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4
@4. 천한 마법사 주제에
“슈레기 자작가와 거래를 앞두고 계신 걸로 압니다.”
이아페는 말없이 찻잔을 입에 댔다. 대답을 피하기 위한 행동인 동시에,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다는 뜻이었다.
거래는 아직 공표되지 않은 정보였으나, 이 정도를 알아내는 것은 조금만 시간과 돈을 쓰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연을 끊으시는 게 좋을 거예요.”
“당신이 참견할 일은 아닙니다.”
그가 바로 철벽을 세웠다.
살짝 약 오르는데?
나는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슈레기의 방계의 사돈의 육촌 가문인 도그베 남작가에서, 신전 지정 제1 보호 동물인 울립의 불법 포획 및 가죽 수출을 준비하고 있어요. 걸릴 경우 제국, 아니 대륙 전체에서 추방당할 만한 사안이고요.”
잔잔하던 이아페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살짝 치켜 올라간 한쪽 눈썹은 미묘한 흥미의 증거겠지.
“그 일의 핵심에 분명 슈레기가 관여되어 있을 거예요.”
“방계의 사돈의 육촌 가문인데 말입니까?”
고개를 갸웃한 그가 냉소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직계도 아니고, 사돈의 팔촌보다 더 남인 두 가문을 연결 짓는 것은 얼핏 보기엔 억지스럽게 느껴질 테니까.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그렇게 남 같다는 점을 노린 거죠. 하지만 이상하지 않으세요? 아무 기반 없는 도그베가에서 단독으로 그런 대담한 일을 벌인다는 게.”
“다른 연결점이 있습니까?”
“두 가주가 아카데미 동기예요. 공식적인 자리에선 함께하는 일이 없었지만, 학창 시절에는 각별한 친분이었다고 하죠.”
말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이아페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별다른 티를 내지 않았기에, 내 이야기를 끊지 않음을 긍정의 신호로 믿고 말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포획은 도그베에서, 유통은 슈레기에서 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을 거예요. 슈레기는 국외 유통에 도가 튼 가문이니 연결해 주기만 하면 얻는 큰 수익을 버릴 리 없어요.”
“도그베가 불법 수출을 한다는 증거는?”
“제가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어차피 제 말을 다 믿지는 않으실 거면서.”
“흐음.”
나는 표정을 숨기고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뛴다. 테이블을 타고 진동이 느껴지진 않을까 불안할 정도로.
‘증거?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애초에 내가 말한 내용은 소설 속에서 이아페가 알아낸 사실이다.
유통에서 이름을 날리는 슈레기가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도그베가.
누구도 그들의 관련성을 생각하지 못했고, 그 그림자 속에서 불법 유통이 이뤄졌다.
모든 것이 철저한 보안하에 진행되었기에 들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일라인 공작가와의 거래 전, 이아페에 의해 들통나고 말았다.
‘그러니까 증거는 이아페가 찾을 수 있겠지.’
혹시 그래도 증거를 제시해 보라고 할까 봐 입술이 말랐다.
찻잔을 테이블에 놓은 이아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인 채 아래로 눈을 내리깐 그는 묘하게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다행히도 그는 더 묻지 않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사과의 의미로 드리는 정보였고… 더 고급 정보가 있어요.”
생각보다 이아페의 반응이 수용적이었다. 이에 자신감이 차올라 조금 들뜬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도 무언가의 대가로 말씀하실 겁니까?”
“대가라뇨. 방금 드린 정보는 제 마음이라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그저 간단한 부….”
“다음에.”
부탁이라는 단어를 꺼내기도 전에, 이아페가 말을 막았다.
그는 회중시계를 열어 보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다음에 듣도록 하죠. 지금은 이야기를 들을 여유가 없어서.”
“우리에게 다음 만남이 있나요?”
곧바로 던진 질문에 이아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단호하게 그를 바라보자, 그는 적당히 응대하던 가면을 잠시 내려놓았다. 대신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은근한 목소리를 흘렸다.
“당신의 정보가 맞다면.”
그래, 그럴 것 같았어. 어차피 나도 오늘 모든 패를 내놓을 생각은 아니었다.
대신, 다음을 기약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고편은 틀어 줘야겠지.
“황제 폐하의 의중에 관한 정보예요.”
무심하게 던진 한마디에, 자리에서 일어나던 이아페가 살짝 멈칫했다.
나는 그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 말에 신뢰가 생기신다면 찾아와 주세요.”
“기대되는군요.”
이아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제발, 제발 찾아와 주세요! 아니면 제가 찾아갈게요. 만나만 주세요!’
타오르는 눈이 그의 미련 없는 뒷모습을 좇았다. 속으로는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말들을 쏟아 냈지만 용케도 그를 잡지 않고 보내 주었다.
‘그래, 시작이 반이랬어. 오늘 밑밥을 깐 것만으로도 성공이야.’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안과 낙관이 내내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긍정적인 믿음이 승기를 잡을 때쯤, 내 방 창문 앞에 도착했다.
‘뭔가 느낌이 싸한데?’
왜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창문을 벌컥 열었을 때.
“외출 금지랬잖아, 시샤.”
텅 빈 내 방 안에 비알로가 홀로 앉아 있었다.
* * *
소파 팔걸이에 턱을 받친 비알로가 하염없이 문을 응시했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찝찝해 다시 와 보았더니 그녀가 보란 듯이 외출을 했다.
