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68
@68. 밤의 요정
〈우리 친구 할래요?〉
이 말은 오늘… 아니, 그때였던가.
남부에서 올라와 방문했던 가면무도회. 아직 차가운 바람이 스치던 그날의 발코니.
숨 쉬는 게 힘들 정도로 힘들었던 날에 그녀는 자신을 다독였다.
그리고 친구가 되자고 말했었다.
그날의 일은 잊어버렸으니, 그녀로서는 오늘 처음으로 말한 거겠지만.
〈사람들이 슬프고 괴로운 게 다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도요. 나 자신을 상처 입히고, 찌르고, 할퀴어야 속죄가 될 것 같아도 말이에요. 전부 틀렸어요.〉
〈…….〉
〈그런 방식으로는 누구도 구원할 수 없어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어요.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하길 원하는 사람도 없어요.〉
〈…어째서?〉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거든요. 이미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고.〉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그날의 시샤를 떠올리자, 불이 점차 작아져 갔다.
“정말… 그럴까요? 이게 틀린 방법인가요?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해요…?”
불이 사라지고 달빛만이 남은 꽃밭.
풀썩. 이아페가 쓰러지듯 몸을 눕혔다.
그가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랑받는 자신과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 죽어선 안 되는 자신과 죽어야 하는 자신.
양가감정이 시시각각으로 충돌했다.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곳은 너무도 익숙한 공간이었다.
어릴 적에 잠깐, 빛을 가진 누군가가 제 세상으로 들어온 적이 있다. 하지만 제 속을 보이자 떠나가 버렸다.
그래서 그는 더욱, 이 칠흑 같은 밤이 자신만의 세상이라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평생을 이곳에 갇혀 살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 해도 괜찮았다.
그는 계속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이젠 앞이 보이지 않는 지금이 무서워졌다. 홀로 유영해야 하는 심해가 두려웠다. 외로웠다.
어째서일까. 익숙한 줄 알았던 어둠이 낯설었다.
이 바다에서 나가면, 저 밝은 세상을 발견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헤엄을 칠 수 없었다. 그것은 시도하지 않았던, 해서는 안 되었던 일이었다.
〈쉿, 여기에 조용히 있으면 밤의 요정이 널 만나러 올 거야.〉
어머니, 밤의 요정은 언제 저를 만나러 오는 걸까요? 저는 파도에 휩쓸릴 뿐, 밤의 요정을 찾을 수가 없어요.
이아페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아페! 눈 좀 떠 봐요!”
혼자만의 공간이었던 그 어둠 속에 거짓말처럼 빛이 손을 뻗었다.
밤의 요정이었다.
* * *
“이… 이아페, 어떡해… 눈 좀 떠 봐요, 제발…!”
하얀 꽃밭에 홀로 눈을 감은 채 쓰러져 있는 이아페.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튀어나왔다.
두려움으로 몸이 떨렸다.
나는 누워 있는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직 이렇게 따뜻한데. 심장도 뛰는 것 같은데. 내 뒤통수에 이렇게 손도 올리는….
“시샤 님?”
벌떡 일어나며 그를 바라보았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에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날 바라보는 이아페의 모습이 보였다.
“아아….”
안도가 차올랐다.
그가 무사한 것을 확인했으니 마냥 기뻐야 하는데, 이상하게 울컥했다.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이렇게 무서운데. 이렇게 어둡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그리고 공허한데.
왜 이런 곳에서 혼자 슬픔을 삭이고 있는 거야.
눈물이 차올라서,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시샤 님.”
그가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하지만 지금 입을 열면 잠긴 목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대답하지 못했다.
싸아…. 바람이 들판을 쓰다듬고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곳까지.”
이아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딘가 갈라진 목소리로.
“…그냥, 여기 있을 것 같아서. 램프 하나 들고 열심히 왔어요.”
“어두운 길이었을 텐데… 혼자 오신 겁니까?”
“네, 저 혼자 여기까지 낑낑대며, 벌벌 떨면서, 부엉이 소리에, 멀리서 들리는 동물 울음소리에 놀라면서 올라왔어요.”
“…….”
“그러니까 왜 여기 있어요! 괜히 나 여기까지 오게 만들고….”
팔이 살짝 당겨졌다. 균형을 잃은 몸이 엎어졌다. 이아페의 위로.
“이아페…?”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조금 빠르게 뛰는 그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울컥했던 감정들이 바람 소리와 함께 조금씩 잠잠해졌다.
“…시샤 님.”
“네, 이아페.”
“…오늘, 형을 만났습니다.”
이아페가 차오르는 감정을 이야기로 치환해 털어놓았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형이… 제가 잊고 있던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게 너무, 죽을 만큼 괴로워서 눈앞의 감정들에 먹힐 뻔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당신의 말들이 떠오르더군요.”
“내가 한 말요?”
“나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게 속죄는 아니라는 말. 너무 괴로울 땐 그리운 추억들을 떠올리라는 말.”
내가 이아페에게 그런 말을 했던가.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그가 말을 이었다.
“시샤 님.”
