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67
@67. 칼린느가 아니라, 나야
원작에서 이아페는 라일숲으로 향하며 칼린느와의 추억이 담긴 보라색 나비를 날려 보낸다.
자괴감이 가득한 가운데, 그녀가 자신을 찾아 주길 바라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칼린느는 제 앞에 날아온 길 안내 나비를 보고 이아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홀로 라일숲에 당도한 칼린느는 목격한다.
어머니의 일에 대한 자책으로 제 몸을 불태우려 하는 이아페의 모습을.
머리 위로 떨어지는 커다란 화염. 칼린느는 이아페로 하여금 그것을 멈추게 해야 했다.
‘그런데 칼린느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초조한 걸음걸음은 점차 빨라졌고, 어느새 나는 칼린느 앞에 당도해 있었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시샤 아르비나? 여기서 보니 반갑군.”
칼린느는 반갑게 내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녀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최애가 나를 이렇게 반기는데 이런 기분이 든다니.
“어찌 여기에 계세요?”
“귀신의 집 말야. 나도 궁금했거든. 그래서 호위를 끌고 몰래 나왔지.”
세디안을 힐끗 가리킨 칼린느가 보라는 듯 나를 향해 팔을 벌렸다.
“어때, 감쪽같지 않은가?”
칼린느가 즐겁다는 듯 활짝 웃었다.
그녀는 마치 평민 소년처럼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셔츠에 바지를 입은 채였다.
평소라면 이 그림 자체에 감탄했을 것이다.
인파가 몰리는 축제, 몰래 잠행을 나온 황제와 호위 기사라니. 다양한 로맨스 전개를 상상해 볼 법한 상황이니까.
하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칼린느에게 질문했다.
“송구하오나 혹시… 라일숲에 다녀오셨는지요?”
“아니? 그곳에 뭐가 있나?”
“그럼… 자색 나비를 보지는 못하셨나요?”
“글쎄, 모르겠는데.”
…역시. 그녀는 아직 그곳에 다녀오지 않았다.
게다가 자색 나비가 이아페의 것이라는 것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잖아.
하지만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라일숲에는… 데이지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꽃밭이 있습니다. 데이지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잔잔하게 어여쁜 풍경을 자랑하지요.”
그러니까 어서 그곳에 가, 칼린느.
이아페는 지금 홀로 거기에 있을 거란 말야.
“흠. 글쎄.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군. 그대가 다녀와서 어땠는지 말해 줘, 시샤 아르비나.”
칼린느가 팔짱을 끼고 느긋이 답했다. 뜬금없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듯 무신경한 말투였다.
라일숲에 대해 더 어필하려던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돌려 말하는 것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기에.
결국 마지막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아페 카일라인 공자께서… 폐하의 걸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칼린느의 한쪽 눈썹이 기울었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팔짱을 꼈다.
“공자가 나를 왜?”
“마음을 많이 다치셨습니다. 정말 위태로워 보였어요. 폐하께서 격려해주신다면 많은 힘이 될 것입니다.”
참견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칼린느가 이아페를 막지 않는다면, 이아페는 정말 스스로를 태워 버릴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칼린느의 대답은 칼 같았다.
“시샤 아르비나. 제 발로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기다리기만 하는 이라면 굳이 내가 찾아가 줄 생각은 없어.”
예상치 못한 대답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왜,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마치 이아페를 걱정하지 않는 것 같잖아.’
칼린느는 표정을 숨기는 데 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아페를 걱정하면서도 아닌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상했다.
그녀가 이아페를 조금이라도 신경 쓰고 있다면 지금 그를 무시할 수는 없는데.
설마 칼린느는… 이아페에게 일말의 호감도 없다는 거야?
“그리고 나보다는.”
혼란으로 가득 찬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데 칼린느가 한 마디를 더 던졌다.
“진짜 그자를 걱정하는 이가 가는 게 더 나을 듯한데.”
“……!”
그녀의 말을 들은 순간 마음이 아리듯 일렁거렸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세디안이 칼린느의 귀에 뭐라 속삭였다. 칼린느는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어딘가를 바라보더니, 내게 말했다.
“이만 가 봐야겠군. 얼음 저택과 여름의 눈은 모두 짐을 즐겁게 했어. 포상 휴가는 꼭 내리도록 하지. 그럼.”
칼린느는 돌아서서 세디안과 함께 자리를 떠나 버렸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쿵쿵. 심장 박동이 발끝까지 느껴졌다.
‘지금 이아페를 가장 걱정하고 있는 건….’
무감한 칼린느의 눈동자를 본 순간, 확실히 깨달았다.
축제의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하루 종일 한 사람의 생각밖에 하지 못한 것도.
원작의 흐름이 어떻게 되든, 이아페가 상처 입는 것이 제일 두려운 것도.
‘나야.’
나도 모르게 뒤돌아 발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내딛기 시작한 걸음은 어느새 빨라졌다.
마치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처럼,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딘가를 향해 춤을 추듯 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쩌면 이아페도 거기 없을지도 몰라.’
오늘 그가 분명 형을 만났다고는 하지만, 그리 상처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금쯤 피곤해서 그냥 집에서 쉬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하지만.
