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56
@56. 걱정한다는 것
〈「가 볼게. 차는 잘 달여 먹어.」〉
히아스가 자리를 떠나고, 혼자 남은 아이론은 그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도 없는데….〉
그 순간, 수풀 너머의 나무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론.〉
어두운 머리 빛을 가진 키가 큰 남자. 지난번 꿈에서 봤던 사람이었다.
〈라카루스!〉
아이론의 표정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마치 태양을 머금은 듯 빛이 났다. 좀 전에 꽃차를 받았을 때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아이론이 라카루스에게로 달려갔다.
〈「다들 저리 가!」〉
그녀의 앞을 막고 있던 수풀이 저절로 몸을 눕혀 길을 만들었다.
어떠한 것에도 방해받지 못한 그녀의 걸음은 빠르고도 가벼웠다.
아이론은 라카루스의 허리를 끌어안았고, 라카루스는 그런 그녀를 으스러질 듯 꽉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 아이론.〉
〈나도. 이번엔 못 오는 줄 알았어.〉
라카루스가 아이론의 이마에 입 맞췄다. 아이론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마치 그 시간을 온전히 느끼는 듯한, 더없이 행복한 표정이었다.
나는 음악극보다 더 재밌는 이 로맨스 드라마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다. 팝콘이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아이론은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달려왔어?〉
〈아니.〉
〈그럼?〉
〈날아왔지. 들킬까 봐 조금 간이 떨리긴 했지만.〉
〈많이 덥지? 나 선물 준비했어.〉
눈을 휜 아이론이 싱긋, 웃으며 아무것도 없는 들판을 가리켰다.
〈「나랑 눈사람 만들래?」〉
주문이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말이지만 그건 차치하도록 하자.
허허벌판에 갑자기 하얀 바람이 불더니, 투명한 판이 생겨났다. 아이론이 손가락을 둥글게 그리자, 이에 따라 투명한 그것은 점차 위로 쌓여 나갔다.
그리고….
‘미쳤다.’
커다랗고 웅장한 집이 생겨났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자, 가시죠, 도련님.〉
아이론이 장난스럽게 허리를 숙이며 얼음집을 손바닥으로 가리켰다. 라카루스가 그런 그녀를 확 안아 들었다.
〈함께 가실까요, 아가씨?〉
라카루스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고 속삭이며 걸음을 옮겼다. 아이론이 싱그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이번엔 얼마나 있다가 갈 거야?〉
〈이틀 정도.〉
〈짧네….〉
〈상황이 안 좋으니까. 너랑 평생 함께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장거리 커플인 모양이다.
함께 있는데도 쓸쓸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을 보는데, 어딘지 내 심장도 쿡쿡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세상이 일렁거리더니 흐려졌다가, 겹쳐졌다가 했다.
그리고.
“아가씨, 드디어 일어나셨군요.”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르디엘이 옆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리나는 울컥한 표정으로 “아가씨가 깨어나셨어요!”를 외치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소설에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의 주인공이 된 것 같지만,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펜과 종이! 펜과 종이!”
“네?”
“펜과 종이를 좀…!”
내 다급한 외침에 르디엘이 얼떨결에 내 책상에서 펜과 종이를 가지고 침대로 달려왔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지금 생각난 것을 황급히 종이에 끄적였다.
「나랑 눈사람 만들래?」 얼음 저택. 귀신의 집으로 딱임.
후, 그제야 안심한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꿈에서 깨자마자 30초 안에 기록하지 않으면 다 까먹기 십상이라고.
근데….
“르디엘 경이 여기에 왜 있어요?”
메모를 적은 종이를 접어 손에 쥔 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르디엘이 음, 하더니 능청스럽게 답했다.
“생명의 은인 자격으로 있다고 해 둘까요?”
“엥, 무슨….”
불현듯 어제저녁의 일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니까 분명 이아페랑 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었는데. 반칙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아페가 날 앞질렀고, 갑자기 머리가 핑 돌더니….
와, 진짜로 쓰러졌다고?
“르디엘 경이 날 데려온 거예요?”
“저는 빈말을 못 하니, 깃털 같진 않았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말을 해도 뭔…. 그보다 이아페는요?”
네가 정말 날 살린 거라면 그 옆에 있던 이아페를 봤을 거 아냐. 내 물음에 르디엘이 쉿, 하고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시샤!”
곧바로 문이 벌컥 열렸다. 부모님이 내게로 달려왔다. 아버지는 양손을 든 채 어으, 어으, 하며 침대맡에서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나 함부로 나를 만지지는 못한 채, 조심스레 내 주변의 공기를 쓰다듬었다.
“아가씨께서 홀로 정원을 달리다 쓰러지시는 것을 보고 데려왔습니다. 아무리 저녁 바람이 기분 좋으셔도, 이렇게 몸이 안 좋으실 때 갑자기 과격한 운동을 하시면 몸이 놀란답니다.”
르디엘이 날 향해 말했다. 홀로, 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제야 옆에서 울먹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이아페의 이름을 꺼냈다간 그의 호칭이 ‘놈’으로 안 끝날지도 모르겠다.
“네에, 네. 너무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싶어서 그만.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고마워요. 이제는 괜찮….”
어…? 정말로 몸이 괜찮잖아.
어제는 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가벼웠다.
“르디엘 경이 밤새 이곳에서 너를 돌봐주셨다.”
“밤새요…?”
그러고 보니 이제 해가 뜰 무렵인지, 밖이 서서히 밝아 오고 있었다.
