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8
@18.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림, 잘, 부, 부탁드린다고…! 말, 하려 했어요.”
내가 속삭이듯 질문한 것과 달리, 프렌은 누군가에게 들으라는 듯 크게 대답했다.
다소 실망스러운 답이었다.
카실의 행방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게 맞다 해도 더 이상은 이야기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렇구나. 걱정하지 말아요. 소중히 보관할게요.”
지금 더 물어도 이 경직된 공기에서 기대하는 답을 얻긴 힘들 듯했다. 나중에 다시 프렌을 찾아가 보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결국 그녀에게 웃으며 화답하고는 마켓 거리를 떠났다.
그렇게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은 곳까지 걸어와서야, 이아페에게 눈을 맞추고 물었다.
“…저만 느낀 거 아니죠?”
“생각보다 찾기가 어렵겠군요.”
이를 어쩐담.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카실을 찾는 건 글러 먹은 것 같은데.
“어쩔 수 없군요.”
이아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다.
“라온 님한테 시켜야겠다고 말하려는 거죠!”
“…아닙니다.”
“그럼요?”
“오늘 안에 찾기 어려울 듯하니 내일도 이 마을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를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군요.”
이아페가 침울한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거였어? 이렇게 열심히 하려는 사람을 오해하다니. 나는 당황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이에요. 열심히 해요, 우리! 어, 여기는 아까 들은 하늘색 지붕 집이네요. 여기서 묵고 가면 내일 다시 오는 시간은 절약….”
이아페가 흠칫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따로 말이에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이 분위기 어떡하지.
어색한 공기가 우리 둘 사이를 감쌌다.
이 공기를 조금이라도 순화하기 위해,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막간 코레아리아어 수업 시간을 열었다.
“지금 이 상황이나, 아까 마켓 거리에서 있었던 상황을 코레아리아어로는 「갑분싸」라고 해요. 「갑자기 분위기 싸해졌다」의 줄임말이죠.”
“지금은 「갑분싸」는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말에 제가 답을 잘못해서 그런 겁니다.”
“그렇게 위로해 주는 게 더 부끄러워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한창 ‘갑분싸’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을 때.
“폭포 옆 거기에 다녀왔다고?”
골목의 왼쪽 앞에서 나타난 두 남자가 오른쪽으로 걸어가며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궁금하잖아. 진짜 완전히 부서져 버렸더라.”
“쉿, 조용히 말해. 외부인들 들을라. 안 그래도 그놈 때문에 손님 줄었는데.”
외부인에게 들키면 안 되는 그놈이라. 누굴 말하는 것인지 느낌이 왔다.
다행히도 그들은 우리를 보지 못한 채 지나쳤다.
나와 이아페는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보았다.
“목적지는 우선….”
“칙칙폭포로 해야겠군요.”
* * *
쏴아아.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가 초록빛 계곡 가운데로 부딪치며 하얗게 일어났다.
깊은 산골로 들어온 것이 아닌데 이만한 폭포가 있다니. 확실히 관광지가 될 만도 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보이진 않았다. 마법사가 나타났다는 소문 때문인지 사람도 거의 없고.
“폭포 옆 거기는 대체 어딜 말한 걸까요?”
손으로 망원경을 만들어 눈에 대고 쭈욱 둘러보는데, 문득 이아페가 폭포와 조금 떨어진 어딘가를 가리켰다.
“풀이 밟힌 흔적이 있습니다.”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그곳을 살폈다. 집중해서 바라보자 정말 짓눌린 풀들이 눈에 들어왔다.
“와, 관찰력이랑 시력 무슨 일이야.”
“칭찬이십니까?”
“물론이죠.”
여러 차례에 걸쳐 꺾이고 밟힌 풀은 길을 만들 듯, 한 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그 길은 언뜻 보기에 그저 무성히 자란 풀숲을 향하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이어진 발걸음의 흔적이라니.
“확실히 수상하네요.”
“제가 먼저 보고 오겠습니다.”
“아뇨, 같이 가요.”
마침 다른 이들의 시선은 폭포로 쏠려 있었다. 나는 이아페에게 따라오라 손짓하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피식 웃으며 내 뒤를 따른 이아페가 어느새 나를 앞질렀다.
그리고 그가 아래까지 길게 드리워진 커다란 나무 덩굴을 들어 올리자, 나무 사이사이로 밟힌 흔적이 이어졌다.
“오와, 마을 사람들만 아는 비밀통로 같은 걸까요?”
발걸음을 옮기며 그의 등을 향해 조용히 묻자, 이아페가 뒤를 살짝 돌아보며 말했다.
“어쩌면 신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이 안에요?”
“공인된 신전이 아닌 경우 숨겨 두곤 하니까요.”
하긴. 신전을 세울 수 있는 곳은 사제들이 지정한 장소뿐이고, 이는 매우 한정적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라면 웬만해선 들키지 않을 법하네요.”
빽빽한 나무 틈 사이로 난 좁은 길은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을 둘러싸고 크게 원을 그리며 이어졌다.
