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7
@17. 여봉봉, 너무 로맨틱하다
결혼한 지 3년? 이제 시작? 놀라서 이아페를 바라보는 내게 그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속삭였다.
“죄송합니다. 부부라 생각하는 편이 이목을 덜 끌 테니까요.”
확실히 키론의 수도는 꽤나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외곽으로 갈수록 보수적인 분위기였다.
결혼하지 않은 이성끼리 함께 돌아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보며 주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와, 이아페는… 프로구나.’
부부 연기라니. 나는 그저 부끄러울 뿐이지만, 이아페의 입장에서는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칼린느를 좋아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부부처럼 보이도록 행동해야 하니까.
‘이아페는 이렇게나 다른 마법사를 찾는 데 진심인데… 나도 열심히 해야지.’
굳은 결심으로 의지를 다진 나는 얼굴 근육을 최대한 다채롭게 활용하며 입을 열었다.
“어머, 여봉봉! 너무 로맨틱하다. 당신이 다시 내 심장에 불을 지피고 말았어.”
“…여봉봉?”
이아페가 뭔가 잘못 들었다는 듯 다시 한번 되물었다.
“응, 여봉봉.”
그래서 나도 다시 한번 그에게 능글맞게 미소 지으며 호칭을 말해 주었다.
“우리 처음 만난 때 생각나, 여봉? 내가 당신 좋다고 이름 부르면서 쫓아다녔었잖아.”
이아페는 약간 망설였지만, 어느새 이 부부 상황극을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인지 금세 대답을 쏟아 냈다.
“그랬지. 지금은 내가 더 좋아하지만.”
그가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손을 뻗어 앞으로 내려온 내 머리 몇 가닥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안 그래?”
그가 눈을 접어 웃으며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어….”
아찔한 긴장이 파도처럼 온몸을 덮쳤다.
가슴께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순식간에 올라온 열기에 생각이 마비되었다.
한순간 사로잡힌 낯선 감각에 온몸이 굳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건 상황극일 뿐이라는 걸.
“…어머머! 당신은 그런 설레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더라.”
그래서 잡은 그의 팔에 팔짱까지 끼며 한층 더 밝은 목소리를 뱉었다.
손으로 쏠린 이 감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흩어지길 기대하면서.
“오늘부터 다시 신혼인 걸로 하자, 홍홍.”
내가 이아페의 팔을 가볍게 톡톡 치자 이아페가 고개를 돌린 채 얼굴을 푹 숙였다.
“아이고, 남편 귀가 시뻘게진 걸 보니 확실히 신혼 맞구만요!”
귀가 빨갛다고?
묘한 설렘도 잠시, 나는 가게 주인의 흐뭇한 웃음에 놀라서 이아페를 확 바라보았다.
‘정말로 귀가 빨개져 있잖아!’
소설 속 서술에 의하면, 이아페의 귀가 빨개지는 순간은 단 두 경우다.
쑥스럽거나,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거나.
그리고 당연히 전자일 리는 없다.
실수했다. 2절, 3절까지 하진 말아야 했나?
“오호호, 이이가 왜 이럴까.”
얼떨떨하게 웃으며 팔을 슬쩍 빼려는데, 이아페가 내 손을 못 빼게 막으며 입을 열었다.
“…사과 10만 개만 주겠나?”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아페를 바라봤다. 가게 주인은 그의 말이 농담이라 생각한 듯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유, 10만 개까지는 없는데. 10개 드리지요.”
“그럼 여기에 나와 있는 걸 모두 주게.”
“…진심이셔요?”
이아페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은 내 눈치를 살피며 황급히 대답했다.
“얼른! 얼른 드려야지. 가만 보자, 자루가 저쪽에 있을 텐데…!”
“담은 것은 저 마차에 실으면 되네. 마부에게 저택에 들렀다 다시 이곳에 오라 전해 줄 수 있겠나?”
이아페가 멀리 마을 입구에 보이는 마차를 가리키며 돈을 내밀자, 주인이 물론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렌! 이것 좀 도와다오.”
커다란 자루를 가져와 트레이에 있던 과일을 담기 시작한 주인은 옆 가게에 있던 이를 향해 소리쳤다.
나무 이젤 위 캔버스에 붓질 중이던 체구가 작은 젊은 남자가 움찔했다.
“손님도 없잖아. 보수를 줄 테니 도와줘. 스트라! 자네도 잠깐만 도와주고!”
가게 주인의 손짓에 프렌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내 자루에 과일을 담기 시작했다.
“팔리지도 않는 희한한 그림을 뭣 하러 붙잡고 있어? 다른 일을 알아보라니까.”
가게 주인의 핀잔에 나는 힐끗 옆에 놓인 그림들을 보았다. 그 순간 내 눈이 크게 뜨였다.
이젤 앞에 놓인 수많은 그림들. 이 프렌이라는 사람의 화풍은 꽤나 독특했다.
마치 현대의 일러스트에서 볼 법한 선이 굵은 만화적 그림체였던 것이다.
“와, 너무 예쁜데요?”
다양한 곡선형 오브제로 둘러싸인 인물을 표현한 그림은, 알폰스 무하의 그림이나 카드 모으며 봉인 해제하는 만화의 카드를 연상케 했다.
