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27
@27. 맛있게 처먹어!
“엥? 제일 잘 먹을 것 같은 캐릭터인데.”
“캐릭터?”
“그게 아니라 제 말은, 카페는 혼자 가는데 밥은 혼자 못 먹어요?”
“네.”
그는 살짝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이아페가 밥 먹는 장면을 소설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혼자서든, 누구와 함께든.
아무리 그래도 혼밥을 못 하는 성격이었다니. 원작에서 혼자 있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였는데.
“같이 드셔 주시면 안 됩니까?”
이아페가 다시 한번 질문했다. 그의 눈빛이 어려운 부탁을 하는 사람처럼 간절하게 반짝였다.
마음이 흔들렸다.
나 때문에 혼밥 하게 생긴 애가 내게 밥 같이 먹어 달라고 하다니. 밥 먹는 게 뭐라고 저렇게 간절하게!
이런 그를 거절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요! 먹고 가죠, 뭐.”
“고맙습니다, 시샤 님.”
이아페가 휘어진 눈으로 다정하게 인사했다. 그의 표정이 안도감으로 풀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르트르 거리에 도착했다.
수도 로시에르체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귀족이든 평민이든 할 것 없이 모두가 사랑하는 거리가 바로 에르트르였다.
밤의 에르트르에 와 본 것은 처음이다.
마차에서 내리자 선선한 밤공기가 기분 좋게 와 닿았다. 성글게 짜인 바람이 가볍게 뺨을 스쳤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는 번화한 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곳곳의 등불이 밝혀지고, 음식점들은 바깥 테이블까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즐거운 소음들이 울려 퍼지는 통에 나까지 들뜬 기분이었다.
근처의 작은 광장에서는 몇 명의 사람들이 악기 연주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에 가서 감상하고 싶었지만, 배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귀로만 감상하며 음식점을 찾았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시샤 님은 좋아하는 음식 있습니까?”
“좋아하는 거야 많죠.”
“그럼….”
“하지만 오늘은 당신이 먹자고 했으니까 당신이 골라야죠. 어디 선택을 미루려고요!”
“음… 에르트르는 오랜만이라.”
“그럼 우선 조금 더 걸어 볼까요?”
검지로 거리를 가리키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한 발짝밖에 내디딜 수 없었다. 이아페의 손이 내 치맛자락을 잡았기 때문이다.
“왜요?”
이아페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는 내 근처의 땅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요, 벌레 지나갔어요?”
“아뇨, 당신 신발.”
“신발?”
“더 걸어도 되나 해서.”
“아.”
나는 발을 내려다봤다. 드레스 아래, 연한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구두가 내 발을 지탱하고 있었다.
유난히 강과 호수가 많은 키론 제국에서 물빛 아이템은 행운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데뷔탕트나 결혼 등 ‘시작의 날’에 물빛 구두를 신는 이가 많았다.
이 구두는 어머니가 첫 출근을 기념해 특별히 준비해 선물해 주셨다. 목적성에 맞게, 굽이 높지 않고 발이 편하게 제작된 것이었다.
“괜찮아요. 별로 안 높거든요.”
“정말입니까?”
“뛸 수도 있어요.”
나는 가볍게 발을 구르며 뛰는 시늉을 했다. 그가 잡은 내 옷자락이 들썩이자 이아페가 손을 뗐다.
대신 그의 걱정 어린 시선이 내 눈을 향했다.
“혹시 못 걷겠으면 말해요. 근처에 부티크도 있으니까.”
“에이, 업어 줄 거 아니면 말 안 할래요.”
“지금도 업어 드릴 수 있는데.”
내 발에 쏟는 그의 관심을 끊어 내고자 건넨 농담에 이아페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떻게 저런 말을 저렇게 쉽게 할까?
‘나를 모셔야 할 어르신 정도로 생각하는 게 분명하군.’
시샤는 본디 들판을 뛰어다니며 살아온 건강 미인인데. 지금은 걸음을 옮기는 것도 불안해 보일 만큼 쇠약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내가 이 몸을 잘 못 살리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괜히 자세를 바로 했다.
“배고프다면서요. 빨리 밥 먹을 곳이나 찾아요.”
나는 의식적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아페는 내 넓어진 보폭에도 부드럽게 속도를 맞춰 걸었다.
그러다 어느 골목 안쪽, 그 집 불이 켜진 것을 발견했다. 내가 이곳에 와서 가장 많이 가 본 식당, ‘팜바’였다.
“아, 저기서 맥주 한잔하면서 먹는 음식이 진짜 끝내주게 맛있는데….”
그쪽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아페가 즐길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추천할 수는 없었다.
그때, 옆을 걷고 있던 이아페가 말했다.
“저기로 가겠습니다.”
“오, 어디요?”
서둘러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 나는 이아페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런데 내 시선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그가 가리킨 곳은, 바로 방금 내가 보고 있던 팜바였던 것이다.
“이아페, 저기 가 봤어요?”
“아뇨.”
“그럼 다른 곳이 좋을 것 같은데.”
“아닐 것 같은데.”
“음… 저긴 당신이 싫어할 만한 분위기예요. 어수선하고, 왁자지껄하고….”
“제가 싫어할 만한 분위기를 어떻게 아십니까?”
