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50
@50. 추측의 틈
“약 1달 후가 물빛 축제라는 건 알고 있겠지.”
황궁 내 황제의 개인 서재. 칼린느가 소파로 걸어가 느릿하게 상체를 기대었다. 그녀를 따라가 옆에 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7월이 다가오네요.”
매년 7월 초 즈음, 더위의 시작과 함께 열리는 수도 로시에르체의 가장 큰 축제.
너무 뜨거운 여름을 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부채 같은 여름 용품과 차가운 음료를 팔고, 수도의 큰 강인 라일 강과 리돈 강에서 물놀이를 즐기곤 한다.
아, 물론 깊은 물에서 수영하진 않지만.
정확히는 배우질 않아 못 하는 거라고 해야 하나.
‘물빛 축제라면 분명 이아페에게도 큰 전환점이 되는데.’
원작에서도 나온 적이 있는 축제다.
원작에서 이아페는 여기서 형, 일로제 카일라인을 마주친다.
사이가 좋지 않은 형은 이아페에게 모진 말을 던질 것이고, 이아페는 떠오른 기억 하나에 또다시 상처를 받겠지.
그때 이아페의 마음을 보듬는 것이 바로 칼린느다.
칼린느는 이아페의 상처를 잊게 만들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다. 이아페가 그런 그녀에게 다시 매료되는 것이 바로 물빛 축제 에피소드였다.
뭐, 그것보다 칼린느와 세디안의 축제 꽁냥 모먼트들이 3배는 더 많이 나왔었지만.
‘그런데 지금 칼린느가 물빛 축제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아마….’
“물빛 축제에서 마법을 공표하실 생각이십니까?”
기대를 품은 시선을 칼린느에게 보내는데, 이아페가 정확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내놓았다.
칼린느가 부드럽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래. 마법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 힘을 제어할 수 있다는 걸 밝힐 거야. 가능하겠나?”
“물론이죠, 드디어….”
상기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처음에는 다소 막막했지만, 지금이라면 나도 자신 있게 마법이 제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동안 단원들의 코레아리아어 실력도 꽤나 올라왔고, 주문도 착실히 익혀 나가고 있으니.
곧 다가올 일이라 생각했음에도, 막상 공표를 한다고 하니 심장이 두근댔다.
“이미 알겠지만, 그날 데슬로에서의 일이 성공적으로 퍼지고 있거든.”
“네. 귀족들은 물론, 평민들에게까지 소문이 퍼진 모양이더군요.”
“그대와 우리 보좌관이 손을 써 준 덕분에.”
칼린느가 이아페와 보좌관을 바라보며 눈썹을 으쓱했다. 보좌관이 기분이 좋은 듯 고개를 한껏 치켜들었다.
“역시 마법이라는 것을 미리 밝히지 않은 것은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이아페의 말에 칼린느가 표정을 찌푸렸다. 뭔가 떠올린 그녀의 표정이 생각만 해도 질린다는 듯 썩어 들어갔다.
“오늘도 정무 회의에서 대체 그 힘의 정체가 뭐냐고 물어보는 것들이 얼마나 많던지. 같은 질문 또 하면 베어 버린다고 하니 그제야 입을 다물더군.”
“하하, 농담이셨죠?”
“아니, 진심이었는데. 내 호위가 몸소 칼을 뽑아 들고 대기했지.”
칼린느가 세디안을 흘끗 눈으로 가리켰다. 당연한 것을 왜 묻지, 하는 칼린느의 표정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오… 역시 말을 허투루 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온몸에 돋는 소름을 감추며 간신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래, 칼린느는 이런 사람이었지. 코레아리아의 흔적을 찾아오지 않으면 내 혀를 뽑겠다고 선언했던 칼린느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세디안을 곁눈질했다. 다행히도 세디안의 칼집이나 옷에 피가 튀어 있는 것 같진 않아서, 조금 안심했다.
“그런데 어차피 다들 마법이라고 확신을 해 대던데. 밝혀도 상관은 없지 않았나?”
“아뇨. 마법인 걸 밝히고 시작했다면 소문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겁니다.”
이아페의 말대로, 지금 우리에게 긍정적인 흐름이 생겨난 것은 소문의 온도가 미묘한 탓이 컸다.
‘마법일 거라는 추측과 마법이라는 확신은 다르니까.’
추측에는 틈이 있다. 그 틈은 상상의 여지를 끼워 넣기도, 단정을 피함으로써 생각의 여유를 선물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황제 칼린느가 사용한 그 힘은 죽어 가는 꽃을 살린 특별한 힘이야.’
‘특별한 힘이 마법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마법이 악마의 힘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추측은 모이고 모여, 이 힘이 마법이라는 가능성이 커짐에도 긍정적인 방향성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만약 마법이라는 걸 밝히고 시작했다면?
“사람들은 처음부터 색안경을 썼겠죠.”
“죽어 가는 꽃을 살리다니 처음부터 악마의 저주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
소파 팔걸이에 팔꿈치를 받친 칼린느가 손가락으로 도톰한 입술을 문질렀다.
저 언니는 어쩜 입술에 각질 하나도 없으실까. 문득 그녀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찰나, 칼린느의 시선이 내게로 미끄러졌다.
“이번 축제가 더욱 중요하겠어. ‘마법’의 새로운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기회이니.”
그녀가 허리를 펴고 생긋, 상큼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 뒤에 건넨 말은 사정없이 나를 압박했다.
