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6
@6. 그렇게 은밀한 얘기입니까?
“공석이었던 다섯 번째 대사제 선임식은 다음 오른 반달의 날에 하고자 합니다.”
길게 내려온 푸른 예복을 차려입은 대사제의 말에 칼린느 키르테미스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미쳤….”
입을 연 칼린느는 자신의 옷자락을 살짝 끌어당기는 보좌관의 간절함에 말을 멈췄다.
젠장, 속으로 욕을 삼키며 애써 정돈된 말을 꺼냈다.
“그날은 이미 황실 행사가 잡혀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가장 빠른 길일이 그날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오만한 태도였다. 교황도 아니고 대사제 주제에 황제의 앞에서 이렇게 방자하다니.
“길일을 원한다면 보름의 날로 하도록 해.”
“그렇게 미룰 수는….”
“겨우 일주일 더 미루는 걸로 큰일이 생길 정도면 신전도 별것 아닌가 보군.”
“말을 삼가십시오, 폐하!”
대사제가 언성을 높이자 칼린느의 눈이 싸늘해졌다. 알현실에 깔리는 냉기에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사제는 흠흠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양보를 원하신다는 겁니까.”
“양아치처럼 굴지 말라는 거지.”
보좌관이 한 번 더 칼린느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칼린느는 썩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다. 자신이 말을 내지를 수 있는 것도 이 정도까지일 뿐이라는 걸.
이 자리는 그런 자리였다.
자존심이나 신념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자리.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쯤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칼린느는 지금까지의 황제들과 달리 확실한 지지 기반이 없었다.
즉위 전엔 수많은 황족 중 하나일 뿐이었으며, 후계 순위도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간 이어진 수많은 전쟁은 칼린느 키르테미스라는 이름을 빠르게 알렸다.
전쟁의 신이라는 칭호와 함께 돌아온 그녀는 결국 황위를 둘러싼 권력 전쟁에서도 승리했다.
예상치 못한 젊은 황제의 즉위에 수많은 이가 무릎을 꿇는 한편, 날을 세우는 자들도 있었다.
이미 두 번의 역모 시도가 있었고, 칼린느는 이를 피로 다스렸다.
하지만 미엘교 신전과의 관계는 그녀가 어찌하기 어려웠다. 이 나라를 넘어 대륙 전체가 사랑하는 종교이기에.
더구나 사제와 성기사들이 만들어 내는 신성력은 일반적인 힘으로는 절대 넘어설 수가 없었다.
기적과도 같은 특별한 힘. 그것만으로도 모두가 신전을 우러러볼 이유는 충분했다.
‘그래도 지난번 교황은 황실을 적당히 존중해 주는 것 같더니.’
몇 년 전 선출된 이번 교황은 상당한 강경파라 했다.
그러니까 덩달아 저런 것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신전이 양보하여, 보름의 날로 하겠습니다.”
“…그것참 고맙게 됐군.”
“아 참, 그런데 황실에서 고용하는 사제의 수가 다소 적은 듯한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칼린느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결국 저 말을 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거였나.
“알아보도록 하지.”
대충 던진 답이었으나 황제의 모든 말에는 무게가 있다. 결코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지.
대사제가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물러났다. 문이 닫히자 칼린느는 참았던 욕을 뱉어 냈다.
“그냥 베어 버릴 걸 그랬나?”
옆에 선 호위 기사를 향해 묻자 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에 찬 칼로 손을 가져다 댔다.
“하하, 그럼 안 되지, 세디안.”
그제야 웃음을 터뜨린 칼린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묶어 올린 찰랑거리는 은빛 머리 뒤로 세디안이 그림자처럼 따랐다.
“이래서야, 시샤 아르비나 그 아이의 답을 더 기대할 수밖에 없겠군.”
마법으로 새로운 검을 바치겠다 했지. 그 말이 진실이길 진심으로 바랐다.
“정말… 혀를 뽑고 싶지는 않으니 말야.”
칼린느가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섬뜩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 *
부르르르.
몸이 갑자기 으슬으슬 떨렸다.
뭐지, 누가 내 욕 했나.
아냐, 긴장해서 그런 것이다. 내가 이아페의 입을 쳐버린 이 상황에.
이아페가 입술을 깨물 듯 핥았다. 그러고는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지금 눈으로 ‘요놈 봐라?’ 하고 말하는 것 같은데.
“죄송해요. 그게….”
나는 변명하듯 황급히 이아페에게 소곤댔다.
“둘만 있을 때 이야기해야 해서요.”
“그렇게 은밀한 얘기입니까?”
이렇게 1대 칠 정도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당연하죠.”
마법에 관한 이야기를 할 텐데 다들 지켜보는 자리에서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아페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잡아 내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내 귓가에 낮고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이렇게 질문하면 되나요?”
온몸을 간질이는 느낌에 나는 깜짝 놀라 용수철처럼 옆으로 튀어 나갔다.
“아니?”
“그럼?”