반항을 하는 건가? 알 수 없는 불안과 위기감이 그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덜커덕, 불현듯 들린 소리에 비알로가 고개를 돌렸다. 창문을 연 시샤가 커다란 녹색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비알로는 가지지 못한, 제 어머니를 똑 닮은 눈이었다.
“외출 금지랬잖아, 시샤.”
“그래서 내 방에 있는 거야?”
시샤가 애매한 미소를 건 채 비알로를 바라봤다. 둘 사이에 미묘한 정적이 흘렀다.
자리에서 일어난 비알로가 종이를 들고 창가로 다가갔다.
의미를 알 수 없어 한쪽 눈썹을 찌푸리는 시샤에게, 비알로는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반성문을 쓰렴, 시샤.”
시샤의 표정이 굳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비알로의 눈동자가 냉소적인 미소를 뿜었다.
“맘대로 행동한 벌이야.”
“난 어린애가 아냐.”
“하지만 내 동생이지. 잘못했으면 벌을 주는 게 오빠의 도리고.”
“…….”
“일단 문으로 들어와. 설마 창문을 넘을 생각은 아니었겠지?”
비알로는 몸을 돌려 다시 소파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스락… 풀썩.
옷이 쓸리는 소리에 뒤돌아본 비알로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시샤가 창문을 통해 방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치마를 툭툭 턴 그녀는 곧바로 시종을 부르는 종을 울렸다.
어째서일까? 비알로는 그녀의 반응에 괜한 조급함을 느꼈다.
“넌 제멋대로 구는 버릇을 고쳐야 해, 시샤. 아르비나의 이름에 먹칠을 할 셈이야?”
“기다려, 비알로.”
미소를 띠고 있으나 단호한 목소리에 비알로가 멈칫했다.
역시 이상하다. 자신이 알던 그녀는 기다리라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시샤가 들어오라 대답했다.
“부르셨습니까, 아가씨.”
열린 문밖에 선 사용인을 본 시샤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리나는 어디 있어?”
“벌을 좀 줬을 뿐이야.”
대수롭지 않은 일을 말하는 듯한 비알로를 시샤가 똑바로 바라봤다.
“리나는 내 전담 하녀야. 네가 아니라.”
어릴 적 그가 수도 없이 받곤 했던 시선. 그러나 그녀에게선 여태껏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눈빛이 비알로를 향했다.
경멸이었다.
“시샤, 리나는 네가 나갔기 때문에 벌을 받은 거야. 그럼 잘못한 게 누굴까?”
늘 그랬듯, 비알로는 모든 일의 원인을 시샤로 만드는 화법을 구사했다. 이렇게 말하면 시샤는 언제나 미안하다고 말하곤 했으니.
하지만. 오늘의 시샤는 왜 그런 걸 묻느냐는 듯한 눈으로 비알로를 똑바로 바라본다.
“당연히 너지.”
시샤는 더 대화할 생각이 없는 듯 사용인을 향해 몸을 틀었다. 비알로가 저도 모르게 그녀를 잡았다.
“뭐 하는 거야, 시샤?”
당혹과 의문이 가득 찬 음성이었다. 하지만 시샤는 가차 없이 비알로의 손을 뿌리쳤다.
“네 말대로 난 아르비나야, 네 하인이 아니라. 내 일은 내가 결정해.”
시샤가 그를 지나쳐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용인은 그들의 분위기에 눌려 얼어붙은 채였다.
“…부르쌍 마을에 마법사가 나타났다더라.”
비알로의 떠보는 듯한 음성이 방을 울렸다. 시샤가 멈칫했다.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사용인의 미묘한 호기심을 품은 얼굴이 시샤를 향했다.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라기보다는, ‘마법사’에 관한 뜬금없는 질문이 분명 상대를 저격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샤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네가 좋아하는 ‘인맥’이 그런 가십거리를 듣기 위한 거라면, 나는 역시 필요 없겠다, 비알로.”
완전히 방을 나선 시샤가 문을 쾅 닫았다.
항상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던 비알로의 입술이 내려갔다. 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분노보다는 본능적인 불안이 서려 있었다.
“천한 마법사 주제에….”
깨문 아랫입술에서 피가 살짝 배어 나왔다.
* * *
“아가씨, 잘 다녀오셨어요?”
홀로 빨래를 널던 리나가 제 손을 뒤로 감추며 달려왔다. 그녀의 손을 억지로 앞으로 끌어내자, 심하게 빨개지고 부르터 있었다.
비알로가 내린 벌로 저택의 모든 빨래를 홀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것 아녜요. 죄송해요, 주무신다 말씀드렸는데도….”
“미안해, 리나.”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당장 뒤집어엎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집에서의 입지는 비알로가 더 높아. 게다가… 내가 마법사라는 약점을 쥐고 있으니까.’
내가 마법사라는 게 알려지면 가문의 위상도 떨어지기에 비알로도 쉽게 입을 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밝힌다면… 모두에게 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겠지.
‘그럼 도서관을 찾기가 힘들어져.’
설령 도서관을 발견한다 해도… 이후의 삶에 문제가 생긴다.
물론 비알로가 그토록 무시하던 ‘마법’은 황제의 새로운 힘으로서 선망의 존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독이 든 성배.
원작대로 흘러간다면 마법의 위치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아페가 마법으로 친형을 죽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