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3
@3. 가발입니까?
“진짜 오는 것 맞아?”
급하게 나선 것이 무색하게 나는 2시간째 홀로 대기하는 중이었다.
카페 자몬다의 주인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카페 안에는 휑하니 적막만이 감돌았다.
‘2월의 마지막 날에도 단골 카페에 갔다고 했는데… 아니었나?’
초조함으로 소설 속 이아페의 행적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되짚었다.
후, 정식으로 약속을 잡았다면 카페 죽순이가 될 일은 없었을 텐데.
물론 열병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만나자고 서신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답장은 이랬다.
아쉽게도 이번 방문으로는 귀하를 모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귀하께서 방문 주시는 사유나 귀하의 자질은 매우 훌륭하였으나, 한정된 시간으로 인해 뵙지 못하는 것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귀하의 내일에 행복만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면접 탈락 문자야 뭐야.
나는 끼고 있던 반지를 빼내어 테이블 위에서 굴리고 만지작댔다. 손을 움직여야 머리가 잘 돌아갈 것 같아서였다.
“일단 만나면 사과부터 하자. 경계심을 낮추게 하는 게 먼저… 아.”
팅! 데구르르.
떨어진 반지가 순식간에 다른 테이블 아래로 쏙 굴러 들어갔다.
“…이만 나가라는 신호인가?”
그 테이블로 다가가 아래로 손을 뻗었지만 안쪽으로 깊숙이 굴러간 탓에 닿지 않았다.
결국 테이블 아래로 기어 들어갔다. 바닥까지 내려온 테이블보의 안쪽으로 완전히 들어오자 시야가 어두워졌다.
다행히도 곧 동그란 반지가 손에 잡혔다.
“오, 찾았….”
그때였다.
딸랑. 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인 채 소리에 집중했다.
“늘 마시던 차로.”
VIP 손님인 걸 티 내는 주문 멘트를 읊은 저 고아한 목소리는!
‘이아페야…!’
밖으로 나가려는데, 일정한 템포의 발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소리는 바로 앞에서 멈췄다. 대신 풀썩, 소파에 앉는 사운드가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은 거야?’
나는 당황으로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이내 오히려 잘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화를 시작하기 더 좋겠는데.’
자, 크게 심호흡하고.
하나, 둘, 셋! 나는 마음속 신호에 맞춰 테이블 위로 고개를 불쑥 내밀며 한껏 반갑게 외쳤다.
“어맛! 카일라인 공자님?”
“……!”
귀신이라도 본 듯 사색이 된 이아페가 내 목에 넥슬라이스를 날렸다.
“힉…!”
다행히 그의 손은 내 목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대신 의문이 섞인 언짢아하는 시선이 내게 꽂혔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눈으로 그렇게 묻는 듯해서, 테이블 아래에서 빠져나오며 대답했다.
“반지가 떨어져서요. 그보다 오랜만….”
“즐거운 휴식 되시길.”
머쓱하게 웃으며 반지를 보여 주는데 이아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련 없이 몸을 휙 돌린 그는 다른 테이블로 걸어가 앉았다.
‘오… 이렇게 쌩하니 간다고?’
나는 반지를 든 손을 다시 바닥으로 가져갔다.
자, 집중하고, 조준하고, 발사.
새총을 튕기듯 손가락 스냅으로 잡아당겼다가 밀듯이 놓자, 반지는 뎅그르르 굴러가기 시작했다.
정확히 이아페를 향해서.
“앗, 또 떨어뜨렸네!”
어쩔 수 없다. 저걸 줍기 위해선 그의 테이블로 가는 수밖에. 간 김에 앞에 앉아서 인사도 좀 나누고.
그런데 도도도 걸어가는 중, 이아페가 먼저 반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안 주워 주셔도 되는데…!”
티잉. 반지와 손톱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
순식간에 반지가 모터를 단 것처럼 굴러갔다. 이아페가 반지에 튼실한 딱밤을 먹인 것이다.
황급히 그것을 따라갔지만 반지는 요리조리 춤추며 나 잡아 봐라를 시전했다.
아니, 무슨 굴렁쇠냐고.
결국 그것을 발로 캐치한 후, 이아페에게 확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다리를 꼬고 책을 꺼내 드는 중이었다.
결국 명분은 포기하고, 나는 그냥 그의 앞에 가 앉았다.
“오랜만이에요, 공자님.”
“당신의 자리가 아닐 텐데.”
살가운 인사에 서늘한 철벽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 정도 압박감에 꼬리를 내릴 거였으면 오지도 않았지.
물론 나도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그냥 도서관을 칼린느에게 바쳐 버리고 손을 떼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대체 그놈의 도서관은 어디에 숨어 있는 거야?’
원작 속 이아페는 어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어느 물가를 찾았다가, 물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걸 알고 도서관을 찾아낸다.
하지만 작가는 그곳이 어디인지도,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묘사하지 않았다.
즉, 지금 내가 가진 단서는 두 가지뿐.
도서관이 물속에 잠겨 있다는 것과 이아페의 추억의 장소라는 것.
하지만 수도인 로시에르체에만 2개의 커다란 강, 42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있다. 키론 제국 전체로 치면 못해도 500개는 될 거고.
3주 안에 그 물속을 다 뒤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뿐.
‘이아페의 추억의 장소를 알아내는 것.’
나는 쓰고 있던 연두색 챙 모자를 벗었다. 길게 옆으로 모아 내린 보랏빛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어떻게 복구한 머리인데 소중하게 대해야지, 암.
“지난번 일은 죄송했어요. 무턱대고 찾아가 그런 실례를 범하다니.”
눈가가 촉촉해졌다. 한 방울이라도 흐르면 좋을 텐데 수분은 손의 땀이 더 많이 나왔다.
