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29
@29. 그들의 첫 번째 주문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시샤의 기억을 훑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나는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반사적으로 손을 떼기 위해 내 쪽으로 당기자, 내 손바닥과 그의 손바닥 사이에 작은 틈이 생겼다. 그러나 그는 다시 내 손을 자신 쪽으로 살짝 당겨 잡았다.
다시, 손바닥이 밀착되었다.
“손바닥이 떨어지면 구두 약속과 다를 바 없죠.”
그의 커다란 손은 자신이 감싼 작은 손이 빠져나가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견고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약속하겠습니다. 그러니 시샤 님도 약속하십시오. 계속 이 언어를 연구하겠다고.”
언젠가 이아페와 나의 포지션이 바뀌어도 종신 계약으로 계속 연구를 해야 하는 미래를 암시하는 건가.
다소 신중해야 할 일이지만, 어차피 나중이 되면 이아페는 내가 있든 없든 안중에도 없을 것이었으므로 대충 대답했다.
“좋아요.”
그것보다는 지금 이 손을 마주 잡은 상태가 심히 불편하고 민망해 빨리 떼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
“도장까지 찍은 겁니다.”
이아페의 손에서 힘이 스르르 풀어지는 것이 느껴지자마자, 나는 황급히 손을 빼냈다.
풀어낸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나는 바로 맥주잔을 잡았다. 그대로 들고 벌컥벌컥 마시려는데, 앞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배.」
나는 다시 그에게 잔을 내밀었다. 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맥주잔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가볍게 떨어졌다.
이 정도면 괜찮은 첫 출근, 괜찮은 첫 회식이었…나?
* * *
정적이 흐르는 방. 방금 씻고 나와 물기를 머금은 머리칼을 넘기며 이아페가 독백했다.
“마치 칭찬받고 싶어 꼬리를 흔드는 개 같군.”
책상에 손을 짚은 그는 창문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봤다.
적당히 해야 했다. 그녀를 도울 수 있되, 그녀가 자신에게 모든 걸 맡기고 떠나 버려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할 만큼.
하지만 오늘은 간간이 비워 둔 그 단어들이 부끄러워 보일 정도로 열심히 해석해 버렸다.
마치 숙제를 잘 해내서 칭찬받고 싶어 하는 아이처럼.
어떻게 일주일 만에 이만큼이나 익혔냐고?
그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녀와 이 연구단에 함께 속하게 되리라는 것이 결정된 그날부터, 이아페는 이 언어를 해석하는 데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었다.
시샤가 이 일에서 일찍 손을 떼고 싶어 한다는 것쯤은.
‘의도적으로 내게 공을 넘기고 싶어 했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 것은, 그것이 그녀의 본심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샤는 마치 하고 싶지만 하면 안 될 일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코레아리아어 연구단장. 정말 그녀의 말대로 마법이 제대로 인정받게 된다면 가장 큰 공을 세우게 될 자리다.
그 자리를 왜 남에게 넘기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것도 자신에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해 줄 생각은 없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 버린 건지.’
처음 관심을 가진 건 그녀가 자신과 같은 마법사라는 점이었다. 마치 오래 알고 있었다는 듯 저를 편하게 대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기도 했고.
하지만 몇 번의 만남을 거듭하는 동안, 이아페는 점점 다른 것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나 말투, 손동작이나 살짝 차가운 피부의 온도와 같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들.
그리고 그날, 그 파티의 발코니에서.
그는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을 품고 말았다.
〈미쳤어요? 당신이 지금 살아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
사색이 되어 울먹이던 그녀의 표정.
〈이렇게 아픈 건 분명 행복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당신의 기억 속 그 사람은 슬픔이 우선이라 자신이 금기시된다면 너무 슬플 거예요.〉
새벽 물방울 같은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감싸 안고 토닥이는 듯했다.
처음이었다.
그토록 단단하고 견고한 빛을 느낀 것은.
그리고 다음 날, 물에 뛰어드는 그녀를 본 순간 깨닫고 말았다.
이 사람에게 가지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이아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었다.
아직 저 자신이 생각하는 범주 안, 합리적인 결정 안이었다.
하지만 이 이상 나아가게 된다면….
그도 자신이 어떤 행동들을 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 * *
기초 한국어반을 다니는 병아리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늘은 며칠 동안 가르친 것들로 작문을 해 보게 하는 중이었다.
「내가 시샤 님을 좋아한다.」
니니안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수줍은 말투와는 반대로 문구의 내용은 어딘가 인터넷 소설에서 선전 포고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시샤 님을 좋아한다.」였으면 저 수줍은 말투가 조금 더 어울렸을 텐데.
