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2
@2. 심지어 곧 죽을 운명이다
“걱정 마, 만날 수 있어.”
거울 속 연보라색 머리를 가진 야무진 인상의 여자, 아니… 내가 각오를 다졌다.
이 몸에서 눈을 뜬 지도 벌써 열흘.
하지만 그동안은 침대에서만 보냈다.
이아페를 만나고 돌아온 밤, 파도처럼 들이찬 기억들과 함께 지독한 열병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시샤 아르비나’가 나라는 걸 인정했을 때에야 거짓말처럼 열이 내렸다.
다만 해결해야 할 큰 산이 남아 있었으니.
‘하필이면 곧 죽을 엑스트라에 빙의하다니!’
황제 칼린느의 호위로 패전국의 왕자 세디안이 신분을 숨기고 들어오며 벌어지는 약 피폐 로맨스, ‘황제는 그 꽃을 꺾지 않는다’.
세디안의 애증만큼이나 각광을 받은 러브 라인이 있었으니, 서브 남주 이아페의 무한한 사랑이다.
명석한 두뇌와 넘치는 마력으로 칼린느에게 사랑과 충성을 바치는 인물, 이아페 카일라인.
‘그리고 나는 그 이아페를 만난 직후 머리를 밀고 산에 들어갔다가 죽는 엑스트라고!’
하지만 그렇게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지.
거울에 옷차림을 한 번 더 비춰 본 나는 방문을 달칵 열었다.
“시샤, 어디 가는 거야?”
멈칫. 문 앞을 지나던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가 나를 발견하고는 바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아, 안 돼. 잘못 걸렸다.
“으응, 비알로. 잠시 카페라도 다녀오려고.”
비알로 아르비나. 몇 년 전 아르비나 부부가 입양한 시샤의 양오빠다.
“외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은데, 시샤.”
비알로가 퍽 다정한 목소리로 소파에 가 앉았다. 그리고 뭐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따라와 앉으라는 것이었다.
‘아오, 시간 없어 죽겠는데.’
그에게 보이지 않게 눈을 까뒤집으며 입 모양으로 욕을 중얼거린 나는 천사처럼 환하게 웃으며 소파로 걸어갔다.
“지난번 노임포턴스 가문의 다과회에 빠졌더라.”
“음, 그랬지.”
“너한텐 인맥이 중요하다고 누누이 말했는데… 오늘도 마음대로 하려는 거야?”
다리를 꼬고 앉은 비알로가 타이르듯 말했다.
“아니… 거긴 안 간다고 미리 말했잖아.”
시샤가 어린애도 아닌데 보여 주는 대단한 참견에 나도 모르게 날 선 말투가 튀어나왔다. 비알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시샤, 말투가 왜 그래.”
“내가 어쨌는데?”
“상스러운 투였잖아. 20년 동안 평민으로 살아온 공백을 그렇게 티 내면 안 된다고 했는데도.”
조곤조곤한 그의 말투에는 정말로 내가 잘못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위력이 있었다.
특히 시샤는 소설 속 막장 설정대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후작 부부가 잃어버렸다가 1년 전에야 후작가에 돌아왔다.
모든 게 낯선 귀족가에서 비알로는 알에서 갓 태어난 오리가 처음 본 사람이었다.
친절하고 조용한 말투. 다정한 표정과 올곧은 자세.
시샤는 자신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는 그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고, 점차 절대적으로 따르게 되었다.
‘사실은 길들이기 위해 베푼 아량이었겠지만.’
친절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어딘가 시샤를 낮잡아 보는 듯한 행동과 말투.
그가 시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뻔하다.
“계속 누워 있다 보니 갑갑해서 그랬나 봐. 기분 전환 겸 친구를 좀 만나고 올게.”
속으로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나는 애써 티 내지 않고 이야기했다.
지금 저놈과 싸워서 내게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돼. 외출 금지야, 시샤.”
비알로가 온화한 미소를 띤 얼굴로 개뼈따귀 같은 소리를 쏟아 냈다.
“외출 금지라니 그게 뭔 개….”
“너 그렇게 아팠던 거, 혹시 마법 때문 아니야?”
내 표정이 굳어지자, 비알로는 정답을 맞혔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밖에 나갔다가 네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잖아. 걱정되니 얌전히 집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걱정은 개뿔. 내가 뭘 잘못했다고 가택 연금을 당한다는 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함부로 굴지는 않았다. 시샤는 아르비나 후작의 적녀이고, 후작과 후작 부군 모두 건재하다.
그렇기에 비알로의 주특기는 ‘돌려 까기’였다. 겉에서 보기엔 친절을 베푸는 듯하면서 실제로는 시샤를 물 먹이곤 했던 것이다.
‘이 정도로 직설적으로 나오는 건, 얼마 전에 시샤가 마법사란 사실을 들켜서겠지.’
마법은 이아페가 5천 년 전 멸망한 마법 제국 코레아리아의 도서관을 찾아 고대 언어를 해독해 내면서 재조명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일은 몇 달 후에 있을 예정이고, 지금 마법은 소위 ‘악마의 힘’이라 불리고 있다.
마법사라는 걸 들키면 사회적 매장은 한순간.
심지어 가뭄이나 전쟁 등 불안감이 팽배할 땐 화형, 돌팔매질, 물에 빠뜨리기 등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니 비알로도 더 이상 시샤를 예전처럼 대우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 집 안에는 날 보호해 줄 사람도 없어.’
어머니인 아르비나 후작은 사절이 되어 제국을 떠났고, 아버지인 후작 부군은 북부로 기사단 훈련을 떠났다.