안 미안한 거 티 나면 어떡하지?
뭐라고 덧붙일지 고민하며 이아페를 힐끗 보는데,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냉랭하던 시선에 낯선 바람이 분다. 감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확실히 나를 경계하는 눈치는 아니다.
‘눈물 작전이 통했다고?’
내가 하고도 믿을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이 본론을 꺼내기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것.
카페 주인도 이아페의 앞에 음료를 놓고 주방 깊은 안쪽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이걸로는 안 되겠어요. 사과의 의미로 공자님께 도움 될 정보를 하나 알려드릴게요.”
물론 이아페는 99%의 확률로 거절할 거다. 타인을 신뢰하지도, 빚을 지려 하지도 않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작전명 ‘일단 잡숴 봐’.
사양하더라도 일단 정보를 던지고 그의 반응을 볼 셈이었다.
나는 테이블에 바싹 몸을 붙이고 앞을 향해 한껏 몸을 뻗었다.
“이번에 슈….”
“좋습니다. 그걸로 당신의 마음이 편해지신다면.”
“예?”
“대신.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
나긋한 음성이 잔잔한 음표처럼 흘러나왔다. 스푼으로 차를 가볍게 휘휘 저은 그는 소리 없이 스푼을 놓았다.
전에 없이 다정한 이아페의 목소리에서 낯선 위화감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가 붉은 입술을 끌어 올리는 순간, 모든 사고가 멈추고 말았다.
해가 잘 들지 않는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창문 틈으로 겨우 스며든 햇살 속 그의 모습은 삽화에서 보던 그것과 똑같았다.
일말의 감정을 담고 있지 않음에도, 사람을 홀리는 독약 같은 미소.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가슴이 철렁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질문은.
“가발입니까?”
이아페의 시선이 정확히 내 머리로 와 닿았다.
“…….”
“…….”
“가발… 아니에요.”
기껏 서브 남주를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내 머리가 가발이냐 아니냐라니.
현타가 오는 게 정상 맞지…?
의문을 품은 이아페의 시선이 미끄러지듯 보랏빛 머리칼을 관찰했다.
확실히 이상해 보일 만도 하다.
열흘 전 이 머리를 까까머리 수준으로 자른 게 다름 아닌 이아페 본인이었으니.
“만져 봐도 됩니까?”
“자르는 것만 아니면 뭐든지요.”
뼈를 담은 내 허락에 이아페가 살짝 앞으로 몸을 기울여 한쪽 손을 뻗었다.
긴 손가락 사이로 라벤더빛 물결이 흘러내렸다.
그는 머리를 부드럽게 감아 잡은 채, 살짝 내리깐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 농염한 동작에 내 동공이 요동치….
“끅…!”
두피가 뽑히는 듯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이아페의 손을 찰싹찰싹 때렸다. 그가 내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긴 것이다.
뭐든 해도 된다는 게 이런 뜻은 아니었단 말이야.
황당해서 입을 벌리고 그를 쳐다보자, 이아페가 머리를 살포시 놓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꿈을 꿨던 것 같진 않은데.”
“자르신 걸 다시 길게 만든 거니까요.”
“…그게 가능합니까?”
“소원 인형, 정말 영험하더라고요. 머리카락이 길어지게 해 달라고 빌었더니 이뤄졌어요.”
사실이었다.
이아페를 처음 만난 그날, 나는 베일을 늘어뜨린 모자로 머리를 꽁꽁 감싼 채 후작저로 돌아왔다.
혼자 있겠다고 고집을 부려 씻을 때부터 잠이 드는 순간까지 리나조차 내 머리를 보지 못했고.
사실 머리 스타일이야 커트든 단발이든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원작의 흐름대로 이아페를 만난 후 머리를 밀었다고 소문이 나는 것만은 절대로 피하고 싶었다.
마차가 노점상이 늘어선 길을 지날 때 내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옆에 두고 자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인형 몇 개를 구매했고….
〈하느님, 부처님, 미엘 신님, 그리고 각종 존재님들, 제 머리를 돌려주세요.〉
〈「자라나라, 머리 머리!」〉
〈「플리즈! 깁 미 마이 헤어!」〉
키론어로도 모자라 아는 모든 언어를 동원해 소원을 빌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놀랍게도 머리가 다시 복구되어 있던 것이다.
주섬주섬. 나는 가방에서 인형 하나를 꺼내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혹시 몰라 챙겨 둔 건데 이렇게 쓰이네.
“너무 귀엽죠?”
반어적인 농담이었다. 팔을 쫙 편 인형은 왼쪽 눈보다 오른쪽 눈이 두 배 정도 큰 기괴한 형상이었으니까.
“…그럭저럭.”
“……!”
무심히 들려오는 대답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서브 남주는 인형의 외면이 아니라 내면을 보는 것인가.
“이거, 공자님 가지세요.”
“괜찮습니다.”
“에헤이! 넣어 두세요. 넣어 두세요. 제 손 떠난 거 저는 못 돌려받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이아페에게 인형을 마구 쥐여 주자, 그는 못 이기는 척하며 받아 들었다.
내 손바닥만 하던 것이 그의 손안에 쏙 들어갔다.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는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서겠지. 원래의 날 되살려 달라거나, 도서관을 찾아 달라는 소원은 들어주지 않는 건.
“그래도 빌어 봐요. 공자님의 소원은 이뤄질지도 모르잖아요.”
그를 향해 가볍게 미소 지었다. 수많은 불행을 안고 살아왔을 이아페였으니, 하나쯤은 그가 원하는 대로 되어도 좋지 않을까.
“…….”
이아페가 인형을 느리게 지분대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사과도 하고 선물도 줬겠다, 이젠 정말 내 이야기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