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33
@33. 쪽문 안 비밀 장소
멀어지는 말소리에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환한 달빛이 새어 들어와서 눈을 살짝 감았다가, 서서히 다시 떴다.
역시 방 안에는 더 이상 아무도 없었다.
나는 쏟아지듯 밖으로 기어 나왔다. 오래 경직된 채 서 있었더니 몸이 굳어 뻐근했다.
“으, 찌뿌둥해….”
기지개를 켜며 쪽문을 가리고 선 거울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달빛이 모여 있군요.”
이아페의 말에 나는 멍하니 방을 바라보았다.
커튼을 활짝 걷은 방 안에는 밝은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가구들을 덮고 있던 천들이 모두 내려와 있었다.
천들이 덮고 있던 가구는 모두 거울이었다.
다양한 모양의 수많은 거울이 차오른 달빛을 이곳저곳으로 반사하고 있었다.
빛은 불규칙적으로 쏘아 나가는 듯했지만, 어느 한 지점을 겹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선들이 지나는 그곳에는.
“이건….”
거칠게 파헤쳐진 땅이 있었다.
방을 둘러싼 수십 개의 거울에, 처참하게 깨진 바닥을 살피는 내 모습이 비쳤다.
“뭔가 묻혀 있었나 봐요. 저 사람들, 대체 뭘 가져간 걸까요?”
“글쎄요.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추적을 하기에도 어렵겠군요.”
조용히 복도로 나가 밖을 살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바닥을 살폈다. 하지만 대체 무엇이 있었던 것인지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지금 당장 칼린느에게 이곳과 아까의 그 두 사람에 대해 알리고 싶었지만, 그녀는 오늘 시찰을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여기는 대체 어디로 통하는 걸까요?”
방금까지 숨어 있던 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기껏해야 작은 지하실일 거라 생각했던 그곳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었다.
아래로는 깊고 묵직한 어둠이 펼쳐져 있었기에, 그 끝에 어떤 것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기에 문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음? 보였으니까요. 거울에 살짝 가려져 있긴 했지만.”
계단을 응시하던 이아페의 자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 시선에 마치 관찰을 당하는 듯해,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어두운 밤이니까.”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이아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듯한 시선이었지만, 결국 그는 다시 계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은.”
“그러게요. 유령이 나올 것 같긴 한데. 내려가 볼까요?”
가지고 왔던 램프에 불을 붙이려다가, 이아페를 바라봤다.
혹시 내가 또 머리에 불을 붙이면 어떡해.
내가 머리카락을 몇 가닥 잡으며 그를 향해 씨익 웃자, 왜 그런 것인지 이해한 이아페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램프를 중심으로 밝은 빛이 퍼졌다.
나는 램프를 든 손을 쭉 뻗어 아래를 살폈다.
“앞장은….”
네가 설래?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아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내 눈을 피한 채 대답하지 않았다.
“…….”
그래, 내가 앞장서지 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오래도록 발길이 닿지 않았을 것 같은 어두운 계단은 어딘가 으스스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평소에 무서운 걸 좋아해 공포영화도 곧잘 보곤 했던 나인데. 이건 들어갈 엄두가 안 나네.
“3초 후에 들어갈게요.”
나는 계단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작게 심호흡했다.
“하나아아아… 두우우우우우우울.”
“셋.”
이아페의 손이 램프를 든 내 손을 감쌌다.
익숙한 온기와 함께, 이내 램프의 무게가 손에서 사라졌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만 살짝 돌려 위를 올려다보자, 이아페가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진작에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요.”
“시샤 님이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장난스레 말한 이아페가 입꼬리를 올렸다. 혹시 그가 말을 바꿀까 봐 나는 서둘러 그의 뒤로 빠졌다.
저 안에 대체 뭐가 있을까.
유령? 해골? 잠들어 있는 드래곤? 어쩌면 오래된 지하 감옥?
이아페라는 방패를 앞에 두고 고개만 내밀어 계단을 바라보았다.
제한적인 상상력의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가능성들이 떠오르고 있다.
“시샤 님.”
“네?”
그때 이아페의 손가락이 내 미간을 가볍게 눌렀다.
내가 벙찐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자, 어느새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던 이아페가 태연하게 손을 떼며 말했다.
“무서우면 안 들어가도 됩니다.”
“안 무서워요.”
“당신 표정은 무시무시하던데.”
“각오를 다진 거죠.”
“정말 괜찮은 것 맞습니까?”
이아페가 다시 한번 물었다. 나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옷을 잡아요.”
다시 문을 향해 돌아선 그에게서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의 코트 자락을 잡았다. 너무 세게 잡으면 구겨질까 봐 아주 살짝.
그렇게 걸음, 또 걸음.
조용한 지하에 층층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발소리만이 울렸다.
계단은 둥글게 한참을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나 내려갔을까.
