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19
@19. 이쯤 되면 사기단
심각한 그의 표정과는 반대로 나는 쿡, 웃음이 터졌다. 비트리비아 호수에서 그가 블랙홀을 열었던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럼요. 대단한 스케일이었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소 과장되게 말하자, 그제야 그의 표정이 풀어졌다.
또다.
그때처럼 이아페가 무력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에게 뭐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게 할 것만 같은 미소를.
이아페를 계속 바라봤다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싱숭생숭해질 것 같아서, 황급히 고개를 돌려 다시 동굴 쪽을 바라보았다.
“뭐, 하지만 이 정도 취급을 받게 되리라고는 예상 못 했을지도요.”
카실도 마법사라는 걸 들키면 불이익을 받을 거라는 것 정도는 각오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이름이 마을에서 금기어가 되어 버릴 것까지 예상했을까?
입 안이 씁쓸해졌다.
‘이 마을에 오래 살아온 게 아니라면 좋겠는데.’
오랜 시간 생활하며 정든 공간에서 나를 부정한다면 더 견디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일단 현장은 확인했으니, 다시 그자를 찾아야겠군요.”
이아페의 말에 우리는 다시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틀었다.
그때였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유심히 그곳을 응시하자, 이내 한 사람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에서 만났던 화가, 프렌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고 땅만 바라본 채 도도도도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눈앞의 현장을 보고 싶지 않은 것처럼.
그러더니 우리가 있는 곳에 가까이 와서야, 살짝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여, 여기 계셨네요.”
“프렌! 이런 데서 다시 보네요!”
눈이 마주친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하자 프렌은 조금 놀라며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다, 다행이에요. 아직 안 가셔서…. 여, 여기 들어오기 힘든 곳인데… 찾으시고….”
“관광을 하다가 여기로 길을 들어 버렸지 뭐예요. 우릴 찾고 있었어요? 왜요?”
“저, 저는 그냥… 그게….”
프렌이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두 손을 꼬물댔다. 역시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을 해도 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음, 뭐라고 물어봐야 답을 이끌어 낼 수 있으려나.
“카실 브론테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보군.”
“……!”
이아페가 주저 없이 직설적인 단정을 던졌다. 움찔한 프렌이 주눅이 든 듯 입을 열지도, 닫지도 못한 채 벙긋댔다.
그녀의 갈 곳 잃은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듯 눈을 깜빡였다.
“나쁜 의도로 묻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요. 프렌은 카실과 친구인가요?”
부드러운 질문에 프렌이 다시 입을 벙긋댔다. 말을 해도 될지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카실은… 무슨 일로 찾, 찾으시는 거예요?”
기회였다.
나는 추억을 떠올리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릴 적 저 건너편 마을에서 카실과 함께 팽이 돌리기 놀이를 한 적이 있었죠. 부르쌍 마을에 산다고 했던 것 같아 혹시나 해서 찾아왔답니다.”
이아페에게 거짓말했던 짬밥으로 카실과의 서사를 술술 지어냈다.
팽이 돌리기는 이 나이대 사람이라면 신분 고하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기던 놀이다. 카실도 한 번쯤은 해 봤겠지.
“추억도 나누고 괜찮으면 일자리도 추천할 겸 여쭤본 건데….”
“친, 친구라는 말씀이시죠…?”
“네, 하지만 어디 있는지 모르시면 꼭 말 안 해 주셔도….”
“알, 알아요.”
“어머, 정말요?”
프렌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것은 내 죄책감을 상당히 자극했지만, 일자리를 추천하러 온 건 거짓말이 아니니 나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저어… 나쁜 사람들은 아, 아니시죠?”
프렌이 불안한지 이아페를 바라보며 한 번 더 질문을 던졌다.
저렇게 물어서 나쁜 사람이라고 대답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긴 하지만.
“아주 선량하지.”
이아페가 그 말 그대로 무해하고 선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착한 사람이 자기 입으로 선량하다고 말하기도 하나? 싶었지만, 나도 그를 따라 같은 미소를 만면에 띠었다.
프렌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에 누가 있나 확인하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녀가 동굴 옆 절벽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언뜻 보기에 막다른 길 같았지만, 나무 사이로 또다시 좁은 길이 이어졌다.
비밀통로의 연속이네.
“카실은 꽤나 깊은 곳에 살고 있네요.”
“어… 원래 집은 아닌데….”
프렌이 말을 멈추었다. 더 말하기가 곤란해 보여서, 나는 화제를 돌렸다.
“갑작스레 찾아가서 쉬는 중에 방해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 그래도, 친구시니까, 일자리도 주시고… 마을에서는 이제… 아, 아니에요.”
프렌이 다시 끝을 얼버무렸다.
‘역시 마법사라는 게 알려지고서는 있던 일자리도 끊긴 모양이네.’
하지만 연구단에 들여야 하는 입장에서는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프렌이 앞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예요.”
그녀가 가리킨 방향에는 작은 오두막이 자리해 있었다. 집이라기보다는 창고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나야, 프렌. 들어갈게.”
프렌이 문을 두드렸다. 나무문이 끼익댔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외출한 걸까요?”
