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62
@62. 왜 앞섶을 풀고 있어요?
“오늘 밤 불꽃놀이, 함께 보시겠습니까?”
훅 들어온 질문에 순간 멈칫했다.
불꽃놀이를 같이 보자는 건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는 정말 말 그대로 같은 장소에서 불꽃놀이를 보자는 것.
또 하나는 불꽃놀이와 동시에 진행되는 무도회에서 파트너가 되어, 함께 춤을 추자는 것.
그는 아마 전자의 의미로 한 말이겠지.
“혼란의 도가니인데 제대로 불꽃을 즐길 정신이 있을까요?”
“혼란스러울 게 있습니까? 당신 말대로 분명 잘될 텐데.”
이아페가 당연하다는 듯 눈썹을 으쓱했다. 그의 ‘분명’이라는 말에 왜 이렇게 안심이 되는지.
“좋아요. 같이 봐요, 불꽃.”
이아페의 얼굴이 환해졌다. 기대하지 않았던 간식을 받은 강아지처럼,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음 지었다.
‘불꽃 많이 보고 싶었나 보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거란 걸.
이아페는 오늘 이 축제에서 형인 일로제 카일라인을 우연히 마주친다.
형은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해 이아페에게 모진 말을 쏟아 내고, 이아페는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치유하는 것은 칼린느다. 불꽃이 터질 때쯤에도 아마 칼린느와 함께 있겠지.
이 일은 이아페와 칼린느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주요 장면이자, 이아페의 내면이 더욱 성장하고 다져지는 사건이다.
내게는 이것을 막을 권리도, 방법도 없다.
그럼에도 이아페에게 함께 불꽃을 보자고 한 이유는… 어쩌면 나도 그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알량한 자신감 때문이다.
칼린느를 만나면 당연히 약속 같은 건 잊어버리겠지만.
그녀가 오기 전 이아페가 겪을 고독한 시간.
그동안 그가 너무 큰 슬픔의 나락으로 빠지려 할 때. 저녁 약속이 있다는 것이 적어도 아주 작은 제동 장치 역할은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분명 잘될 거예요.”
마법도, 당신도.
그 말은 입 안에서만 굴린 채 보폭을 넓혔다.
물건을 파는 상인들, 먹고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저녁 공연을 홍보하는 사람들까지 성큼성큼 지나쳤다.
얼음 저택에 가까워질수록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그 냉기를 경계했고, 누군가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투명한 얼음이었으나 안은 보이지 않도록 처리를 해 두었기에, 벽에 얼굴을 들이대고 뚫어져라 보는 이도 있었다.
“오늘 광장이 너무 시원한데 이것 때문인가? 엇, 차가워라!”
“이거… 마법으로 만든 거 아냐? 저주받으면 어쩌려고! 어서 떨어져.”
“하지만 여기가 제국에서 제일 시원할 것 같은데. 와서 만져 봐 봐.”
“얼마나 시원하길래… 엇, 정말이군. 아, 아니 그래도 이런 거에 현혹되면 안 된다고!”
“흐음,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안 좋은 힘을 쓰셨을 리는 없잖아. 그 음악극에서도 목걸이가 사실은 황가의 상징이었다고.”
“그거랑 이거랑 같아?”
“다를 건 또 뭐야?”
웅성거림과 수군거림 사이, 수많은 이들이 논쟁을 벌였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들의 결론은 이와 같았다.
“일단 폐하를 기다려 보자고. 곧 개막식이니까.”
신전에서부터 시작된 개막 행렬은 에르트르 광장까지 이어지고, 이곳에서 마법의 공식화를 선포할 예정이다.
‘그전에 얼음 저택 안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하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아서는 들어갈 수가 없겠다. 역시 ‘그 방법’을 쓰는 수밖에.
* * *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요. 연습 많이 했거든요.”
에르트르 거리 뒤편의 한적하고 좁은 골목. 옹기종기 모인 단원들 사이에서 이아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라온부터.”
이아페가 라온을 앞으로 밀었다. 라온이 힉, 하며 몸을 뒤로 뺐다.
“어… 저, 그러니까, 지금 쓰시려는 게 분명 지난번에 저희 이아페 님… 아니, 이아페에게 사용하신 방법인 거죠?”
“아, 알고 있어요?”
이아페를 바라보자 그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라온에게 대답했다.
“맞아요, 그 방법.”
라온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가 양손으로 제 몸을 감싸며 옷을 꽈악 붙잡았다.
“왜요? 어떤 방법인데요?”
니니안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질문했다.
“순식간에 대상을 원하는 장소로 옮기는 마법이에요.”
“와, 멋져요! 제가 먼저 가도 되나요?”
“아, 안 돼!”
니니안이 큰 눈을 빛내는데, 라온이 그녀를 붙잡았다.
“차라리 제가 먼저… 아, 아니 그래도 그건….”
