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63
@63. 개막
그의 대흉근을 노려보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자 이아페가 내 손에 있는 단추 하나와 크라바트를 슬쩍 빼 갔다.
“여분의 단추가 있어 다행입니다.”
“……!”
다시 보니 셔츠의 단추는 아까 그 모습 그대로 네 개만 없었다. 아마 내가 들었던 실이 끊어지는 소리는 옷에 숨겨진 여분 단추를 뜯던 소리인 모양이었다.
“싸, 쌀과 보리가 필요하겠네요.”
애써 침착한 척하며 말을 했는데 이아페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작물이죠. 시샤 님은 역시 이 와중에도 제국민의 삶을 생각하시는군요. 저는 지금… 아닙니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내가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실과 바늘’이라고 해야 하는데 뇌가 제대로 가동을 못 하는 상태라 ‘쌀과 보리’라고 한 것이다.
“그럼, 저는 이만. 「순….」”
“잠깐만.”
다시 골목으로 돌아가려는데 이아페가 내 팔을 붙잡았다.
그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의 두 손이 내 목과 쇄골 근처로 와 닿았다.
이아페는 옆으로 돌아간 내 리본을 정돈해 주었다. 아까 이아페의 위로 떨어지면서 흐트러진 모양이었다.
천이 스치며 조용히 사각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이아페의 얼굴을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그가 내 치마에 손을 뻗으려다가 멈칫했다. 대신 한 발짝 물러서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흐트러졌습니다.”
“아, 그, 그러네요.”
나는 황급히 구겨진 치마를 탁탁 털어 매무새를 다듬었다.
이상했다. 무언가 실타래 같은 것이 속에서부터 목까지 차오른 듯 숨이 막혔다.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다시 우리가 있던 골목에 돌아왔다.
“오, 드디어 오셨네요.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실과 바늘! 실과 바늘!”
나는 황급히 바느질 도구를 찾았다. 하지만 사실 그런 걸 휴대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
“걔 옷 꿰매야 하는구나. 자, 여기.”
카실이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귀여운 다람쥐가 그려진 주머니 안에는 실과 바늘이 들어 있었다.
“카실, 옷 기울 줄 알아?”
“뭐, 프렌한테 이것저것 만들어 주기도 하고….”
“그, 그럼 네가 가.”
“왜 내각…!”
나는 순식간에 카실을 얼음 저택 안으로 순간 이동 시켜 버렸다.
이아페의 옷을 기워 주는 카실의 모습을 상상하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도저히 앞섶을 풀어 헤친 이아페를 다시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 * *
이아페의 착장은 처음부터 그런 옷이었던 양 완벽했다.
다른 단추들은 멀리 굴러간 것인지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아랫부분부터 단추를 채워서 달고 위의 몇몇 부분은 그냥 두었다.
대신 크라바트를 느슨하게 매어서, 마치 원래 이렇게 살짝 파인 시원한 룩이었던 양 연출했다.
여름이라 다행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무사히 저택의 로비에 들어왔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샹들리에, 황가의 문장이 새겨진 카펫,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방향 벽에 걸린 커다란 액자까지.
이 모든 게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는 거울의 방, 아내의 침실, 남편의 침실, 응접실을 차례로 살폈다. 각 방은 저마다 다른 분위기로 꾸며 두었다.
침실에는 침대와 테이블 같은 가구는 물론, 세숫물을 떠 온 대야, 책상, 종이, 펜 등 세세한 오브제까지 배치해 신경을 썼다.
“녹으면 안 된다, 얘들아.”
이곳은 축제가 끝날 때까지 절대 녹지 않도록 마법을 둘러 놓았다.
나는 정말로 얼음이 녹지 않는지 체크하기 위해 소품 중 하나를 30초 동안 맨손으로 꽈악 잡았다.
동상에 걸릴 뻔했지만, 다행히도 손에 물기는 묻어나지 않았다.
단원들이 각자가 맡은 부분을 꼼꼼히 살피는 동안이었기에, 내 행동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었다.
나는 몰래 뒤돌아서서 차가워진 손을 맞잡고 비볐다.
그때 내 손을 누군가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이아페…?”
내 손을 본인의 양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쥔 그가 말없이 호호, 입김을 불어 넣었다.
따뜻한 바람이 손가락에 닿는다. 얼었던 손이 풀리면서 몸 전체가 뜨거워진다.
내 손이 따뜻해지자, 그가 미련 없이 손을 놓았다. 대신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작은 불을 만들어 냈다.
“쉬운 방법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몸을 해치는 방법 말고.”
이아페의 목소리에 걱정과 씁쓸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불을 얼음 근처에 가져갔지만 녹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센 불에는 안 녹는데 체온에는 녹을 수도 있잖아요.”
화르르 타는 불에 데는 것보다 저온 화상이 더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것처럼.
“당신이 옳지만… 걱정이 됩니다. 지금도 얼굴이 빨갛고. 감기에 걸리신 것은 아닙니까?”
그럴 리가 없다. 지금 이렇게 더운데 감기라니. 애초에 내 얼굴이 빨개진 건 감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게. 왜 얼굴이 빨개졌지?
“여기 다 살폈으면 식당으로 갈까요?”
혼란스러운 감정이 덮쳐 와서, 분위기를 얼버무리듯 황급히 식당으로 향했다.
커다란 테이블과 그 위에 놓인 식기들을 꼼꼼히 관찰하며 이상한 감정을 잊으려 애썼다.
* * *
축제의 개막을 알리는 행렬이 길고도 성대하게 이어졌다.
행렬은 대륙의 유일한 신, 미엘 신의 가호를 받는 것으로 시작했다.
