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65
@65. 기억을 못 해서 참 편하겠어
르디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쓰러졌던 이후로 처음 보는 건데.
“아, 늦었지만… 그때 치료와 간호 모두 정말 고마웠어요, 르디엘 경.”
“뭘요. 좋아서 한 일인걸요.”
르디엘은 내 생각보다 인류애가 뛰어난 사람인 모양이다. 문득 그가 정말 성직자긴 성직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을 덧붙였다.
“몸 잘 챙기세요, 아가씨. 아가씨가 쓰러지면 슬퍼할 사람이 너무 많던걸요.”
“아….”
밤새 나를 걱정했던 가족들과 리나, 이아페의 모습이 떠올랐다. 출근했을 때 공주님 대하듯 하던 단원들의 모습도.
“보답으로 밥 살게요! 르디엘 경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아요.”
“괜찮으시겠어요? 저 그런 거에 있어서는 한계를 모르는 사람인데요.”
“…개빗사에 가자고 해도 좋아요.”
“에이, 스케일이 너무 작으시네!”
“……!”
아무래도 말을 잘못한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치료해 준 것에 가족들의 걱정을 줄여 준 것까지 더하면….
그래도 개빗사 이상은 좀 과하지 않나?
“하하, 농담이에요. 심한 병을 고친 것도 아닌데요, 뭐. 개빗사 정도면 나쁘지 않네요.”
대체 심한 병을 고치면 얼마나 받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니니안이 내게 팔짱을 끼고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시샤 님. 샤베트 먹으러 가요! 라온의 고모님의 사돈의 사촌 동생의 아내분이 개발하신 특제 시럽으로 만든 샤베트가 요즘 유행이라, 라온이 쏜댔거든요.”
“와, 저도 너무 기대되네요.”
“……?”
니니안에게 답을 하려는데 르디엘이 먼저 대답했다.
니니안이 그를 이상한 사람 보듯 바라봤다.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는 고양이처럼 경계 어린 눈빛이었으나, 르디엘은 웃으며 말을 붙였다.
“안녕하세요. 르디엘 체르실로프입니다. 나누면 복이 온다던데 좋은 건 같이 먹으러 가요.”
“단장님, 샤베트 먹으러….”
“이모님의 사돈의 육촌 누나의 남편분이 개발하신 특제 시럽으로 만든 샤베트가 그렇게 맛있다고 들었습니다.”
라온도 샤베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내게로 오던 중, 르디엘에게 걸렸다.
“고모님의 육촌 언니의 사돈의 둘째 며느리가 개발하신 것이지만…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네, 제 말이요. 빨리 가 보죠.”
“어어, 네네. 이쪽으로….”
라온은 얼떨결에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우리는 르디엘과 함께 샤베트집에 앉아 있었다.
* * *
이아페는 일로제가 걸어간 방향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더는 남부에 찾아와도 자신을 보지 않겠다고 말한 그날 이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지금 놓치면… 언제 다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일로제가 키가 커서 다행이었다. 황급히 시선을 옮기던 이아페의 눈에 회갈색 머리가 눈에 띄었다.
이아페는 곧바로 일로제를 부르려 했으나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얇고도 두꺼운 막에 가로막혀 나오지 않았다.
일로제의 반응이 어떨지 알 수 없었다. 남부에서의 그날처럼 자신을 벌레 보듯 바라볼까. 아니면, 그날은 제 감정이 격했다 말하며 다시 따스하게 받아 줄까.
좋은 반응이 아닐 거라 머리로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희미한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었다.
일로제는 코너를 돌려 하고 있었다. 이아페는 결국 입을 열었다.
“…일로제.”
그의 부름에 일로제가 멈칫했다. 하지만 곧바로 무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이아페는 그의 뒤를 다시 쫓았다. 마치 물속을 걷듯 무거운 걸음이었다.
그가 마침내 형의 어깨를 잡는 찰나. 일로제가 이아페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뒤돌았다.
그의 눈에 담긴 감정은 그것이었다.
경멸.
“아는 척하지 말랬잖아. 게다가 아까 광장에서 그거. 네가 한 거지?”
이아페의 시선이 흔들렸다.
이런 반응일 거라 예상 못 한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언제나 일로제의 앞에 서면, 자신은 그가 떠나던 12살 무렵으로 되돌아갔다.
많은 것이 두려웠고, 떠나는 이에게 매달려야 할 것만 같았다.
“남부 기사단 부기사단장 자리에 올랐다고 들었어. 축하….”
“그만.”
“…….”
“나한테 잘 보이려고 하지 마. 더 이상 날 찾지도 마. 이아페,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 널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우니까.”
일로제의 얼굴이 어떤 순간을 생각하며 일그러졌다. 아마 그 집이 그들에게 있어 어둠이 되어 버린 그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그날일 것이다.
이아페의 눈동자가 조금 떨렸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왜 시샤의 얼굴이 떠오르는 걸까.
그의 마음속에 알량한 희망이 피어올랐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놓아 버리지 않고 끝내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고야 마는 그녀가 이아페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형과 이야기 나누고 나면 모든 게 잘될지도 모른다.
살얼음처럼 느껴지는 발밑이, 사실은 두꺼운 빙하일지 모른다.
“우린 어렸어, 일로제. 우리가 막을 수 없는 일이었잖아.”
