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5
@5. 아무래도 선빵을 날린 것 같다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과 함께 나타난 이아페의 형.
형이 흑마법으로 이아페를 죽이려 하자, 이아페는 마법으로 대응하던 중 그를 죽이고 만다.
마법의 상징 그 자체였던 이아페였기에 이 사건은 큰 파장을 일으켰고, 마법은 결국 ‘악마의 힘’이라는 평판을 다시 얻는다.
‘그래도 비알로만 입을 다문다면 내가 마법사라는 게 알려지지는 않을 거야. 그럼 계속 이렇게는 살 수 있을 테니 역시 몸을 사리는 게….’
아니, 잠깐.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비알로가 내가 마법사라는 걸 밝힐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눈치를 보고 실실 웃으면서?
게다가… 시샤가 그토록 원했던 마법을 자유로이 쓰는 삶을 저버리면서?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나.”
“왜 그러세요, 아가씨?”
“내가 졸렬했어. 나만 잘 살아서 되는 게 아니었던 거야.”
“비알로 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화들짝 놀라는 리나를 꼬옥 안으며 나는 결심을 내뱉었다.
“미래를 바꿔야겠어.”
도서관을 찾은 후에는 이아페를 보필하며 옆에서 지켜보자.
아무런 비극도 일어나지 않게 하자.
그렇게 마법의 몰락을 막자.
“네, 아가씨. 미래는 정해진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리나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자로 태어나서 내 이름 석 자… 아니, 여섯 자를 역사에 남기겠다는 배포는 있어야지.
해피 엔딩을 꿈꾸는 눈이 반짝 빛났다.
* * *
“일찍 오셨네요, 이아페 님. 더 쉬다 오실 줄 알았는데.”
이아페를 따라 방에 들어온 라온이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으로 툴툴댔다.
아니나 다를까, 제 고용주는 의자에 기대어 앉자마자 일거리를 던졌다.
“슈레기와 도그베의 관계에 대해 알아봐.”
한숨을 쉬던 라온의 시선이 이아페가 책상 위에 던진 인형으로 향했다.
“웬 소원 인형이에요?”
“머리를 자라게 해 준대서.”
대체 저 웃기지도 않는 농담의 숨은 뜻은 뭘까.
라온이 이아페의 머리를 힐끗 바라봤다. 아직 숱은 많아 보이는데 벌써 노후를…?
제 고용주는 머리에 정말 진심인지, 이런 질문도 했다.
“신성력으로 머리카락이나 손톱도 자라게 할 수가 있나?”
“그런 게 가능했다면 교황님의 머리가… 흠흠.”
“신성 모독이군.”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뒤를 상상하게 만들었잖아.”
“열린 결말이라고요.”
“교황님의 머리가?”
“으악!”
더 말을 해 봤자 득이 될 게 없을 듯해, 라온은 입술을 삐죽대기만 했다.
대충 알겠다고 하고 나가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럼 마법으로는?”
라온이 멈칫했다.
그가 조금 굳은 표정으로 이아페를 바라봤다. 이 집안에서 마법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건 금기가 아니었나.
“불가능하단 거 아시잖아요.”
이 힘은 응용이라는 게 불가능하다.
불, 물, 바람과 같은 기초적이고 단순한 형태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느 선을 넘으면 폭주로 이어진다.
제대로 제어하지도, 응용하지도 못하는 힘.
그것이 마법이 악마의 힘이라 불리며 배척을 당하는 이유였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사람이 이걸 묻는 이유는 뭘까.
“이아페 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문득 궁금했을 뿐이야. 나가 봐.”
라온이 입을 벙긋댔다. 하지만 더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겠지.
결국 그는 말없이 문을 나섰다.
텅 빈 방에 남은 이아페는 소원 인형을 집어 들었다.
살짝 힘을 주자 머리통이 터질 듯 부풀었으나, 터지기 직전 그는 힘을 뺐다.