라온은 상당히 불안한 눈치였다. 그의 말에 다른 단원들도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전에 반만 성공, 그러니까 이아페의 옷은 두고 몸만 이동시킨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애초에 처음 사용한 것이라 미숙하기도 했고, 최근에 다시 연구해 본 결과, 마법으로 대상을 멀리 보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물건을 보내는 것은 다소 간단했으나, 살아 있는 생명, 특히 이렇게 커다란 사람을 보내는 것은 굉장히 고난도의 일이었다.
집중력은 물론, 체력까지 꽤나 소모해야 했다. 솔직히 여러 번 쓸 마법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단거리로 이동하는 것 정도는 수차례의 연습 끝에 눈을 감고도 할 수…는 없었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아, 단장님을 가장 믿는 사람부터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온의 말에 이아페가 움찔했다. 혼자 심각한 고민에 빠져든 이아페가 이내 결정을 내린 듯 몸에서 힘을 탁 풀었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앗! 저 먼저 보내 주세요, 시샤 님!”
니니안이 새치기를 당했다는 듯이 다시 손을 들었지만, 라온이 식겁하며 그 손을 내리고 그녀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앗, 이아페, 먼저 가세요!”
무슨 말을 한 건지 니니안이 바로 차례를 양보했다. 이에 나는 이아페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나직이 물었다.
“이아페, 나 믿죠?”
그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듬직한 누나처럼 그를 토닥인 후 주문을 외웠다.
「순간 이동!」
순식간에 이아페가 사라졌다. 그리고….
툭. 이아페가 있던 자리에 그의 크라바트, 그리고 셔츠 단추 하나가 떨어졌다.
“어… 이상하네. 연습 때는 완벽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
그것을 주워 들며 단원들을 바라보는데, 다들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그, 뭐냐. 굴뚝으로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카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굴뚝으로 들어가면 당연히 사람들의 눈에 띄잖아.
“어허, 뭐 해? 이리 와.”
“아, 여기서 땅굴을 파는 주문을 지금 연구하면 어떨까요, 단장님…?”
“오, 그거 좋은 생각이다, 라온.”
라온과 니니안도 문워크를 하며 내게서 멀어졌다. 아니, 이해가 안 되네. 크라바트 하나 떨어진 정도면 대성공인데.
그래, 셀라임은 내 마음을 알아줄….
“셀라임?”
그녀는 어디에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휘휘 둘러보자, 골목 밖에서 이쪽을 빼꼼 바라보고 있었다.
불신의 시선을 잔뜩 담은 채.
“어휴, 방금은 실수였어요. 못 믿겠으면 제가 먼저 갔다가 다시 올게요.”
결국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 자신을 향해 주문을 썼다.
「순간 이동!」
눈을 감았다 뜨자, 나는 얼음 저택 안에 꿇어앉아 바닥을 짚고 있었다. 그런데 저택을 잘못 만든 것인지, 분명 차가워야 할 바닥이 따뜻했다.
그리고 이 촉감은….
불길하고도 야릇한 예감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샤 님….”
어머나. 내 밑에 앞섶을 풀어 헤친 이아페가 누워 있었다. 내 손은 그의 가슴을 짚고 있었고.
“이런 미친….”
“오해하지 마십시오. 미친놈처럼 보이시겠지만 일부러 이런 차림을 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이렇게 된 거라….”
그가 살짝 고개를 돌린 채 한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니, ‘미친’은 그를 향해 한 말이 아닌데.
“어어… 이아페… 마법 연구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언제 운동을 한 거예요? 하루 이틀 기른 근육이 아닌데요. 대단해요.”
당황스러워서 아무 말이나 쏟아 냈다. 그런데 말을 하고 보니 정말 대단하잖아. 그 살인적인 스케줄에 이런 빨래판까지 만들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다 힐끗 보니 이아페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화… 화가 난 건가? 입이 방정이지. 더 이상 나대지 말아야겠다.
“죄송합니다. 깊이 사죄드립니다.”
나는 황급히 이아페에게서 몸을 떼어 내 일어섰다.
‘단추가 하나만 풀린 게 아니었구나.’
네 개. 단추 네 개가 없다. 이 정도면 새 옷을 사 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수준이다.
“일단, 제가 단추를 찾아서 올….”
“잠시 돌아서 주시겠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즉시 돌아섰다.
사륵, 옷이 스치는 소리에 이어. 뚝, 무언가 뜯기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단추를 뜯어내는 듯, 실이 끊어지는 소리였다.
뭐지. 볼 수가 없으니 괜히 이상한 그림이 머릿속에 펼쳐진다고.
그때 내 어깨에 손이 와 닿았다.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이아페의 가슴이 눈앞에 있었다.
옷을 여밀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건가 했는데 아직 이렇게 자연인의 상태라니. 그럼 왜 뒤돌아보라고 한 거람?
그때 뒤로 살짝 물러선 이아페가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단추 두 개였다.
“설… 설마 단추를 뜯은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아니, 대체 왜 이런 화끈한 일을 벌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