“‘이’와 ‘가’는 잘 구분해서 썼네요! 근데 이번 문장에서는 ‘내가’가 아니라 ‘나는’을 쓰는 게 좋아요.”
“왜요?”
“왜요?”
나를 둘러싼 병아리들에게서 스테레오 사운드가 재생되었다.
아까부터 어색한 부분을 정정해 줄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왜요’ 파티가 열렸다. 열정 가득한 건 좋은데 서서히 땀이 나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은, 는, 이, 가’는 다 조사이지만 이, 가는 격조사고 은, 는은 보조사라…는 얘기는 다음 시간에 하도록 하고.
“보통 「이, 가」는 그 주체가 누구인지를 강조할 때, 「은, 는」은 행동이나 대상을 강조할 때 쓰거든요. 「내가」를 쓰면 니니안을 강조하는 거고, 「나는」을 쓰면 절 좋아한다는 걸 강조하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시샤 님을 좋아한다.」는 뭔가… 시샤를 좋아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니니안이다. 하고 선언하는 느낌이지.
하지만 니니안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그럼! 맞게 쓴 것 같아요.”
“네?”
“앗… 저를 강조하면 안 되나요?”
니니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음… 안 될 건 없지. 몇 가지 부연 설명과 함께 그렇게 쓸 수도 있다고 말해 주자, 니니안이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사과를 먹다.」
「구름은 하얗다.」
「나는 퇴근을 한다!」
차례로 카실, 셀라임, 라온이었다. 성격이 드러나는 듯한 작문이었다.
정정해 주거나 보충 설명을 할 때마다, 왜요 살인마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필기했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점점 머리가 핑핑 돌고 있었다. 한국어의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아페의 차례였다.
「머리 식힐 겸 잠시 쉴까요?」
「네! 좋아요.」
내 즉답에 그가 피식 웃었다.
앗, 작문이었구나. 내가 원하는 것을 콕 집어 말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대답해 버렸다.
하지만 이아페한테는 작문이었을지 몰라도 나는 진심이다. 어차피 이아페의 말은 다듬어 줄 필요도 없었고.
“자, 다들 일어나요. 쉬는 시간이에요. 그리고….”
나는 씨익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음 시간엔 주문을 같이 써 봐요.”
순식간에 단원들의 표정이 변했다. 밝게 빛나는 것 같기도, 흥분으로 상기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모두가 이 미묘한 들뜸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 *
회의실에 침묵이 맴돌았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단원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매서운 기대를 품은 눈동자들이 형형하게 빛났다.
“…….”
내가 아무것도 안 하면, 다들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이렇게 뚫어지게 날 쳐다볼 기세였다.
그 부담스러운 집중에 괜히 긴장이 차올라, 나는 크게 숨을 내쉬며 한마디를 던졌다.
“잠깐, 잠깐.”
“어후.”
“어우….”
다들 참고 있던 숨을 터뜨리며 경직된 자세를 풀었다.
그래, 다들 숨 좀 쉬어.
이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될 일도 안 되겠어.
“다시 말하지만, 저는 코레아리아어 전문가이지 마법 전문가는 아니에요.”
주문에 실패했을 때의 밑밥을 깔기 위한 말이었다.
“네, 단장님. 마법 전문가가 아니시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라온이 올곧은 목소리로 외쳤다. 응원한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분명 내 말에 동의해 주는 건데 기분이 묘하게 나쁘잖아.
내가 라온에게 눈은 웃지 않은 채 입으로만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자, 라온이 움찔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종이를 힐끗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 이것을 마법으로 띄울 예정이었다.
‘사실 괜히 긴장해서 그렇지, 웬만하면 성공하겠지.’
주문이라고 해 봤자 그냥 마력을 담아 정해진 말을 하는 것뿐이고, 이미 몇 번이고 사용한 바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이아페와 눈이 마주쳤다.
‘부담 갖지 마요.’
그가 나에게만 보이도록 입 모양을 지어 보였다.
붉은 입술이 천천히 모였다 떨어지며 소리 없는 메시지를 만들었다.
문장을 끝낸 그는 이내 나른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괜히 내 입술이 마르는 기분에 나는 입술을 살짝 말아 핥았다.
그사이 이아페는 종이를 조금 더 내 쪽으로 밀어 주었다.
책상 위의 종이로 향했던 이아페의 시선이 나를 올려다보듯 향했다. 눈이 마주친 이아페가 안심하라는 신호처럼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나는 불에 덴 듯 황급히 눈앞의 종이에 시선을 옮겼다.
사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려 있어 긴장한 것도 있지만, 주문 자체가 민망해 내뱉지 못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다들 이렇게 기다리는데 말을 안 할 수도 없다.
나는 비장하게 한마디를 뱉었다.
오늘 쓸 주문은 원하는 대상을 띄우는 주문이다.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