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58
@58. 벌거벗은 이아페
이아페의 나지막한 답에 나는 사르르 웃음 지었다.
“습득이 빠른 학생이군요.”
내 말에 이아페가 몽환적인 미소를 흘렸다. 자책감이 담겨 있던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그의 나른한 표정에 묘한 두근거림이 차올랐다. 그래서 그의 뺨에 닿아 있던 손을 떼려 했다.
시도의 결과는 실패였다. 이아페의 두 손이 내 손등 위로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의 커다란 두 손 아래에 놓여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거 아십니까? 습득도 빠르지만.”
팔이 위로 올라가 뻗어진다. 그가 허리를 편 탓이다.
어느새 여유로운 미소를 되찾은 그가 절대 놓지 말라는 듯 내 손등을 꾹, 눌렀다.
“욕심도 많은 학생이라는 거.”
그가 부드럽게 돌아서 다시 창틀 가에 걸터앉았다.
동시에 내 다리도 하나, 둘. 뻗은 손을 따라 자연스레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나는 그에게로 바짝 다가선 채였다. 길게 뻗은 그의 다리가 내 양옆에 있었다. 그가 손을 풀어 앞으로 뻗는다면 그대로 안기고 마는 자세였다.
“이아페?”
그의 손이 내 손등 위에서 떨어졌다.
나를 조여 오던 압박감에 참았던 숨을 풀려던 것도 잠시.
그의 손이 향한 곳은 내 허리였다.
흡, 다시 숨을 들이켜서 삼켰다.
하지만 그대로. 그의 손은 닿지 않았다.
닿을 듯 말 듯, 아슬한 긴장감을 유지했을 뿐.
허리를 지나쳐 내 등 뒤로 뻗은 양손이 서로를 맞잡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뚫어져라 응시한 채였다.
동그란 원 안에 갇힌 자세.
이아페와 내가 닿은 곳은 그의 뺨을 잡은 내 손뿐인데도, 온몸이 불에 덴 듯 화끈했다.
분명 그를 잡고 있는 것은 나인데.
게다가 여기는 우리 집의 내 방인데.
왜 내가 여우굴에 들어와, 그곳에 사는 여우에게 잡힌 기분인지.
“어… 그러니까.”
이아페가 말하라는 듯 다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네, 시샤 님.”
흔들림 없이 나긋한 목소리인데, 그것이 내 머리채를 잡고 앞뒤로 마구 흔드는 듯했다.
머릿속이 핑핑 돈다. 이대로 있고 싶은데, 그래도 되나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정당하게 활용하기로 했다.
“제가 말이죠… 생각을 해 봤는데요.”
“무엇을요?”
“저희 축제 때… 얼음으로 된 저택을 세우면 어떨까 하거든요….”
“…일 얘기였군요.”
“어…그러니까. 냉기를 뿜어내는 곳에서 오싹한 공포 체험을 하는 거예요.”
“공포 체험?”
“유령도 나오고, 괴물도 나오고. 실은 다 분장이지만요. 담력을 시험하는 거죠.”
“재밌는 생각이군요. 도서관에서 다시 방법을 찾아볼까요?”
“이미 찾았는데요, 「나랑 눈사람 만들래?」래요. 근데 개꿈일 수도 있어요.”
“으음. 좋은 꿈을 꾸셨군요.”
앞뒤 설명 없는 개소리에도 이아페는 내 말을 곱씹으며 응답해 주었다.
그런데 그때.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화들짝. 나는 뭐 훔쳐먹다가 걸린 사람 마냥 놀라서 황급히 손을 팍, 떼어 냈다.
이아페가 불만 어린 시선으로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마치 지금 이 상황에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이 나라는 듯한 시선이다.
나는 가만히, 가만히 무릎을 굽혔다. 이아페의 표정에 물음표가 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까지 내려갔다.
그렇게 그의 훌라후프를 빠져나온 나는 벌떡, 훌라후프 밖에서 일어났다.
“그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그가 털썩 손을 풀어내며 실소를 터뜨렸다.
똑똑.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그렇게 크게 외치며, 이아페를 끌어 기둥 뒤로 데려다 놓았다.
방문을 빼꼼 열자, 그 앞에는 비알로가 서 있었다.
“…안 자고 있었네, 시샤.”
“잘 거야. 그럼 안녕.”
다시 문을 닫으려는데, 비알로가 그것을 잡았다. 볼일 있으면 빨리 말하라고 눈을 부라리자 그가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련하게 굴지 마, 시샤.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누가 알아줘?”
“뭐야, 언제는 열심히 하라며.”
“…정도껏이지. 적당히 빼면서 놀러나 다니란 말이야, 평소처럼. 축제가 1달밖에 안 남았는데 함께 즐길 파트너들은 찾았니? 네 잘난 놀이 친구들이나 찾아가지 그래.”
“조언 고마워. 난 피곤해서 이만.”
살포시 비알로의 손을 문에서 떼어 냈다. 철컥. 닫히는 문밖으로 비알로의 똥 씹은 표정이 보였다.
‘별 참견을 다 하고 있다.’
언제는 황궁의 허드렛일을 열심히 하라더니, 이제는 내가 황궁에 출근하는 것도 배가 아파진 건가?