놀이를 하던 중이었던가.
〈이아페, 여기는 이아페만의 비밀 장소야. 쉿, 여기에 조용히 있으면 밤의 요정이 널 만나러 올 거야.〉
자신은 어느 테이블 밑에 들어가 있었다. 어둠이 두려웠으나, 어머니의 따스한 말에 정말로 마음이 편안했다.
그렇게 8살의 그는 테이블 아래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이미 어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날의 화재로 죽은 이는 총 여섯.
카일라인 공작 작위를 두고 이어진 권력 다툼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아페가 숨바꼭질을 하는 동안, 몇몇 카일라인의 귀족들이 저택에 쳐들어왔다.
이아페의 아버지, 펠트너가 없는 틈을 타 들이닥친 것이었다. 그중에는 펠트너의 경쟁자로 꼽히는 컬리스너 카일라인도 있었다.
그들이 어머니를 협박하는 과정에서 불이 났고, 그들 모두가 죽어 버렸다.
다행히 이아페도, 일로제도 각자 어딘가에 숨어 있었기에 목숨을 건졌다고 했다.
펠트너는 다음 날에야 돌아왔다. 그리고 이 화재 사건을 계기로 얼마 후, 그는 공작위를 손에 넣었다.
정말로, 어렸던 일로제와 이아페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막을 수 없었다고?”
하지만 이아페의 말에 일로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감정을 삭이듯 눈을 감았다.
감은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일로제는 마침내 눈을 뜨고, 굳은 표정으로 이아페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 기억을 못 해서 참 편하겠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나 선명한데.”
이아페가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기억을 못 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게 무슨 말이야? 애초에… 왜 말하지 않았어? 형이 그날 어머니를 본 거. 처음부터 나한테 털어놨으면 좋았을….”
“무엇을 말해야 했을까?”
일로제의 목소리가 격한 감정으로 일렁였다.
“그때의 그 타는 냄새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까? 아니면 어머니의 옷과 머리칼, 그리고 살갗 모두가 붉은 화염에 먹히는 그 장면에 대해? 그것도 아니면. 그 와중에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동자에 대해?”
멈칫. 8살 때의 잔혹한 장면을 나열하는 일로제의 말에 이아페의 시선이 흔들렸다.
“아니면.”
일로제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말을 터뜨렸다.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솔직히 말하길 바란 거야?”
“…뭐?”
너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아페는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일로제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이제 정말 찾아오지 마.”
일로제는 쌩하니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이아페는 더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그의 형이 빠르게 멀어지는 광경을,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문득 시샤를 처음 만나던 날.
그녀의 머리가 타들어 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걸 볼 때 그의 감정이 어땠더라.
두려움, 그리고 죄책감.
저를 누르는 그 감정에 다급히 불을 끄기 위해 움직였다.
당시 그는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낀 건지 몰랐었다. 그 여자가 함부로 마법을 써서 생긴 일인데.
그냥, 제집에 초대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생긴 불편함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를 더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아페의 머릿속에 그때의 일이 다시 그려졌다.
그의 마음을 조여 왔던 그 두려움은, 기억에서 지워 버렸던 어릴 적 그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기억은 뒤로, 뒤로, 더 뒤로.
어딘가에 숨던 8살의 그를 비추었다.
* * *
“일로제, 이아페. 절대 나가면 안 돼. 이 안에 있어야 해.”
테이블 밑이 아니었다. 저택 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어느 비밀스러운 벽장. 어머니인 로엔은 일로제와 이아페를 그 안에 두고 문을 닫았다.
“나 여기 싫은데… 엄마한테 갈래….”
“안 돼, 이아페. 엄마가 여기 있으라고 했잖아.”
일로제는 떼를 쓰는 이아페를 잡았다.
그런 형의 눈에 마법으로 살짝 바람을 불게 해 눈을 감게 한 것은, 어머니가 없는 이 공간이 8살의 아이에게 있어서 너무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최근 몇 명의 사람이 이아페에게 악마라 손가락질했다. 그래서 눈치를 보는 습관이 들고 있는 그에게, 로엔은 너무도 따스하고 편안한 쉼터였기에.
“이아페… 이아페! 여기 있어야 안전하댔는데….”
이아페가 창고를 빠져나가자, 겨우 눈을 뜬 일로제가 울먹였다. 그것을 듣고 어딘가에서 로엔이 다급히 달려왔다.
“괜찮아, 일로제. 엄마가 데려올게.”
로엔은 다시 문을 닫았다. 겉에서 보기엔 잘 보이지 않는 문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안에서는 문틈 새로 밖이 환히 보였다.
로엔은 이내 이아페를 찾아냈다.
문제는 다시 벽장으로 데려갈 만큼의 시간은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감히 신성한 카일라인의 피를 물려받았으면서 악마의 힘을 가진 놈이 있다니!”
“이아페, 그 망측한 놈을 죽여서 카일라인의 위상을 높여야겠다.”
“애초에 그런 자식을 낳았으면서 공작위를 탐내다니. 제 밥그릇이 뭔지도 분간 못 하는 놈.”
몇 명의 귀족들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보기만 해도 섬찟해지는 흉기가 들려 있었다.
로엔이 이아페를 테이블 아래로 숨겼다.
하지만 아이의 옷자락은 미처 다 들어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