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38
@38. 닿아도 됩니까?
그런데 흙 위로 발을 디딘 순간,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흐음.”
이아페도 그것을 느낀 모양인지, 흙을 조금 집어 들어 손으로 굴렸다.
“흙이 꽤나 촉촉하군요.”
“땅이 말라서 식물이 죽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네요.”
마르고 푸석할 것이라 생각했던 땅은 적절한 촉촉함을 머금고 있었다.
“우선은 저기에 뭐가 있는지를 봐야겠어요.”
발걸음이 조급해졌다. 어느새 나무까지 다다랐고, 나는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 기둥을 따라 왼쪽으로 향했다.
“……!”
중앙나무 앞. 그곳에는 수많은 흰 손수건들이 탑을 이루듯 쌓여 있었다.
그 앞에는 아까의 그 남자를 포함한 몇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두 손을 마주 잡고 눈을 감고 있거나, 슬픈 표정으로 그곳을 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원하듯, 혹은 묘지에서 명복을 빌 듯.
“이게 무슨….”
“마치 묘지에 흰 꽃을 놓는 것 같군요. 이곳은 옷감을 생산하는 것이 주 생계 수단인 만큼 꽃이 아니라 손수건을 놓는 듯하지만.”
“…꽃들의 무덤이라는 걸까요?”
죽어 버린 꽃밭에 쌓인 흰 손수건의 탑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광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지역의 사람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지, 자연스럽게 걸어와 손수건을 쌓고 있었다.
“일단 숙소로 가요. 회의를 다시 해야겠어요.”
황급히 돌아서 원래 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너무 심각… 이아페?”
나를 따라오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뒤돌아보니 이아페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그가 입을 살짝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아까 날 밀치고 지나갔던 남자가 넘어졌다.
“어어, 왜 그래. 괜찮아?”
“아… 아냐.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서 넘어졌어.”
설마… 이아페가 주문을 쓴 건가?
그제야 가벼운 표정으로 내게 걸어오는 그를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이아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서둘러야겠네요.”
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 곁으로 와, 빨리 가자는 듯 앞을 콕콕 가리켰다.
* * *
“저 꽃밭을 모두… 아니, 반의반이라도 꽃 피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확실한 건, 「피어나라」로는 한계가 있을 듯합니다.”
이아페의 냉정한 의견에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나도 지하실에서 어느 정도 피울 수 있는지 시도해 보았지만 한 번에 서른 송이 정도가 끝이었다.
“꽃이 피지 않는 원인을 모른다고 했죠?”
“네, 땅도 꽤나 비옥하고, 날씨도 괜찮은데 말이에요.”
수분이 부족한 거라면 물 마법을, 햇빛이 부족한 거라면 빛 마법을 이용하면 될 텐데.
아무래도 둘 다 해당 사항이 없는 듯했다.
“저주받은 땅이라 할 만도… 큼큼.”
카실을 쏘아보자 그가 입을 다물고 헛기침을 했다.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고, 이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다.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더라도 뭐라도 해야 한다.
특히 오늘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 폭발한다 해도 이상하지가 않았으니.
“「피어나라, 피어나라, 피어나라….」 이렇게 연속으로 계속 말하면 어떨까요?”
라온이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아페가 고개를 저었다.
“한두 송이씩 이어서 피우는 거면 가능하겠지만… 다량의 꽃을 연속으로 피우는 건 집중력이 떨어져서 마력이 흔들릴 가능성이 너무 커.”
“하지만 몇 송이씩 찔끔찔끔 피우는 걸로는 제대로 인상을 남기기 힘들 거예요.”
우리에게는 사람들의 뇌리에 박힐 만한 광경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다.
그걸 달성할 수 없다면 지금 마법을 내보인다는 것에서 얻는 것보다 리스크가 더 클 것이다.
“다른 주문은 없을까요?”
“주문서에서는 「피어나라」 밖에 찾지 못했어요.”
혹시 이아페가 본 주문은 없는지 눈으로 물었지만, 그도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우선… 숲으로 들어가야겠어요. 몇 송이라도 더 피울 수 있도록 연습을 하는 걸로 해요.”
우리는 다시 마차를 타고 인적이 드문 숲으로 향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숲속의 식물들도 상당수가 시들어 있었기에 연습을 하기에는 딱 좋았다.
그곳에서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각자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각자의 마력도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내일을 위해서는 쉬어 두는 게 나았다.
“각자 피울 수 있는 꽃이 조금씩 늘어났잖아요!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어요.”
단원들을 다독이며 다시 마차에 올랐지만, 솔직히 불안했다.
라온의 말대로 몇 송이씩이라도 연속으로 피우는 것이 최선일까.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고민이 꼬리를 물고 반복되었다.
* * *
씻고 나와 창가에 선 이아페의 눈이 빛났다.
그의 방 바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숙소 뒤편, 어둠 속에 시샤가 홀로 램프를 들고 서 있었다.
“너도 꽃을 피우고 싶겠지?”
시든 나무를 매만지며 혼잣말을 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아페의 입가에 반달 같은 미소가 걸렸다.
그녀는 이곳이 바로 그의 방 아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아무렴 어떠한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제 곁으로 온 것이 더 대단한 일인데.
