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43
@43. 1등에게만 주는 선물
“멍청한 비알로.”
문이 닫히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까 그놈이 이야기를 엿들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를 잡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나는 시녀도 아니고, 하녀도 아니었지만….
비알로의 머릿속에서는 행복 회로를 돌릴 수 있을 만한 직업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나았다.
최대한 나를 경계하지 않도록.
아마 지금쯤 내 약점을 하나 더 잡았다고 생각해 신나 있겠지. 향료 안 사 왔다고 했을 때의 표정도 볼만했지만, 그게 이내 풀어지는 것이 더 우스웠다.
훙훙, 콧노래를 부르며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 * *
“「이히리기우구추」라니, 코레아리아어는 안 그래도 발음이 특이한데 이건 정말 주문 같네요, 단장님.”
“단어마다 어떤 것을 붙여야 할지가 달라져서 헷갈려.”
오늘 자 스터디가 끝나고 회의실에서 나오며 단원들이 말했다.
오늘은 사동 표현과 피동 표현에 대해 알려 주었다. 그래, 나도 ‘이히리기우구추’ 처음 들었을 땐 그랬었어. ‘비비디바비디부’ 같은 느낌이랄까.
나도 헷갈리는데 너희는 얼마나 헷갈리겠니.
「니니안, 실력을 높이는 게 좋을 거야.」
「라온, 나한테 밟히지 않게 조심해.」
오, 둘 다 발음 100점, 응용력 10,000점.
오늘도 니니안과 라온이 서로 으르렁거렸다. 방금 막 배운 이히리기우구추를 이용해서.
‘높이는’과 ‘밟히지’에는 각각 ‘이’라는 사동 접사와 ‘히’라는 피동 접사가 붙어 있다.
‘역시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건가.’
싸움도 공부한 내용으로 하는 학생들이라니.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좋아, 이 기세를 몰아 더 열심히 코레아리아어를 익힐 수 있도록 해야겠다. 빨리 마스터해서 내 일 좀 대신 해 줘.
“다음 테스트 1등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상을 줄 거예요.”
단원들이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뭘 주실 거예요, 시샤 님?”
“테스트 범위는 어떻게 되나요, 단장님?”
“1명한테만 주는 거야?”
“뭐든 영광으로 받을게요.”
니니안과 라온에 이어 카실, 셀라임까지 재잘댔다.
이렇게 관심이 많을 줄이야. 보상 정책을 앞으로도 좀 활용해야겠는데?
“글쎄요. 뭘 상으로 주면 능률이 오르겠어요? 밥 먹으러 가면서 생각해 봐요.”
내 질문에 다들 고민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걷기 시작했다. 왁자지껄하던 평소와는 달리, 식당으로 가는 길에 정적이 흘렀다.
그러던 중 니니안이 뭔가 생각난 듯 아! 하고 몸을 돌렸다. 팟! 갑자기 움직이는 통에 그녀의 연 노란빛 머리카락이 상모처럼 돌아가 옆에 있던 라온의 뺨을 찰싹 때렸다.
“아야!”
“시샤 님네 저택에서 특별 과외?”
옆에서 라온이 뺨을 잡고 있었지만, 니니안은 신경 쓰지 않고 눈을 빛내며 제안했다.
하지만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평소에 매일 배우는 것도 힘들 텐데 특별 과외까지 하는 걸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리가 없…?
“괜찮은 생각인데요, 단장님?”
“과외 후에는 시샤 님과의 티타임도 같이!”
“그렇게 해서 실력이 오른다면 뭐… 나쁘지 않네.”
“케이크를 준비해 갈까요?”
어느새 우리 집에서 특별 과외를 하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어휴, 나를 이렇게나 좋아하다니. 인기를 주체할 수가 없다.
“좋아요! 그날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과외에….”
“우와!”
“티타임에….”
“오와아!”
티타임 받고 식사 추가요.
“둘이서 근사한 식사까지 하는 걸로 해요.”
“네에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져 상을 더 추가했다.
다시 평소처럼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앞으로 걸어가는 그들을 보는데 괜히 흐뭇했다.
나는 옆을 걷고 있는 이아페에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다들 너무 열성적이어서 귀엽지 않아요? 아, 이아페는 어차피 다 익혔을 테니까 참여 안 해도 돼요. 후후, 누가 1등 할지 궁금하네요.”
이아페는 나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그러게요, 귀엽네요.”
그가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살짝 멈췄다.
위험했다. 갑자기 며칠 전 데슬로에서 느꼈던 미묘한 감각이 온몸을 덮쳤다.
이아페는 대화할 때 이렇게 눈을 꼭 맞추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이 날 가끔 싱숭생숭하게 했다.
방금도 그는 그저 나와 눈을 맞추고, 내 말에 동의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심장이 덜컹대는 것 같은지. 하필이면 그의 눈을 피할 뻔했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떤지 가늠이 잘 안됐다. 하지만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정말 모범적인 학생들이에요. 평소에 공부하는 양도 많을 텐데 저렇게 더 배우려고 하는 게 신기하죠?”
나는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뱉어 냈다. 그런 나를 보고 이아페가 말했다.
“학생들이 모범적이라기보단.”
