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7
@7. 마법을 제어하는 방법은 00이에요
이아페의 살짝 내리깐 시선이 보랏빛 머리를 응시했다.
“이렇게 탐스러운 머리를 잘라 버렸으니, 많이 속상하셨겠군요.”
“…괜찮아요. 어쩔 수 없었으니까.”
“정말인가요?”
이아페가 한쪽 손으로 부드럽게 내 머리카락을 그러잡았다. 머리카락에까지 신경이 곤두선 기분에 내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소원이 이뤄졌잖아요.”
“소원이라.”
그가 허리를 숙이며 머리카락을 감은 손을 제 입술에 살짝 가져다 댔다.
“내 소원은 이뤄 주지 않던데.”
“…다른 걸 빌어 보면.”
“아르비나 영애.”
아래로 잠겨 있던 이아페의 시선이 올라와 내 눈과 마주쳤다.
“나는 그 추상적이고 허황된 것을 믿지 않아요. 다른 방법이라면 모를까.”
예의 바르게 포장된 말투와는 반대로, 깊은 눈동자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가슴이 쿵쾅댄다.
기묘한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나를 억누른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저 눈 속에 그가 기대하는 답이 있을 테니까.
내 말을 믿지 않음에도 그가 이곳에 온 이유. 그리고 이아페라는 사람이 살아온 삶.
그 순간 깨달았다.
그가 원하는 답. 동시에 내게 유리한 답이 무엇인지.
“사실은, 소원 인형이 아니에요.”
나는 이아페의 뒤로 번지는 하얀 빛줄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이야 사기지만, 도서관만 찾으면 사실이 될 말을.
“마법을 썼어요.”
이아페의 자색 눈동자에 미묘한 생기가 돌았다.
“…이것도 믿어 주지 않을 건가요?”
떨리는 눈으로 묻는 나를 향해, 그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럴 리가.”
그 말투가 너무도 상냥해서, 나는 그에게 있어서도 마법이 놓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확신했다.
“말씀드리려 했던 정보도 이 힘과 관련이 있어요.”
이아페가 멈칫했다.
스르륵, 허리를 펴는 그의 손에서 내 머리칼이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가 자리를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의한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정보를 드리면 제 부탁도 들어주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약속하죠.”
“미엘 신에게 바칠 이름을 걸고.”
그의 표정이 서늘하게 굳었다.
미엘 신에게 바칠 이름을 건다는 것은 영혼을 건다는 것과 같은 말로, 이렇게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신의 응징을 받을 거라 여겨졌다.
이아페는 대답 없이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그가 또 거절을 말할까 봐 나는 황급히 덧붙였다.
“어떤 장소를 찾고 있어요. 그걸 도와주세요.”
얼음장처럼 차게 식은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눈은 단호히 그에게 고정했다.
이아페의 입술이 작게 열렸다. 나지막한 답이 던져졌다.
“약조하죠. 미엘 신에게 바칠 이름을 걸고.”
앗싸! 됐어!
속으로는 난리 블루스에 공중제비까지 돌고 있었으나, 그것을 티 내지 않기 위해 그의 팔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찻잔을 들어 마셨다.
이아페는 자신의 팔을 잠시간 응시했다가 다시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터뜨리듯 말했다.
“폐하께서는, 마법을 긴밀히 이용하실 생각이십니다.”
이아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야 감상을 말할 생각인 듯했다.
“키론 제국은 신권이 강한 나라예요. 예로부터 황실은 신전을 이길 수가 없었죠. 황실의 지지 세력 또한 신전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폐하는 아니에요.”
“온전한 지지 세력이 전무하시니.”
그가 남의 일을 말하듯 무심하게 내뱉었다.
소설 속에선 그렇게 죽고 못 살던 칼린느였는데. 아직 사랑에 빠지기 전이라지만 조금 낯설었다.
“기존 세력이 없다는 건 오히려 폐하의 강점이 될 거예요. 곧 폐하만의 독보적인 지지대를 직접 만드실 테니까요.”
“그것이 마법이라는 거군요.”
“맞아요.”
“그 말대로라면 가장 타격이 클 가문이 카일라인이라는 것 또한 알고 계십니까?”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이아페가 나를 떠보듯 질문했다.
카일라인은 대대로 신전의 사랑을 받아 온 가문이다.
카일라인은 신전에 대한 지지를, 신전은 카일라인에 대한 사랑을 약속했다.
이는 카일라인이 제국의 둘밖에 없는 공작가로 자리매김해 올 수 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이아페가 아직 칼린느에게 빠지지 않은 지금, 어쩌면 나는 중요한 카드를 적에게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아페라면 단순히 사랑 때문에 움직이지는 않았을 거야.’
아마 의식 저편에서는 계산했겠지.
마법으로 칼린느의 옆에 서는 것이 결국 자신과 가문 모두에게 이로운 일임을.
처음에는 가문이 흔들릴지 모르나, 종국에는 새로운 권력을 잡는 키가 될 것임을.
“마법을 사용한다 해서 신전과 척지게 되는 것은 아니에요. 악마의 힘이라는 프레임만 없애면 공존할 수 있어요. 게다가….”
