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71
@71. 자각
“으아아아아악!”
귀신의 집으로 변모한 얼음 저택 안.
카실이 소리를 지르며 복도를 질주해 달아났다. 니니안이 그것을 보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미쳤나 봐….”
“니니안, 카실은 저렇게 무서워하는데 미쳤다고 하면 안 되지.”
“저렇게 혼자 다니는 게 더 무섭겠다. 라온, 네가 가서 좀 데리고 오는 게 어때?”
“이미 떠나 버리고 말았는걸.”
라온이 고민 없이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도 귀신의 집에 가장 열성적으로 아이디어를 냈던 셀라임이 카실 구제에 자원을 했다.
“저긴 뛰어넘지 않고 천천히 즐겨야 하는 구간인데… 제가 데려올게요.”
“앗, 그러시겠어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셀라임이 사라진 카실을 향해 조금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이 길에는 이제 라온과 니니안만 남았다.
“시샤 님은 어디에 가 버리신 걸까?”
“…너는 지금도 시샤 님 생각뿐이야?”
“그럼 누구 생각을 해?”
“아니, 뭐, 그냥… 꼭 누구를 생각하라는 건 아니고? 그냥 다양한 사람을 떠올리면 좋지. 가령 지금 이아페도 없어졌잖아? 근데 시샤 님만 챙기면 이아페가 서운해하겠지. 그렇다고 이아페를 생각하라는 건 아니고?”
“뭐라는 거야, 정리를 해서 말해.”
“나도 생각하라고.”
라온의 횡설수설을 니니안이 끊어 내자, 라온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뱉고 말았다.
“…….”
그들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라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니니안이 손가락을 꼼지락대다가 중얼거리듯 말을 뱉었다.
“너는 참, 이상해.”
니니안이 그렇게 말하고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게.”
라온이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조금 뒤에서 걸음을 옮겼다.
“…옆으로 와.”
“뭐야, 무서운 거야, 니니안?”
“됐어, 그냥 꺼져.”
그렇게 그들은 덕담을 주고받으며 귀신의 집을 함께 걸었다.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시샤와 이아페가 당도해 있었다.
“두 분도 얼른 들어가 보세요!”
라온의 성화에 그들이 귀신의 집으로 들어섰다.
* * *
“밤에 오니까 역시 다른 느낌이네요. 근데 이아페도 귀신 안 무서워한댔죠?”
나는 어두운 귀신의 집으로 들어서며 그에게 횡설수설 물었다. 불꽃놀이를 본 후부터 이상하게 민망해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아페의 대답은 상당히 의외였다.
“아뇨. 무서워합니다.”
“거짓말. 지난번에 귀신 이야기 엄청 잘 들었잖아요.”
“카실처럼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고 해서 안 무서워하는 건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는 전혀 무서워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생각해 보니 편협한 사고 같았다. 오히려 너무 무서우면 소리도 안 나온다고 하니까.
“무섭다고 카실처럼 도망치다가 벽에 부딪혀서 멍 안 들게 조심해요.”
솔직히 우리가 만든 곳이라 하나도 안 무서울 줄 알았는데, 막상 체험을 하자니 은근히 심장이 조여들었다.
카실이 광자처럼 두 팔을 나풀대며 저택에서 뛰쳐나왔다는 걸 들었을 땐 겁주려고 오버한다고 생각했지만…. 걔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까지 무서워하면 이아페가 너무 불안할 것 같아서 티 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창밖으로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이아페, 방금… 봤어요?”
“네. 무서워서 발도 못 떼겠습니다.”
“그렇게 무서워요?”
“그러니 잡고 가 주세요, 시샤 님.”
이아페가 잡아 달라는 듯 한쪽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잠시 그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이아페는 그냥 에스코트를 해 달라는 건데.’
그의 손가락과 내 손가락이 가볍게 얽혔다. 이아페가 내 손 안으로 깍지를 꽈악 꼈다. 심장이 간질거리다 못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운 이 느낌을 애써 무시한 채 이아페를 이끌듯 한 발짝 앞섰고, 그가 내 손을 잡은 채 뒤를 졸졸 따라왔다.
그런데 그때.
“내 팔 내놔!”
내 옆의 창문이 열리며 웬 사람이 갑자기 머리를 들이밀었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초점 없는 눈에서는 피를 흘리고 있는 여자였다.
그 광경에 흡, 하고 숨을 들이켜는 순간.
“아, 무서워라.”
이아페가 팔을 접어 내 손을 제 쪽으로 당겼다. 몸이 뒤로 젖혀지는 찰나, 그의 다른 쪽 팔이 내 어깨 앞을 감쌌다. 그의 팔이 나를 꼬옥 안듯 잡았다.
귀신이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표정을 썩히며 창문을 닫고 사라졌다.
“…걱, 걱정 마요. 내가 다 해치워 줄게요.”
“시샤 님만 믿겠습니다.”
이아페의 숨결을 담은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약간의 웃음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인가.
우리는 그렇게 잠시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냉기가 가득한 얼음 저택 안임에도 이상하게 몸이 후끈거렸다.