키론 제국의 중앙 신전.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몇 년 전부터 미엘교를 이끌고 있는 교황 드하이센이 근엄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단상 위에 마련된 계단에 올라서서, 사제가 건네는 성수채를 받아 들었다.
본래는 그저 단상 위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황제에게 성수를 뿌리고, 빛을 내리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이번 황제는 방자하게도 절대 무릎을 꿇지 못하겠다고 하여 계단을 마련한 것이었다.
심지어 신전과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광장에 무언가를 세웠다 했지. 그 망측한 것이 무엇인지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참아야만 했다.
“역시 자애로우셔서 그런가. 물어보지 않으시는군요.”
조용히 읊조린 칼린느가 상대를 놀리듯 씨익 미소 지었다. 드하이센은 인자한 미소를 풀지 않은 채, 낮게 맞받아쳤다.
“부족한 점은 감싸 주어야 하는 법이지요. 그저 황실과의 소통이 더 필요하다 반성하던 참입니다.”
“이를 어쩝니까, 저는 지금도 과하다 생각하는데.”
“…폐하. 이만큼 오래 살다 보면, 본인의 뜻이라 생각한 것이 사실은 신의 뜻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또한 그런 흐름이겠지요.”
“그렇다면 신은 저를 상당히 사랑하시나 봅니다. 오늘은 기도를 좀 해 볼까 싶군요, 성하.”
평소에는 기도를 안 했다는 뜻이다.
이런 불경한 것. 드하이센은 그렇게 외치고 싶었으나, 대신 더 높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신은 공평하시고, 모든 이를 사랑하십니다.”
언뜻 신의 사랑이 얼마나 넓은지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으나, 사실은 세상이 네 위주로 돌아간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폐하와 성하께서 무슨 말을 저리 즐겁게 나누시는 걸까?”
“아마 축제를 앞두고 좋은 말씀들을 나누시는 거겠지!”
그들의 대화가 워낙 작은 소리로 오갔기에, 사람들은 그들이 축제를 앞두고 즐거운 덕담을 주고받았으리라 추측했다.
교황 드하이센이 흠흠, 목을 가다듬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여름의 빛에 사랑과 희망을 담아 내리니, 시작과 끝, 행복과 고통. 그 모든 것에 미엘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제국민 모두에게 그 뜻을 전달할 것을 엄숙히 서약합니다.”
성수가 뿌려지고 칼린느의 머리 위로 성스러운 빛이 감돌았다.
와아아. 신전을 둘러싸고 모인 이들이 크게 함성을 질렀다. 칼린느가 그들을 향해 당당히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미리 준비된 푸른 꽃마차로 향했다. 물빛 축제에 맞춰 크리스털로 화려하게 장식된 마차였다.
칼린느는 이 위에 서서 에르트르 광장까지 갈 예정이었다.
“젠장. 받은 가호도 다 녹아 버릴 날씨군.”
오늘따라 더욱 햇볕이 뜨거웠다.
등에 붙인 마도구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럼 에르트르까지 가는 길에 마차에서 내렸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마법과 신성력은 다른 힘이라, 눈에 보이는 게 아닌 이상 신성 능력자들이 마력의 기운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마법사도 신성력을 눈치채지 못했고.
저도 이렇게 더운데 몰려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울 텐가.
칼린느는 에르트르 광장에서 마법의 인정을 공표하고 쿨링 마도구를 나눠 주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내 성대한 행렬이 시작되었다.
* * *
칼린느가 도착한다는 소식은 파도타기처럼 전해졌다.
“오신다!”
“폐하께서 오고 계신다!”
그녀의 행렬이 들어올 길을 비워 둔 채, 사람들이 목을 빼고 옆을 바라보았다.
덩달아 나도 들떠서 오오오, 하고 입을 모았다.
이내 고아하게 턱을 치켜든 칼린느가 꽃마차와 함께 등장했다. 몸에 맞게 잘 재단된 푸른 의례복이 그녀의 은발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게다가 행렬은 어찌나 호화롭고 아름다운지. 놀이공원 퍼레이드보다 훨씬 화려하고 성대했다.
카메라만 있으면 사진을 백만 장 찍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천추의 한이다.
“제국의 가장 큰 축제이자, 더위를 물리치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광장의 중심에 마련된 높은 단상. 그곳에서부터 우렁찬 목소리가 번져 나갔다.
“키론의 여름은 덥지. 그렇기에 푸른 초목이 제 잎을 부풀리고, 우리의 식량이 알맞게 익어 갈 수 있다. 신은 이토록 우리에게 사랑을 내리쬐고 있다.”
보좌관이 중앙 신전에서 받은 성수 그릇을 내밀었다. 칼린느가 그릇에 든 성수를 광장 중심에 부드럽게 따랐다.
“이곳에 미엘 신의 가호가 함께할 것이다.”
커다란 함성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중앙 신전에서 이곳까지 이어지는 개막 의식의 의례적인 마지막 대사였다.
본래라면 그랬다.
“그리고.”
하지만 칼린느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성수 그릇을 뒤편에 마련된 자리에 올린 그녀가 휙 몸을 돌렸다.
“우리를 사랑하는 신은, 우리가 주어진 환경에서 더 나은 방법을 찾아 가고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드는 선택 또한 존중할 것이다.”
칼린느가 제국민들에게로 성큼성큼, 더 가까이 걸어왔다. 수많은 이가 모여 있었으나, 사람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평소의 개막 의식과는 다른 전개.
황제가 어떤 말을 하려는지 어렴풋이 예상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었다.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래. 나는 마법을 활용할 생각이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자리에서, 칼린느가 여유로운 미소를 씨익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