“그래. 신성력으로 치료도 해 주셨고 말이야.”
어머니가 한 말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성능력자들 중에도 치유 쪽으로 능력이 발달한 이는 많지 않기에, 신성 치료를 받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고위 귀족들이, 그것도 매우 비싼 값을 치러야만 받을 수 있을 텐데.
정말로 날 위해…? 르디엘을 향해 크게 눈을 깜빡대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사히 일어나신 것을 보았으니,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고맙네, 르디엘 경. 사례는 지금 하지.”
“아, 그럼….”
르디엘이 아버지의 말을 덥석 물었다.
고맙지만 역시 공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얼마가 들지는 모르지만, 나 때문에 후작가 예산이 깨지게 생긴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지불은 제가….”
“오늘 훈련은 빼 주시겠습니까?”
황급히 입을 여는 찰나, 그가 아버지를 향해 야심 차게 ‘받고 싶은 사례’를 이야기했다. 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겨우 그거면 되는가.”
“겨우라뇨, 단장님! 저한테 지금 제일 필요한 겁니다. 아르비나 기사단의 훈련은 너무 빡세거든요.”
기사단장의 앞에서 소신 발언을 하는 르디엘의 눈빛에서는 너무도 큰 진심이 느껴져서, 다들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래, 고생 많았네. 들어가서 쉬게.”
“감사합니다. 아. 아가씨도 오늘은 푹 쉬세요. 그럼.”
르디엘이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할 말을 잃었던 나는, 문을 여는 그를 향해 앞으로 몸을 쭉 빼고 황급히 소리쳤다.
“정말 고마워요, 르디엘 경!”
르디엘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별말씀을.”
그가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미소와 함께 문이 닫혔다.
그제야 좀 더 제대로 감사 인사를 전할걸, 후회가 밀려왔다.
‘나중에 꼭 답례를 해야겠어.’
괜히 머쓱해져서, 애꿎은 이불을 걷었다 덮었다 했다.
“오늘은 쉬어라, 시샤. 황궁에 연통을 넣으마.”
“아, 제가 넣을게요.”
“그래, 그게 더 편하다면.”
괜히 어머니가 상관도 없는 황궁 수행부서에 ‘우리 애는 오늘 출근 못 합니다.’ 하고 연통을 넣어서 혼란을 만들 수는 없었다.
사실 평소보다도 몸이 가벼워서, 쉬어야 할 상태가 아니긴 했지만… 그랬다가는 아버지가 칼린느를 찾아갈 기세였다.
‘그리고 요즘 너무 달려온 것도 사실이지.’
나는 기본적으로 가진 마력의 통이 큰 편인 것 같지만, 그것이 무한대는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주문을 연구하고 시험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이 마법을 썼다.
피로가 쌓인 것에 마력 소모까지 더해져서 쓰러진 모양이다.
“그래. 쉴 땐 쉬어 줘야지.”
부모님이 나간 뒤, 편지를 칼린느의 보좌관 앞으로 보낸 나는 벌러덩 드러누웠다. 리나가 바르는 팩을 담은 볼 안을 휘휘 저으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아가씨, 저 정말 깜짝 놀랐어요.”
“고마워, 리나. 많이 걱정했지? 미안해.”
문득 리나의 얼굴을 보니 다크서클이 이만큼 내려와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잠은 좀 잤어?”
“잘 만큼은 잤답니다. 걱정 마세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아마 한숨도 못 잤거나, 그에 준하는 상태가 분명했다.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리나가 쿡쿡, 웃었다.
“어서 누우세요. 진정 효과가 있는 팩이에요.”
“너 빨리 가서 자. 팩은 나 혼자 바르면 되니까.”
“저 괜찮아요!”
“얼른! 이거 명령이야.”
내 말에 입술을 삐죽대던 리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볼을 머리맡 협탁에 놓았다.
그녀는 느릿느릿 문가로 걸어가서 문고리를 잡았다. 그래, 빨리 가서 잠이나 자란 말야. 팔짱을 끼고 바라보는데, 리나가 다시 나를 돌아봤다.
“혹시 혼자 하기 힘드시면, 꼭 부르셔야 해요?”
“빨리 가!”
내 외침에도 리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달칵. 닫히는 그 순간까지 애처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 참, 팩이 뭐라고 본인 잠도 안 자고….”
정말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는데… 뭐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괜히 마음 한구석이 든든하게 차올랐다.
아침부터 걱정 어린 시선들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받았다. 내가 뭐라고. 민망하면서도 붕 뜨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실실 웃음이 났다.
그리고… 아마도 나 때문에 놀랐을 또 한 사람.
“이아페는 괜찮으려나.”
혼자가 되자 그의 생각이 강하게 차올랐다.
‘미안해서 어쩌지? 괜히 뛰자고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해서는.’
쓰러진 나를 보며 얼마나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을까. 공작저에도 나 괜찮다고 연통을 넣을까? 연통이 도착할 때쯤엔 이미 출근길이려나.
“으으….”
머리가 복잡했다. 나 자신의 멍청함에 화가 났다.
앞으로 다시는 객기를 부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어제저녁으로 회귀하게 해 주세요. 그냥 그 훈훈한 분위기에서 마무리하게 해 주세요. 빙의도 했는데 회귀라고 못할 게 뭡니까.
“하늘을 보고 빌어야 하나….”
마음속으로 비는 것보다 그게 더 효과적일 것 같아서, 창문으로 거의 달리듯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런데 창문을 확 열어젖힌 순간.
“윽.”
허공에서 쾅 하고 뭔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웬 형상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