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46
@46. 가가 가가
“호위고 나발이고 필요 없어요!”
빽 소리를 지르자 이아페와 르디엘의 동그래진 시선이 순식간에 나를 향했다.
“저 혼자 걸어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시샤 님…! 저는 데리고 가셔야….”
“유리온실! 가 봤으니까 길은 알죠? 그리고… 그렇게 호위를 해 주고 싶으시면 두 분이 서로 해 주세요.”
양손으로 그들을 각각 가리켰다가 두 손을 모아 꽉 잡으며 부러 눈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약간 충격을 받은 것 같았으나 내 알 바가 아니다.
둘이 무슨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둘 사이의 알력 다툼에 끼는 건 사양이다.
나는 쌩하니 돌아서서 뒤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 *
“뭐 하는 거지?”
“너야말로 왜 오버해서 난리야?”
시샤가 사라진 자리. 이아페와 르디엘 사이에는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냉기가 흘렀다.
이아페는 찌푸린 표정을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르디엘은 그 변화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아가씨한테는 무슨 일이야?”
“우리?”
“그래, 나는 아르비나 기사단에 속해 있고, 저분은 아르비나 아가씨니까. 우리 아가씨지.”
그가 입고 있는 아르비나 기사단 복장을 확인한 이아페의 눈이 가늘어졌다.
성기사단에서 파견을 온 건가. 친한 척을 하는 것은 여전하군.
오랜만에 만난 것임에도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비뚜름한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하… 너야말로 무슨 속셈으로 여기에 있는 건데?”
“파견의 목적을 묻는 거야? 기사단 간의 교류와 화합이지.”
르디엘이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아페의 날 선 시선이 그를 겨냥했다. 불신을 담은 눈초리가 그를 뚫을 듯이 파고들었다.
“모르지. 모종의 다른 목적이 있을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못되게 말하는 건 여전하네.”
“괜히 기웃대지 마. 네가 함부로 그래도 되는 분이 아냐. 기사단으로 온 거면 기사단에만 박혀 있어.”
“너야말로 이번에도 비겁하게 굴지 않으면 좋겠는데. 저분도 알아? 네가 친구도 버릴 만큼 너밖에 모르는 놈이라는 거.”
“…너한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진 않군.”
그 말을 끝으로 이아페가 몸을 돌렸다. 그러곤 아직 시야에 보이는 시샤를 뒤쫓았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르디엘이 완전히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재수 없는 놈.”
* * *
“죄송합니다, 시샤 님. 불편하게 해 드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아페가 유리온실로 들어서자마자 사과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축 늘어진 강아지 같은 그를 바라보았다.
뭐, 특별히 화가 난 건 아니었지만….
‘이아페의 사과라니.’
다시 오지 않을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후우.”
내가 한숨을 쉬자 이아페가 안절부절못하며 내게 한 발짝 다가왔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뭐라고 한마디 던질 타이밍인 것 같은데 뭐라고 할지 생각이 안 난다.
“후우우.”
결국 시간을 벌기 위해 한숨을 더 길게 내쉬었다.
그런데 이것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던 모양인지, 이아페가 즉시 내 옆의 의자로 와 앉았다.
“미안해요, 화났습니까?”
그가 옆으로 깊이 고개를 숙여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이건 반칙인데.
“어떻게 하면 화가 풀리실까요?”
그가 나를 올려다보는 통에 머릿속이 마비되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어도 지금 네 얼굴을 보면 사르르 풀리겠다.’
하지만 나는 용케도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딜을 시전했다.
“다음에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든가요.”
부러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그가 들어줄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지만, 혹시 모르잖아. 큰 걸 질러야 중간을 얻는 법이다.
혹시 뭐 이런 염치없는 무뢰배가 다 있나 하는 표정을 지으면 장난이라고 태세 전환을 하면….
“좋습니다.”
하지만 이아페는 너무도 쉽게 내 제안을 승낙했다.
“어떤 소원을 말할 줄 알고?”
“할 수 있는 거라면 그게 뭐든.”
“미엘 신께 바칠 이름을 걸고?”
이아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소원 인형 급인데. 예상치 못한 수확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가 이 말을 무른다고 하기 전에 빨리 말을 돌리기로 했다.
“그럼 과외 시작할까요?”
이아페를 대상으로 한 특별 과외라니, 주제를 뭐로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해석 작업에 필요한 코레아리아어 지식은 고서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그때그때 알려 주는 방식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 나았다. 실제로도 평소에는 그런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하지만 오늘은 특별 과외!’
특별 과외가 평범해서야 되겠는가.
“오늘 배울 것은….”
내 입가가 흥미로 씨익 올라갔다.
그러니까 이건 특별 과외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가르치면 내가 재밌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방언, 그러니까 사투리예요! 코레아리아 남동부 지역에서 썼다던 말을 몇 개 가르쳐 줄게요.”
남동부 지역은 경상도였다. 실제 코레아리아에 사투리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혹시 모를 일 아닌가. 배워 두면 도움이 될지.
“「노」와 「나」만 잘 구분하면 어디 가서 남동부 사투리 쓸 줄 안다고 명함 정도는 내밀 수 있어요.”
나는 미리 만들어 온 자료를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아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 앞의 종이에 「노, 나」라고 받아썼다.
