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22
@22. 아르비나 후작 부부
밖으로 나가자 커다란 마차가 이곳을 향해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내 마차가 멈추고, 나보다 조금 더 진한 색의 보랏빛 머리를 틀어 올린 중년의 여인이 먼저 내렸다.
‘저 사람이 시샤의… 지금은 내 어머니구나.’
괜히 긴장되어 마른침을 삼켰다.
바닥에 털썩 발을 딛은 그녀는 많이 피곤해 보였으나, 그럼에도 눈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포스가 느껴졌다.
바로 이어서 아버지가 마차에서 내렸다. 후작가가 이끄는 기사단의 기사단장답게 커다란 덩치였다.
하지만 이와 어울리지 않게도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민 채였다.
“내가 먼저 내려서 잡아 준대도요, 티오라!”
“됐어, 나도 발 있어.”
“그게 문제가 아니라, 당신 피곤한데 내가 에스코트 정도는….”
“아이들이 나와 있군. 잘 지냈겠지, 비알로. 그리고… 시샤.”
비알로에게 먼저 머물렀던 어머니의 눈이 나를 발견하고 조금 크게 뜨였다. 내가 나와 있을 줄 몰랐다는 눈치였다.
“처음… 아니, 오랜만이에요.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표정이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변했다. 그녀가 이쪽으로 걸어오며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배고프다. 식사 전이지?”
“그럼요. 어머니 오시길 기다렸죠.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비알로가 싱긋 웃으며 어머니에게로 다가섰다.
“마부가 힘 좀 썼지. 보너스를 줘야겠군.”
“제가 체크할게요. 오랜만에 어머니, 아버지 보니 너무 좋네요.”
우엑. 비알로가 눈을 휘며 아부를 떨자, 어머니가 기분 좋게 웃으며 큰 보폭으로 식당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 옆에 섰던 아버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는 채였다.
“아버지, 식사하러 안 가세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묻자, 갑자기 그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뭐, 뭐지? 내가 무슨 말을 잘못한 건가?
아니, 그보다 이렇게 사람들이 다 보는데 대놓고 울어도 괜찮은 건가?
“어, 저, 그러니까… 일단 이걸 쓰세요!”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 들어 그에게 내밀자, 그가 떨리는 손으로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저, 괜찮으세요?”
“그래… 괜찮다. 그러니… 한 번만 더 아버지라고 불러주지 않으련?”
“네? 아버지.”
“크흑.”
내가 또 그의 눈물 버튼을 눌러 버린 모양이다. 손수건이 서서히 젖어 들어 갔다.
“네가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 주다니. 고맙다, 시샤.”
“뭐,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라고 말하고 문득 생각해 보니, 시샤는 한 번도 이들을 어머니, 아버지라 부른 적이 없었다.
진짜 시샤가 아닌 내가 부른 것에도 이렇게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하는데, 원래의 시샤가 불러 줬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약간의 죄책감 어린 감상에 젖어 들었다.
하지만 시샤의 모든 기억과 감정은 지금 내 안에 스며들어 있다. 이미 시샤로서 살기로 결심했으니 이런 생각은 접어 두는 게 좋겠지.
“앞으로도 많이 불러 드릴게요, 아버지.”
한 번 더 눈물을 쏟는 그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자리에는 이미 그릇과 커틀러리, 냅킨이 세팅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 앞에 놓인 포크들은 모두 일반적인 포크와 달리 손잡이 같은 동그란 링이 달려 있었다.
이게 뭐지? 그 사이에 손가락을 넣은 순간.
“아직 포크질이 서툰 모양이로구나.”
어머니의 시선이 내 손을 향했다.
이 포크는 어린아이에게 주는 교정용 포크였던 것이다. 고개를 들어 보니 다른 이들의 앞에는 제대로 된 포크들만 있었다.
“아뇨, 잘못 가져다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시샤. 가족 앞이잖아.”
비알로가 내 말을 막으며 포크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비알로가 수작질을 부린 모양이다.
슬며시 미소 짓는 그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 보였으니.
하지만 얼핏 보기에는 동생의 부족함까지 감싸 주려는 오빠의 인자한 미소 같아서, 부모님은 흐뭇하게 우릴 바라봤다.
“그래, 시샤. 네가 뭔가를 못하더라도 다 괜찮단다. 네게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아버지가 따뜻하게 말했다.
이 온화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날 바보로 만들겠다면, 기꺼이 맞춰 주는 수밖에.
“걱정 고마워, 오빠.”
“그래. 난 항상 네 걱정뿐이지, 시샤.”
“응. 이 교정용 포크, 오빠가 20살 때까지 애용했다던 방법이잖아!”
내 말에 비알로의 입술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포크질 5살 때 다 뗐어. 걱정 안 해 줘도….”
“재밌는 농담이네, 시샤.”
“왜 모른 척… 앗, 미안. 혹시 비밀이었어?”
입을 막으며 놀란 제스처를 취하자, 비알로의 미소에 살짝 경련이 일었다.
단순하기는. 시샤가 얼마나 비알로한테 무르게 대했으면 이런 장난질을 치는 걸까.
