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에게 손수건을 다시 내밀며 물었다.
“이거 릴로디 나무 꽃잎 맞죠?”
내 말에 이아페가 멈칫했다.
“저희 집 정원에도 있어서 오늘 한참 구경하다 왔거든요. 흔한 나무는 아니랬는데 공자님이 오신 길에도 있었나 봐요! 신기하다.”
“네, 내려앉은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에.”
이아페가 손수건을 다시 받아 들고는 조심스레 접었다. 그의 얼굴에 약간은 수줍은 미소가 떠올랐다.
지난번 후작가에 왔을 때는 꽃을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는데. 유리온실로 걸어갈 때 정원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으니.
하지만 손수건에 묻은 게 침이 아니었다는 안도감에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했으니 내릴까요?”
“네. 마을 분위기를 살피며 그자의 거처를 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자는 카실 브론테를 말하는 것이다.
부르쌍 마을에 있다는 마법사.
마법사는 능력을 꽁꽁 숨기고 살아가기에 웬만하면 정체가 드러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도 중심까지 퍼진 소문의 주인공.
하지만 어떤 마법을 쓴 건지는 그저 각기 다른 소문만 무성했다.
마을 전체를 불태웠다든가, 산사태를 일으켰다든가, 광장을 송두리째 박살 냈다든가 하는 무시무시한 소문이었지만 다행히도 폭주에 대한 내용은 없었지.
그러니 우리가 찾으러 온 이는 무사히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왜 마법을 쓴 것인지 밝히려 했으나 끝내 말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입이 무거운 이를 찾으려는 목적에도 맞았고.
“마법사가 나타나 난리가 났다더니 그렇지만도 않네요.”
마을 어귀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난 마켓 거리의 분위기는 꽤나 활기차고 시끌벅적했다.
하긴, 마법사가 나왔다는 것도 벌써 거의 1달 전의 일이니. 뒤숭숭한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은 모양이다.
“아이고, 외부에서 온 손님이신가 봅니다. 이것 좀 먹어 봐요.”
걸어가는 중에 푸근한 인상의 과일 가게 주인이 이아페의 앞으로 맨들맨들하게 닦은 사과를 확 내밀었다.
하지만 갑자기 앞으로 들이밀어진 붉은 구를 응시하는 이아페의 시선은 싸늘했다.
그 표정은 아까 건네던 웃음과는 너무도 달라서, 새삼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내게 짓던 차디찬 표정을 상기시켰다.
더구나 이아페는 밖의 음식을 함부로 안 먹으니까.
“감사해요.”
나는 그를 대신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 손은 사과에 가 닿지 못했다.
“신선해 보이는군.”
그 전에 이아페가 사과를 받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바로 아삭. 한 입을 깨물었다.
살짝 벌어진 그의 붉은 입술이 물기를 머금고 사과에서 떨어졌다.
“……!”
괜찮아요? 그렇게 물을 뻔했다.
이아페가 이토록 음식을 조심하는 이유는 독살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외부의 음식은 최대한 자제해 왔다. 주기적으로 독을 먹어서 내성을 키워 오기도 했고.
그런데 오늘은 대체 왜 먹은 거지?
나는 사과와 이아페를 번갈아 휙휙 봤다. 가게 주인의 앞이라 티를 내지 못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불안했다.
“달콤하군.”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손에서 사과를 휙 채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이아페는 혼자만 먹을 생각이었는지 약간 당황한 눈치였지만, 나도 맛이 궁금한걸.
“오, 꿀사과네요.”
입 안을 가득 메우는 달콤한 향에 저절로 눈이 빛났다.
“칙칙폭포 보러 오신 거지요? 이게 그 폭포의 정기를 받은 사과랍니다. 1년 내내 시원한 곳이라 사과도 계절 상관없이 열리지요.”
칙칙폭폭…이 아니라 칙칙폭포는 부르쌍 마을에서 조금 올라가면 있는 폭포다. 이 폭포로 인해 부르쌍은 관광이 발달한 마을이었다.
“네, 그 폭포가 그렇게 아름답다면서요?”
당연히 저 폭포를 보러 온 건 아니었지만, 본 목적부터 말하기는 뭐하니 그렇게 맞춰 주자.
“묵을 데 찾으시면 저기 하늘색 지붕 집이 좋아요. 신혼부부가 많이 가는 곳이랍니다.”
“저희는 신혼부부가 아닌데….”
“그럼 결혼을 하지 않고 함께 여행 왔다는 거요…?”
가게 주인이 설마, 하는 눈으로 우리를 훑어보았다.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마주했다는 듯 표정이 점차 굳어 가고 있었다.
“내 부인은 결혼한 지 3년이면 신혼은 지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때 옆에서 나긋한 목소리가 뒤통수를 갈겼다.
“나는 이제 시작인 것 같은데 말이지.”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이아페가 나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