집안의 두 기둥이 동시에 자리를 비울 수 있었던 것은 비알로가 있기 때문이고.
다른 이들 앞에선 철판을 깔고 시샤에게 살갑게 대하는 비알로였기에 믿고 맡긴 것이다.
“그래, 비알로. 나가지 않을게.”
“잘했어, 시샤. 그래야지.”
내가 얌전한 ‘요조숙녀’처럼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말하자, 비알로가 상냥하게 눈을 휘었다.
그는 진심으로 기쁜 듯 나를 한 번 토닥이고는 방을 나갔다.
문에 귀를 대어 발걸음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나는 벗어 뒀던 챙 모자를 다시 썼다.
“썩을 개자식. 못된 거만 배워 먹었어, 아주.”
나는 종을 조용히 흔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들어왔다.
시샤의 전담 하녀인 리나였다.
“무슨 일이세요, 아가씨?”
치장을 돕고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호출을 받자, 리나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리나, 몰래 외출을 해야겠어. 도와줄 수 있을까?”
“몰래요? 설마… 비알로 님이 외출을 금지하신 건가요?”
리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녀를 부른 이유는 그녀가 시샤의 전담 하녀이기도 했지만, 지금 여기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리나는 몇 번 시샤에게 말한 적이 있다. 비알로의 말을 전부 들을 필요는 없다고. 너무 휘둘리지 않도록 경계하고 조심하라고.
당시의 시샤는 비알로가 정말로 자신을 잘 이끌어 주고 있다 생각했기에 자꾸 그런 말을 하는 리나를 다소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이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마차는 몰래 준비시킬게요. 아가씨는 오늘도 몸이 안 좋으셔서 주무시는 거고요.”
역시 척 하면 척이라니까.
아무리 비알로라 해도 숙녀가 자고 있다는데 방에 마구 들이닥치진 않겠지.
애초에 그럴 필요도 못 느낄 것이다. 지금까지의 시샤는 그의 말을 어긴 적이 거의 없으니.
하지만 사실 시샤가 마법사라는 것에 비알로가 태클을 걸었을 때, 그녀도 뭔가 잘못되었단 걸 느끼기 시작했다.
마법사라는 것은 시샤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큰 축이었으니까.
‘심지어 마법사가 배척받는 현실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어 하던 마법사였지.’
이아페를 찾아간 것도 사실은 고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도 마법사라는 극비를 알게 됐기 때문이고.
‘어쨌든 이럴 시간이 없어.’
나는 창문을 열고 낑낑대며 몸을 밖으로 빼냈다. 시샤의 방은 1층이었기에 수월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몰래 후원을 지나 뒷문으로 빠져나가자 리나가 대기시켜 둔 마차가 보였다. 나는 그곳에 서둘러 몸을 실었다.
“후우. 드디어… 살길 찾으러 출발.”
숨을 고른 후 고개를 돌리자, 달리는 마차의 창밖으로 멀리 높게 솟은 산봉우리가 보였다.
겨울 끝자락을 넘기며 서서히 푸른색으로 뒤덮이고 있는 광경은 분명 수도의 자랑이겠지.
하지만.
확!
커튼을 쳐 어두워진 마차 안, 심장이 정도를 모르고 벌렁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시샤는 ‘머리를 밀고 산에 들어갔다가 죽는 엑스트라’다.
머리는 빙의하자마자 이아페한테 밀렸다 치고, 산에만 안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운명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마법을 황권 강화의 기반으로 이용하십시오.〉
놀랍게도 시샤는 내 최애이자 이 소설의 여주, 그리고 심지어 황제인 칼린느까지 찾아가 제안했다.
게다가 이런 선언까지.
〈코레아리아의 흔적이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1달 안에 반드시 키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칼린느는 시샤를 믿어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만일 1달 안에 마법 활용의 단서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능멸죄로 세 치 혀를 뽑아 버리겠다.〉
으, 소름 돋아.
나는 양팔을 마구 문질렀다.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칼린느라면 충분히 혀를 뽑고도 남는다.
하지만 시샤는 자신만만했다. 이미 코레아리아의 흔적에 대한 단서를 발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이 나라 키론 제국 국경 근처의 어느 깊은 산속에 있었다.
‘그래, 산. 마운틴!’
전 소설 독자이자 현 시샤인 나는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시샤의 운명 속에서 이 시점의 산이란, 한 가지 의미밖에 없다.
‘내가 죽을 운명의 장소!’
심지어 원작에서 칼린느가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고.
〈마법을 이용하라고 제안했던 이가 있었지만, 코레아리아의 흔적을 찾으러 떠났다가 죽고 말았어.〉
저게 나일 줄이야.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산에는 절대 갈 수 없다.
도망을 가도 결국은 잡히겠지. 상대는 키론 제국 모든 곳에 눈과 발을 둘 수 있는 황제니까.
남은 시간은 약 3주.
떠나도 죽고, 안 떠나도 죽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그 산을 대체할 다른 곳을 찾아내야 해.’
그리고 나는 그에 딱 맞는 장소를 이미 알고 있지.
“몇 달 후 이아페가 발견할… 5천 년 전 봉인된 고대 코레아리아의 도서관.”
자, 생각해 보자.
원작 설정상 고대 언어를 해석할 능력이 되는 건 이아페뿐이다. 어떻게 하든 해석은 결국 이아페가 하겠지.
‘그러니까… 발견 자체는 누가 해도 상관없지 않나?’
예를 들어… 시샤라거나?
그래서 나는 지금.
절대 다시 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이아페 카일라인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