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66
@66. 왜 여기에 있지?
“쥐새끼를 저기에 숨겼군요, 로엔. 배 아파 낳은 놈이라 해서 감쌌다간, 당신도 악마라는 소릴 들을 겁니다.”
컬리스너가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다. 중요한 조언을 한다는 듯 눈썹을 한껏 기울인 채였다.
“말조심하세요. 아이들의 손끝 하나 건드렸다간, 당신들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
로엔의 결연한 눈동자가 저를 둘러싼 귀족들을 향했다. 하지만 그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웃기고 있군. 당신 같은 가녀린 여자가 뭘 할 수 있겠어?”
컬리스너가 로엔의 팔을 붙잡았다.
“이거 놔!”
로엔이 뿌리치려 하자, 컬리스너가 팔을 더욱 우악스럽게 쥐었다.
그동안 다른 이가 이아페가 숨은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가 테이블보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안 돼!”
거센 불길이 일었다.
로엔에게서 시작된 불길은 순식간에 컬리스너의 몸으로 옮겨붙었다.
“뭐, 뭐야! 이년도 마법사였어!”
강렬한 불꽃이 치솟았다.
모든 이가 방을 나서기 위해 도망쳤다.
하나 붉은 화염은 무서운 속도로 그곳에 선 6명의 사람을 모조리 태웠다.
로엔, 그녀 자신을 포함해서.
조절하지 못하고 제 몸까지 태워 버린 그 불길은 분명히 폭주였으나, 폭주라 할 수 없었다.
그토록 무시무시한 크기의 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위는 좁았다.
마치 제 아이들이 있는 곳은 절대로 태울 수 없다는 듯, 테이블과 벽장의 바로 앞에서 불길이 끊어진 것이다.
이아페는 그날 밖에서 나던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무서워서 울기만 했다.
그저 이 악몽 같은 시간을 없애 줄 밤의 요정을 기다렸다.
너무 커다란 충격은 때때로 기억을 변화시킨다. 본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으로.
이아페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비밀 벽장에서 뛰쳐나왔던 일도, 밖에서 들렸던 음성도 모조리 기억하지 못했다.
* * *
이아페가 서 있는 살얼음판은 종잇장처럼 얇았다.
발밑을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던 얼음이 바스러졌다.
그는 또다시 얼음장처럼 차가운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망연하고 아득했다.
발끝에서부터 올라온 사슬이 온몸을 칭칭 감아 옥죄는 기분이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멍하니 서 있는 그때,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혹시 아무 이야기나 하고 싶으면 해도 돼요. 내가 들어주는 건 정말 잘하거든요.〉
친구가 되어 준다고 했지.
‘이번에도.’
하지만 시샤. 내가 이런 나락에 서 있는 걸 안다면, 이걸 당신에게 말한다면.
당신은 지금처럼 밝게 내게 친구라 말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너무도 위태로워서, 금방이라도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은데.
“…이런 나락에 당신을 초대할 수는 없지.”
이아페는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어린 시절 그 테이블 밑에 틀어박혀 있을 때처럼. 가만히 앉아 양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얼굴을 묻었다.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야겠다.
이아페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르디엘 경은 어릴 때부터 계속 성기사였어요?”
“아뇨. 저는 좀 늦게 들어간 편이었어요.”
샤베트를 입 안에 집어넣으며, 르디엘을 빤히 바라봤다. 그는 어느새 이 자리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우리 단원들끼리 샤베트 먹는다는데 거기에 끼는 얘도 진짜 보통 사람은 아니다.
‘분명히 파워 E야. 시상식 하면 반죽좋음상, 이런 거 줘야 돼.’
“제가 원래는 사제가 되고 싶어서 어릴 때부터 일을 배웠었거든요. 때마침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도 했었고.”
“오, 그런데 어떻게 기사의 길로 들어섰어요? 기사단장님의 눈에 띈 건가요?”
“아뇨. 일터에서 쫓겨났거든요. 아무래도 찍혀 버린 것 같은데 마침 기사 시험이 열리길래요. 제가 또 검술 쪽 재능도 출중해 버려서.”
“네?”
해고당했다가 전직했다는 말을 오늘 제육볶음 먹으려다가 찜닭 먹었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역시 신의 직장이란 없는 건가, 싶으면서 얘 하는 모습을 보면 눈치 없이 굴다가 잘릴 만도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체 그 직장이 어디….
‘아.’
문득 이아페와 르디엘이 아는 사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카일라인가에는 상주하는 사제들이 있는데… 혹시 르디엘이 말한 직장이 거기였던 걸까?
“르디엘 경은 집안 전체가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나요?”
라온의 질문에 르디엘은 약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뇨. 아마도 저만인 것 같아요.”
“오, 발현했을 때 정말 축복을 많이 받았겠네요.”
“으음…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런 건 그런 거지 그렇다고 볼 수 있는 건 뭐람?
신성력을 보유한 이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 하나는 가문 대대로 신성력을 보유하여, 피를 물려받은 아이들도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
또 하나는 그냥 미엘 신에게 선택되어 신성력을 부여받은 이들.
“르디엘 경이 이렇게 멋있으신 걸 보면, 가족들도 다들 잘나셨을 것 같습니다!”
라온이 해맑게 르디엘을 치켜세웠다.
“혹시… 형제나 남매 있어요?”