소원 인형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소원이 이뤄진다. 그런 미신은 예전부터 쭉 있어 왔다.
물론 말 그대로 미신일 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태도는 너무 당당했다.
시장 바닥에서만 파는 것이었기에 자신이 모른다고 생각해 이런 장난을 친 걸까.
아니면, 그녀가 직접 다른 힘을 불어넣은 인형인가.
이아페의 입술이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느낀 게 얼마 만인지.
그녀가 마법사라는 사실에서 기인한 가능성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채운다.
마법으로 머리를 길게 한다니, 그런 제어가 가능할 리 없다.
하지만 만약 그것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럼 어쩌면 마법도….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미처 버리지 못한 기대가 고개를 들었다.
“시샤 아르비나.”
그녀의 이름을 낮게 읊조렸다. 혀에 감기는 단어의 감각이 묘했다.
‘이상한 여자.’
무슨 부탁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은 다시 찾아가 볼까.”
이아페는 인형을 책상 가장자리에 던져두었다가, 괜스레 계속 눈에 들어와 서랍에 넣었다.
서랍 문을 닫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 * *
“리나, 아직? 아직 아무 편지도 안 왔어? 아니면 뭐 비둘기가 쪽지를 매달고 왔다거나? 응?”
눈도 못 뜨고 퍼붓는 질문 폭격에, 리나가 절도 있는 손길로 날 일으키며 답했다.
“흐음, 왔죠.”
“뭐? 어디서!”
“노임포턴스 남작가, 루스베티 백작가에서 다과회 초대장이 왔어요.”
“그게 끝이야?”
“아! 하나 더 왔네요.”
“정말?”
“딜리오스 후작가에서의 가면무도회 초대장이요.”
리나가 심드렁하게 전달한 정보들에 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리나는 내 미간을 눌러 펴 주었지만, 손가락이 사라지자마자 다시 미간에는 주름이 잡혔다.
오늘로 이아페를 만나고 온 지 일주일째.
그런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니.
“그럼 외출 준비를….”
“또 물에 가시는 거면 저 퇴사해요, 아가씨.”
“왜애, 봄인데. 날도 풀렸겠다 물놀이 좀 할 수도 있지.”
“그러니까 수달도 아니고 누가 봄에 일주일 내내 물놀이를 하냐고요.”
“내가….”
“특히 얼마 전까지 열이 펄펄 끓으셨던 분이! 그리고 설마… 깊은 물까지 들어가시는 건 아니죠?”
“응? 아냐, 아냐.”
물론 맞았다.
네 군데의 호수를 열심히 헤엄치고 잠수하며 도서관을 찾았으니까.
어쩌겠는가.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는데.
하지만 도장 깨기를 하면 할수록 줄어드는 것은 의욕이요, 느는 것은 욕밖에 없었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코레아리아의 도서관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을뿐더러, 도서관은 마력을 살짝 불어넣어야 봉인을 풀고 그 모습을 드러내니까.
그나마 원래의 시샤가 시종과 동행하는 것을 꺼려 해 외출을 홀로 해 왔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물에 젖은 것까진 숨길 수 없지만, 자유롭게 도서관을 찾을 수는 있으니.
‘그냥 이아페를 찾아가 볼까.’
원하는 답을 이끌어 내려면 다급해 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해 가만히 있었지만… 슬슬 기다림도 한계다.
일단 머리를 좀 식히자.
나는 유령처럼 스르르 걸어가 창가에 섰다.
그런데 잠깐. 저택 정문으로 걸어오는 저 사용인의 차림새는….
‘거꾸로 보고 누워서 봐도 카일라인 가의 사람이잖아!’
당장 문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나를 리나가 펄쩍 뛰며 말렸다.
“대체 슈미즈 바람으로 어딜 가시려고요! 제가 나가 볼게요.”
“바로 답을 줄 테니 받아 가라고 전해.”
