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69
@69. 그날, 가면무도회 (1)
행복. 행복, 행복.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지 못한 지 참 오래되었다.
그런데 그가 그 말을 하는 그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지금 나도 분명….
이아페와 손을 잡고 이곳에서 떠오른 이 순간이.
어떠한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온전히 지금을 느낄 수 있는 이 순간이.
높은 곳을 떠다니는 바람이 되어 어두운 자연을, 저 너머 보이는 거리의 불빛을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나도 행복해요.」
그 순간, 저 멀리서 펑! 하고 불꽃이 터졌다.
내 말은 불꽃 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았다. 나조차도 들리지 않았으니 이아페도 당연히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 뭐 어때. 그와 나는 지금 같은 행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색 빛깔의 불꽃이 터졌고, 그 빛이 근처의 나무들까지 퍼져 나무의 머리를 붉은빛, 오렌지빛, 파란빛으로 물들였다.
와아! 나는 눈을 빛내며 그 빛들을 바라봤다.
“살면서 본 불꽃 중에 제일 예뻐요!”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려 짐짓 크게 소리쳤다. 그가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네. 너무… 아름답군요. 다행입니다. 불꽃을 함께 볼 수 있어서.”
행복이 묻어 나오는 시선이었다.
이아페가 내 한쪽 손을 잡은 채 한 발 물러나더니, 한쪽 발을 앞으로 빼고 허리를 살짝 굽혀 인사했다.
무도회에서 춤을 시작할 때의 인사였다.
귓가에 낭만적인 왈츠의 선율이 들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불꽃놀이를 함께 보자는 말의 두 가지 의미.
그냥 같은 장소에서 불꽃을 보자는 뜻과 불꽃을 배경으로 한 무도회에서 함께 춤을 추자는 뜻.
그가 처음부터 후자의 의미로 말을 한 건지, 지금 이 분위기에 취해 춤을 시작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뭐가 됐든, 지금 내가 무척 즐거운 기분이 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도 치마를 살짝 잡고 무릎을 굽혀 인사에 화답했다.
그의 손을 마주 잡지 않은 다른 손을 뻗어 그의 어깨에 얹었다.
오색으로 물드는 세상에서, 우리는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때로는 큰 보폭으로 뒤로 물러섰다가, 때로는 천천히 그와 함께 옆으로 회전했다.
몸의 방향은 쉼 없이 변했지만 내 시선은 이아페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표정은 찬란한 불꽃의 빛깔에 맞춰 함께 물들었다.
이아페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고, 나는 그 아름다운 광경을 응시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지금 이렇게 불꽃을 보며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어서. 이 밤이 그에게 또 다른 아픈 기억으로 남지 않아서.
‘대체 왜 칼린느는 이아페를 걱정하지 않은 걸까.’
의심해 본 적 없던 원작의 흐름이 달라졌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된다 해도 다시 조금 전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이아페를 찾으러 가리라는 것.
가능성만을 가지고 그를 방치하는 것은, 이제 절대 할 수가 없었으니까.
‘아.’
마음이 찌르르르, 하고 울렸다. 그를 볼 때마다 느껴지곤 하던 감각이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문득 의문이 생겼다.
‘나는 이아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흔들리는 시선이 이아페를 향했다.
그동안 불꽃은 사그라들었고, 이에 맞춰 춤도 끝났다.
우리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서로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땅으로 내려올 때의 고요한 잔풍에 은은한 데이지 향이 실려 왔다.
바람 소리가 음악처럼 깔리는 가운데, 나는 지금 누구보다도 빛나는 이아페를 눈에 담았다.
“가면은 잘 가지고 계십니까?”
그때 이아페가 부드럽게 웃으며 질문했다.
“가면? 아, 그 수선화 가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보관은 하고 있지만… 줄곧 궁금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질문했다.
“그거, 왜 제가 가지고 있는 거예요?”
“음, 비밀입니다.”
이아페가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광장으로 가는 동안, 그는 무언가 좋은 추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 * *
그날, 가면무도회에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이아페는 조금 더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녀에 대한 감정을 조금 더 오래 부정했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돌고 돌아 결국은 그녀에게 빠져들고 말았을 것이다.
이아페는 지난 초봄에 참석했던 가면무도회를 떠올렸다.
참석 전, 남부에서 일로제를 만난 뒤로 그의 심장은 계속해서 날뛰었다. 의사를 불러 보았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다 했다.
그는 이것이 제 나약한 마음 때문임을 알았다. 그래서 이 정도로 힘들다 느끼는 자신이 초라하게 여겨졌다.
무도회로 향하는 마차에서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기에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조용히 무도회장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제는 발생했다.
쨍그랑! 근처에 선 누군가가 실수로 잔을 떨어뜨려 깨뜨렸다.
날카로운 파열음은 이아페의 심장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바닥에 널린 유리 조각이 일로제의 앞에서 깨졌던 화병과 겹쳐 보였다.