한쪽 손은 여전히 그의 손안에 갇힌 채였다.
이아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내 난리를 주시했다. 어쩐지 조금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경악으로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는데 막을 새도 없이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하지만 그의 붉은 입술이 던진 말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주제였다.
“후작가의 유리온실이 그렇게 아름답다던데.”
“그래요? 가 아니라, 그렇죠.”
“구경을 시켜 주시겠습니까?”
“예…?”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나는 홀린 듯 그의 손을 잡고 정원 사이 유리온실을 향해 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의도지? 의문을 품은 어색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커다란 유리온실을 눈에 담은 순간. 나는 그의 시그널이 무엇인지 번뜩 깨달았다.
“여기라면 엿듣는 귀는 없겠죠.”
때마침 이아페가 답을 들려주었다. 모든 벽이 유리로 이뤄진 온실은, 안에서도 360도로 밖의 상황을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몸에 묻어 있던 긴장이 사르르 풀렸다.
“에이, 난 또! 알죠, 알죠.”
저절로 눈 밑이 능글맞게 부풀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는 동의를 구하는 듯 미간을 으쓱했지만, 이아페는 내 신호를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 무시를 당하든 말든 뭣이 중하겠니.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내 생존 방안 마련에 협조해 주는데!’
나는 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온실을 둘러봤다.
하얗게 기둥을 세운 넓고 높은 온실에는 다양한 조각과 꽃이 질서 있게 펼쳐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화려한 테이블이 있었다.
대리석 같은 단단한 소재에 아르비나의 색인 연보랏빛 보석을 세공한 테이블은 웬만한 장정이 밀어도 꿈쩍 안 할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이 다과가 놓였고, 이를 가져온 사용인도 멀리 떠나갔다.
그제야 나는 맞은편에 앉은 이아페를 향해 몸을 휙 돌렸다.
이제 마음 놓고 질문해 보렴.
초롱초롱. 그의 붉은 입술에 내 시선 폭격이 떨어졌다.
하지만.
“…….”
“…….”
까악. 까악.
그런 효과음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정적이 차오른 온실에는 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결국 화두를 던진 것은 나였다.
“물어보지 않으시나요?”
“무엇을 말입니까?”
“…황제 폐하의 의중 말이에요.”
“흐음.”
이아페가 찻잔을 내려놓고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렸다.
“정보를 가진 건 영애시고, 부탁이 있는 것도 영애신데. 제가 먼저 말을 꺼내야 했던 걸까요?”
부드러운 말투는 그 속에 든 뼈를 감추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 어차피 그가 여기까지 온 마당에 누가 먼저 말하든 무슨 상관일까.
“좋아요. 그럼, 들어 보시겠어요?”
나는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호기롭게 말을 던졌으나 입술이 살짝 떨리는 것을 감춰야 했기에.
20년 동안 황족을 볼 일도 없는 시골에서 자라온 시샤 아르비나가 가진 정보.
원래라면 신뢰도는 0에 수렴했을 것이다.
슈레기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그 때문이었다.
‘훌륭히 밑밥을 깔아 뒀으니, 적어도 내 말이 믿을 만하다는 건 알게 됐겠지.’
게다가 새로운 황제, 칼린느 키르테미스에 관심이 없는 귀족은 없다.
귀족들은 지금 그를 두고 중대한 고민에 빠져 있으니까.
입맛대로 다스리기 어려운 황제. 그를 계속해서 견제할 것인가?
아니면 일찍이 패왕이 될 자질을 믿고 충성을 다할 것인가.
소설 속 이아페는 칼린느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충성을 바치지만, 현시점의 이아페는 아직 칼린느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할 것이다. 판단의 근거가 될 정보 하나하나가.
“음….”
다리를 꼬고 앉은 이아페는 제 무릎에 팔을 받치고 턱을 괸 채 고민했다.
톡톡.
검지로 제 볼을 가볍게 두드리던 이아페의 손가락이 멈췄다.
동시에 그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아뇨.”
생각지도 못한 거절과 함께.
“…….”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그러니까.
“혹시 아뇨, 라고 하셨나요?”
“네.”
너무도 쉽게 거절을 내뱉은 이아페가 허리를 폈다. 권태로운 시선이 온실을 향했다.
…진짜 안 듣는다고?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떠도는 가십일까 고민하시는 거라면, 이건 저만 아는….”
“그러니까요.”
“네?”
“영애의 말이 진실일지 가늠이 안 되어서요.”
귀에 차르르 박히는 발음이었지만,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혼란 가득한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머리를 굴렸다.
‘이 정도론 신뢰가 부족했나? 아니면 내가 거짓말이라도 했단 거야?’
…라기엔 떠오르는 것이 너무 많지만.
‘아냐. 흔들리지 말자.’
분명 떠보는 것이다.
그가 정보를 원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에 왔을 리도 없을 테니까.
그때였다.
문득 왼쪽 앞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 올린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어느새 이아페가 내 앞 테이블에 살짝 기대어 앉은 채 날 마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