내 옆에서 꼼지락대던 니니안이 질문했다. 아까보단 경계를 푼 모양이었다.
라온이 갑자기 니니안을 팟 하고 바라보았다.
“니, 니니안. 그런 건 왜 물어?”
어째서인지 라온의 눈초리가 불안했다. 그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음… 남동생은 없고 여동생은 있는데 괜찮으세요?”
르디엘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말을 들은 라온이 안도했고, 니니안은 질린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아니이… 동생은 오빠만 신성력을 가진 걸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서요.”
“글쎄요. 휴, 동생들이란 참…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어서 말이죠.”
르디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지금 그게 무슨 뜻이야?
“호호, 동생들을 왜 알 수가 없죠? 오히려 오빠들이 더 이상한데?”
“전 이상하다고는 안 했는데요?”
때아닌 오빠 VS 동생 배틀이 시작되었다. 싸움에는 카실도 동참했다.
“동생은 위에 버팀목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세상 물정을 모르고 너무 돌진하는 경향이 있어. 갑갑하긴 하지.”
“뭐? 오빠야말로… 후, 생각만 해도 한숨이 다 나온다. 뭐든 자기가 세상 제일인 줄 알고 1등으로 해야 한다고 착각한다니까요.”
“너 말 다 했냐?”
“덜 했다, 어쩔래? 셀라임! 셀라임은 어떻게 생각해요?”
“…….”
조용히 샤베트를 먹던 셀라임이 눈을 깜빡깜빡했다.
“…저는 외동이라.”
“아….”
외동의 눈에 이 첫째 VS 둘째 배틀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느껴졌을지 생각하니 갑자기 적의가 짜게 식었다.
그러고 나니 문득.
르디엘에게 궁금한 게 생겼다.
“르디엘 경도 개막 의식 봤어요?”
“네. 신전에서부터 행렬을 따라가며 봤죠.”
“광장에서… 혹시 어땠어요?”
“아, 마법이요?”
고개를 끄덕였다. 르디엘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국가적으로 봤을 땐 이득이겠죠. 마법을 제어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은 현 상황에서 키론 제국뿐이에요. 지금까지의 국력은 신성능력자들의 수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다면, 이제부턴 마법사들 또한 충분히 국력에 보탬이 될 테니까요.”
생각보다 진지한 대답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다만 이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니 그 점이 불안한 요소죠. 신성력은 신의 힘이라는 원천이 있지만, 마법은 아니니까요. 어딘가에서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런 생각은 해 보지 못했는데.
그러게. 마법은 어떤 에너지로 작동하는 것인지 좀 더 연구해 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찬성!”
“…왜요?”
“애초에 저는 남의 인생 간섭 말고 각자 인생 열심히 제대로 살자는 주의거든요.”
어, 그만큼 마이 웨이인 것 같긴 하더라.
“그리고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뭔데요?”
“마법이 대두되면… 그만큼 제가 일할 게 더 줄어든다는 거죠!”
“…….”
르디엘이 야심 찬 목소리를 뱉었다. 그 의기양양함에 나는 말을 잃었다.
정말 이 사람의 인생 모토는 복세편살, 그러니까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가 분명했다.
어찌 됐든 르디엘이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다행이다. 내가 마법사인 걸 알아도 껄끄러워지진 않을 테니.
그 뒤에는 키론 제국의 설화, 신전의 종류를 지나 샤베트의 유래 등… 두서없이 여러 화제로 이야기가 튀었다.
그 와중에도 종종 내 머릿속에선 이아페의 생각이 떠나지 않았지만, 이런 상태를 최대한 숨기고 부러 웃음 지었다.
그리고 찾아온 저녁.
샤베트 집을 나서는데 르디엘이 내게 살며시 속삭였다.
“무슨 생각에 그렇게 빠져 계신지는 몰라도 너무 다른 생각만 하시면 서운해요, 아가씨.”
“…티가 많이 났어요?”
“아뇨. 아가씨를 계속 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걸요?”
르디엘이 장난스럽게 눈썹을 으쓱해 보이더니, 품에서 표 두 장을 꺼내 들었다.
“사흘 후 저녁, 시간 있으세요?”
보고 싶었는데 예매에 실패했던 음악극, ‘침묵 속 파멸’의 표였다.
“무조건 있어요, 시간.”
내 즉답에 르디엘이 상쾌한 웃음을 흘렸다.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
“톤다 거리에서 7시예요. 그날은 온전히 집중해 주세요.”
그때면 이미 이아페에 대한 걱정도 사그라들었을 테니, 음악극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르디엘은 즐겁게 인사했다.
“그럼 다들 신나게 축제를 즐기시길.”
“또 봐요, 르디엘 경.”
르디엘이 떠나고, 나와 단원들은 불꽃놀이가 시작되기 전 귀신의 집 체험을 먼저 하고자 에르트르 광장으로 향했다.
나는 아니란 걸 알면서도 약간의 희망을 품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결국 이아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지금쯤 그는 칼린느와 함께 그 데이지 꽃밭에 있을 테니까.
그래도 다행이다. 칼린느와 만나서 마음이 많이 나아졌을 거야.
그런데 두리번거리던 내 시선에 누군가의 모습이 잡혔다.
귀신의 집에서 걸어 나오는 그 사람을 보며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아페와 함께 있어야 할 칼린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