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55
@55. 그들의 과거(2)
이아페는 소년이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고. 자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줘야 할 의무도 없고.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으니… 음식을 먹다가 자신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아페가 제 무릎을 손으로 감싸 안았다.
“너는 이름이 뭐야?”
소년이 남기고 간 빛만 천천히 허공을 떠다녔다. 그 빛을 바라보며 이아페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 이름? 맞혀 봐!”
휘릭, 다시 테이블보가 걷혔다. 이아페가 놀라서 무릎을 감싸 안은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졌다.
“앗, 지금 자려고? 베개는 못 가져왔는데. 잘 때 자더라도 이거 먹고 자.”
소년이 가지고 온 커다란 천을 풀었다. 그 안에는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후, 사람들 피해 가면서 오느라 난이도가 극악이었어.”
“너는 좀 먹었어?”
숨어 있는 저를 위해 이렇게 해 주다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 이아페가 소년을 향해 물었다.
“음, 만족할 만큼은 못 먹었어. 갈비 5쪽, 일로니아 회 10점, 디디오 파스타 1그릇, 도넛 6개, 파베 초콜릿 5개, 그리고….”
“그만 말해.”
그러고 보니 소년의 입가에는 다양한 색상의 음식이 묻어 있었다.
“그보다 내 이름이 뭔지 궁금하면 맞혀 보라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에이, 나는 네 이름 알잖아!”
이아페는 대답 없이 입술을 삐죽였다. 거기에는 또 할 말이 없었다.
“내 이름 맞히면, 특별히 네가 좋은 꿈 꿀 수 있게 도전해 볼게. 요즘 연습 중이거든.”
소년이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힌트를 동반한 37번의 시도 끝에, 이아페는 소년의 이름을 맞혔다.
“르디엘.”
“정답!”
그것이 르디엘 체르실로프와의 첫 만남이었다.
* * *
“저게 뭐야? 사람?”
1층 복도를 지나가던 리나는 옆에서 다른 이가 밖을 콕콕 가리키자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이리로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헉, 여기로 돌진하는데 위험한 거 아냐? 근데 뭘 들고 있는 거지…?”
또 다른 사용인이 심각하게 말했다. 그러나 리나의 표정은 그보다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 아….”
리나가 가지고 가던 빨래 바구니를 털썩 떨어뜨렸다. 그녀가 황급히 문으로 질주했다.
“왜 그래, 리나?”
다른 사용인들이 그녀의 반응에 놀라 문으로 달려왔다. 뭐 하는 거야, 리나! 후작저에서 마구 달리는 예의 없는 하녀를 향해 집사가 호통을 쳤다.
이를 무시하고 빠르게 달린 리나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무슨 일인데?”
“저거… 우리 아가씨잖아!”
리나의 떨리는 목소리에 사용인들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제야 남자에게 안긴 연보랏빛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방으로 데려가 눕히겠습니다.”
빠르게 문을 연 덕분에 시샤를 안아 든 르디엘은 바로 저택으로 들어왔다. 리나는 침착하게 그를 시샤의 방으로 안내했다.
이내 후작 부부와 비알로가 시샤의 방으로 달려왔다. 전부 놀란 채였다. 특히 테드릭은 거의 거품을 물고 쓰러질 기세였다.
“이… 이게 무슨 일인가?”
“홀로 정원을 달리다가 쓰러지신 것을 목격했습니다.”
“뭐? 누군가에게 쫓긴 것인가?”
“아뇨, 혼자셨습니다. 운동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군!”
“피로가 누적되신 데다, 평소 무언가… 에너지를 과도하게 외부로 분출하신 듯합니다. 그로 인해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갑자기 달리자 몸이 방어적으로 반응해 쓰러지셨습니다.”
“과로! 과로란 말인가! 아무래도 퇴직을 시켜야겠어요, 티오라. 쓰러질 때까지 일을 하다니!”
르디엘은 테드릭의 호들갑을 보며 조금 놀랐다. 평소 기사단에서 보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시샤가 택한 길이야. 퇴직을 시키니 마니 하는 얘기는 애 앞에서 절대 꺼내지 마. 다만 일하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도록 조치는 취해야겠군.”
티오라가 이마를 짚었다. 그녀의 눈에도 걱정이 담겨 있었으나, 이성적으로 남편을 진정시켰다.
한편 비알로도 이 광경을 보고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청소 일을… 그렇게나 빡세게 한다고?’
황궁에는 어디에든 수많은 사용인들이 있다. 그래서 시샤가 하루 종일 청소만 한다, 라고 해 봤자 정리·정돈 정도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쓰러질 정도로 청소를 시키다니.
저가 시샤를 조종하는 것은 되어도, 막상 남이 시샤를 그렇게 부려 먹었다고 생각하니 배알이 뒤틀렸다.
“비알로, 너도 진정해라.”
티오라가 비알로의 등을 쓸어내렸다. 저도 모르게 표정을 무섭게 굳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동생을 걱정하는 완벽한 오빠의 모습을 보이긴 한 것 같다.
한 건 했다는 생각과 함께 그는 애달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 의사는 불렀나?”
“제가 치료하겠습니다. 신성력을 이용한 치료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침대에 걸터앉은 르디엘이 시샤의 얼굴 위로 손을 가져갔다.
“체내에 뭉쳐 있는 곳들을 풀겠습니다. 심각한 상태가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
르디엘의 손에서 옅은 빛이 빠져나와 시샤의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어쩔 줄 몰라 하던 테드릭은 그제야 꼭 쥐고 있던 주먹을 폈다.
“자네가… 마침 지나가고 있어서 다행이군.”