이아페는 앞을 가리는 풀을 들어 움직임이 쉽도록 길을 터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길을 제시하던 발자국이 끊겼을 때.
“동굴…이었을까요?”
풀을 베어 낸 흔적들과 함께, 절벽 한 부분에 뚫린 커다랗고 동그란 입구가 나타났다.
하지만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동굴 안에는 재 같기도, 모래 같기도 한 가루들이 무릎 높이까지 수북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무너졌다는 곳이 여기인가 봐요.”
동굴을 살펴보던 나는 장갑을 낀 손으로 입구 근처의 내벽에 손을 뻗었다.
“잠깐…!”
이아페의 외침과 동시에 내 손이 벽에 살짝 가 닿았다.
바스스.
그러자 벽이 흩날리듯 삭아 내렸다.
‘역시, 이 모래는 동굴 벽이 부식되어 생긴 것 같네.’
그리고 이곳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마력. 분명 동굴을 이렇게 만든 것은 카실 브론테 그 남자일 것….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커다란 손이 내 어깨를 잡고 뒤로 돌렸다.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마주한 이아페의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뭐가 괜찮냐고 묻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괜찮다고 해야 할 것만 같은 표정이다.
“네, 괜찮아요. 이 동굴….”
“실례하겠습니다.”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이아페가 내 장갑을 벗겼다.
스르르. 순식간에 하얗고 작은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이아페는 시선을 내 손에 고정한 채였기에 이를 보지 못했다.
이아페의 커다란 두 손 위에 작은 손이 놓였다. 그는 마치 소중한 보석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것을 면밀히 살폈다.
몸의 모든 감각이 손으로 몰렸다.
차가운 인상과는 달리, 맞닿은 이아페의 손은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반면 이 뜨거우리만치 따뜻한 손에 닿은 내 손의 온도는 너무도 차갑다.
괜히 그의 온기를 뺏을 것 같은 불안에 나도 모르게 손이 움츠러들었다.
“다행히 이상은 없는 것 같군요.”
기다란 손가락이 내 손바닥을 쓰다듬듯 부드럽게 폈다. 내 손을 다시 한번 살피며 안심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깨달았다.
‘나를 과학 시간에 장난치다가 실수로 위험물질을 만진 학생 정도로 생각 중인 게 분명하다.’
“공자님. 가루가 된 건 제 손이 아니라 동굴 벽이에요.”
내가 슬그머니 손을 빼서 뒤로 숨기자 시선을 들어 올린 이아페가 변명하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동굴에서 마력이 느껴져서.”
나는 만져 보고서야 알았는데 이아페는 그냥 느꼈던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마력의 흔적은 빠르게 날아가지만, 강력한 마법은 완전히 날아가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곤 했다. 간혹 위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고.
그래서 장갑을 끼고 만진 건데, 이아페의 눈에는 안전 불감증처럼 보인 걸까.
“걱정하지 마요,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 것 같으니까.”
나는 다시 무너진 동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내 이아페도 한 발짝 동굴 근처로 다가왔다.
“벽면을 뜯어낸 듯한 모양새군요.”
이아페가 동굴 윗벽을 찬찬히 살피며 말했다.
확실히, 동굴의 벽은 ‘무너졌다.’라는 표현으로 커버하기엔 다소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띠고 있었다.
부식된 동굴의 벽 곳곳은 마치 표면을 뭉텅이째 잡아 뜯어낸 듯 움푹 패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도 관광지로 만들면 장사 잘될 것 같은데 말이에요.”
“마법으로 만든 게 아니었다면 칙칙폭포보다도 더 유명해졌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괜찮은데? 동굴이니까 특히 여름에 장사가 잘될 거고. 이 안에서 와인도 숙성해서 함께 팔면….
나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사업 아이템은 잠시 접어 두고.
“카실, 그 사람은 왜 여길 이렇게 만든 걸까요?”
“글쎄요. 이유가 뭐든… 뒷일을 계산하고 움직이는 타입은 아닌 듯하군요.”
이아페가 염세적인 추측을 뱉어 냈다.
물론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카실은 단순히 한두 명에게 마법을 들킨 정도가 아니라, 마을의 수많은 이들 앞에서 대놓고 마법을 사용해 동굴을 부식시켰으니까.
하지만 카실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내린 그의 속단이 썩 반갑지는 않았다.
“그건 모르죠. 마법사라는 걸 들키는 것보다 더 최악인 선택지가 있었을 지도요.”
동굴을 살피며 가볍게 던진 반박에 이아페가 멈칫했다.
“…….”
내 말을 끝으로 찾아온 정적에 나는 그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싸늘한 시선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하지만 이아페의 반응은 오늘도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는 기죽은 강아지처럼 살짝 찌푸려진 미간으로 반성의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네…?”
그의 빠른 인정에 놀란 내 시선이 이아페를 향했다.
“호수의 물을 전부 없애 버렸던 이가 할 말은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