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31
@31. 그 밤의 별궁
“키론어에 「공중 부양」을 대체할 만한 말이 없다는 점이 걸림돌일 수 있습니다.”
이번 주문은 이아페 본인도 첫 시도에 바로 성공하지 못했다. 추측건대, 그만큼 의미 파악이 힘들었기 때문일 터.
시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하긴. 새로 언어를 배울 땐 보통 자신이 쓰던 언어로 치환해서 의미를 이해하곤 하니까요.”
키론어에 ‘공중 부양’이란 말이 없다면, 의미를 끌어올 수 있는 대상이 없다. 그만큼 이해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더구나 그자는 아직 이 언어를 제대로 익힌 것 같지도 않습니다. 머리가 나쁜….”
“또, 또 못된 말!”
시샤가 이아페의 말을 막았다.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 것인데 왜 못된 말이라 생각하는 건지. 정말 못된 말들은 속으로 충분히 참고 거르고 있는데.
하지만 그녀의 앙다문 그 입술이 너무도 단호했기에, 이아페는 카실에 대한 이야기를 이만 끝내기로 했다.
“아무튼 제 말은, 그가 이 언어를 익힐수록 점차 나아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가 별일이 아니니 안심하라는 듯 미소 지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던 시샤가 생각을 마친 듯 후련하고도 햇살 같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역시 이아페랑 이야기하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군요.”
“그럼 우선! 카실한테 집중 강의를 해야겠어요. 카실이 어디에 있으려나. 일단 찾아와야겠네요.”
그자만을 위한 집중 강의라. 생각만 해도 속에서 열이 끓어오른다. 하지만 밝아진 그녀의 기분을 다시 떨어뜨리고 싶진 않았다.
“같이 찾아보죠.”
단정한 목소리로 제안했지만 지금 당장 그에게 시샤를 데려가진 않을 것이다. 우선은 함께 그자를 찾는 척하며 마음을 좀 가라앉히자.
그때였다. 뒤에서 미션을 완수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실은 1층 후원에 있습니다악!”
월급을… 깎아야 하나? 눈치에도 값을 매길 수 있다면 분명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아페는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진정시켰다.
빼꼼, 시샤가 이아페의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를 발견한 라온이 오, 하고 밝게 웃으며 달려왔다.
“단장님도 같이 계셨군요!”
“라온, 고마워요! 제가 지금 딱 카실의 위치가 필요했거든요. 역시 센스쟁이!”
“하하, 센스쟁이라뇨. 물론 맞지만 그렇게 말해 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센스쟁이! 센스장인!”
시샤가 엄지를 척 들어 올려 라온에게 날린 후 몸을 돌려 1층 후원으로 향했다.
라온이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문득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그 정보를 알아 오라 한 게 누구지?”
“이아페…?”
이아페가 그 질문만 던진 채 휙 몸을 돌려 큰 보폭으로 시샤의 옆으로 걸어갔다.
도도도도 걷던 시샤의 걸음은 쉽게 이아페에게 따라잡혔다. 이아페는 언제 빠르게 걸었냐는 듯 그녀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발을 옮겼다.
“왜 저래, 저 「손가락 왕자」!”
라온이 시샤에게 최근에 배운 단어를 내뱉었다.
본인이 할 일을 직접 하지 않고 모두 다른 이에게 시키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가 뭐냐고 물었더니 저 말을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앞으로 그는 이아페를 그렇게 부르리라 다짐했다.
빨리 주문이나 연습하러 가야지. 니니안보다는 자신이 더 잘하는 것 같으니 보여 주면서 코를 납작하게 눌러 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라온은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충분히 이해하고 외우고 있어.”
팔짱을 끼고 선 카실의 눈동자에 난감하고 답답하다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공중 부양」이 무슨 뜻인데?”
“뭘 날게 하는 거잖아.”
“「부양」이 뭔데?”
“…….”
확실히 뜻을 제대로 이해한 눈치는 아니네.
“카실. 물에 뜨는 법도 모른 채 바다에 뛰어들면 어떻게 되겠어?”
“그거야….”
“죽겠지!”
습격하듯 팟, 하고 소리치자 카실이 놀라서 움찔했다.
“나는 다 같이 살자고 물에 뜨는 법을 알려 주는 중이란 말이야.”
“…그건 알아.”
“내가 널 죽이게 만들지 마.”
이아페는 카실이 머리가 나쁜 것 같다고 했지만, 내 생각에 카실의 코레아리아어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머릿속을 ‘주문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만이 지배하고 있다는 게 문제지.
물론 이론적인 것부터 익히라고 하는 것이 많이 갑갑할 터였다. 특히 마법사라는 이유로 그렇게나 배척을 받았으니까 더욱.
하지만 지금은 희망보다 의지가 필요한 때다. 조급함이나 들뜸이 집중력과 판단력을 흐리게 하지 않도록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카실, 그거 알아?”