“그러게요. 제가 행운을 몰고 다니는 습성이 좀 있습니다.”
르디엘의 진지한 대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할 말을 잃었지만, 그 말이 시샤가 무탈히 깨어날 수 있다는 뜻 같아서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괜찮겠는가?”
“네. 혹시 모르니 오늘 밤은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그래… 고맙네.”
시샤의 방에 우르르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작은 소음에 시샤가 이따금 인상을 찌푸리자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방 밖을 맴돌던 사용인들도 너무 우글거리면 오히려 편히 쉬지 못할 테니 돌아가라는 후작의 명에 제자리로 향했다.
방에 남은 르디엘은 침대 옆에 둔 의자에 앉아, 가만히 시샤를 바라보았다.
문득 아까 사색이 되었던 이아페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가 그리도 놀란 표정을 지은 것은, 형인 일로제가 떠날 때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건가.’
이 사람을.
감정이 없는 놈이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저도 그리 매몰차게, 모른 척하지 않았던가.
뭐, 이제 다 옛일이지만….
“으으….”
시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보이지 않았다.
“…효력이 없나.”
르디엘이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침대맡에 제가 주었던 작은 성석이 보였다. 약간 빛이 바랜 듯했다.
그가 성석을 손으로 그러잡아 후, 입김을 불어 넣었다. 성석의 색이 본래대로 밝아지는 찰나, 다시 탁하게 돌아왔다.
“역시 안 되는 건가.”
무언가 영향을 미치긴 한 것 같은데, 그 내용은 두꺼운 껍데기를 씌운 듯 보이지 않는다.
르디엘이 아래로 손바닥을 펼쳤다. 그것을 시샤의 이마 위로 뻗으려 한 순간.
“혹시 뭐라고 하셨나요? 잘 못 들어서요!”
리나가 멀리서 물수건을 가지고 걸어오며 물었다. 르디엘은 그녀를 향해 생긋, 미소 지었다.
“혼잣말입니다.”
르디엘이 시샤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뻗고 있던 손이 그대로 나아갔다. 찌푸린 미간 위에 손가락을 얹자 약간 표정이 풀어졌다.
‘다행이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그 변화에 제 마음이 너울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 * *
꿈에서는 수많은 기억이 스쳤다.
나를 지켜 줄 사람이 나밖에 남지 않았던 15살 무렵.
아르바이트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던 빚 때문에 가고 싶던 국문과 대학원을 포기하고 취업을 결심하던 순간.
모든 게 내 선택이고 내가 책임지는 게 당연하기에 후회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소서를 쓰고 집에 오는 길에 맞이한 마지막 순간에는, 이상하게 그때 다른 선택을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그리고 찾아온 죽음. 문득 그때 한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게 기억났다.
〈당신에게 모든 것이 달렸어요. 부탁해요.〉
평온한 말투였지만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미 죽었는데 뭘 부탁한다는 거지? 그런 생각을 했는데.
나는 되살아났다.
시샤 아르비나로서.
내가 겪은 크고 작은 순간들이 꿈속에서 스쳤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선 어딘가에 서 있었다.
선명한 푸르름이 가득한 녹음 사이에 위치한 하얀 테이블.
그 앞에 한 여자가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머리 색처럼 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로.
‘지난번 꿈에서 본 여자야.’
그쪽으로 다가가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여자를 다시 바라봤다.
그녀는 연신 어딘가를 바라봤다가, 시선을 내려 멍하니 테이블만을 바라봤다가 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때,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라카루스?〉
여자는 화들짝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짙은 실망감이 비쳤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밝은 머리 색을 가진 따뜻한 인상의 남자가 서 있었다. 지난번 꿈에 나온 남자는 아니었다.
〈「안녕, 아이론.」〉
잠깐, 아이론?
나는 놀라서 여자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아이론이라면 분명, 그 도서관의 주인이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란 말야?
정말 아이론이 내 꿈에 나온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그녀의 이름에 몰입한 바람에 꿈에서 드라마를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안녕, 히아스!」〉
아이론이 실망감으로 가득했던 기색을 금세 감추고, 밝게 웃으며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히아스라고 불린 남자는 천천히 걸어오며 조금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기다리고 있었구나. 그 사람.」〉
〈「…응. 아마 못 올 것 같지만. 그런데 무슨 일이야?」〉
어느새 가까이로 다가와 앉은 히아스가 테이블 위에 작은 병을 올려놓았다. 투명한 안으로 말린 꽃잎들이 보였다.
〈「목이 안 좋다고 들었어. 달여 마시면 도움이 될 거야.」〉
〈「와, 고마워. 정말 잘 마실게. 하지만 히아스….」〉
아이론이 말끝을 흐리며 입을 부루퉁하게 만들었다. 히아스가 그녀의 표정을 걱정스럽게 살폈다.
이내 아이론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사실… 목이 안 좋은 건 꾀병이야.」〉
〈「뭐? 하하, 다행이네.」〉
꾀병이었다는 말에 히아스는 다행이라고 표현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정말 아프지 않았다는 것인 듯했다.
〈「하지만 정말로 조금 더 있다가는 목이 가 버렸을걸.」〉
〈「응. 넌 쉬는 날도 없이 이야기를 하고 들어야 하니까.」〉
〈「맞아, 맞아.」〉
아이론이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는 히아스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저기….」〉
입을 열던 히아스가 멈칫했다. 그러고는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일어났다.
〈「이만 가 볼게. 너 기다리는 사람 온 것 같다.」〉
히아스가 어딘가를 힐끗 바라봤다. 아이론의 시선이 그곳으로 황급히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