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32
@32. 꽃향기가 아찔했다
「불 꺼.」
순식간에 이아페가 램프를 껐다. 나는 숨을 죽이고 이아페를 바라보았다.
불을 껐음에도 밝은 달빛을 받아 그의 옆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이아페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는 듯, 그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가 있었다.
대체 누구지?
이 별궁은 수 년 전부터 쓰이지 않았다고 들었다.
본디 황제의 정부가 머무르는 데 쓰이는 궁이나, 선대 황제는 정부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후와의 사이에서도 아이를 두지 않았기에, 황위를 누가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 말이 많았지.
계승 서열이 낮았던 칼린느가 즉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유력한 황제의 직계가 없었던 영향도 있다.
“주인 없는 궁이야. 애초에 정부는 고사하고 그냥 애인이 있는지도 의문이군.”
“그 성격에 애인이 있겠습니까.”
“하하, 맞는 말이군.”
혼자가 아니었다. 웃음기 가득한 여자의 목소리가 함께 들렸다.
칼린느를 향한 명백한 조롱에 내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그들의 발소리는 몰래 이곳을 찾은 이들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당당했고, 목소리는 온 복도를 울릴 만큼 쩌렁쩌렁했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세게 힘이 들어갔다.
지금 문을 박차고 나가서, 몰래 이곳에 숨어든 저들이 엉덩방아라도 찧게 만들까.
하지만….
문고리를 잡은 손 위에 온기가 겹쳐졌다. 옆을 돌아보자 이아페가 고개를 저었다. 단호한 눈빛에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문고리에서 손을 떼었다.
알고 있다.
여기서 저들 앞에 나타났을 때, 더 피해가 큰 것은 이쪽일 거라는 걸.
지금 당장은 저들을 당황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의 통쾌함일 뿐, 그 뒤에는 우리가 불리했다.
애초에 연구단이 이 별궁에 터를 잡았다는 것부터가 비밀이었다.
대외적으로 봤을 땐 저들이나 우리나 똑같이 별궁에 숨어든 쥐인 것이다.
그러니 저들도, 우리도 서로 별궁에서 누군가를 봤다고 공식적으로 고발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본인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시인하는 꼴이니.
하지만 별궁에 대한 소문을 퍼뜨릴 수는 있겠지.
밀회를 즐기는 두 사람, 혹은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는 누군가에 대한 의혹이 입과 입을 타고 퍼져 나간다면.
잊혀 버린 별궁에는 많은 이의 관심이 쏠릴 터였다. 어쩌면 나와 이아페의 동선까지 주목받을지도 모르고.
아직 마법을 정식으로 선포하지 않은 지금, 그건 위험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문만 노려보고 있는데, 소리가 점점 이쪽으로 가까워졌다.
“이 방으로 오는 것 같군요.”
이아페가 나에게만 들리도록 나지막이 말했다.
그 말 그대로, 발소리는 다른 곳을 들르거나 멈추지 않고, 이쪽으로 직진해 오고 있었다.
“숨을 곳이 있을까요?”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단순한 구조의 방이라 사각이라 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 다만 커다란 어느 가구의 뒤편으로 작은 쪽문이 보였다.
“저기로 가요.”
“어디 말입니까?”
“저기, 저 가구 뒤의 문이요.”
이아페가 살짝 미간을 찡그린 채 그쪽을 바라보았다. 가구에 약간 가려서 그런지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시 설명해 줄 겨를이 없었다.
나는 이아페의 손을 잡아끌었다. 손바닥을 펼쳐 꽉 잡느라 얼떨결에 깍지까지 꼈다.
그런데 커다란 손이 벼락에라도 맞은 듯 화들짝, 떨며 내 손을 털어 냈다.
깜빡깜빡. 당황으로 흔들리는 눈이 서로 마주한 순간.
이아페가 내 손을 두 손으로 덥석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내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견고히 감쌌다. 나는 그 손을 꼭 마주 잡은 채, 쪽문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쪽문 앞에 놓인 가구를 힘껏 밀었으나 생각보다 무거웠다.
이아페가 가구를 덮은 천을 스륵 내렸다.
커다란 거울이었다. 이상한 건, 무거워서 움직이지 않은 게 아니라,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는 것.
왜 거울을 바닥에 고정했지?
의문이 차올랐지만 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결국 거울 사이로 들어가 벽 앞에 서자, 내 키 정도 되는 쪽문이 확실히 드러났다.
여기라면 적어도 우리 두 사람이 몸을 숨길 정도는 되겠지.
나는 쪽문을 밀어 보았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곳을 찾을 여유는 없었다.
「열려라 참깨!」
순식간에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는 급히 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몸이 휘청였다.
“……!”
한 발짝 내딛는 찰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안도 방과 동일한 높이라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당연히 나를 지탱할 평면이 있을 거라 생각한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허공에 내디딘 발이 길을 잃자,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렸다.
떨어진다.
그러니까, 이럴 때 써야 하는 주문이 뭐였더라?