뭐 저렇게 오락가락이야? 심지어 어제 쓰러진 사람한테 아침부터.
당최 속이 얼마나 좁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놈이다.
“걱정이 되기는 했나 보군요.”
이아페가 기둥 뒤에서 나오며 희한한 해석을 내놓았다.
“저게요? 여기서 대화가 잘 안 들렸나. 아, 그보다. 이제 빨리 가요.”
“…제가 갔으면 하십니까?”
“네.”
그가 뚱한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뭔가 불만이 있는 듯했지만, 들키기 전에 빨리 돌려보내야 했다.
나는 쿨쿨 잤지만, 이아페는 저 밖에서 밤을 지새운 건데. 빨리 가서 좀 쉬어야지.
“좀 자요. 당신도 나처럼 피곤해서 쓰러지면 어떡해요?”
내 말에 그제야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샤 님도 쉬셔야겠군요. 돌아가겠습니다.”
음, 그런데 이아페는 지금 여기 몰래 들어와 있는데. 어떻게 공작저까지 보낸담?
순간 이동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
“아! 순간 이동 주문도 있겠죠?”
“순간 이동이라면… 원하는 공간으로 바로 이동을 시키는 것 말입니까? 신전의 고위 사제들이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맞아요. 어때요, 카일라인 공작저로 바로 이동이 가능한지 시험해 볼까요?”
과연 주문이 뭔지는 모르지만 몇 개 시도하다 보면 하나는 때려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음, 제 방으로 이동이 가능하겠습니까?”
“위치를 알면 가능할 것 같아요. 이래 봬도 공간지각능력이 꽤 좋거든요.”
“2층 오른쪽 복도의 다섯 번째 방입니다.”
나는 공작저에 방문했을 때-a.k.a. 이아페가 남부로 튄 날- 보았던 저택의 외관을 떠올렸다.
아, 그래. 거기로구나.
흥미로 눈 밑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이아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순간 이동!」
순식간에 이아페가 사라졌다.
그리고….
털썩.
위부터 아래까지, 그의 옷가지만 남았다.
* * *
이아페 카일라인은 수치심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인간이다. 수치를 당할 만한 지위도 아니거니와, 애초에 본인이 그런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정말로 수치심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순간 이동을 하자마자 입고 있던 옷이 모조리 사라졌다. 살에 후욱 느껴지는 허전함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카일라인 공작저, 2층 오른쪽 복도, 다섯 번째 방.
그러니까 이아페 카일라인의 방이었다.
주인이 없는 방에 함부로 드나드는 이는 없다.
사용인들이 청소나 정리를 위해 방 안에 들어오는 시간은 오후 3시.
아직 이른 아침인 지금은 걱정이 없었다.
그래, 만약 제대로 방 안에 도착했다면 말이다.
눈을 감았다 뜨니 이아페는 제 방문의 바로 앞에서 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손을 살짝 들면 바로 방 문고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문제라면, 그것이 방 안이 아니라 복도였다는 것이다.
이때 그는 다행인 점과 최악인 점을 한가지씩 경험했다.
먼저 다행인 점은, 지금 2층 복도를 지나는 사용인이 단 1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악인 점은….
“으악!”
발가벗은 자신의 뒷모습을 라온 제누아르가 봤다는 것이다.
라온의 비명 소리가 들린 즉시, 이아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쾅 닫았다. 방 안으로 들어오니 이 상황이 더욱 명확하게 느껴졌다.
“젠장…. 젠장. 젠장.”
이럴 수가 있나. 이렇게 자연 그대로의 상태만 전송이 될 수가 있나.
참 위험한 주문이 분명하다.
그 방에는 제 옷이 남은 걸까. 혹시 시샤 님이 이런 제 모습을 찰나라도 봤으면 어떡하나.
이아페의 얼굴이 분노인지 부끄러움인지 모를 감정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번에 주문을 성공시키다니. 역시 시샤 님이다. 하는 생각을 했다.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이아페가 대충 나이트가운을 걸쳐 입고 들어오라 하니 문이 열렸다.
하지만 들어온 라온은 아무 말 없이 이아페를 경멸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거 아냐.”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주문을 연습했어. 순간 이동이라는 거야. 한 번에 공간을 전이시키는 주문인데, 부속물들이 함께 전송되지 않은 모양이야.”
“흥미로운 주문이네요. 어젯밤엔 왜 귀가를 안 하신 거죠?”
“그건….”
말을 하려다가 문득, 왜 이걸 변명을 해야 하나 싶었다.
이아페의 표정이 재수가 없는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오는 것을 알아챈 라온이 빠르게 실토했다.
“들었습니다. 단장님이 아프셨다면서요. 보나 마나 거기에 가 계셨겠죠. 이아페 님도 한숨도 못 주무셨을 테니, 오늘은 출근하지 마십시오. 그 이야기 하러 왔습니다.”
“아니, 나는 출근해.”
“네?”
“그분이 돌아오실 때까지, 최대한 많은 것을 완성해 놔야겠어.”
“그 완성을 혹시 저도 같이하나요?”
이아페가 라온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것이 무언의 긍정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라온은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날, 원래부터 쾌차한 상태였으나 휴식으로 더욱 말짱해진 시샤가 돌아왔을 때.
지하에는 얼음으로 된 응접실 하나가 만들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