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25
@25. 이아페라고 불러 주세요
니니안은 걸어가는 동안 쉴 새 없이 재잘댔고, 그동안 자신의 신상 정보를 쏟아 냈다.
그녀는 키론 황립 아카데미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작년에 졸업했다고 한다.
평민 출신임에도 이례적으로 아카데미에 다녔다는 그녀를 보며,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던 내 과거가 겹쳐 보였다.
“암튼 그래서 말예요, 제가….”
“안녕하세요?”
“깜짝이야.”
갑자기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확 돌아봤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라온! 언제부터 있었어요?”
“니니안이랑 인사하신 순간부터 쭉 있었는데 절대 뒤를 안 돌아보시더라고요. 인사할 타이밍을 쭉 재다가 겨우 말을 걸었죠.”
끊임없이 대화하느라 인기척을 신경 쓰지 못한 모양이다.
“니니안, 처음 보는 사이에 그렇게 말을 많이 하면 부담스러워하실 수도 있다고.”
“라온! 제발 좀 너나 잘해! 시샤 님, 그러셨다면 죄송….”
“전혀요!”
손사래를 치자 니니안이 환하게 웃더니 보란 듯이 라온을 밀치고 내게 가까이 왔다.
라온은 입술을 삐죽였지만 더 태클을 걸진 않고 나란히 서서 걸었다.
“두 사람은 원래 아는 사이예요?”
“네, 아카데미에서 같은 동아리를 했거든요.”
하여간 그 아카데미 자체도 황실 직속이라 아무나 못 들어가는 곳이니, 둘 다 엘리트라는 거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별궁 정문에 다다랐다.
정문에 선 경비병에게 칼린느에게 받은 패를 보여 준 후, 정원을 지나 건물에 들어섰다.
우리는 1층 안쪽에 있는 연구실로 바로 향했다.
안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우리가 가장 처음으로 도착한 모양이다.
그런데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문 앞에 가서 선 순간, 문이 자동문처럼 활짝 열렸다.
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익숙한 향이 느껴졌다. 사람을 편안하면서도 긴장되게 만드는 은은한 나무 향기.
“오랜만이네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자, 이아페가 날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옆에 아기자기한 꽃송이들이 떠다닐 것만 같은 얼굴.
반가움을 꽉 차게 품은 이아페는 정말로 즐겁고 기뻐 보였다.
몇 번 그의 미소를 본 적이 있지만, 이런 순도 높은 표정은 처음이다.
아마 칼린느에게 도움이 될 미래를 위해 한 발짝을 내디뎠다는 것이 그에게 이런 감정을 표출하게 만든 거겠지.
“고마워요. 혼자 있… 아니네요.”
안으로 들어서자 카실, 그리고 짧은 머리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연구실 방음이 잘되는 걸까, 이들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어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던 걸까.
“이야기 나누고 있었어요?”
나는 이아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난처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속삭였다.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짐짓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시샤 아르비나라고 해요.”
“셀라임 딜라니에예요.”
시크한 인상의 여자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나머지 사람들끼리도 통성명을 한 후, 본격적인 업무 준비가 시작되었다.
“편의나 단합을 위해 연구단 내에선 신분 관계없이 평등한 관계를 유지했으면 해요.”
“그럼 단원들끼리는 호칭을 떼고 그냥 이름을 부를까요?”
“단장님은 별도 호칭이 있는 게 좋겠어요. 이름이나 성에 단장님이라고 붙여서 부를게요.”
호칭 정리는 만난 그 자리에서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하지만 오전 시간을 보낸 결과, 대부분 단장님, 아르비나 님, 시샤 님 등 줄여서 부르고 있었다.
그 후에는 가나다라부터 기초적인 언어의 구조를 익히는 시간이 이어졌다.
출근 전에는 긴장되고 마음이 복잡했는데, 막상 가르치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오히려 편안해졌다.
“드디어 밥…! 밥시간이에요.”
황궁에서의 첫 식사. 정원을 지나 다른 건물로 이동했다. 황궁에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모이는 식당이었다.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카타파하!」
외부에서는 조심해야겠지만, 연구단 건물 안에서는 니니안과 라온이 배틀을 하듯 가나다라를 외쳤다.
벌써 자음과 모음이 만나 언어가 구성되고, 발음은 어떠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보통 외국어 공부를 할 때 글자 익히는 것만 해도 꽤 오랜 시간을 잡아먹는 걸 보면, 확실히 다들 언어적 감각이 꽤나 탁월해 보였다.
“생각보다 금방 짐을 덜 수 있겠는데.”
“무슨 짐을 말입니까?”
혼잣말을 중얼거린 걸 듣고 이아페가 질문했다.
내가 어느 정도 교육해 놓고 뒤로 빠질 수 있는 날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지만. 지금부터 이렇게 말하면 이아페가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겠지?
“다들 습득 능력이 좋아서 금방 해석을 다 함께 할 수 있겠다는 거죠. 공자님도 지난번보다 더 공부해 왔어요?”
“공자님?”
이아페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려다가, 문득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는 게 생각났다.
하지만 매번 공자님, 공자님 하다가 갑자기 이름을 부르려니 어색했다.
“음, 카일라인… 님, 아니, 카일라인.”
