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39
@39.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잠깐의 정적. 둘 사이에 기묘한 긴장이 흘렀다.
“…이아페.”
시샤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오므려진 후, 터지듯 다시 열렸다.
입술의 움직임에 따라 그의 손이 가 닿은 볼이 따라 움직였다. 그 미세한 감각은 이아페의 몸 전체로 퍼져 갔다.
제 이름이 이토록 듣기 좋은 단어였던가.
이토록 어여쁜 발음을 가지고 있었던가.
처음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이름을 부를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 말했던 과거의 자신을 찾아가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기….”
시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때.
“차라리 꽃밭에 큼지막한 꽃들만 가득하면 좀 좋아?”
씩씩대며 걸어오는 머저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샤가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이아페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 * *
멀리서 카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나는 한 발짝 물러나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아페의 손이 내 뺨에서 떨어졌다.
「낄끼빠빠….」
이아페에게서 살짝 떨리는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기, 이아페. 「낄끼빠빠」의 뜻은 그러니까….”
누가 올 때마다 ‘낄끼빠빠’라는 소리를 하는 것이 역시 뜻을 잘못 가르쳐 준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방금 분위기는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도끼병이 아니라 정말 누가 봐도 이상했던 것 같긴 한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사회생활과는 거리가 멀잖아.
솔직히 방금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마치 여자주인공이 된 기분. 조력자가 아니라, 주인공이 된 기분.
이것은 비단 내게 닿았던 그의 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에 어떠한 가식도 없이, 누군가를 향한 애정과 경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피어나라? 피어나라!」
하지만 카실이 주문을 읊조리며 모습을 드러낸 통에,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를 바라봤다.
“요 작은 꽃 하나 피우는 거나 집채만 한 거 피우는 거나 주문은 똑같은데!”
카실은 좀 더 연습을 하고 온 모양이었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아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그런데 잠깐.
“방금 뭐라고 했어?”
“악, 깜짝이야! 뭐야, 너희 여기서 뭐 해.”
카실이 놀라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러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나와 이아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참견 말고 지나가.”
이아페에게서 차가운 목소리가 나왔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아니, 카실. 방금 뭐라고 했냐니까?”
“응? 여기서 뭐 하냐고.”
“그 전에.”
“꽃이 집채만 하면 좋겠다고?”
“그래….”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작은 꽃과 큰 꽃. 대상에는 저마다 크기가 있다.
그렇다면….
“이아페! 어쩌면 될지도 몰라요. 저 이만 들어가 볼게요.”
“…….”
“좀 적으면서 생각해 봐야겠어요.”
내 말에 이아페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지만,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까지 데려다드리겠습니다.”
그와 나는 숙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실이 뛰어서 우리의 옆으로 다가왔다.
“야, 너 좋은 와인 가져왔다며?”
“…라온이 말했나?”
“응. 내일 먹을 거야? 설마 이미 혼자 먹었어?”
“닥쳐.”
아, 어쩐지.
역시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술을 마셔서 그랬구나. 이아페도 일이 잘 안 풀려서 속상했던 걸까. 아니면 잠이 오지 않았거나.
어느새 내 방문 앞에 도착해, 나는 황급히 문을 열었다.
“다들 잘 자고 아침 일찍 봐요. 뭔가 더 생각이 나면 꼭 말해 줄 테니까.”
“…네. 잘 자요, 시샤 님.”
“잘 자, 단장님.”
문이 쾅 닫히고, 방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나는 눈을 마구 깜빡였다. 갑자기 꿈에서 확 깬 느낌이었다.
“…방금 뭐였지?”
숙소 뒤편에서 그와 마주했던 풍경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눈동자를 굴리며 한쪽 볼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내 손과 달리, 따뜻한 그의 손이 닿았던 볼이 아직도 홧홧했다.
덩기덕 쿵더러러러, 쿵기덕 쿵덕!
출발 전 느꼈던 기묘한 간질거림은 거의 장구를 치는 수준으로 심장을 두들기고 있었다.
굿거리장단에 자진모리, 중중모리까지 휘몰아친다. 얼쑤! 추임새를 넣어야 할 급이다.
혹시 아까의 이아페에게 내 심장 박동이 전해졌으면 어떡하지? 라고 불안해진 것도 잠시, 갑자기 분해졌다.
나만 손해를 본 기분이다.
‘아니, 아무리 잠이 안 오고 걱정이 커져도 말야. 어? 내일이 마법을 선보이는 날인데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것 아냐?’
그렇게 가만히 있는 내 마음을 들쑤셔 놓을 건 뭐야.
아무래도 안 되겠다.
급발진을 한 나는 문을 다시 벌컥 열었다.
카실은 저 멀리 걷고 있었고, 이아페는 느리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래, 나는 이렇게 뒤숭숭한데 너는 자러 간다 이거지? 사회생활 아무리 잘해 봤자, 기본을 어기면 소용없어!
결국 그 검은 뒤통수를 향해 할 말을 던지고 바로 문을 닫았다.
“전날에 술은 안 돼요, 이아페!”
문이 닫히는 틈으로 힐끗 보인 그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쾅, 문이 닫혔다.
후, 말하길 잘했다. 마치 묵혀 두었던 소화불량이 깔끔히 해소된 것 같았다.
그의 놀란 표정이 약간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나는 고개를 마구 젓고 뺨을 챱챱 쳤다.
“술이라니, 이건 이아페가 잘못한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와 펜을 가져와서 책상 앞에 앉았다.
작은 꽃과 커다란 꽃. 카실의 말대로 대상에는 크기가 있다. 그 논리를 주문으로 옮겨 온다면….
“주문에도 크기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주문은 마법을 표출하는 틀이다.