“비알로, 그런 노력을 했었니? 너도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그러게요. 비알로가 지금은 포크질을 이렇게나 잘하는데 말이지요.”
부모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당황한 듯 손사래를 쳤다.
“농, 농담이에요, 농담. 정말 농담인데….”
몇 번이고 농담이라는 말을 되풀이하자, 마치 정말 실수로 진실을 말해 놓고 수습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하하.”
비알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이 타는지 옆에 놓인 샴페인을 연신 들이켰다.
그러고는 내가 새 포크를 받는 동안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사절 일은 잘 끝나셨어요, 어머니?”
“흐음. 공격적인 태도는 누그러졌지만 꽤나 보수적이라 좀 더 공을 들여야겠더군.”
“이젠마 왕국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나요?”
“꽤나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아. 아마 남동부권에서는 앞으로 더 떠오를 테지. 미리 관계를 다져 놓아야 해.”
이젠마 왕국?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비알로 너도 이젠마의 언어를 익혀 놓는 것이 좋을 거다. 잘하면 다음 사절에 함께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네, 오늘부터 시작할게요.”
어머니의 말에 비알로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샤, 너도… 아니다. 넌 흥미 없다고 했지.”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흥미 없다고 한 적이….”
있구나. 기억을 돌이켜보니 전에 어머니가 시샤에게 다른 곳의 언어를 배워 보겠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시샤는 거절했고.
“시샤는 키론어를 읽는 속도도 아직 느리니까요. 좀 봐주세요, 어머니.”
비알로가 나를 대변하듯 말했다.
시샤는 후작가에 와서야 글을 배운 데다, 지금까지는 후작가의 일원으로서 뭔가를 배우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여기에는 비알로가 너는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임을 빙자한 배척을 한 영향도 있었고.
지금 갑자기 흥미를 번뜩이는 것도 이상하겠지. 본격적으로 코레아리아어 번역을 시작하면 바빠지기도 할 테고.
하지만 적어도 관심이 없진 않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고민해 볼게요, 어머니.”
“그래, 우리 비알로와 시샤가 같이 배워서 다음 사절에는 어머니 대신 함께 떠나는 것도 좋겠구나!”
아버지가 흐뭇하게 나와 비알로를 바라보았다.
“나 지금 은퇴시키려는 거야, 테드릭?”
“당신이 너무 바쁘니 그러지요. 어떠냐, 너희 둘이 함께 사절을 떠나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데요.
“시샤와 함께 간다면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네요. 그렇지, 시샤?”
비알로는 제 손을 맞부딪히며 내게 고개를 기울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오빠?”
“그러엄.”
비알로가 눈을 접어 웃었다. 하지만 내게만 보이는 그의 눈동자엔 식은 잿빛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나도, 그도 그것을 티 내지 않은 채 화기애애함을 가장한 식사 자리가 계속되었다.
식사가 끝난 후, 방으로 돌아가는 나를 비알로가 따라왔다. 애써 무시하고 걸었으나, 그는 내 방문 앞까지 쫓아왔다.
“…….”
내가 문 앞에 서서 비알로를 바라보자, 그가 왜 문을 안 여냐는 듯 손잡이를 눈짓했다.
“뭐 할 말 있어, 오빠?”
부모님 앞에서처럼 다정히 오빠라고 부르자 비알로도 화사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시샤. 들어가서 얘기할까?”
“여기서 못 할 얘기면 하지 않는 게 어떨까?”
팔짱을 끼고 문을 아예 막고 서자, 비알로의 표정이 언짢게 변했다. 주변을 살핀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작은 소리로 질문했다.
“안 배울 거지?”
이젠마어를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따라와서 저걸 묻다니.
“함께 사절을 가면 너무 좋겠다며.”
“그건….”
비알로가 제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잘 들어. 안 배우는 게 좋을 거야, 시샤. 내가 너 부담 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 넌 몰라. 하나하나 그런 식으로 나서면 점점 피곤해질 거라고.”
개소리도 참 정성스럽게 한다.
“고민 중이었는데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배우고 싶네.”
팔짱을 끼고 싱긋 웃어 보이자, 비알로가 정색을 했다.
“배우지 마.”
이렇게 직설적으로 하지 말라고 하다니,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다.
“배운다면 어쩔 건데?”
“어쩌긴. 말할 거야, 네 비밀.”
‘넌 써먹을 패가 그것밖에 없어?’라고 말하려다가 겨우 참았다. 카실을 보며 느낀 거지만, 마법사라는 것은 생각보다 더 치명적인 패이기에.
여기서 더 자극하는 건 좋지 않겠지.
“후, 네가 그럴수록 배우고 싶긴 하지만, 비알로. 솔직히 관심 없어.”
“…그래?”
“알잖아. 난 그동안 키론어에 예법 배운 것만으로도 신물 나. 이제는 그냥 놀기만 해야겠어.”
“안 배운다는 뜻이야?”
“네가 원하는 대로 안 배울게. 대신….”
팔짱을 풀고 비알로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 그리고 눈썹을 치켜올린 채 나를 내려다보는 비알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