「공중…!」
“시샤.”
포옥.
뒤에서 내 어깨를 끌어당기는 강한 힘이 느껴짐과 동시에, 나는 단단한 품속에 갇혔다.
“조심해요.”
내 어깨를 감싸 안은 팔의 견고함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쿵쾅쿵쾅.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었다.
조용한 방 안에 내 심장 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
가슴 한쪽이 저릿하게 아파 왔다. 역시 너무 놀라서 심장에 무리가 간 걸까.
숨을 자연스럽게 쉬는 방법을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계단인 것 같군요.”
놀라서 굳어 있는 내 뒤로, 이아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문 안쪽을 자세히 보자, 서서히 어둠에 적응한 시야에 그 모습이 들어왔다.
아래로 가파른 계단이 나 있었다.
“일단 들어가요.”
이곳을 밖에서 살피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완연한 어둠이 찾아왔다.
달칵!
그와 동시에, 바깥의 방문을 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저주받은 땅을 들어 보았나?”
“아아, 꽃이 피지 않는다지요.”
소리가 훨씬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그들이 이 방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꽃이 피지 않는 저주받은 땅. 소설에서 본 적이 있다.
“불만이 크게 쌓이고 있다더군. 뭐가 원인인지는 모르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이유는 만들기 나름이니까요.”
“역시, 자네와는 말이 통하는군.”
남자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을 이었다.
“제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역경을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탓을 돌릴 대상을 만들고 싶어 하지.”
“기댈 곳 없는 이들이 아닙니까. 탓이라도 돌려야 살 수 있겠지요. 그들이 나쁜 게 아니에요.”
“그래, 어쩌겠나. 무지한 그들은 그저 인내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걸로는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을 텐데.”
그들은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마치 발아래의 존재들을 내려다보며 단정 짓고 정의 내리는 투였다.
뱀이 온몸을 감싸고 조여드는 느낌에 목이 갑갑했다.
“맞습니다, 나쁜 것은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지도자 아니겠어요?”
지도자.
그들이 말하는 ‘탓을 돌릴 대상’은 칼린느인 모양이다.
분명 소설에서 칼린느는 그 땅에서 벌어진 과격한 시위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런데 이 일을 자극하고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작은 물줄기가 모여 폭포가 되는 법이지요. 저희는 그저 그 물줄기를 만나게만 해 주면 된답니다.”
“하하, 일이 잘 풀리는군. 어디 보자, 슬슬 시간도 되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아까부터 차올랐던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 여긴다고 해도, 꽃이 피지 않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별궁까지 숨어들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목적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때 스륵. 무수한 천들을 끌어 내리는 소리, 그리고 커튼을 끝까지 열어젖히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여기에 숨겨 두었다고 했지.”
“네, 정확히 이곳을 가리키고 있잖아요?”
다음 순간, 날카롭고도 무거운 파열음이 들렸다. 충격으로 인한 진동이 바닥을 타고 쪽문까지 울려 왔다.
바닥을 깨부수는 듯한 소리였다.
내가 움찔하자, 뒤에 선 이아페가 내 팔을 감싼 손에 살짝 힘을 주어 나를 지탱했다.
“역시 아랫것들에게 시키는 것이 나았을까요?”
“아니. 내가 직접 해야 마음이 편해.”
몇 번 더 깨지는 소리가 들린 후, 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이내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역시 더 묵혀 둘 생각이었나 보군. 남이 가져가 버릴 줄도 모르고.”
“이것까지 없으니… 이제 이 별궁도 정말 버려진 궁이 되었네요.”
“그래. 괜히 음산한 기분이 들어서 다신 오고 싶지 않아.”
“다시 올 일이 뭐가 있겠어요? 정부가 되면 모를까!”
“하하, 그 여자가 발치에 엎드려 정부가 되어 달라 사정하면 못 할 것도 없지만 말야.”
커다란 목소리가 울리고, 뒤이어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 * *
쾅. 문이 닫히는 소리에도 그들은 잠시간 좁은 계단 위에 서 있었다.
이아페는 제 바로 앞에서 자신과 맞닿아 있는 시샤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그녀의 형상이 온전히 느껴지는 듯했다.
제 손이 닿은 그녀의 팔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작은 문 너머로 들리는 소리가 더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아페는 그것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솔직히 밖에서 들리는 말들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가만히, 숨을 고르게 쉬는 것만으로도 힘겨움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이 공간에 그녀와 둘만 있다는 사실이. 그것도 이렇게 가까이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그를 미치게 했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들킬까 봐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언제까지고 이대로 있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그녀를 닮은 꽃향기가 느껴질 때마다 아찔했다.
제 손이 닿아 있는 팔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너무 세게 잡으면 부러질 것 같고, 너무 약하게 잡으면 놓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톡톡, 시샤가 잡히지 않은 다른 팔로 제 손등을 쳤다. 간지러운 감각이 손등을 타고 머리까지 번졌다.
“이제 나가도 될 것 같아요.”
“…네.”
참았던 숨을 내쉴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