“…이제 가야 할 것 같은데요?”
“아쉽네요.”
아쉬워? 뭐가? 눈알을 굴리는데, 그가 팔을 풀고 내 옆으로 섰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콩닥거렸다. 지금 이 두근거림이 너무도 강해서, 그 후에 나온 귀신들은 정말이지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눈을 감고 기다란 채를 잡은 채 땅 위에 동그란 원을 그리는 미션도, 어둠 속 거울에 나를 비춰 보는 미션도 아무렇지 않게 수행했다.
그리고 저택을 나왔을 때, 나는 황급히 이아페의 손을 놓았다.
어쩐지 아쉬웠다. 그러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그의 손을 잡고 있던 방금의 시간이 너무나도 고역이었기에.
평소라면 서브남주 에스코트를 언제 해 주겠냐고 생각하며 즐겁게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왜 힘들었냐면.
그의 손을 잡고 있는 내내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증폭되었으니까.
조금 더 있으면 미칠 것 같았으니까.
역시 이건 단순한 설렘 같은 게 아니었다.
이런 게 그냥 설렘일 리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이건….
“시샤 님! 왜 이렇게 늦게 나오셨어요?”
저택을 나오자 니니안이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며 이쪽으로 뛰어왔다. 단원들이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볼거리가… 많더라고요.”
“어, 그런데 이아페와 단장님 모두 왜 이렇게 얼굴이 빨개지셨습니까?”
“생각보다 무서워서 그만 열이 올랐나 봐요.”
“네. 무섭더군요.”
이아페의 무섭다는 말에 라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엥, 이아페는 무서운 걸 모르…는 사람은 아니죠. 단장님이 케어하시느라 고생하셨겠군요!”
나는 이아페를 힐끗 바라보았다. 정말로 그의 표정은 살짝 상기된 것 같았다.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아페가 날 향해 해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시금 그가 지금 아픈 기억 속에 묻혀 있지 않고 나와 함께 웃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심장이 뭉클하고 조여 왔다. 무언가 뜨거운 액체를 심장에 들이부은 것처럼 찡했다.
역시.
이아페를 향한 이 들뜨면서도 가라앉고, 행복하면서도 아픈 마음.
주인공을 가까이에서 본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이라고 생각하기도, 잠시 머물다 가는 가벼운 설렘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떨림은 고작 그런 사소한 감정이 아니었다.
이것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아니고, 파도에 지워질 모래 위 글자도 아니다.
애써 감추고 덮어 둔 새에 저 혼자 보이지도 않을 만큼 깊숙이 뿌리 박혀, 더 이상 빼내지 못할 그런 마음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아페를…’
그래. 나는 비로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눈앞에 있는 이 특별한 남자에게, 결국 특별한 마음을 품고 말았음을.
* * *
다음 날, 우리는 언제나처럼 다 함께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와 같지 않았다.
식당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업무 중에는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었지만, 이런 여가 시간에는 다시 혼란이 찾아왔다.
그러니까 이 사람 때문에.
도착한 식당에서, 나는 내 옆에 앉으려는 이아페를 힐끗 바라보았다.
정말 이상하지. 평소에 그렇게 수없이 옆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는데도, 지금 그가 내 옆에 앉는다고 생각하니 문득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결국 그가 착석하는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났다.
“잠, 잠시 머리를 묶고 올게요.”
나는 파우더룸으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으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는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상을 지었다. 거울 속 내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고작 옆에 앉는 것뿐인데. 그게 뭐라고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나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냐, 아까는 괜히 너무 의식해서 그런 거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가면 괜찮을지도 몰라.
부러 웃는 표정을 연습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이아페의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하지만 괜찮기는커녕, 오히려 더 앉을 수가 없었다. 이런 기분으로 그의 옆자리에 앉는 것에 죄의식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결국 나는 이아페를 보지 못한 척 셀라임의 옆에 앉았다.
“…….”
이아페가 이쪽을 보는 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애초에 그가 정말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를 과도하게 의식해서 그런 느낌이 들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결국 고개를 숙인 채 애꿎은 테이블만 톡톡 치고 있는데, 앞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
이아페가 내 맞은편에 와서 앉은 것이었다. 나는 눈알을 크게 굴렸다. 대체 왜 자리를 옮긴 거지? 본래 앉았던 자리에 뭐가 묻어 있었던 걸까?
온갖 생각에 둘러싸인 동안 식전 빵이 나왔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식전 빵을 잘라 접시를 내게 건넸다.
본래 키론 제국에서는 식전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이 예절이었으나, 내가 잘라서 먹는 것을 보고 이아페가 전에도 몇 번 내게 빵을 잘라 주곤 했다.
예전에는 그게 수저를 놓거나 물을 주는 것과 같은, 그런 사회생활 행동 양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에요. 이아페 먹어요.”
지금은 이것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받아먹었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빵 접시를 다시 이아페에게 내밀었다.
“당, 당근을 싫어해요.”
나는 빵에 박힌 당근 핑계를 대며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는 조금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