몸이 저절로 라일숲의 꽃밭을 향해 뛰어가는 걸, 나는 막을 수가 없었다.
적당한 곳에서 나는 라일숲의 입구로 순간 이동을 했다. 하지만 그 꽃밭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기에 지금부터는 직접 찾아야 했다.
이미 해가 떨어져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이었다. 시야를 밝힐 램프 하나를 들고 그 불빛에 의지해 걸음을 옮겼다.
어디선가 음산한 기운이 뻗쳤다. 밤의 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몸이 흠칫 떨렸다.
마음이 착잡해져 왔다. 제발 이 길의 끝에 이아페가 있었으면.
책 속의 묘사를 떠올리려 최대한 노력했다.
거리에서 라일숲으로 들어가는 가장 가까운 입구. 그곳에서 30여 분을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인헬 나무 길.
가늘고 높은 인헬 나무들의 사이로 들어가서 옮겨야 하는 걸음걸음.
하지만 길은 험하고 그는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고 같은 길을 돌았고, 막다른 길에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여기서 포기해 버리면 이아페는 홀로 심연으로 가라앉아 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소설에 묘사된 그 언덕이 보였다.
이 언덕만 오르면 데이지 꽃밭이 나타난다.
‘제발… 제발 늦지 않았길.’
무사히 거기 있어 줘, 이아페.
숨이 찼지만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마침내 그 언덕을 올랐을 때, 내 눈앞에는 정면에 커다랗게 떠오른 달,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 잔꽃의 무리가 보였다.
‘이아페는….’
없었다.
그곳에는 그저 평온한 꽃밭뿐.
소설 속에 묘사된 화염도, 꽃밭 가운데에 서서 그것을 온몸으로 받으려 하는 이아페도 없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아무래도 이아페는 생각보다 상처받지는 않았나 보다. 칼린느가 이곳에 오지 않았듯, 이아페도 오지 않은 것이다.
쏟아지는 안도로 몸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나는 얼굴을 손에 푹 묻었다가 놓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정말 다행….’
다시 한번 꽃밭을 돌아보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저 멀리 흔들리는 꽃들 사이로, 가운데에 누워 있는 누군가의 형체가 보였다.
“안 돼….”
두려움이 차올랐다.
입으로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린 양, 입을 굳게 다문 채 코로만 작게, 쌕쌕, 숨을 내쉬었다.
그를 향해 넘어질 듯 빠르게 달려갔다. 그러면서도 너무도 무서웠다.
지금이라도 그를 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아니라면?
그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역시 칼린느가 왔어야 했는데. 내가 아무리 친구라고, 당신이 아프면 걱정될 거라고 말해 봤자 소용없었던 건데.
깊고 푸른 물 같은 이아페에게 있어서 나는 솜사탕 같은 존재.
그에게 유리한 언어를 가르쳐 줌으로써 즐거움을 안겨 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거리를 유지했을 때의 일.
내 말 따위는 이아페의 마음 안으로 절대 들어갈 수가 없다. 수면에 닿는 순간 모조리 사라져 버리고 마니까.
“이아페…?”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믿고 싶지 않지만, 꽃밭에 조용히 누워 있는 것은 이아페가 맞았다.
마치 고요히 잠든 것처럼, 그가 이곳에 있었다.
* * *
기억이란 참 이기적인 존재다.
본인에게 불리하다 해서, 마치 없는 일처럼 만들어 버리다니.
일로제의 말이 맞았다. 그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아페는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던가.
일로제가 집을 찾지 않는 것이 공작 때문이라 여겼다. 어머니가 죽게 방치하고, 그녀의 죽음을 양분 삼아 공작위를 차지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나 때문이었어.’
내가 어머니를 죽였다. 내가.
그곳에 얌전히 숨어 있었다면, 그들에게 들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어머니가 굳이 마법사라는 것을 밝히며 불을 쓸 일도, 그 불로 인해 죽을 일도 없었다.
‘나는 저주받은 존재다.’
이아페는 홀로 라일숲의 데이지 꽃밭을 찾았다.
바람이 불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솨아…. 하얀 들꽃과 풀이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목숨 위에 살아온 삶이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일로제도… 아마 자신을 평생 경멸하겠지. 감히 용서받겠다는 생각을 해서도 안 되었다.
꽃밭에 선 이아페가 담담히 제 손 위에 불을 올렸다. 그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허공을 배회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를 죽게 만든 것이 자신이라니. 죽어 마땅했다.
하나 어머니의 목숨을 빌어 살아난 자신이기에 함부로 죽을 수도 없었다.
이아페가 허공에 불을 띄운 채 팔을 떨구었다. 떠 있는 불꽃의 크기가 점점 커져 갔다.
죽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태우는 건 어떨까. 살갗이 타들어 가는 고통. 죽을 만큼의 고통을 느끼면 조금은 속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태우고, 태우고, 또 태우다 보면….
〈친구니까, 혹시라도 당신이 다치면 많이 슬플 거예요.〉
문득 오늘. 그녀에게서 들은 말이 귓가를 스쳤다.
몸집을 불리던 불꽃이 속도를 늦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