“네, 시샤 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이아페가 여상스럽게 대답했다. 한국어를 섞어서. 하지만 그보다 더 귀에 쏙 들어온 것은.
‘시샤 님이라니.’
아르비나 영애에서 시샤 님으로의 전환이 이렇게나 쉬운가? 괜히 얄미운 기분이 들었다.
“노력한 티가 너무 많이 나네요. 카일라인.”
“이아페라 불러 주세요.”
“왜, 왜요?”
뭐, 대체 왜. 이름은 친한 사이에만 부르는 거고, 성을 부르는 게 일반적이지 않아?
“저놈… 아니, 저 사람. 뭐라고 부르십니까?”
이아페가 앞서 가고 있는 라온을 가리켰다.
“라온이라고 부르죠.”
“저 사람은?”
“카실.”
…다른 이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건 뭐, 협상의 여지가 없군.
“그럼 저는?”
“이아페.”
“네, 시샤 님.”
이아페가 부드럽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의 깊은 눈이 살짝 휘어졌고, 그 안에는 내가 들어차 있었다.
그래, 이름을 부르는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친하지 않아도 부를 수 있는데 내가 너무 편협했다.
‘그런데 잠깐.’
이제 알겠다.
왜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이아페의 이름을 부를 때만 가슴 한구석에서 공기 방울 같은 것이 생겨나 목까지 차오르는 기분이 드는지.
‘처음 만났을 때 친하지도 않은데 이름 불렀다고 이아페한테 욕 들어 먹었잖아!’
잊고 있었던 것 같지만 사실은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아페는 왜 이름을 부르라고 하는 거지?
지금 나는 이아페에게 내적 친밀감이 많이 쌓였지만, 이아페는 나를 친하다고 생각할 리 없는데. 그렇다는 건 분명….
‘사회생활 하려나 보다.’
분명히 이게 답이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빠른 걸음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어쩐지 이아페가 빨라진 내 보폭에도 딱 맞춰 걸어서, 결국 식당까지 그와 나란히 걸어가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부드러운 버섯 크림소스와 구운 양파를 곁들인 애플 크러스트를 얹어 그릴에 구운 뒤 얇게 슬라이스한 필리독 구이’였다.
뭐가 핵심일지 모를 땐 마지막 단어를 보라고 했지.
“오늘 메뉴는 필리독 구이네요.”
필리독은 오리와 비슷하면서도, 오리보다 더 부드럽고 향이 좋은 고급 식재료였다.
‘레전드 구내식당’이 있는 회사에 취업했다는 자부심이 차올랐다.
밥을 먹는 동안에는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갔다. 대화의 지분 중 80%는 니니안과 라온이 차지했다.
“여러분은 평생직장을 믿으세요?”
니니안이 야심에 찬 목소리로 질문했다.
“글쎄요. 근무 조건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난 안 믿어. 이미 일하다가 잘렸으니까.”
“한 번에 여러 직업을 갖다 보면 그중 하나는 끝까지 남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해.”
각양각색의 답이 쏟아졌다. 그들의 답을 경청하던 니니안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답을 뱉었다.
“저는 믿거든요. 이 연구단이 평생직장이 될 수 있다는 걸 말이에요. 여러분도 같이요.”
그녀가 제 의견에 확신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취업난에 구한 첫 직장이라 더 소중하다고 했지.
일정을 다소 빡세게 준비 중인데, 지금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아, 그런데 시샤 님과 이아페는 원래 알던 사이신 거죠? 친한 사람과 함께 일하다니 정말 좋으시겠어요!”
니니안이 이쪽을 휙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정말로 부럽다는 듯이.
그 표정에 라온이 괜히 옆에서 눈을 흘겼다.
하지만 우리가 친하다니.
“안 친해요, 저희! 그렇죠, 이아페?”
나는 해명하듯 단호하게 말하고는 흡족한 눈으로 이아페를 바라봤다.
어때, 나 잘했지? 사회생활 하려고 노력하는 건 하는 거고, 진짜 친하다는 오해는 받지 않도록 해 줄게.
하지만 이아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실연을 당하기라도 한 듯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
때로는 침묵이 백 마디 말보다 낫다고 했던가.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아니, 진짜로 안 친한데….”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도록… 제가 더 노력할게요.”
“무슨 노력을….”
“야, 그, 그만해.”
눈치 없어 보이는 카실까지 나서서 내 말을 막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이아페에 대한 안쓰러움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죄인은 나였다.
“어… 오늘부터 친해지려고요.”
내 말에 사람들이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의 이아페는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치 사냥에 성공한 맹수처럼.
하지만 다시 눈을 감았다 뜨니, 그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잘못 봤나?
괜히 민망해져서 필리독 구이를 집어 오물오물 씹었다.
* * *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계세요!」
병아리들이 한국어로 인사를 외치며 연구실을 나섰다.
물론 나는 퇴근을 할 수 없었다.
단원들에게 코레아리아어를 가르치는 것과는 별개로 내가 해독해야 할 고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원들이 모두 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런데 그때, 닫혔던 문이 다시 열렸다.
“퇴근 안 하십니까?”
이아페였다.
그는 열린 문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철컥, 그의 뒤로 천천히 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