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49
@49. 정말 악마의 힘이 맞는가?
찻잔을 들어 올리던 나는 손을 멈칫했다.
어머니가 말하는 힘은 분명….
“티오라, 설마 그 힘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요?”
“맞아, 마법 말야.”
아버지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황가의 핏줄이니, 뭔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않아요?”
“물론 그렇지. 하지만 이제껏 그런 힘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는데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보단, 마법 쪽이 더 신빙성 있어.”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염을 쓸었다. 악마의 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조금 불편해 보이면서도, 어머니의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이 분위기에 편승해 나도 슬쩍 질문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리 생각하고 있을까요?”
아르비나 후작은 이곳저곳의 이야기를 중립적으로 많이 듣는 위치에 있다. 대중의 여론은 이아페가 가진 정보가 더 많다지만, 높으신 분들의 이야기는 어머니의 귀에 더 빨리 들어오겠지.
“처음엔 황제의 독자적인 힘일지 모른다는 주장이 우세했지만… 지금은 마법이 맞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야. 그 힘을 어떻게 그리 통제할 수 있었는지 의문인 것과는 별개로, 떠올릴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으니.”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악마의 힘을 다루신다는 건 상당히 반감을 살 수 있는 일일 텐데요.”
“시샤,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 동물인지 아니?”
무슨 말이지?
어머니가 나와 눈을 맞추었다.
“네 말이 맞아. 이 나라의 황제가 악마의 힘을 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래서 말야. 다들 한 번쯤은 이런 의문을 품고 있을걸.”
어머니가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찻잔을 내려놓으며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것이 정말 악마의 힘이 맞는가?”
나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
마법에서 악마의 힘이라는 프레임을 벗겨 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목표했던 반응이었으므로.
불행을 가져오는 제어할 수 없는 힘. 그것이 기존에 마법이 가진 인상이었다면.
황제의 패로서 재조명될 마법은 달라야 했다.
그렇기에 꽃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법으로 새로운 첫인상을 만들려 한 것이었다.
“황제이지 않나.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전쟁에서 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기도 하고.”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톡톡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단순한 건지, 간사한 건지, 대중은 황제가 악마의 힘을 쓸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리의 승리가 악마의 힘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으니.”
이야기를 끝낸 어머니가 나와 이아페를 한 번씩 바라보며 질문했다.
“그래서 우리 두 젊은이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동의합니다. 그 힘이 그토록 생산적인 힘이란 사실은 다소 놀랍지만요.”
이아페가 마법이라는 의견에 힘을 실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사실 마법이 나쁜 힘이 아니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마법사들에게는 조금 씁쓸한 일이겠네요.”
내가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역사 속에서 마법사들이 그토록 숱한 탄압을 받으며 인식을 바꿔 보려 했지만, 바뀌지 않았던 ‘악마의 힘’이라는 선입견.
그런데 황제와 연관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리도 단순히 전환될 수 있는 사고였다니.
‘하지만 계기가 어찌 됐든, 유리한 흐름이 생겨난 것은 분명해.’
지금은 씁쓸함을 감춰 두고, 그저 이 흐름을 잘 타서 사람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는 데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티타임은 꽤나 오랜 시간 이어졌다.
비알로는 배탈이 났다며 저녁 자리에까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손수 약을 들고 갔지만, 그가 빨리 잠이 든 모양이라며 소득 없이 돌아왔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와인까지 한 사발씩 마신 후에야 자리는 파했다.
“감사했습니다, 시샤 님.”
이아페를 배웅하기 위해 저택 앞으로 나갔다. 그가 많은 사람이 배웅하는 것은 불편하다며 거절했기에, 마차가 오는 동안 이곳에는 나와 그 둘만 남았다.
기분 좋은 바람을 타고 꽃향기가 느껴졌다. 나는 살짝 날리는 연보라색 머리칼을 한곳에 모아 오른쪽 어깨로 내려오도록 정리했다.
이아페는 오늘의 과외가 어땠을까. 나는 무척 재밌었지만 이아페에게는 조금 불편하기도 했을 터다.
“미안해요, 갑자기 가족들이랑 함께해서 당황했을 텐데.”
“아닙….”
내 말에 바로 대답하려던 이아페가 잠시 고민하더니 살짝 울상을 지었다. 그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티타임, 저녁까지도 전부 일대일로 하는 것이 상이었는데.”
마치 토라진 것만 같은 말투.
장난스러운 태도였지만, 살짝 오른 취기 때문인지 나도 괜히 그의 말에 맞춰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아페의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고개만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래요? 그럼 어떡할까요?”
나와 눈이 마주친 이아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상을 주세요, 시샤 님.”
다른 상을 달라고?
특별 과외가 본품이고 티타임, 식사가 사은품인데 사은품을 제대로 못 받았다고 본품을 하나 더 달라고 하는 느낌이었지만….