꽃을 피우는 주문은 「피어나라」. 하지만 이 주문으로는 몇 송이의 꽃밖에 피울 수가 없다. 코레아리아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그것이 애초에 틀이 작기 때문이라면.’
만약 그 틀의 크기를 키워서, 꽃을 피우는 것보다 더 큰 표현을 담은 주문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한 번에 더 많은 꽃을 피울 수 있을지도 몰라.’
나와 이아페가 본 주문서에는 없었지만,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두 본 것도 아니고. 애초에 이 주문이 크게 필요하지 않아서 적혀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꽃을 그만큼 많이 피울 일은 사실 많지 않을 테니.
“흐음… 피는 것보다 더 넓은 범위를 가리키는 말이 뭐가 있지?”
내 머릿속의 국어사전을 총동원해 단어를 끄적이던 중 한 가지 단어가 생각이 났다.
“시험해 봐야겠어.”
외투를 꺼내 입은 채 다시 문을 열었다. 꽃들이 가득 피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아직 안 갔어요?”
이아페가 내 방 앞 복도에서 꼬물대고 있었다. 내가 나올 줄 몰랐다는 듯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억울해 보이기도 했다.
“할 말이 있어서.”
내게로 걸어온 그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민망한 듯 제 목덜미를 쓸었다.
“술… 안 마셨습니다.”
“네?”
“…오해하시는 것 같아서.”
“그거 말하려고 여기서 기다렸어요?”
“…네.”
“어, 아니, 어….”
아까 내가 들어간 뒤로 적어도 30분은 지난 것 같은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할 말을 찾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풋, 내 웃음에 그의 표정이 따라서 풀어졌다.
“그럼 술 얘기는 뭐….”
“나중에, 일을 끝내면 마시려던 겁니다.”
이아페가 즉답했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서는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 늘 나던 나무 향기가 은은하게 풍길 뿐.
“음, 업무 태만이 아니었네요.”
“누가 이끄는 연구단인데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울이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이아페도 어깨를 으쓱했다.
“오해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그냥, 알아주셨으면 되었습니다.”
“근데 말예요. 그런 행동을 함부로 하면… 아니다, 아니에요. 저 뭔가 시험해 보고 싶은 주문이 있는데. 같이 갈래요?”
괜히 들뜨는 지금의 기분이나 확실히 짚어 주어야 할 이아페의 행동은 나중으로 넘기고.
지금은 꽃을 피우는 주문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물론이죠.”
이아페가 내 옆으로 나란히 섰다.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 * *
“상당히 날이 서 있군.”
칼린느가 한쪽 눈썹을 끌어올린 채 저를 향한 시선들을 마주했다.
광장을 가득 채운 꽃밭.
하지만 아무런 결실도 없는 그 가운데.
반짝이는 은발의 황제는 중앙의 커다란 나무 앞에 선 채였다.
식물이 자리하지 않은 사이사이부터, 광장을 둘러싼 좁은 거리까지. 황제가 왔다는 소식에 수많은 이들이 자리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약간의 기대가 묻어 있었으나, 그보다 더 큰 경계와 원망이 자리해 있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폐하. 버려진 이곳을 찾아 주신 것만으로도 감읍할 따름입니다.”
노년의 나이에 접어든 듯한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굳이 ‘버려졌다.’라는 표현을 쓴 것만으로도 날이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지역의 실질적 지부장이라 할 수 있는 지역 원로였다.
내 예상이 맞다면, 아마 저자가 이후에 있을 난을 일으키는 중심인물이겠지.
“말라 가는 꽃을 바라보며 그대들이 얼마나 애가 탔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군.”
나무에 손을 뻗어 잎을 매만진 칼린느가 사람들 쪽으로 우아하게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한숨을 내쉬던 이들이었지만,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순간에는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올해만 그럴 거라 믿은 것이 몇 년,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것이 또 몇 년, 그러다 황제를 비롯한 누군가를 원망한 것이 최근의 몇 년이겠지.”
“…원망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렇다기엔, 이 손수건에 묻은 눈물이 너무 많아 보이는데.”
칼린느가 나무 앞에 떨어진 손수건 하나를 집어 들었다. 흙이 묻어 더러워진 것을 아무렇지 않게 들고는 지분대자,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생겨났다.
그것을 툭툭 털어 낸 그녀는 조심스레 다른 손수건 위에 쌓아 올렸다.
“하지만 말야.”
칼린느가 휙 몸을 돌렸다. 그녀의 눈에서 본론을 말하기 위한 빛이 새어 나왔다.
“이제까지는 어땠을지 몰라도 나는 내 백성들을 버리고 싶지 않거든.”
칼린느가 큰 보폭으로 원로에게로 다가서자, 원로가 흠칫했다.
젊은 황제라 조금은 무시했을 그녀에게서 예상치 못한 압도적인 기가 느껴지자 약간 놀란 듯했다.
“이곳은 버려진 땅이 아니야.”
칼린느의 눈은 기정사실을 이야기하듯 확고함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을 보십시오, 폐하. 폐하께서는 정녕 이곳을 안고 가실 수 있으십니까.”
원로의 눈에는 오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의 말에 눈물을 보이는 이들도, 거친 숨소리를 내는 이도 있었다.
살짝 눈을 깔고 눈동자만 움직여 제 뒤를 바라본 칼린느가 말없이 원로의 손을 이끌고 나무로 다가갔다.
그리고 원로의 손을 잡은 그대로, 나무 기둥으로 옮겨 댔다.
반대편 팔을 크게 펼친 칼린느가 사람들을 향해 선포하듯 외쳤다.
“그대들에게 봄을 되찾아 주겠다.”
저 말은 우리가 미리 정한 신호였다.
지금, 주문을 외라는 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