“작은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선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아페의 대답에 나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내 귀가 안 좋은 게 아니라 이아페의 청력이 좋은 거겠지.
“한 번 더 두드려 볼….”
그때, 갑자기 프렌이 열쇠를 꺼내 들더니 문고리에 끼웠다.
‘카실의 집 열쇠를 프렌이 가지고 있어?’
대체 얼마나 친한 거야? 아니, 무슨 사이인지를 고민해야 되는 건가…?
의아함으로 물음표를 띤 시선이 문고리를 향했고, 그와 동시에 끼익.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
짧은 머리의 키 큰 남자가 온몸을 밧줄에 꽁꽁 묶인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눈앞의 상황에, 사고가 고장 난 듯 정지했다.
저게 카실이라고?
대체 왜 묶여 있는 거지…?
설마 마법사라는 것 때문에 이곳에 갇힌 걸까? 저렇게 묶인 채로?
마법사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가져올 결과를 충분히 예상하지 못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배척을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저렇게 물리적 제재를 당하다니. 이건 너무 야만적인….
그때, 손에 무언가가 살짝 와 닿았다.
번뜩 옆을 돌아보자 이아페가 괜찮냐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제야 온몸에 긴장을 한 채 힘을 꽉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몸에 힘을 푼 채 그를 향해 애써 미소 지었다.
“나, 왔어.”
그동안 집 안으로 들어간 프렌은 카실에게로 직행했다.
“왜 또 왔어. 오지 말라니까. 여기 오는 길 안 좋아하면서.”
고개를 숙인 카실의 갈라진 목소리가 잇새로 새어 나왔다.
그에게로 다가간 프렌이 밧줄의 매듭부를 잡았다.
“내, 내가 어떻게, 안 와.”
“어차피 다시 묶어야 하는데 뭘 풀어.”
“그래도, 조, 조금이라도 쉬는 게 좋으니까….”
프렌이 그것을 조금씩 끌러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단히 묶여 있어 풀기에 꽤 힘들어 보였다.
나는 앞으로 한 발짝 내밀며 입을 열었다.
“도와드려도 될까요?”
확 고개를 들어 올린 카실이 문밖에 선 우리를 발견했다. 그의 눈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뭐야, 줄줄 달고 온 저것들은.”
마치 맹수가 으르렁대는 것만 같은 목소리가 집 안을 울렸다.
“오빠 친, 친구래.”
프렌이 조용히 대변해 주었으나, 카실의 눈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인데.”
“어릴 적, 친구래.”
“넌 그걸 믿고 여기까지 데리고 왔어? 마을에서는 알아?”
“아니, 하지만, 여기 오, 오는 사람은 거의 나밖에 없잖아.”
“그걸 말이라고 해, 프렌?”
“사실인걸.”
카실은 화가 잔뜩 나서 프렌에게 소리를 쳤고, 프렌은 조용히 밧줄을 풀면서도 느리게 할 말을 했다.
“말려야 하는 것 아닐까요?”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 때문에 그들이 싸우는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나와 달리, 이아페는 정말 남의 일을 보듯 팔짱을 끼고 태연하게 상황을 관전했다.
“어쩌려고 여기까지 낯선 사람을 데려와? 그러다 마을에 들키면….”
“그럼, 그냥, 도망을 가야지.”
프렌이 단호하게 강수를 두었다. 카실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아니면, 그, 그냥 지금… 마을을 떠날까?”
프렌의 절박한 시선이 카실을 향하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느새 카실을 결박하던 밧줄이 모두 풀리고, 그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카실이 프렌을 잡을 듯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하지만 프렌에게 가 닿지는 못한 채 엉거주춤한 곳에서 멈추고 말았다.
“왜 그래, 프렌. 마을에서 너도 괴롭혀? 악마의 동생이라 너도 악마라고 그래?”
프렌이 카실의 동생이었어? 내 입이 조금 벌어졌다.
프렌이 괴로운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냐. 그게 아냐. 나는, 잘 지내. 하, 하지만 오빠가 여기에 있잖아. 내가 어, 어떻게 편하게 지낼 수 있어? 나 때문인데….”
흠칫. 카실이 프렌의 이야기 말미에 몸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주제를 돌렸다.
“…도망가면 뭐 먹고 살려고.”
“내 그림을, 팔아도 되고….”
“너한테 짐이 되라는 이야기잖아.”
“오빠도, 일을….”
“어차피 나 소문 다 났어. 지금 당장 일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일단 좀 잠잠해지면 그때….”
“저분들이, 일, 일자리를 준대.”
카실이 여기서 더 험악해질 수 있었나 싶게 인상을 찌푸렸다.
“프렌, 네가 날 걱정하는 것 알아. 하지만 저 사람들도 날 그냥 이용하려는 거야. 뻔하지. 마법으로 누군가를 해쳐 달라는 거.”
카실의 날 선 눈동자가 휙 이아페를 향했다. 한껏 비꼰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어쩌나. 그런 건 일자리로 취급하지 않는데.”
“나도 굳이 그런 사소한 의뢰를 하러 여기까지 올 만큼 여유롭진 않은데.”
비딱하게 선 카실의 말에 이아페가 팔짱을 낀 채 태연하게 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