소설 속에서 봤으니까요. 당신은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왠지 그럴 것 같아요.”
이아페의 눈썹이 미묘하게 치켜 올라갔다. 그는 아예 몸을 골목 쪽으로 틀었다.
“가요, 저기로.”
그의 눈이 약간의 오기로 물들었고, 꾹 다물린 입이 살짝 아래로 기울어져 있었다.
“저기 가고 싶은 이유가 있어요?”
“음식이 맛있을 듯하여서.”
“뭘 파는지 적혀 있지도 않은데….”
“냄새가 좋네요.”
냄새가?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내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이아페는 마법 능력 이외에도 여느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오감이 발달했다는 설정이었던가?
왜, 청각이 발달해서 두꺼운 벽 너머의 미세한 소리도 듣고, 후각이 예민해서 남들은 못 맡는 죽음의 냄새까지도 맡는… 그런 설정.
팜바 음식들이 냄새가 유달리 좋은 건 사실이니 헷갈렸다.
“저기는 저렴한 재료로 된 음식들을 주로 파는 곳이에요. 당신이 평소 먹던 음식과는 좀 다를 거예요.”
“가격과 맛이 꼭 비례하진 않죠.”
그가 어서 가자는 듯 팜바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 음식 철학이 좀 있다 이거지?
결국 나는 비장하게 그를 이끌고 팜바로 들어섰다.
“으하학!”
“크학학! 마셔! 마셔!”
두꺼운 나무 문을 열어젖히자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 데시벨이 높아졌다.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머리통을 울렸다.
입구와 가장 가까운 테이블의 여자는 맥주를 10초 만에 원샷하더니 잔을 콱 내려놓았다. 잔이나 테이블 둘 중 하나는 부서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내 옆에 서 있는 이 남자, 이아페 카일라인이었다.
“싫으면 나가도 돼요.”
“유쾌하고 좋은데요.”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이 공간에서 이아페 혼자 장르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괜찮다는데 뭐.’
나는 팜바의 주인을 향해 손가락 2개를 펴며 ‘2명!’ 하고 외쳤다. 그리고 눈으로 빈 테이블을 찾았다.
낮은 천장 아래 펼쳐진 허름한 내부에는 인테리어, 톤앤매너는 개나 줘 버리라는 듯 여기저기서 주워온 듯한 각양각색의 테이블, 의자가 놓여 있었다.
대충 남는 나무로 만든 것 같은 작은 의자가 있는 반면, 귀족가 식탁 앞에 있을 듯한 쿠션감 좋아 보이는 의자도 있었다.
거의 만석이었지만 다행히 한두 테이블이 남아 있었다. 나는 박물관을 둘러보듯 찬찬히 가게 안을 살피는 이아페의 옷자락을 잡고 테이블로 향했다.
구석진 자리의 자그마한 둥근 테이블을 둘러싸고 의자 2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등받이가 있고 하나는 등받이가 없었다.
이아페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 쪽으로 먼저 걸어갔다.
‘역시, 저기에 앉고 싶은 게 당연하겠지.’
나도 등받이 의자에 앉고 싶었지만, 저 의자는 모태 귀족으로 살아온 이아페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대신 나는 다른 테이블로 걸어가, 등받이 의자 하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의자 쓰세요?”
“아니, 남는 건디.”
“그럼 저희 좀 가져가도 될까요?”
“맘대로 하슈.”
“감사합니다.”
의자를 번쩍 들어 우리 테이블 쪽으로 몸을 돌리자,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의 이아페가 보였다.
그는 놀란 듯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의자 등받이를 뒤에서 잡고 서 있을 뿐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이아페가 자신의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 거기 앉아도 되냐고? 돼, 돼. 나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 의자를 턱으로 가리켜 응답했다.
빠르게 총총걸음을 옮겨 의자를 놓은 나는 등을 딱 붙여 바르게 앉았다. 역시 허리 건강에는 등받이가 필수지.
이아페는 그런 내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내가 의자에 앉은 후에야 자리에 앉았다.
“뭐 먹을래요?”
“추천해 줘요. 당신은 여기 와 봤다고 했으니까.”
“음….”
나는 벽에 붙은 메뉴들을 보며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나는 마음속 토너먼트 끝에 하나를 주문했다.
테이블에 한쪽 팔을 괴고 나를 바라보던 이아페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후 성큼성큼 걸어온 음식점 팜바의 주인이 테이블에 음식을 올려놓았다. 갓 구워진 음식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맛있게 처먹어!”
팜바의 주인은 욕쟁이 할머니였다.
이 세계, 이 나라에도 욕쟁이 할머니 콘셉트의 음식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신기하고 정겨웠던지.
물론 말과 다르게 행동은 친절하기 짝이 없었다. “재료 남으니까 더 먹어!”라며 서비스 음식을 계속 준다거나, “잔돈 없으니까 그거만 내!”라며 금액을 깎아 주는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었다.
혹시 반말을 하는 이곳의 콘셉트에 불편해하거나 역정을 내는 귀족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외관만 봐도 정말 허름한 이곳을 찾는 귀족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이아페와 함께 들어오게 되다니.’
나는 이아페를 힐끗 바라봤다. 그가 눈앞의 낯선 음식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