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51
@51. 그가 위반한 것
어찌나 세게 내려친 것인지 그의 손바닥은 빨개져 있었다.
“주먹은 괜찮으십니까?”
“미안해요…!”
그가 황급히 내 손을 제 두 손으로 잡아 올려 살폈다. 내 손보다는 본인 손을 걱정해야 할 것 같아서 나도 그의 손바닥을 살폈다.
다행히 둘 다 이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뭐지, 이 따가운 시선은.
고개를 들어 보니 이 광경을 지켜보는 단원들의 눈에 동공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그런 게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오해할 만한 상황인 건가?
“그러니까 손이….”
“와… 나이스 캐치!”
단원들이 박수를 쳤다. 아무래도 그런 상황은 아닌 모양이라, 나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한 후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뱉었다.
“이런 건 어때요? 에르트르 광장에….”
여전히 내 손이 그의 두 손 안에 갇혀 있다는 자각도, 그것을 단원들이 계속 흘끗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였다.
* * *
“그래, 아이디어를 들어 볼까?”
“네, 폐하. 우선 이것을 만져 보시겠어요?”
나는 칼린느의 앞에 베타 테스트로 만든 마도구 몇 개를 늘어놓았다.
칼린느가 곧게 손을 뻗어 그중 하나를 잡았다. 차가운 감각을 느낀 그녀의 표정에 놀라움과 흥미로움이 스쳤다.
“이번 프로젝트의 콘셉트는, 겨울 같은 여름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여름에 에어컨 18도로 맞춰서 틀고 오리털 이불 덮고 누워 있기’로 하고 싶었지만, 두 가지 이유로 불발되었다.
첫 번째는 이곳에 에어컨이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밖을 돌아다니며 즐기는 활기찬 축제인데 이불 덮고 누워 있는 전형적인 집순이 모먼트로 임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제국민들 중에는 열사병으로 죽는 이들이 꽤 됩니다. 특히 남부에 사는 이들은 여름을 악마의 계절이라 부른다 해요.”
“그래, 물빛 축제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니까. 수도뿐 아니라 각 지역에서 파생 축제를 열어 더위가 사라지길 기원하곤 하지.”
“이 마도구들로 여름에도 마치 겨울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악마의 계절과 악마의 힘, 그 두 가지가 모두 긍정적인 의미로 반전될 수 있도록요.”
다시 한번 마도구를 손에 들고 들여다본 칼린느가 날카로운 시선을 내게로 옮겼다.
“얼마나 만들 수 있겠는가?”
“투박하지만 구하기 쉬운 광물들을 이용해 만드는 법을 찾았습니다. 아마 평시 축제 방문객의 120% 정도의 양을 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양호하군.”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뭐지?”
칼린느의 기대에 찬 시선이 똑바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며 바로 말을 내뱉었다.
“이번 여름에는… 로시에르체에 눈을 좀 내려 볼까 합니다.”
기억에 각인시키려면 이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겠어?
* * *
서서히 더위가 차오르는 6월의 어느 날.
아르비나 후작저 내의 한쪽에 위치한 연무장. 저녁이 되었으나 아직 훈련의 기합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르디엘의 머리가 저물어 가는 해의 붉은 빛을 받아 오묘한 주황빛으로 빛났다.
탁! 몇 번 합을 주고받던 그가 상대의 다리를 걸며 직후에 손목을 내리치자, 상대의 손에서 목검이 튕겨 나갔다. 다리 쪽에 균형이 쏠린 탓이었다.
“오…!”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르디엘이 상대에게 악수를 청하자, 그가 흔쾌히 손을 잡았다.
“함께 대련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르디엘 경.”
“저야말로요.”
“신성력을 쓰시면서 검술 실력까지 이렇게 좋으신 건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요, 저도 너무하다고는 생각하는데 어쩔 수 없더라고요.”
겸손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르디엘의 대답에 “우우!” 하는 야유가 이어졌다.
르디엘의 머리 위에 웬 작은 빛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로 집중되자, 빛이 뿅, 하고 물음표로 변했다.
“신성력은 이런 곳에만 쓰시는 겁니까?”
“아뇨? 이런 곳에도 쓴답니다.”
르디엘의 발아래에 약간의 바람이 일더니, 그가 공중으로 약간 떴다.
“그럼 저는 이마….”
‘이만’이라고 하려 했으나 ‘이마’에서 말이 끊겼다. 날아서 이동하려던 그의 발이 다시 땅에 닿았다.
르디엘이 뒤를 돌아보자, 기사단장 테드릭 아르비나가 그의 어깨를 살포시 누르고 있었다.
“걸어서.”
“…네.”
신성력을 이용한다면 이길 수 있는 상대겠으나, 근력으로 테드릭을 이길 수는 없었다. 더구나 기사단장이 걸어가라는데 토를 달 수가 있나.
르디엘은 입을 꾹 닫고 다른 이들과 줄을 지어 식당으로 걸어갔다.
‘아가씨와는 전혀 안 닮았어.’
아무리 생각해도 저 우락부락한 남자와 그녀가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는 것 같았다.