리나가 나간 후, 나는 방을 이리저리 초조하게 오가며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 말을 전하기 위해 다시 태어나서 언어를 배우고 문장을 익힌 뒤 이제야 말을 시작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때, 드디어 문이 열렸다.
“리나, 얼마나 기다렸는데!”
“3분 지났어요.”
리나는 카일라인 가에서 받은 편지를 건넸다.
나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펼쳤다.
걱정과 긴장으로 심장이 두근댔다.
내일 방문드려도 되겠습니까? – 이아페 카일라인.
“억!”
“깜짝이야!”
“리나, 미쳤나 봐! 와! 호우!”
이번에는 면접 탈락 문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선명하게 적힌 이아페의 이름. 지난번 받았던 편지에는 없던 것이었다.
이로써 지난 편지는 이아페가 쓴 게 아니라는 것도 밝혀졌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리나의 두 손을 잡고 춤을 췄다. 그리고 거의 날아갈 듯이 테이블로 가 편지를 꼭꼭 눌러썼다.
네, 당연하죠. 내일 저는 하루 종일 시간이 되니 아무 때나 오시면 됩니다. 대기하다가 불편함 없이 모실게요. 혹시 드시고 싶은 차나 디저트를 미리 말씀 주시면….
한 자 한 자 신이 나서 열심히 쓰던 중 손을 멈췄다. 그리고 리나에게 편지를 보여 주었다.
“이거 어때 보여?”
“상대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으신 게 상당히 티가 나는 한편, 매우 들떠 보이시네요. 그리고 낮은 자세로 맞춰 주려는 것을 보니 저쪽이 갑, 이쪽이 을인 것이 확실….”
“아냐, 거기까지만 해.”
팩트 폭행으로 뼈를 때리는 리나의 말을 막고, 나는 편지지와 펜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최대한, 대충 휘갈겨 편지를 썼다.
그러시든지요. – 시샤 아르비나.
* * *
다음 날, 드디어 아르비나 후작저에 이아페 카일라인이 등판했다.
나는 결승을 앞둔 선수처럼 크게 심호흡했다.
‘들숨에 안정, 날숨에 용기.’
이아페의 기백이 후작가 저택 전체를 메우는 것만 같았지만 미리 겁먹지는 않기로 했다.
‘내가 이 구역의 시라소니다.’
준비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사용인이 응접실 문을 열었다.
반쯤 열린 문틈 새로 기다란 실루엣이 보였다.
소파에 살짝 기대어 선 채 응접실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던 이아페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낮의 고양이처럼 나른한 낯을 하고서.
무표정에서 어떻게 저런 다채로운 색을 뿜어낼 수 있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그리고 그 얼굴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 틈으로 들어가긴 조금 좁을 것 같은데.”
문을 열어 주던 사용인도 멈칫한 채 손을 멈추고 있었다. 그는 내 장난스러운 말에 화들짝 놀라며 문을 마저 열었다.
열린 문으로 들어서는 동안, 이아페가 걸어와 내 앞에 섰다.
“예상보다 일찍 찾아 주셨네요.”
나는 허세를 부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물론 속으로는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영애께서 꽤나 흥미로운 시간을 만들어 주실 것 같기에.”
그가 살며시 눈을 접으며 읊은 문장에 문밖의 사용인들이 헙,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동시에 나는 눈을 빛냈다.
이건 명백한 그린 라이트다.
그런 그린 라이트 말고, 내 이야기에 그가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뜻의 그린 라이트!
아마 슈레기와 도그베에 대한 일이 잘 마무리된 모양이다.
“일단….”
“잠깐!”
황급히 이아페의 얼굴 앞으로 두 손을 올리며 말을 막았다.
사실은 말만 막으려고 했는데, 실수로 그의 입을 정말 막아 버렸다.
“…….”
손바닥에 느껴지는 부드럽고 도톰한 촉감. 깜짝 놀라 황급히 손을 뗐다.
위로 마주한 이아페의 시선이 조금 흉흉했다.
어떡하지, 아무래도 내가 선빵을 날려 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