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21
@21. 나는 이 일 못 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이아페의 냉철한 판단력에 속으로 박수를 치며 카실을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오히려 이아페가 저를 정말 잠재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뱅글뱅글. 카실의 손가락이 가볍게 돌아간다.
그러자 그에 맞춰, 이 집 안에 가벼운 산들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살짝 날리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창문과 문을 확인했지만, 굳게 닫혀 있다.
카실이 사용한 마법이 틀림없다는 뜻이었다.
‘정말 마법사는 맞네.’
그런데 왜 주문으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 거지? 다시 차오른 의문에 고민에 빠져들 때쯤.
“아.”
주변을 둘러보던 이아페가 뭔가 알아챈 듯 탄성을 뱉었다.
“이제 됐어.”
이아페의 말에 카실이 바람을 멈추었다.
바람이 멎은 것을 확인한 이아페가 내게로 와 고개를 숙이고는 뭐라 속삭였다.
‘아아, 그렇구나.’
와, 이아페 진짜 천재인가 봐.
그를 향한 놀라움을 머금은 채, 나는 한 손가락을 더 펼쳐 들었다.
“네 번째는, 내가 제안할 일자리가 무엇인지야. 난 너에게 바로 이 주문을 쓰기 위한 언어를 함께 연구하자고 말하러 왔어.”
“그 주문이라는 게 지금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니….”
“좀 전에 눈으로 봤잖아. 밧줄 묶고 푸는 거.”
카실도 본 것은 분명했기에,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이아페에게 눈짓하자, 그가 내게 말했던 주문의 비밀을 카실에게도 이야기했다.
“주문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듯하군. 네가 주문을 쓰지 못한 이유는 이 언어를 전혀 몰라서일 테고.”
이아페의 주문에 따라 의자에 감긴 밧줄을 다시 보자, 아까 내가 이아페를 촘촘히 얽매었던 것과는 달리 조금 헐거운 느낌이었다.
나는 완벽하게 쓴 주문을 이아페는 조금 부족하게 쓰고, 카실은 하나도 쓰지 못한 이유.
주문의 이해도에 따라 마법 수행 능력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면 말이 된다.
나는 양손을 맞잡고 빙긋 미소 지으며 말을 얹었다.
“와, 저 밧줄을 마음대로 하고 싶다면, 연구단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럼요. 밧줄뿐 아니라 이 집에 맘대로 나가고 들어올 수도 있겠죠.”
“그런데도 기회를 뻥 차는 사람은 이 자리에는 없겠네요!”
“바보가 아니라면 그럴 일은 없죠.”
“자, 그래서, 같이 일해 볼래?”
나는 카실을 향해 악수를 청하듯 손을 뻗었다.
그는 아직 혼란스러운 듯 조금 망설였다.
“결정할 시간은 5초야. 5, 4, 3, 2….”
“하면 되잖아!”
카실이 제 앞에 내밀어진 손을 덥석 잡았다.
“……?”
내 손이 아니라 이아페의 손을.
순식간에 나와 카실 사이로 끼어든 이아페가 카실의 손을 낚아채 갔다. 다른 표현을 고민할 것도 없이, 그야말로 ‘낚아챈’ 것이었다.
날 향해 있던 카실의 몸이 자연스럽게 그를 향했다. 그리고….
“…어머나.”
나는 머쓱하게 내리던 손을 그대로 들어 올려 입을 가렸다.
갑작스러운 당겨짐에 몸의 중심을 잃은 카실이 향한 곳은.
이아페의 품이었기 때문이다.
“…….”
“…….”
실수를 가장해 서로 부딪히는 두 사람.
균형을 잡는다는 좋은 핑계로 손이 상대의 가슴팍에 가 닿고.
서서히 눈이 마주치는데….
나 이 장면 분명히 로맨스 소설에서 봤어.
아쉽게도 두 남정네의 표정에서 기묘한 설렘이나 두근거림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카실이 손을 탁 놓으며 이아페에게서 몸을 떼어 냈다. 공연히 높아진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렸다.
“왜 갑자기 손을 당기고 난리…!”
하지만 이아페가 내뱉은 본심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어? 응…. 나도 잘 부탁해.”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할미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이아페도 반가운 것이 틀림없다. 내가 악수하려던 카실의 손을 가로챌 만큼.
그래, 칼린느의 기반을 닦는 데에 작은 힘이라도 더 보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쁘겠어.
나도 카실과 악수를 하기 위해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그보다.”
그때 이아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그러지? 나는 손을 내리고 그를 바라봤다.
“그 동굴에서 마법을 사용한 이유는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이아페의 시선이 카실을 향했다. 카실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건 말 못 해.”
“그 정도의 신뢰도 없이 같이 일할 수는 없지.”
“걱정하지 마. 다신 그런 일 없을 테니.”
“그건 들어 보고 판단하도록 하지.”
청춘 축구 만화 같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게 식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한 이아페의 표정에 잠시 망설이던 카실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말을 못 하겠다면?”
“함께할 수는 없겠는데.”
잠깐만, 뭐라고?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물론 신뢰가 있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리고 지금 카실에게 이 일보다 나은 선택지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실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럼.”
긴 침묵 끝에 카실이 다시 말을 뱉어 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이 일 못 해.”
입이 떡 벌어졌다.
“그건…!”
‘다시 생각해 보자!’라고 말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
“그럼 함께 일하도록 하지.”
“네?”
“엥?”
이아페가 의외의 결론을 뱉었다.