뭐, 굳이 닮은 점을 뽑자면 강단 있는 눈빛, 올곧은 걸음걸이, 괜히 사람을 끌어당기는 구심점으로서의 인상….
‘부녀가 맞군.’
아버지와 딸의 사이가 별로 친하진 않다고 들었는데.
습관처럼 제 손목에 찬 팔찌의 성석을 만지작대던 르디엘이 갑자기 소리를 냈다.
“윽…!”
“왜 그러십니까?”
옆에서 걷던 어린 기사가 놀라 그에게 묻자, 르디엘은 대답했다.
“오늘 메뉴… 내가 여덟 번째로 좋아하는 거야. 식당에 더 빨리 가야 돼.”
“…….”
그렇게 고기 치즈 크로켓이 메뉴로 나온 저녁 식사를 야무지게 끝낸 후. 르디엘은 이번에야말로 날아서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저 멀리, 어느새 검게 물든 하늘 아래 익숙하고도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행복한 웃음을 터뜨리는 시샤 아르비나.
그리고… 그 곁에 선 이아페 카일라인이.
* * *
“아이고, 두야….”
해가 한창 하늘에서 기세를 자랑하는 한낮.
마치 손오공의 머리띠가 조여드는 것처럼 머리가 아작 날 것 같은 지끈거림에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책상 위에 잘 우려낸 차 한 잔이 놓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이아페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걱정스럽게 이야기했지만, 생각하는 것만큼 무리하는 것이….
“맞아요.”
나는 차를 입에 가져다 댔다. 바로 마실 수 있도록 적당히 식힌 상태였기에 벌컥벌컥 마셨다. 좋아, 카페인 충전 완료.
“축제까지 1달도 남지 않았으니까요.”
어쩔 수 없다는 듯 희미하게 웃자 이아페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나는 코를 찡그리며 미소 지었다.
“신경 쓰지 마요. 차 잘 마셨어요, 고마워요.”
다행히도 아이템을 빨리 잡은 덕에, 준비는 착실히 되어 가고 있었다. 다만 내 체력이 이 강행군을 따라갈 만큼 강철 체력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지.
특히 오늘은 아침부터 머리가 핑 돌았다.
아, 영양제라도 챙겨 먹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입으로라도 내뱉으면 먹은 것 같은 플라시보 효과를 낼지도 모른다.
「비타민C, 비타민D, 아연, 마그네슘, 오메가3, 아 그리고 눈이 침침하니까 루테인….」
“네?”
“아, 아니에요.”
중얼거리는데 아직 이아페가 안 가고 옆에 있었다. 그는 내가 헛소리를 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시샤 님.”
이아페가 내 의자를 돌려 자신과 마주 보게 하고는 쪼그리고 앉았다.
걱정이 담긴 보랏빛 눈동자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에, 괜히 오기가 생겨서 나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귀가하시라고 해도, 아마 그러지 않으시겠죠?”
날 올려다보는 자세로, 그가 부드럽게 질문했다. 나는 삐걱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네. 그래도 일해야죠, 제가 단장인데….”
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연구실로 시선을 옮겼다.
니니안, 라온, 셀라임, 카실 모두가 좀비 같은 형상으로 기계처럼 쿨링 마도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연구실에 차오른 음산한 기운들이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쿨링 마도구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아페가 알면서도 물어본 것이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쓴웃음을 짓는 그의 눈빛이 처연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생각보다 빠르게 오늘치 작업이 끝이 났다. 이아페가 오늘따라 더 높아진 집중력으로 작업에 임해 준 덕분이었다.
늦은 낮의 해는 아까보다 좀 더 기울어 있었으나, 여전히 밝은 빛을 뿜어 대고 있었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몇 가지 책을 더 찾아보기로 해서 밤에야 집에 들어가겠구나 했는데, 이 정도면 저녁나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이아페의 마차로 걸어갔다. 그와 함께 다녀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차에 오르려던 그때.
“도서관은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이아페가 내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아니, 뒷덜미까지는 아니고.
두 손으로 내 어깨를 살짝 잡았다.
“왜 혼자 가는데요?”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채 그를 살짝 돌아보며 물었다. 이아페가 말없이 어깨를 잡고 있던 한쪽 손을 떼어 내더니, 위로 올렸다.
커다란 손등이 눈앞을 스쳤다. 앞머리가 들리면서 이마에 살짝, 낯선 감각이 와 닿았다.
건조하면서도 보드라운 감각.
그 상태 그대로 굳은 나는 눈을 감지도 못한 채 그저 눈동자만 굴렸다.
“흐음….”
걱정 어린 한숨 소리가 어쩐지 퇴폐적이었다.
숨을 어떻게 쉬는 거였더라.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가 내 이마를 짚은 손과 어깨를 잡은 손 모두를 떼어 냈다.
“열은 없는 것 같으나, 역시 오늘은….”
“그만.”
휙 돌며 이아페를 노려보듯 아이 컨택을 했다.
내가 왜 이런 표정을 짓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한쪽 눈썹을 기울였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다니, 너는 설렘 방지법 제1조 17항과 심쿵 금지법 제2조 5항을 위반했다.
때로는 기본 장착된 매너와 배려가 상대를 설레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서브 남주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