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48
@48. 아무것도 하지 마
아버지의 주접에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아연해하던 그때.
“왜 밖에 나와 있지?”
굉장히 귀찮아 보이는 표정의 어머니가 등판했다.
아까 아버지가 뭐라 명하고 있던 사용인과 함께.
“무슨 일로 오셨어요?”
“카일라인 공자가 할 말이 있다기에.”
나는 무슨 말이냐는 듯 아버지를 보았고, 그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동안 어머니는 망설임 없이 온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비알로가 사색이 되어 헐레벌떡 온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가 인상을 찌푸리자 그는 황급히 표정 관리를 했다.
“왜 그래?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그, 그게….”
“영식께서 일이 급하신 모양인데…. 정말 괜찮으십니까?”
이아페가 안타깝고도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알로가 황급히 제 배를 붙잡았다.
저런, 급한 일이 그 급한 일이었나.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비알로가 어머니를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온실을 빠져나갔다. 나를 보고 멈칫했지만 웬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빠르게 걸어갔다.
얼마나 우르릉쾅쾅 하는 신호가 왔으면 그렇게 잘 보이고 싶은 어머니의 앞에서도 달아난담?
“저런…. 약을 드셔야 하는 게 아닐지.”
이아페가 비알로의 뒷모습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비알로를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서브 남주의 인류애는 감히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장대한 것이 틀림없다.
비알로가 가는 길에 냄새를 흩뿌리지만 않기를 바라며, 나는 온실로 들어섰다.
* * *
조금 전의 유리온실.
시샤가 후작 부군과 함께 빠져나간 온실에는 묘한 적막감이 감돌았다.
슬쩍 닫힌 문을 확인한 비알로가 짐짓 아무렇지 않게 사과를 했다.
“그날은 실례했습니다. 시샤의 친구라 생각하니 오빠로서 궁금해져서요. 시샤가 아직 모난 부분이 많….”
“그만.”
이아페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말을 베었다. 찬물을 확 끼얹은 듯 오싹한 공기가 감돌았다.
“오빠라는 이름을 믿고 같잖은 권위를 내세우는 건가.”
시샤가 나가자마자 험담을 하는 꼴이라니, 앞뒤가 다른 모습이 이처럼 우스울 수가 없었다.
진짜 앞뒤가 다른 사람이 제 앞에 있는 것도 모르고.
“당장 처리하고 싶은데… 없으면 그녀가 슬퍼하려나.”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인 이아페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가 비알로를 향해 가까이 오라고 눈짓했다.
하지만 비알로는 몸을 흠칫 떨 뿐, 제자리에서 쭈뼛대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 어….”
별안간 강풍이 불어 비알로의 등을 밀었다. 비알로의 눈동자가 당황과 두려움으로 흔들렸다.
그가 이아페를 향해 한 발짝, 두 발짝 넘어질 듯 다가갔다.
의지와 몸이 따로 노는 통에 결국 앞으로 고꾸라졌다.
“허억….”
비알로가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거센 숨을 몰아쉬었다. 눈앞에 잘 닦인 이아페의 구두가 보였다.
“저런. 조심성이 없군.”
고요한 목소리였다. 비알로는 고개를 들었다. 이아페는 눈을 내리깔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바람이 불어서….”
“문 닫힌 온실에 바람이라니. 영식은 나를 바보로 아는 건가?”
이아페의 눈에 살벌한 안광이 스쳤다.
비알로가 입을 벌린 채 굳었다.
얼이 빠진 그 모습을 응시하는 이아페의 눈에 즐거움이 감돌았다. 물론 바람을 일으킨 건 자신이 맞았지만, 어쩌겠나. 둘밖에 모르는 상황이라면… 주도권을 쥔 자의 말이 진실이 되는 것을.
“공작저에 지하 감옥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이아페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비알로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 얘기를 왜 하시는지요.”
“영식이 가두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거든. 그 반대의 입장도 궁금하지 않나?”
“제가 무슨…!”
“참고로 나는 감옥에 갇힌 놈의 인권을 존중하진 않아.”
이아페가 생긋 웃었다.
저자가 감히 시샤의 외출을 금지한 적이 있다.
그녀는 나쁜 기억을 금방 털어 버리고 저자와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이아페는 아니었다.
그녀의 가족만 아니면 진작에 치워 버렸을 텐데.
강한 충동으로 속이 뒤틀렸다.
“고, 공자님.”
비알로는 제 앞의 남자가 지금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바닥을 짚은 손을 떼어 냈다.
그때, 온실 밖으로 시선을 돌린 이아페가 불현듯 비알로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주었다.
비알로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역시 내게 이렇게 못되게 대할 이유가….’
툭. 이아페가 다시 비알로의 팔을 놓았다.
비틀거리며 균형을 잡은 비알로가 이아페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어?” 하고 멍청한 소리를 냈다.
시선 끝에 있는 것은, 온실 밖에서 후작 부군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샤였다.
“아 참.”
무감한 목소리에 비알로가 이아페를 바라보았다.
“지하 감옥보다는… 부모에게서 영식의 신뢰를 온전히 무너뜨리는 편이 더 재밌을지도 모르겠군.”
등골이 서늘해진 비알로가 몸을 굳힌 채 시선을 굴렸다. 그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이아페는 알고 있었다.
“…유언비어로 이간질이라도 하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시샤 님께 노임포턴스 가문을 갖다 붙인 건 아무래도 너무한 것 같은데. 굳이 돈을 써 가면서 말야. 아, 그분의 평판을 깎기 위해 작업을 한 정황들은 너무 쉽게 찾아서 김이 샜어.”
“그건…!”
뭐라 반박하려던 비알로는 입을 다물었다.