호흡이 가빠졌다. 속이 메슥거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있는 이곳에서 그 혼자만 이질적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불안이 엄습했다. 그는 저릿한 발을 애써 옮겨 도망치듯 발코니로 나갔다.
이마께를 간질이는 바람이 꽤 차가워서, 땀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심장이 두근대고 어지러웠다. 떨리는 발걸음으로 회장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사각지대에 있는 난간에 쓰러지듯 기대앉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질까.
하지만 누군가 이렇게 흐트러진 제 모습을 본다면.
숨을 가쁘게 몰아 내쉬는 중에도 그의 머릿속에 온갖 불안한 상상이 스쳤다.
그런데 그때.
발코니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한 여자가 들어섰다.
“하얗게 불태웠다… 어.”
시샤 아르비나, 그녀였다.
일로제의 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문득 제 머릿속에 나타나 사방을 휘젓고 다니던 이상한 여자.
이아페를 발견한 시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돌아서려던 그녀는 뭔가 불만이 있는 듯 입을 꾸물거렸다.
“위험해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다가왔다.
가면을 쓰고 있어 그녀는 그가 누군지도, 정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곧 신경 쓰지 않고 나가겠지.’
다행히 아픔을 티 내지 않는 것, 참는 것은 이아페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였다.
다만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시샤의 오지랖이 생각보다 넓었다는 것이다.
“그 난간, 좀 삭은 것 같아요. 무너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
“힘들면 안의 프라이빗 룸에 가서 쉬어요. 아니면 집에 가는 게 좋겠어요. 마부를 대신 불러 줄까요?”
대답하지 않음에도 시샤는 꿋꿋이 말을 이었다. 결국 이아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원래 그렇게 참견이 심한가?”
“뭐라고요?”
“신경에 거슬리니까 그만 꺼지라고.”
시샤가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이아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정적이 흘렀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이젠 가 버렸겠지.
바스스.
그때 뒤에서 가루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샤의 말대로 발코니의 난간은 삭아 있었다. 이대로 계속 기대어 있다가는 떨어질지도 몰랐다.
난간에 온전히 무게를 실은 몸이 살짝 기울었다.
몸을 떼어 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떨어진다.
그걸 알면서도.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몸이 무거웠다.
심장이 너무도 저려서, 차라리 떨어져서 온몸이 아픈 게 나을 것 같았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존재, 축복하지 않는 삶이라면….
이런 우연히 찾아온 기회가 감사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난간이 완전히 부서졌다.
그때였다.
“으악!”
가까이서 들려오는 비명에 이아페는 눈을 떴다.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끌어안듯 잡고 있었다.
시샤 아르비나, 그 여자였다.
등 뒤에 있던 기둥은 이미 사라지고 휑했다. 이대로라면 그녀와 함께 떨어질 것 같아서, 이아페는 몸의 중심을 발코니 쪽으로 옮겼다.
그가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시샤가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미쳤어요?”
“…….”
“죽으려고 환장했어요? 왜 가만히 있어요? 난간이 기우는 거 알고 있었잖아요! 근데 왜 힘을 빼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토록 화내는 것이 오랜만이라, 이아페는 솔직히 조금 놀랐다.
“살아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
그 말에 이아페는 말문이 막혔다.
마치 자신에게 살아 있으라고 하는 것만 같아서, 가슴 속에서부터 뜨거운 일렁임이 차올랐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도 당황스럽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눈앞에 있는 여자는 심지어 울먹이고 있었기에.
죽을 뻔한 것은 이아페인데. 왜 그녀가 우는 것인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발코니 난간이 부서져 떨어졌다는 것을 알고 사용인들이 황급히 달려 나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아아, 안 되는데.
안으로 들어오자 공기가 텁텁했다. 발코니에서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안은 즐거운 소음과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숨이 막혔다. 심장이 다시 갑갑해져 왔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 호흡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빠졌다.
가슴이 아팠다.
식은땀이 흘렀다.
“왜 그래요?”
결국에는 그녀에게 들키고 말았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불안한지를.
옆에서 걷던 시샤가 붉어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의사를…!”
앞서 걷고 있는 사용인에게 뭐라 외치려는 시샤를 이아페가 잡았다.
그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더 주목받는 건 정말로 사양하고 싶었다.
시샤는 큰 눈에 혼란을 가득 담은 채 이아페와 눈을 마주쳤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고집스럽게 제 팔을 잡은 그를 보며 시샤는 입술을 다물었다.
“예? 무어라 하셨습니까?”
사용인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시샤가 이아페의 앞으로 한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바람을 좀 쐬고 싶어요. 밖의 조용한 곳으로 안내해 주세요.”
이아페는 눈을 아래로 내려 제 앞을 막고 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지금의 상태를 들키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알고 가린 것이었다. 그녀의 몸에 그가 가려질 리 없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