그가 다소 덤덤하지만 수많은 기억과 시간, 휘몰아치는 감정들을 담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정말 제가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인가요?”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당신은 사랑받으며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형이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어요. 원망과 죄책감이 너무 크면, 가끔은 잘못된 방향으로 화살을 쏘기도 하니까요. 진짜 과녁은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고맙습니다.”
심장이 쿵, 크게 울렸다.
이아페가 내게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그가 울먹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몇 마디 말을 던졌을 뿐.
하지만 지금은 뭐가 고마운지 묻거나, 고마워할 것 없다고 말하는 것보다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다.
“보고 싶었어요. 안 와서 걱정했어요. 그리고 이런 얘기들…. 내게 들려줘서 나도 고마워요.”
이아페가 잡은 내 손을 조금 꽉 쥐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손이 평소보다 조금, 차가웠다.
토닥토닥. 왼손으로 닿아 있는 그의 가슴을 일정한 템포로 토닥이며 달랬다.
마음을 누가 쥐어짠 듯 찡했다.
이아페의 어머니는 이아페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잘못한 것은 어린 이아페를 죽이려 든 그들이다.
이아페도 어머니를 잃은 피해자인데.
그럼에도 고작 8살의 나이에 마법사라는 이유로 주눅 들어 지냈으며, 그가 마법사라는 것을 아는 이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는 형과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고립되어야 했다.
일로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원작에서 원망을 떨쳐 내지 못한 그는 흑마법을 써 가면서까지 동생을 죽이고자 한다.
이에 대응하던 이아페가 결국 마법으로 형을 죽이고 말았고.
이 일로 마법은 다시 쇠락한다.
‘막을 수 있을까.’
본래는 일로제가 이아페를 공격했을 때, 이아페가 형을 죽이지 않도록, 그저 제압만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를 알아 갈수록.
그게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커졌다.
애초에, 일로제가 이아페를 공격하는 일 따위를 만들지 않아야 했다.
오늘 이아페를 일로제와 마주치지 못하게 하면 어떨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아페와 일로제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아페가 일로제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상, 그들은 어긋난 채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 언젠가 일로제는 이아페를 해치려 할 것이고, 그럼 이아페는 어쩔 수 없이 그를 공격하게 되겠지.
‘역시 대화가 필요해. 서로의 상황을 알게 된 지금 상태에서, 다시.’
축제가 끝나면 남부로 간다.
유난히 더운 남부에 쿨링 마도구를 보급하는 제안을 하기로 했으니.
그때 일로제를 만날 기회가 한 번 더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정말로.”
조금 더 담담해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앞으로도 무슨 이야기든 다 해 줘요. 친구니까.”
친구라는 이름은 정말로 쓸 만했다.
그의 삶을 소설에서 보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으면서도, 마치 다 아는 양 말하는 오만과 오지랖이 받아들여졌으니.
친구라는 이름 아래, 감정과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서로를 위해 울고 공감할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일 터였다.
“곧 불꽃놀이가 시작됩니다.”
이아페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에 나도 함께 일어나며 그를 바라봤다.
“…기억하고 있었어요?”
기억 못 할 줄 알았다. 다른 생각들이 워낙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보니.
“곧 광장으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함께 보기로 했으니까요. 당신이 날 먼저 찾아 주었지만.”
이아페가 붉어진 눈가를 접으며 옅게 미소 지었다. 씁쓸하면서도 후련해 보이는 미소 뒤에 작은 설렘이 느껴졌다.
문득 여전히 잡고 있는 한쪽 손이 느껴지자, 손에서부터 온몸으로 열기와 찌릿함이 퍼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뒤로 뺐다. 방금까지 어떻게 그를 안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상하게 그와 시선을 마주치는 게 갑자기 어려웠다.
나는 옆으로 시선을 옮기며 횡설수설했다.
“이 꽃밭. 정말 예쁘네요. 나무들에 가려 불꽃은 안보이겠지만 그래도….”
“볼 수 있습니다.”
이아페가 내게로 한 발짝 다가왔다. 나는 다시 가까워진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아페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에스코트를 하는 듯 가볍게 뻗은 위로 내 손을 올리자, 그가 다른 쪽 손으로 하늘을 콕콕 가리켰다.
“하늘에서?”
이아페가 싱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소에 나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공중 부양!」
우리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위를 올려다보고 있던 그가 고개를 숙여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를 빤히 보고 있던 게 들켰을까.
이아페는 따뜻한 목소리로 “더 위로 갈까요?” 하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결에 그의 머리가 살짝 날렸다.
어느덧 우리는 나무보다 더 위에 올라와 있었다. 저 멀리 축제를 즐기는 거리가 보였다.
활기찬 빛으로 가득한 그곳을 바라보는데, 정작 내 주변은 고요한 것이 이상했다.
나는 발아래의 숲을 내려다보았다. 아까는 너무 무서운 길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지금 이 기분은 뭘까.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어서 괜히 이아페에게 질문했다.
“이아페, 지금 기분이 어때요?”
그는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까는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가 잠시 나무들 너머 먼 곳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행복하네요.」
듣기 좋은 저음이 귓가에 울렸다. 견디기 힘들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