내 입은 제멋대로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좋아요.”
이아페가 눈을 휘며 참았던 숨을 살짝 내쉬었다.
불어온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살짝 헝클였다.
목을 두른 크라바트를 살짝 당겨 느슨하게 만든 그가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오른쪽, 왼쪽. 짙은 보랏빛 눈동자가 날 모두 담겠다는 듯 느리게 움직인다.
달빛에 비친 그의 미소는 마치 달을 집어삼킨 듯 환했다. 휘어진 눈꼬리가 어쩜 저렇게 예뻐 보이는 건지.
나도 모르게 그의 눈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이아페가 살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그의 긴 속눈썹에 손가락이 닿을 뻔한 순간.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지?’
심장이 요동쳤다. 황급히 손을 거둬들였다. 그때 이아페가 멀어지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다음에.”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내 손바닥을 부드럽게 쓸더니 그대로 당겨 입을 맞추었다.
시선은 여전히 나와 마주한 채로.
찌릿,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꿈속에 있는 듯 몽환적인 기분에 휩싸였다.
그가 약간 고개를 돌려 내 손을 제 뺨으로 옮겼다.
“소원은 다음에 말할게요, 시샤 님.”
“아….”
“그래도 될까요?”
그가 응석을 부리는 고양이처럼 굴었다.
“…안 될 게 뭐가 있어요?”
머리로는 지나간 버스는 못 잡는다, 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입이 뇌의 명령을 받지 않고 자기 혼자 날뛰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유교걸의 손은 아까 제멋대로 뻗은 것이 미안했는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걸로 하나씩이네요, 소원.”
헤헤, 하고 웃으며 오른손을 이아페에게서 황급히 빼내어 왼손 안에 숨겼다.
이아페가 시선을 살짝 아래로 옮겼다.
“마차 왔어요. 조심해서 가요, 이아페.”
약간 아쉬운 듯한 표정의 이아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잘 자요, 시샤 님.”
“이아페도요.”
마차는 서서히 멀어져 갔지만 이 자리에 남은 잔물결에 내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미친 건가.’
내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가를 만지고 싶었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갑작스레 그날 가면무도회의 발코니에서 불었던 바람과 조금은 따뜻해진 지금의 바람이 머릿속에서 겹쳐져서 불어왔다.
저녁과 함께 먹은 와인에 취한 게 분명하다. 부러 뺨을 찰싹 치고는 몸을 돌려 저택으로 돌아갔다.
* * *
공작저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항상 느껴지던 익숙하면서도 기묘한 감각이 좀 더 강하게 이아페의 몸을 스쳤다.
신성력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정기 축성 중이었습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소년이 이아페를 발견하고 활기차게 설명했다.
공작가 안에는 작은 벌레조차 없었다. 신성능력자들이 거주하며 정기적으로 미물과 안 좋은 기운들을 없애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의 이아페는 이 축성으로 자신이 사라지진 않을까 매번 걱정했다.
지금에서는 자신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야말로 마법이 악마의 힘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
이아페는 짧게 대답하고는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이아페 도련님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갓 공작저에서 일을 시작한 어린 소년은 제 능력을 발휘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나는 듯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그의 모습에서 어릴 적 보았던 한 소년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네가 이아페 도련님이구나!〉
〈…너는 이름이 뭔데?〉
〈맞혀 봐. 그럼 특별히 좋은 꿈 꿀 수 있게 도전해 볼게.〉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뻔뻔했지.
그 뻔뻔함으로 자신을 속여 왔던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배신감보다는 체념을 느꼈다.
〈죽이지는 말아 주세요, 아버지. 제가… 제가 잘 해결할 수 있어요.〉
〈자, 이 돈 가져. 대신 나에 대해 아는 체하지 마. 네가 하려던 짓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이 돈이 더 클걸.〉
제가 내뱉었던 말들은 선명했으나 그것을 들은 상대의 표정은 흐리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때 그 자식의 표정이 어땠더라?
상처로 가득 덮여 있어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끝까지 그럴듯하게 슬픈 척, 상처받은 척. 기만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 같다.
“위선자 새끼.”
제 방에 들어선 이아페가 속에 든 한마디를 뱉었다.
그가 한쪽 손을 들어 보았다. 시샤의 손을 잡았던 아찔한 감각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제 손을 뿌리쳤을 때의 공허함도.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기습했다. 조급함이 차올랐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사랑받을 수 없다. 제 욕심으로 노력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모두 자신을 떠나간다.
어쩌면 당신도 마찬가지일까.
이아페는 뒤로 기대어 앉아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렇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안 되는데.’
태양같이 빛나는 사람. 밤낮에 상관없이 홀로 어둠을 밝힐 수 있는 사람.
미움받아서는 안 되는데. 더 자연스럽게 다가가야 하는데.
굳게 다문 이아페의 입술이 열리며 뜨거운 한숨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