“잠깐만. 나 방금 안 한다고 말했는데?”
카실이 잘못 들었다는 듯 묻자, 이아페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입이 가볍진 않은 것 같으니.”
“아….”
나는 이아페의 혜안에 무릎을 탁 쳤다.
우리가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적당한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공표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추궁해도 자신이 왜 마법을 썼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입이 무거운 마법사를 찾아온 거였는데….
카실이 일자리를 준다는 우리의 말에 대뜸 비밀을 밝혔다면,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겠지.
나는 카실을 향해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는 주문으로 마법을 제어함으로써 마법이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 할 거야. 다만 이 사실이 공표되기 전까지는, 우리가 하는 일을 아무도 몰라야 해.”
“지금까지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 조심하면 된다는 거지? 만약 공표되기 전에 들키면 어떻게 되는데?”
“글쎄.”
입을 연 이아페가 카실이 묶여 있던 의자로 다가갔다. 그가 의자를 감싸고 느슨히 풀린 밧줄을 잡았다. 그리고 쫘악, 양쪽으로 당겼다.
밧줄이 의자를 조였다. 나무가 뒤틀리는 듯한 끼기긱, 소리가 났다.
소름 끼치는 소음에 나까지 숨이 막혔다.
“이 밧줄로는 안 끝날지도 모르지.”
이아페가 여전히 밧줄을 잡은 채 나른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래도 할래?”
그 표정은 마치 정말로… 어둠과 손을 잡겠냐고 묻는 악마 같았다.
그 질문은 카실을 향한 것이었으나, 내게 묻는 것 같기도 했다.
“…어. 할게.”
긴장 섞인 한숨과 함께 카실이 뚜렷하게 밧줄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마법이 악마의 힘이라는 소리를 수없이 들어 왔어도… 나는 악마를 믿은 적은 없거든. 그러니까 나는 떳떳해. 이건 악마의 힘이 아니야. 그 주문이라는 걸로 마법을 완벽히 제어해서 나도, 프렌도 당당하게 살 거야.”
카실의 표정은 단호했다. 아마도 그의 답은 평생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물으며 내린 결론이겠지.
사륵. 이아페가 밧줄을 쥐고 있던 손을 폈다.
팽팽하던 밧줄이 힘없이 느슨하게 늘어졌다.
“아쉽네.”
그가 전혀 농담이 아닌 것 같은 표정으로 농담을 했다.
카실이 썩은 표정으로 질문했다.
“너 솔직히 내가 빠졌으면 하는 거지?”
“응.”
“잘 부탁해요! 와하하, 다 같이 잘해 봅시다!”
나는 그들 사이의 긴장감을 빠르게 절단했다.
이아페는 츤데레인가. 마음으로는 카실을 반기면서 왜 저렇게 말하는 거람?
‘그래도 인원을 충원했으니 다행이야.’
안도의 숨을 내쉬는 내 눈에 다시 카실의 밧줄이 들어왔다.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을 텐데. 하지만 이 마을에서는….
“카실. 혹시 다른 곳으로 이사할 생각이 있어?”
“그래야겠지. 여기선 더 이상 제대로 못 살 테니까. 프렌도 그걸 원하는 것 같고.”
조심스러운 질문에 카실은 생각보다 덤덤하게 대답했다.
“갈 곳은 있고?”
“찾아봐야지.”
갑자기 이사할 곳을 찾는다고 그게 잘 되려나.
후작가의 지원으로 살 만한 곳을 찾아보면 어떨까.
“그럼 혹시….”
“집 정도는 마련해 주지. 일을 시작할 때까지 돈은 알아서 벌어.”
이아페가 선수를 쳤다.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역시 그도 카실의 상황을 신경 쓰고 있었을 거란 생각에 괜히 가슴이 찡해졌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받을게.”
카실도 빼지 않고 한 번에 대답했다.
마주한 해피 엔딩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싱긋 웃었다.
이렇게 오늘의 채용은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 * *
며칠 후 늦은 오후.
새벽부터 아르비나 저택에 감돌았던 소란스럽고도 들뜬 분위기는 하루 종일 이어졌다.
바로 오늘. 아르비나 후작 부부가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아르비나 후작은 3개월, 후작 부군은 2개월 만의 귀환이다. 경로가 겹친 관계로 두 분이 함께 돌아오는 중이라 했다.
“도착하시려면 아직 남았어, 시샤. 쉬고 있으면 이야기해 줄게.”
도착 예정 시간이 되어 로비로 가자, 먼저 와 있던 비알로가 날 배려하듯 이야기했다.
하지만 남긴 개뿔. 분명히 곧 도착이라고 들었는데.
부모님이 도착하고서야 내가 헐레벌떡 튀어나오는 그림을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여기 있을게. 다시 들어가기 귀찮잖아.”
나는 비알로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벽에 살짝 기대어 섰다.
사실 원래의 시샤는 부모님이 도착하고서야 슬그머니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살가운 딸은 아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소원한 편이었지.
그럴 만도 했다. 20살 때까지 그녀는 다른 이를 진짜 부모라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딱히 모나게 행동한 것은 아니지만, 굳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을 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느 정도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걸.’
오빠한테 이런 취급을 받는데 부모님이라도 뒷배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반.
그냥… 잘 지내고 싶은 생각이 반.
지금은 내 부모님이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기왕이면 그냥 잘 지내고 싶다.
“마차가 정문을 통과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가 부모님의 도착 소식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