열심히 필기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평소에는 가르칠 필요도 없는 대단한 사람 같아 보이는데. 이런 걸 보면 그도 열성적인 학생 같단 말이지.
“둘 다 의문을 표현할 때 써요. 「뭐를 잘하노?」, 「공부 잘하나?」 이런 식이죠.”
“「니?」를 다양하게 변형했나 보군요.”
“맞아요. 사용법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노」는 의문사랑 붙여 써야 하고, 「나」는 아니라는 거죠.”
나는 표를 그려 「노, 나」를 그 안에 채워 넣었다.
“「노」는 무엇을, 어떻게, 왜 등 의문사랑 같이 써야 해요! 「뭐 먹었노? 우찌 했노? 와 이라노?」 이렇게요.”
이제 「나」에 대한 설명.
“「나」는 의문사가 들어가지 않으니,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단순 질문이어야 해요. 「숙제했나? 밥 먹었나? 그 나무가 그렇게 이쁘나?」 이런 식으로요.”
설명을 끝내고 보니 이아페가 자료를 보며 가만히 생각에 빠져 있었다.
‘너무 어렵게 설명을 했나? 역시 이해가 잘 안 가려나?’
설명을 덧붙이려 종이로 다시 손을 올린 순간.
「시샤 님은 이런 사투리는 또 어떻게 알았노? 이렇게 쓰면 되는 게 맞나?」
「마, 맞다…!」
도회적인 얼굴에서 구수한 말투가 쏟아졌다.
나는 감격에 겨워 입을 틀어막았다.
이아페가 사투리를 쓰다니…. 인생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나.
하나를 알려 주면 열을 배우는 그는 경상도 사투리의 구조를 한 번에 이해했다.
심지어 억양까지 살리는 통에 신이 나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사투리의 향연이 이어졌다.
「가, 고」는 명사와 붙여 쓰고, 「나, 노」는 동사나 형용사와 붙여 사용하는 말이라는 것도, 「했데이, 단디, 대다, 쫌!」까지….
이거도, 저거도 써 봐…!
나의 사심이 그득그득 채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열을 띠고 한참을 설명하다 보니 어느새 티타임 시간이었다.
가르치던 코레아리아어 자료는 가방에 넣고, 차와 디저트를 담은 티 카트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번에 이아페의 초대를 준비하면서 리나가 티타임의 중요성을 얼마나 강조했는지.
마음이 몽실몽실해져서 싱숭생숭해지는 장소이니, 그에 걸맞은 차와 디저트를 먹어야 한다나 뭐라나….
내가 티타임은 그냥 간식 먹는 시간 아니냐고 하자, 리나는 나를 소시오패스 보듯이 바라봤다.
솔직히 우리 주방장의 간식은 다 맛있으니 대충 준비해도 될 텐데. 하지만 막상 티타임이 되니 조금 들뜬 기분이 들었다.
과연 어떤 디저트를 준비했으려나.
「울 주방장이 황실에서 맻 낸 똥안 새빠지게 일하다 요 와가꼬 마 솜씨가 미칬다 아이가.」
「아, 가가 가가?」
「글타카이. 맛이 확 마 쥑인다. 묵다 디비질지도 모른데이.」
「맞나?」
‘우리 주방장은 황실에서 열심히 일한 경력이 있어서 음식 솜씨가 정말 뛰어나.’
‘아, 후작가의 주방장이 황실에서 일했던 그 사람이니?’
‘그렇다니까. 뛰어난 음식 솜씨에 감격해 먹다 죽을지도 몰라.’
‘그렇구나.’
어째서인지 반말로 구수하게 대화하다 보니 멀리서 누군가가 차와 디저트를 담은 카트를 밀고 오고 있었다.
「내 눈이 삔 기가?」
그게 아니라면, 지금 카트를 밀고 오는 저 커다란 사람은….
‘아버지?’
* * *
그날 이른 아침.
아르비나 후작 부군, 테드릭 아르비나가 새벽에 홀로 연무장을 뛰고 돌아와 씻고 나왔다.
어젯밤에는 18분밖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거의 졸듯이 잠들었다 깬 후로는 아무리 해도 잠을 잘 수 없었기에, 결국 운동을 하고 돌아온 것이다.
‘오늘인가… 공작가의 둘째 망나니가 우리 시샤를 찾아오는 날이. 내가 그놈 때문에 18! 분밖에 못 자다니.’
놀이를 전수받는다는 것은 핑계다. 그놈은 시샤에게 흑심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테드릭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엔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최근 시샤가 전에 없이 살갑게 굴던 것이 생각났다.
벽을 세우던 아이가 요즘은 다정하게 아버지라고 부르고, 밥은 먹었는지, 기사단 훈련은 어땠는지를 물어보곤 했지.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달라진다던데.
쌍방의 감정이란 말인가.
아니, 어쩌면 설마.
‘결혼을…?’
그래서 마지막으로 잘해 주고 가려는 건가.
“으으… 안 된다!”
후작 부군이 꽉 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나무 테이블이 우지끈, 꺾이더니 우당탕 무너져 내렸다.
그럼에도 그의 손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분으로 힘줄이 한껏 돋아 있었다.
“뭐야, 지진 났어?”
“앗, 티오라. 미안해요. 깼어요?”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티오라가 중얼거리자, 테드릭이 놀라서 침대로 도도도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