이아페가 내 머리 쪽으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어…? 마치 나를 쓰다듬을 것만 같은 상황인데?
“1등 상이 너무 탐낼 만한 거라.”
그의 손이 부드럽게 내 머리로 와 닿았다.
“뭐가 붙어서요. 저도 누가 1등 할지 궁금하네요.”
내 기다란 연보라색 머리카락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듯 감겼다.
그는 머리에 뭐가 붙었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살짝 드리운 그의 미소로 온 신경이 집중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부드럽게 올라가는 입꼬리와 나른하게 휘는 눈. 보랏빛 눈동자에 담긴 나. 이 장면이 체감 슬로 모션으로 내 눈앞에 펼쳐졌다.
이 은혜로운 미소는 아무리 사회생활 미소라고 해도… 좋은걸.
“…안 된다!”
위험했다. 좋았다는 건 망언이다. 좋지 않았다. 싫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무래도 데슬로에서부터 그의 행동들이 더 크게 의식되기 시작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심장이 김칫국을 마셔 버린 탓이다. 그날 키스 갈길 타이밍이라고 생각만 안 했어도 이렇진 않았을 텐데.
“1등을 궁금해하면 안 되나요…?”
고개를 흔들던 중 이아페의 질문에 내가 육성으로 ‘안 된다!’라고 말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뇨? 머리에 뭐가 붙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한 거랍니다.”
“음, 이제 없네요.”
이아페가 더 붙은 건 없는지 고개를 살짝 숙여 내 머리를 살폈다. 그동안 나는 눈동자를 굴려 그의 턱선을 바라보았고.
이아페는 그날 말했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올인한다고.
내 역할은 이아페가 코레아리아어를 마스터해 칼린느를 성공적으로 보좌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래야만 마법이 환영받는 세상에서 이 해피 라이프를 이어 나갈 수 있다.
‘이미 마음의 임자가 있는 사람한테 들이댔다가 상처받는 건 나겠지.’
남의 속도 모르고, 이아페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요망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빨리 밥 먹으러 가요.”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아페는 이에 보폭을 맞춰,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나와 함께 걸었다.
* * *
테스트는 간단했다. 코레아리아어 동사를 주고, 이를 각각 과거형, 미래형, 피동, 사동 등등으로 바꾸면 되었다.
단원들은 전부 회의실로 들여보내 마지막으로 공부할 시간을 주고, 나는 그동안 테스트지를 정리했다. 역시 문제에 별 이상은 없었다.
좋아, 이제 시험 감독관도 회의실로 들어가 볼까?
“이아페, 혹시 옆의 캐비닛에서 펜 10개만 꺼내 줄래요?”
나는 테스트 자료를 다시 한번 눈으로 훑으며 이아페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이 공간에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어디 갔지? 설마….’
나는 회의실 쪽을 바라봤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아페에게는 이미 테스트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두었으니 굳이 귀찮게 시험을 보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본인이 참여하면 이 시험의 밸런스가 깨진다는 것쯤은 알겠지.’
마치 고등학생이 초등학생 시험을 같이 보는 수준의 밸런스 붕괴다.
화장실이라도 갔나 보지, 뭐.
나는 캐비닛에서 펜을 꺼내어 테스트지와 함께 들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다들 뭔가 대단한 일을 앞둔 듯 각오가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니니안도, 카실도, 라온도, 셀라임도, 이아페도….
“……?”
이아페도?
“이아페, 당신도 참여하려고요?”
“네.”
“하지만 당신이 참여하면….”
말을 끝맺지는 못했다. 당연히 당신이 1등을 할 것 아니에요, 라는 말로 테스트 직전 다른 단원들의 사기를 꺾을 수는 없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이아페가 참여했다는 게 더 자극이 된 모양인지, 다들 더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1등의 확률이 낮아진 만큼 더 값진 우승일 테니.
“다들 응원할게요!”
나는 테이블을 빙 둘러싸고 멀리 떨어져 앉은 단원들에게 하나하나 테스트지를 나눠 주었다.
그런데 이아페에게 테스트지를 주기 위해 몸을 숙인 순간, 그가 속삭였다.
“참여하면 안 된다고는 안 하셨으니까.”
이아페가 싱긋 웃었다. 나는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끼익, 하고 몸을 일으켰다.
과연 누가 1등을 할지.
정말 궁금했다.
* * *
“카일라인 공작가의… 둘째 놈을 초대한다고?”
아버지가 들고 있던 쿠키를 떨어뜨렸다. 소파에 기대앉아 있던 어머니가 어휴, 하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는 몸을 기울이고 손을 뻗어 손수건으로 아버지의 옷을 탈탈 털어 주었다.
테스트 결과는 결국 이아페의 압승이었다.
내가 낸 문제의 모든 답을 적어 냈고, 결과는 만점이었다. 그렇게 1등 상인 특별 과외를 받기 위해 다음 주말 우리 집으로 오게 되어 있었다.
지난번 이아페의 방문 때에는 비알로에게 이아페가 공작가의 손님인 것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은 이 집의 주인인 후작과 후작 부군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 대체 왜… 그런 일을….”
아버지가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코레아리아어를 가르쳐 줘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무조건 놀러 온다고 하면 관계를 의심할 테고.
그럼….
아. 그걸 가르친다고 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