나는 그에게 다소 장난스럽게 질문했다.
“스승님이 나한테 이 언어를 가르쳐 줄 때, 난 처음 이 언어를 내뱉는 데만 9개월이 걸렸어.”
“거짓말하네. 그럴 수가 있어…?”
카실이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철판을 깔고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랑스레 말했다.
“그만큼 내가 인내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거지.”
9개월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옹알이 시절에 말이다.
9개월이면 다른 아이들보다 빠른 편이었지만, 그런 맥락은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
“물에 뜰 수 있으면 바다에 빠져도 너랑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어. 그뿐이야? 저 멀리 산호섬도 보고, 바닷속 물고기들이랑 인사하고.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많겠냐고.”
카실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는 스스로의 생각의 벽 위에 올라선 채 고민하는 듯했다. 약간 우물쭈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알겠어, 노력해 볼게.”
“고마워, 카실!”
저절로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이아페는 뭔가 부족하다는 듯 냉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끝인가?”
날카로운 시선에 카실이 머쓱한 듯 제 목덜미를 쓸었다.
“…미안. 아까 그렇게 뛰쳐나가서.”
카실이 사과를 내뱉었다.
오, 달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나 했는데 반성도 하고 있었구나?
그것만으로도 다시 뿌듯해져서, 나는 그의 두 손을 잡고 격려하듯 흔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자, 일단 의미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그러니까 「공중」이라는 건….”
카실을 위한 단기 교육이 다시 시작되었다. 처음엔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려도, 아마 반복되다 보면 점차 의미를 익히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이아페의 말대로 내가 그를 달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왕이면 함께 좋은 결과를 보는 게 좋으니.
그리고 얼마 후.
카실의 앞에 얇은 종이가 놓였다.
단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그를 바라보았다.
카실이 종이에 집중하며 뜸을 들였다.
「공중 부양!」
카실의 앞에 놓여 있던 종이가 그의 가슴께로 떠올랐다.
“와, 성공이에요!”
니니안이 크게 박수를 치자, 오, 하고 입을 벌리던 라온도 따라서 박수를 쳤다.
나는 전에 없이 들뜬 기분을 느꼈다.
낳은 적도 없던 자식이 시험에 통과한 기분이었다.
“이게 뭐 별거라고.”
카실은 주목받는 것이 민망한지 괜히 볼멘소리를 냈다.
“대단해, 카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의 두 손을 잡고 방방 흔들었다.
그때, 이아페가 나와 카실 사이에 끼어들어 나를 가리고 섰다.
“축하해.”
이아페도 카실의 성공을 축하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아페를 향한 카실의 표정이 어쩐지 떨떠름했지만, 나는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법을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는 것. 혹시라도 폭주할까 불안해하며 이 힘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마법이 악마의 힘으로 치부되는 이곳에서 살아온 저들에게 있어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일지 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 스며든 시샤의 기억은 그것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했다.
아마 저들 모두 마법과 관련한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겠지. 이아페처럼, 시샤처럼. 그리고 내 눈으로 직접 봤던 카실의 상황처럼.
어쩐지 오늘은, 순수한 사람으로서의 그들이 궁금해졌다.
* * *
그렇게 오늘도 야근을 하는 중이었다.
몇 시간째 이어지는 해석 작업에 몸이 무겁고 찌뿌둥했다. 기지개를 켜도 잘 풀리지 않았다.
흠, 산책을 좀 해 볼까.
“이아페. 여기, 다른 방들도 본 적 있어요?”
“아뇨.”
내 질문에 이아페가 고개를 저었다.
“궁금하지 않아요?”
이아페는 그게 왜 궁금하냐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자리로 쪼르르 걸어가자,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이아페가 예상외로 순순히 일어났다.
그게 이상해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이아페는 마치 산책하자고 조르는 강아지를 바라보는 듯 흐뭇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건 제가 탐험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적당히 움직여 주는 건 필수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아페가 나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인정하니 그거대로 괜히 민망해져서, 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연구실을 나섰다.
연구실을 제외하고는 이 방도, 저 방도 그저 빈방이었다.
별궁의 방이니만큼 꽤나 화려했지만, 가구들에는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흰 천이 씌워져 있어 그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는 없었다.
“생각보다 특별하진 않네요.”
“실망했습니까?”
“조금?”
그렇게 몇 개의 방을 탐방했을 때.
1층의 연구실 반대쪽 복도 끝의 어느 방문을 열었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방의 문이 닫혔다. 나는 가지고 갔던 램프로 안을 비춰 보았다. 여전히 흰 천들이 씌워져 있었으나, 침대나 식탁을 덮은 것 같지는 않았다.
뭔지 궁금한 한편,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도 똑같네요.”
나는 이아페를 향해 눈썹을 으쓱하며 다시 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
“걱정할 것 없어.”
문 너머로,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낯선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