나는 앞에 놓인 초콜릿 하나를 집어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렸다. 이아페는 그답지 않게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했었지.
“공자님은 사탕의 달콤함에 빠져서 초콜릿을 마다할 분이 아니시잖아요?”
내 말에 이아페가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휘어진 눈 안에는 아직 가시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버리는 패가 되지 않아야 할 텐데요. 새로운 힘으로 권력을 세운다는 좋은 전략을 누구도 활용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으니.”
“마법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 때문인가요?”
내 말에 이아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답을 가지고 있냐고 묻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자신만만했다.
왜냐하면….
“제가 알고 있다면요? 제어하는 방법.”
“흐음.”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은 붉은 입술 새로 흥미가 새어 나왔다.
그의 눈에 스친 이채에 가슴이 조금 뛰었다.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마법을….”
이아페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의 온 시선이 내가 내뱉을 스포일러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 짜릿해라.
매번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사람이 내 이야기에 이렇게나 집중하다니.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나도 모르게 말을 늘이며 실시간으로 이아페의 반응을 살폈다.
“뭐냐며어언….”
“하.”
이아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너무 뜸을 들였나?
나는 배시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말할게.
“주문이에요.”
제 머리를 넘기던 이아페의 손이 멈췄다. 살짝 헝클어진 검은 머리가 앞으로 그늘을 드리웠다.
전설 속의 고대 마법 제국, 코레아리아.
마법으로 온 대륙에 위상을 떨쳤으나, 지금은 그 영광에 대한 추측만이 구전되어 오는 나라.
그곳의 언어를 해석한 것이 마법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코레아리아어로 된 주문이 마법 제어의 키예요.”
마법 그 자체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힘이다. 그렇기에 응용할 수도 없고, 본인의 한계를 넘으면 폭주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잘 다듬고 조각해 세상으로 내보내는 틀이 있으니.
그게 바로 주문이다.
“재밌는 가설이군요. 하지만 몇천 년 전 멸망한 나라의 주문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실존했는지조차 미지수인데.”
“어떤 장소를 함께 찾아 달라는 부탁, 들어주신다고 하셨죠?”
이아페의 눈이 가늘어졌다.
“코레아리아의 도서관이에요. 그곳의 고서들이라면 주문은 차고 넘치겠죠.”
대체 얼마나 대단한 언어이길래 마법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건지. 도서관을 찾으면 그 낯짝은 꼭 봐야지.
“당신 머리도 같은 방법인가요?”
이아페의 시선이 내 머리를 향했다.
“맞아요. 하지만 방법을 보여 드릴 수는 없어요.”
그의 한쪽 눈썹이 의문으로 치켜 올라갔다.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최소한의 보험은 있어야죠. 도서관을 찾지도 않고 모든 패를 보여 드릴 순 없으니까요.”
뻔뻔하게 생긋 웃으면서 손으로는 드레스 자락을 꽉 쥐었다. 부드러운 천이 초조한 손가락 사이로 구겨져 들어갔다.
물론 보험 어쩌고는 개소리다.
그냥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소원 인형의 산물이지, 마법으로 머리카락을 길게 만든 것이 아니니까.
다행히도 이아페의 표정은 약간의 불신을 담고 있었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머리가 긴 것은 사실이니 넘어가는 모양이었다.
“그곳의 위치에 대한 단서는 있습니까?”
“강이나 호수 같은 물속에 숨겨져 있어요. 마력을 주입해야 찾을 수 있고요.”
“아.”
이아페의 고개가 비딱하게 기운다.
“그럼 저는 못 찾겠네요.”
그가 생긋, 미소 지었다.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려다가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성급했다.
아직 마법이 얼마나 위력을 가질 수 있는지 보장할 수 없었기에, 이아페는 한 발을 빼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가 다시 벽을 쌓을까 봐 나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도와만 주세요! 마력을 쓰는 건 제 일이에요.”
“우리가 함께 모든 강과 호수를 정복하길 바라는 건 아니겠죠.”
“당연하죠. 또 한 가지 단서가 있어요. 그곳은….”
힐끗, 이아페의 눈치를 살폈다. 도서관이 어딨는지 알아내려면 결국 말해야 할 단서였다.
“어릴 적 당신이 어머니와 함께 방문했던, 추억이 쌓인 곳에 숨겨져 있어요.”
이아페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바늘처럼 따가웠다.
하지만 그가 나를 의심해도 어쩔 수 없다.
추억의 장소에 유적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부터가 허황되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알아냈는지도 설명하기 애매했으니.
그래서 약조를 미리 받아 낸 것이다.
이미 그는 신에게 바칠 이름을 걸고 도서관을 찾겠다고 약조해 버린 상태이니 배 째라는 심정이랄까.
“정답을 알고 말하는 겁니까?”
“아뇨. 제가 얻은 정보는 여기까지예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꼭 당신의 기억이 필요해요.”
“그렇군요.”
테이블에 기대어 있던 이아페가 몸을 일으켰다.
‘아직 이야기 안 끝났는데?’
드르륵, 쾅. 급하게 그를 따라 일어나면서 의자가 넘어졌다.
하지만 그와 나 모두 의자가 아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이아페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