우리는 그곳의 끝에 당도했다.
“여긴….”
판타지 만화에서 본 지하 왕궁을 연상케 하는 비주얼이었다.
높은 천장에는 단단한 바위가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고, 넓게 펼쳐진 공간을 둘러싸고 돌로 만든 장식들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 상상했던 유령이나 드래곤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야. 나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하는 곳일까요?”
“전쟁 등의 상황에 대피하기 위한 임시 거처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아, 지하 벙커.
이아페는 천천히 그곳을 둘러봤다. 손수건을 꺼내 한 곳을 닦아 본 그가 무심히 읊조렸다.
“손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된 것 같군요.”
“그러게요. 불 쇼를 해도 아무도 모르겠어요.”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에, 이아페가 날 뒤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생각입니다.”
그러게. 생각해 보니 정말 마법 연습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잖아?
얼떨결에 뱉은 좋은 아이디어에 스스로 놀라 커진 눈이 이아페의 눈과 마주쳤다.
역시 이아페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나도 엑스트라 치고는 꽤나 천재적인 게 분명하다.
“폐하께 허락을 구하고 마법 연습실로 사용해야겠어요. 뭘 하던 곳인지도 좀 확인하고요.”
“네.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다시 오도록 하죠.”
우리는 다시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왔다.
「닫혀라 참깨.」
문을 밀어 닫은 뒤 주문을 외자, 딸깍하고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밝은 달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밤이었다.
* * *
“일어나세요, 아가씨!”
“리나… 오늘… 출근하는 날… 아니야….”
다행히도 이 소설 작가의 바람이 투영된 것인지 이 세계도 많은 직업군에서 5일 일하고 2일 쉬는 제도를 택하고 있어서, 주말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주말의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리나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후작님, 후작 부군님과 식사하셔야죠.”
맞다. 앞으로 휴일 아침마다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었지.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아, 그러고 보니.
“리나. 오늘 나랑 음악극 보러 갈래? ‘그 그림의 비밀’이라고, 이번 주말에만 상연하는 건데 지금 생각났어.”
“으음… 아가씨! 그런 우중충한 극은 제 취향이 아니랍니다. 차라리 ‘황실 아카데미 스캔들’ 어떠세요?”
“헐, 그것도 재밌겠… 아니, 됐어, 됐어. 다른 사람한테 보자고 할 거야.”
그러고 보니 리나는 나랑 같이 ‘악마의 기억’을 보다가 졸았던 전적이 있다. 이번에도 분명 그러겠지.
어머니한테 같이 보자고 하면 어떠려나…?
약간의 기대와 함께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질문했다.
“어머니, 오늘 저랑 음악극 보러 가실래요?”
요즘 어머니와 가까워진 것 듯해서 왠지 나의 데이트 신청도 받아 주실 것만 같았다. 어쩌면 딸과 보내는 오붓한 시간을 원하고 계실지도….
“안 돼.”
“아, 다른 일정이 있으세요?”
“아니.”
“그럼 왜 안 돼요?”
“주말엔 쉬어야 돼.”
어머니는 집순이 스타일이시구나. 새로운 사실을 한 가지 파악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리자, 아버지가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심각하게 변하더니, 이내 결단을 내린 듯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일정이 있는데… 알았다. 취소하마.”
“아니에요,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아버지를 뜯어말리는데 비알로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그때였다.
“비알로, 시샤랑 음악극을 같이 보러 가 줘라.”
어머니의 필요 없는 배려에 눈썹과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비알로와 둘이 음악극을 보러 가서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비알로도 마찬가지인지,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좋아, 이거다.
“어머, 오빠. 요즘 많이 피곤한지 눈에 경련까지 일잖아. 오늘은 그냥 쉬어.”
걱정하는 척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었다. 하지만 잊고 있었다. 비알로는 본인이 더 빛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란 걸.
“아냐, 시샤. 널 어떻게 혼자 보내겠니? 같이 보러 가자.”
놀고 있다. 그의 따스한 미소에도 나댄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여기서 더 사양해 봤자, 비알로만 더 헌신적인 오빠가 될 뿐이다.
“고마워. 재밌겠다, 그렇지?”
“응. 너랑 보면 뭐가 재미없겠어?”
“하하, 사이가 좋은 걸 보니 나도 흐뭇하구나. 그렇지요, 티오라?”
“그래, 보기 좋군. 요즘은 다 잘 풀리는 것 같아. 아, 당신 기사단은 좀 어때.”
“역시 파견 제도가 서로 영향을 주기에 좋은 듯해요. 르디엘 경이 온 후로 괜히 경쟁심 붙어서 더 달리려는 감이 있지요.”
르디엘? 나한테 성석 팔아먹은 그 사람?
변죽 좋고 능글맞고 철판 깐 것 같은… 이상한 사람.
“그 사람 혹시 돌 같은 거 팔고 다니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