사냥감을 발견한 듯 숨통을 조여 오는 시선. 그것은 반박도, 설득도 절대 통할 것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생존의 위협마저 느껴지게 하는 눈이었다.
“제가 뭘 하면 될지 말씀해 주시면….”
“아무것도 하지 마.”
“…네?”
“시샤 님의 길에 감히 자갈의 크기로라도 걸림돌이 되려 하지 마. 그럼 정말 으스러뜨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잖아.”
피식, 이아페가 웃음을 터뜨렸다. 비알로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작게 끄덕이기 시작한 비알로의 고개가 점점 세차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계속 여기 있을 셈인가?”
그는 이아페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부리나케 자리를 피했다.
지금 인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저놈은 진짜다.
그런 생각을 하며.
* * *
“자네가 이아페 공자로군. 티타임을 청했다지.”
어머니가 당연하다는 듯이 의자에 앉았다. 함께 티타임을 가지니 마니 하는 이야기들이 무색한 결말이었다.
양해를 구하기 위해 곤란해하는 표정으로 이아페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네, 최근 약초 엘츠의 자유 교역을 이끄신 배경이 궁금해 실례를 무릅쓰고 시간을 청하였습니다.”
역시 상황극의 귀재였다. 그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것은 물론, 당황한 티도 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어머니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으쓱했다.
“알고 있었군. 뭐, 상당히 시끄러운 건이긴 했으니.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지?”
“내수 경제가 중요하다는 헤를 백작의 의견도 일리가 있으나, 엘츠의 경우 국내에서는 거의 생산되고 있지 않습니다. 대중화를 시도했을 때 다수가 얻는 이익이 더 크겠지요.”
“동의해 줘서 영광이군. 하하, 어서 앉도록 해.”
결국 우리 부모님과 이아페가 함께하는 묘한 티타임이 시작되었다. 다들 자리에 앉자 테이블 위에 다과가 빠르게 세팅되었다.
‘과연… 이것이 리나가 말한 몽실몽실하고 싱숭생숭한 디저트인가.’
장미를 닮은 꽃인 벨라 꽃잎을 우려낸 향긋한 차. 초록에서 갈색으로 그러데이션을 그려 나무를 연상케 하는 녹차 커피 푸딩.
푸딩을 둘러싸고 놓인, 초콜릿을 묻힌 작고 동그란 과자들은 마치 진주처럼 보였다.
푸딩 다음은 상큼한 레몬 케이크였다. 슈거 코팅과 무스가 예쁘지만 과하지 않게 장식되어 있었다.
몽실몽실한 티타임이라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라면 매일 가지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젊은 황제께서 꽃을 피웠다는 소문이 수도에 파다한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켁.”
사절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가고, 어머니가 이아페를 향해 던진 질문에 케이크가 목에 걸렸다.
이아페가 얼른 여분의 잔에 차를 따르고는 후후 불어 내게 건넸다.
‘지금 곁눈질로 보이는 아버지의 표정이 굉장히 붉으락푸르락한 것 같은데.’
눈이 마주치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아서, 애써 무시하며 차를 마셨다.
최근 알게 모르게 가장 핫하게 퍼지고 있는 소문이 바로 황제가 손 한 번 까딱했더니 죽었던 꽃들이 살아났다는 것이었다.
북부에서부터 천천히 차오른 소문은 수도에 이르러서는 삽시간에 퍼졌다.
‘사람들을 고용해 소문을 퍼뜨린 데다 몇몇 살롱에서 화젯거리로 던진 영향이 컸지.’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발이 넓은 이들의 귀에 이 소식이 전해질 수 있도록 했다.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소문이 퍼지기를 기다렸고.
효과는 생각보다 더 좋았다. 밤낮 가릴 것 없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진 이야기는 순식간에 제국 전역에 퍼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 힘의 원천에 대해서는 추측만이 난무했다. 소문의 중심인 황제, 칼린느가 지금까지는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문은 들었습니다. 신성력은 아니라더군요.”
이아페는 본인이 벌인 일임에도,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신성력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더군. 이에 대해 카일라인 공자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서 말야.”
다소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카일라인 가문은 신전과 가장 가까운 가문이고, 신성력은 이 대륙에서 인정받는 유일무이한 힘이다.
그런데 황제가 신성력이 아닌 다른 특별한 힘을 썼다. 그것도 그리 커다란 규모로.
카일라인으로서 이를 어떻게 견제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폐하께선 이제까지와는 다른 권력을 가질 수 있으시겠지요. 그것이 맞는 방향이라면 기꺼이 따를 생각입니다.”
어머니가 진심이냐는 듯 눈썹을 끌어 올렸다.
“다만.”
“다만?”
“카일라인으로서의 대답은 제게 너무 무거워서 말입니다. 개인적인 대답을 귀담아들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아페가 의견을 밝히면서도 선을 그었다. 어머니는 이러한 대답이라도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시샤도 그 힘이 뭔지 모른다 하였지?”
내가 폐하의 시찰에 따라간다고 며칠씩 집을 비운 때와 칼린느가 꽃을 피웠다는 소문의 시기가 같다는 것을 안 어머니는 내게 질문했다.
하지만 아직 마법에 대한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부모님이라도… 내가 마법사라는 것을 알고도 날 지지해 줄지는 모르니까.’
그렇기에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네, 폐하께서 봄을 선물하겠다 하시자 황폐했던 광장이 꽃으로 채워졌다는 것밖에요.”
“후작님께서는 추측하신 바가 있습니까?”
이아페의 질문에 어머니가 팔짱을 꼈다. 그리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당연하지 않냐는 듯 말했다.
“신성력과 같이 위력을 가졌으나, 신성력은 아닌 힘… 전혀 새로운 소재는 아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