그림의 분위기부터 살짝 탁한 색감까지 이렇게 취향 저격일 수가.
나는 홀린 듯 그의 그림 가까이로 걸어갔다.
“저놈보다는 스승이 참 실력이 좋았지요. 어디 높으신 분 전속 화가가 되었다나?”
가게 주인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TMI를 방출했다.
하지만 스승의 그림이 얼마나 예쁘든, 지금 눈앞에 있는 그림만큼 시선을 사로잡진 못할 것 같은걸.
“그림을 사도 될까요?”
사과를 담던 프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정, 정말요…?”
그에게서 떨림 가득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순간 깨달은 것은.
‘여자였구나.’
차림새를 보고 남자라 생각했다. 현대라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옷이었으나, 이곳은 남녀의 옷이 정해져 있는 경향이 강했으니.
하지만 목소리를 듣자 딱 알 수 있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네, 저 그림 말이에요.”
나는 풍성한 꽃을 들고 뒤돌아선 채 고개만 돌려 이곳을 바라보는 여인의 그림을 가리켰다.
정말 너무 예뻐서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 직감이 말하건대, 몇 년만 더 지나면 유명한 화가가 될 게 분명해.
“봄의 향, 향기예요.”
“제목도 예쁜 그림이네요.”
프렌이 들뜬 표정으로 그림을 소중하게 포장했다.
아, 그런데 이 커다란 걸 어떻게 들고 다니지?
고민 중인 내게 이아페가 고개를 숙여 나지막이 속삭였다.
“일단 제 마차에 실었다가 이따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결국 염치 불고하고 그림까지 마차에 실어 달라 부탁했다. 그리고 다른 그림들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가게 주인의 싱글벙글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의 다 담았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쇼.”
활기찬 분위기를 틈타 이아페가 질문을 던졌다.
“아, 한 가지 물을 게 있네만.”
“예, 뭐든 대답해 드리지요.”
“카실 브론테라는 이를 아는가?”
“…….”
가게 주인의 손이 멈췄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훅. 순식간에 닥쳐 들어오는 싸한 기운에 주변의 공기가 바뀐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 위화감은?
나는 뒤를 확 돌아보았다.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오싹하게 끼쳤다.
먹거리를 사는 사람, 장신구를 파는 가게 주인. 느리게 산책 중인 할머니,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다정한 아버지까지.
어느 하나 이상할 것 없는 마을의 풍경이다.
그들이 전부 우릴 보고 있다는 것만 빼면.
각자의 현재를 보내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동작과 대화를 멈춘 이들이 곁눈질로 은근히 이곳을 주시하고 있다.
대놓고 말을 걸거나 쳐다보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의 평화로운 그림은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쏟아지는 날이 선 경계는 그것을 받는 입장에서 모를 수가 없었다.
“이런, 잘 모르는 이름인 모양이군.”
이아페가 무거운 공기를 깨고 가게 주인에게 가볍게 말을 던졌다. 이에 가게 주인은 부러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기억을 더듬다 보니 답이 늦었습니다.”
다시 거리의 소음이 시작되었고, 가게 주인도 활기찬 목소리로 부르쌍 마을의 관광 포인트를 설명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사한 후 걸음을 옮기려 할 때.
프렌이 우리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
“저, 그….”
“프렌, 보수는 지금 주지. 자, 이리로 와.”
가게 주인이 애매한 타이밍에 말을 끊었다. 주인이 프렌을 향해 안쪽으로 손짓하자, 그녀는 이쪽을 힐끗 보며 몸을 틀었다.
하지만 프렌이 분명 뭔가 말하려는 것 같았는데.
“프렌. 혹시 그림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네? 네!”
“저, 부인. 제가 프렌에게 긴급히 전해야 할 것도 있어서….”
가게 주인이 다시 끼어들었다. 역시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어쩌죠? 저도 이 그림이 지금 너무 궁금한데.”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프렌을 잡았다. 애처롭고도 초롱초롱한 눈빛에, 그녀가 가게 주인을 향해 잠시만요, 하고 말했다.
하지만 가게 주인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줄 때 안 받으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프렌.”
“보수는 내가 10배로 쳐줄 테니 우리 부인에게 그림을 소개해 줬으면 하는군. 관광을 하려면 시간이 더 귀해서 말야.”
가게 주인의 횡포를 이아페가 돈으로 막았다. 결국 프렌은 그림 앞으로 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와, 이건 색깔 조합이 정말 멋지네요.”
“이, 이건… 무지개의 빛을… 테마로 그, 그린 거예요.”
“그림은 여기에서만 팔고 있는 거예요? 음악극 포스터로 활용하면 좋을 듯한데.”
“제가, 어떻게 그런 걸….”
프렌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뭐야, 귀여워….’
그런데 아까부터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단 말이지. 가게 주인을 포함해 몇 사람의 시선이 우리를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다.
“음….”
나는 프렌에게 가까이 붙으며, 그녀에게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참, 혹시 아까 저한테 하려던 말이 있지 않았어요?”
“어, 그….”
망설이던 프렌은 뒤를 힐끔댔다.
그녀가 입술을 몇 번이고 벙긋, 열었다 닫았다. 뭔가 고민하는 듯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답을 뱉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