“그러니 축제에서 반드시, 좋은 인상으로 못을 박아야겠지?”
좋은 인상을 못 박지 않으면 나한테 못이 박힐 것 같았다. 특히 ‘반드시’라는 구절에서는 땀이 주룩 흐를 것 같았지만,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폐하. 제국민들에게 마법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이니만큼,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준비하겠습니다.”
마치 당연히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던 것처럼,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우리 연구단은 6명이나 되고 이아페도 있으니까, 집단 지성의 힘으로 어떻게든 되지 않겠는가!
* * *
“어렵네요.”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희망찬 발걸음으로 연구단으로 복귀했지만 생각만큼 좋은 의견을 뽑아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회의실 테이블에 놓인 커다란 종이에는 마치 판타지 만화나 소설 한 편이 펼쳐진 듯 원대한 꿈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1달이라는 시간 동안 만들어 내기 힘든 것이나, 마법과 상관이 있나 싶은 개인의 로망까지 펼쳐져 있어 별다른 소득은 없는 채였다.
아무래도 마법을 숨기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들떠서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모양이다.
“하긴… 마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서는 처음 만나는 자리니까요.”
“그야말로 마법의 데뷔탕트 무대잖아요! 호감을 쫙 끌어들일 만한 모습을 보여야만 해요.”
라온이 제 앞의 종이에 웬 지렁이 같은 용을 그리다가 고민스러운 듯 턱을 괴었다.
그가 으으음, 하고 고민하더니 아! 하는 탄성과 함께 허리를 폈다. 그가 한쪽 검지를 펼쳐 들며 말했다.
“마법으로 특수 효과를 더한 의상들을 선보이는 행사는 어떨까요?”
“특수 효과요?”
“물방울로 장식한 모자나 화염 드레스! 이런 시선을 사로잡는 특별한 의상을 만드는 거죠.”
“마법 패션쇼네요.”
“음, 눈길은 확실히 끌 수 있겠네.”
단원들이 공감의 한마디씩을 던지자 어깨에 한껏 뽕이 찬 라온이 신나서 말을 이었다.
“축제 당일에는 화려한 의상들로 볼거리를 선사하고, 잘되면 제울, 미로나 등 유명 부티크와 컬래버레이션을 할 수도 있을 테죠! 그럼 저희가 벌어들이는 수익도 꽤 클 거예요.”
역시 이아페 보좌관 짬밥. 마법의 공표로 끝내지 않고 수익 창출 계획까지 세웠다.
확실히 좋은 의견이다. 반응이 좋아서 정말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면, 마법 연구를 지속하는 좋은 원동력이 되어 줄 테고.
하지만….
“귀족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라면 적절할 듯하군.”
“지금은 적절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고 하네요?”
이아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온이 그의 뜻을 알아챘다. 역시 패턴이란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나도… 멋있을 것 같긴 한데, 크게 와 닿진 않을 것 같아.”
카실이 말을 얹었다.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솔직한 의견을 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한테 있어서는… 마법 드레스나 그냥 보석 달린 화려한 드레스나, 비슷하게 보일 것 같거든.”
“남의 일이라는 거군요.”
라온은 조금 실망한 듯했지만,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필요한 것은 제국민 전체의 인식 변화다.
일시적인 시각적 유희보다는 생활 그 자체에 깊숙이 파고들 수 있을 만한 것이어야 했다.
“음, 더위에 초점을 맞춰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때 셀라임이 손을 들고 나지막하게 의견을 냈다.
“물빛 축제가 더위가 빨리 사그라들기를 기원하는 축제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서, 마법으로 더위를 없애는 건 어떨까 해요.”
“오, 괜찮은 아이디어인데요?”
“축제의 취지와도 잘 맞겠어요.”
여름의 수도 로시에르체는 꽤나 덥다. 물빛 축제가 열리는 것도 이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고.
“그러고 보니 「파나의 에메랄드」라고, 소지자의 체온을 낮추는 마도구를 만드는 법을 본 적이 있어요.”
처음 칼린느의 앞에서 코레아리아어로 읽었던 고서에 적혀 있었지.
그때는 읽는다는 것 자체에만 집중했었는데 이렇게 쓸모가 있다.
벌벌 떨며 읽었으면서도 중요한 정보는 기억하고 있는 내 뇌, 아주 칭찬해.
“좀 더 구하기 쉬운 소재들로 만들 수 있는 마도구도 본 적이 있습니다. 책들을 찾아보면 아마 여름에 필요한 것들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이아페도 차분히 동의의 의견을 덧붙였다.
하지만 뭘까. 이 2% 부족한 느낌은.
여름, 더위, 시원한 곳… 나는 펜을 들고 앞의 종이를 톡톡 두드리며 고민했다.
그때 라온이 중얼거리고 니니안이 팩트 폭행을 했다.
“좀 더 충격적이고 화려했으면 좋겠는데…. 미쳤어? 이게 가능해? 싶은 거 말야.”
“네가 수수해서 화려한 걸 찾나 보다.”
충격적이고 화려하게 시원한 것…?
“아!”
나는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에 무릎을 탁 치는 심정으로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그런데 쾅, 소리는 나지 않았다. 촉감도 단단하면서 몰캉한 것이… 테이블의 딱딱한 촉감은 절대 아닌데?
“……?”
아래를 내려다보자, 내 주먹은 이아페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개구리 급의 순발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