본인이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이아페는 서둘러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시샤 님.”
“아, 이아페. 씻었나 보네요.”
“그걸 어떻게… 아.”
자신이 머리조차 말리지 않고 나왔다는 것을 깨달은 이아페는 얼굴이 살짝 화끈거림을 느꼈다.
지금이 어두운 밤이라 다행이었다. 낮이었다면 붉어진 얼굴을 들켰을지도 모르니.
“자, 이거.”
이아페가 가지고 온 담요를 펼쳐 시샤에게 둘러 주었다. 수도보다 훨씬 차가운 바람에 그녀가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고마워요. 마침 약간 쌀쌀했는데. 근데 담요가 어디서 났어요?”
“…숙소에 있었습니다.”
“와, 부드러운 거 봐. 이 좋은 걸 숙소에서 제공했단 말이에요? 내 방에는 이런 거 안 주던데!”
사실은 이아페가 직접 가지고 온 것이었다. 북부는 수도보다 일교차가 크다 하였기에, 밤이면 쌀쌀해질 것을 염려해서.
게다가 이 담요 말고도 그녀를 위한 몇 가지 짐을 더 챙겼다.
문제는 그것을 들고 온 게 라온이었다는 것뿐.
이아페도 제 짐이라는 걸 숨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라온을 보자마자 여행을 가는 줄 아냐며 시샤가 웃는 통에, 이아페도 인정해 버리고 만 것이다.
자신이 정말, 그녀와 여행을 떠난다는 기분으로 이 출장을 준비했다는 것을.
그런 마음을 들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라온에게 눈을 부라리며 검지를 펴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렇게 이아페의 짐은 라온의 짐으로 둔갑했고, 이아페는 이를 끝까지 숨길 생각이었다.
“잠이 안 오십니까?”
이아페는 말을 돌리며 시샤가 바라보던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까 그녀가 만지던 시든 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네. 쉬운 게 없네요….”
시샤의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침울함이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이아페의 머리가 차게 식었다.
‘굳이 이곳의 꽃을 피우지 않더라도 마법을 공표하기 위한 초석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꽃이 피지 않아 힘들어하는 건 이곳의 사정이고, 그 민심을 다스리는 건 황제나 대신들의 일이지 자신의 일은 아니다.
그러니 그녀가 이 일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고 힘들어해야 한다면….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많이 걱정되신다면….”
“그래도! 분명 잘될 거예요!”
시샤의 어깨가 팍 펴졌다.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며 결의를 불태웠다.
“몇 송이를 피우는 게 아예 안 피우는 것보다야 훠얼씬 낫겠죠!”
그렇죠? 하고 물으며 시샤가 이아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빨리 그렇다고 해요, 얼른, 하고 덧붙이며 생긋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은 마치 이 밤의 어둠도 금세 물리치고야 마는 새벽의 태양 같았다. 이아페는 이번에야말로 붉어진 제 얼굴이 그녀의 빛 아래에 투명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아, 그래.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지.
어떠한 상황에도 포기를 모르는 사람.
어둠 속을 비집고 들어와 이곳에 박힌 저를 찾아내 꺼내고야 마는 사람.
“그렇네요.”
이아페의 손이 시샤에게로 향했다. 문득 이아페와 눈이 마주친 시샤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가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게 미소 짓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손이 시샤의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담요를 끌어 올려 여며 주었다.
‘아, 담요였구나.’
시샤는 왜인지 이상하게도 아쉬운 마음을 느끼며, 나지막이 ‘고마워요.’ 하고 말했다.
하지만 이아페의 손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위로 올라왔다.
천천히 올라온 손이 시샤의 얼굴을 살짝 스쳤다.
마치 뺨을 부드럽게 감쌀 듯 가까이 다가온 손에 그녀는 숨을 훅 멈추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느껴지는 긴장에, 이아페는 그녀에게 뻗던 손을 문득 멈추었다.
하지만 이대로 멀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닿아도 됩니까?”
담담하지만 살짝 떨리는 낮은 목소리가 시샤의 귀를 간질였다.
“…….”
그녀의 눈동자가 옆으로 한 번, 위로 한 번, 다시 정면으로.
이아페는 그 움직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그의 손이 기다렸다는 듯, 하지만 너무나도 조심스럽게 뺨에 가 닿았다.
차갑고도 부드러운 볼이었으나, 이아페는 무엇을 만진 것보다도 불에 덴 듯 뜨거운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닿는 것조차 이렇게나 어려운데, 여기서 더한 것을 이야기한다면.
그녀가… 아니, 자신이 버틸 수 있을까.
“시샤 님.”
“네?”
처음 그녀의 이름을 머금었을 때부터, 혀끝을 스치는 바람의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몇백 번, 아니 밤새 그녀의 이름만을 부른다 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아페는 한 번 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시샤 님.”
“왜 그래요?”
시샤의 눈동자가 약간은 걱정스러운 듯 이아페를 올려다보았다. 과연 그녀는 자신을 부를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저 오밀조밀한 입술은 어떻게 움직일까.
지금이라면,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하든 받아 줄 것만 같았다.
“이름… 불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