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74
@74. 로디스 공작의 비밀
“이아페랑은 같이 음악극을 보는 그런 사이가 아닌걸요.”
“르디엘 경이랑은 그런 사이예요…?”
“당연히 아니지만, 르디엘 경과는 음악극 취향이 같아서요. 으음, 비즈니스 같은 거죠.”
르디엘은 정말 취향이 같아서 같이 보는 거지만, 일반적으로 음악극을 함께 보는 것에는 영화를 함께 보는 것 같은… 몹시도 데이트 같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니까.
예전 같으면 이아페도 음악극메이트로 삼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당연하게 느껴졌던 그의 호의들에 더 큰 의미 부여를 하게 된다.
그에게 던지는 말들에 내 마음이 묻어 나올까 봐 불안하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속 이아페와 함께 있어도 될지 모르겠단 말야.’
이아페는 나를 단장으로, 친구로 생각하고 잘해주는 것일 텐데! 그것에 불경한 마음을 품었다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이겠어?
“후, 암튼! 이아페랑은 저얼대 아니라고요.”
나는 성심껏 부정했다.
그런데 셀라임이 태연한 표정으로 이상한 소리를 했다.
“이아페가 엄청 서운해할 거예요, 아르비나 님.”
나는 말똥말똥 눈을 굴리며 셀라임의 말을 곱씹었다. 이아페가 서운해하다니.
셀라임이 서운한 것도 아니고 이아페가.
“내가 이아페랑 음악극을 같이 보다니, 좀 이상하지 않아요?”
“안 이상해요. 솔직히 두 분은 단둘이 여행을 가신다 해도 그러려니 할….”
“네? 그게 무, 무슨 말이에요?”
내 눈동자가 식겁해서 흔들렸다.
“그 정도인데 요즘 아르비나 님이 이아페를 피하고 계시니, 이아페가 서운한 게 당연해요.”
“피하는 게 티가 나요?”
셀라임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아페와 무슨 일이 있으신 건지는 모르지만 빨리 푸세요.”
“맞아요, 시샤 님! 오늘도 너무 재밌게 노시면 안 돼요!”
셀라임과 니니안은 마치 내부 분열이 일어난 상황을 보는 듯 불안하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아주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표정을 보자, 문득 내가 며칠간 이아페를 피한 게 너무도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와 이아페가 생각하는 서로의 위치가 다를지는 모르지만, 그에게도 내가 떼어 내면 아플 조각 정도는 된다는 것도.
‘이아페의 입장에서도 불안할까.’
아무래도 그를 무조건 피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달라질 건 없어. 그냥 내가 내 마음을 알게 된 것뿐이잖아.’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럼 다음엔 연구단 다 같이 음악극을 보러 갈까요? 오늘은 ‘침묵 속 파멸’을 보기로 했는데 취향이 맞으면 다음엔….”
“저는 괜찮아요.”
셀라임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나는 니니안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눈으로는 이미 ‘재미없을 것 같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암튼 오늘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말을 돌려 버렸다.
나는 쿡쿡 웃음을 터뜨리며 니니안에게 답했다.
“맞아요. 로디스에서 예상대로 마법을 활용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문득 아까 봤던 로디스 공작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도.
좀 전에 느꼈던 기시감이 다시 찾아왔다.
분명히 어디서 들었….
“아…!”
불현듯 생각이 났다.
그 목소리, 어디서 들었는지.
“먼저 가요. 저는 잠깐 확인해 볼 게 있어서.”
셀라임과 니니안에게 황급히 손을 흔들고, 나는 릴리와 로디스 공작이 사라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용서라도 빌어야겠어.”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리는 공작의 목소리에 나는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무슨 용서를 빈다는 말씀이세요, 아버지? 대체 무슨 일인지 말씀을 해 주세요.”
“…아니다. 내가 헛소리를 했구나. 방에 가서 쉬어야겠어.”
릴리는 갑갑하다는 듯 그를 채근했지만, 공작은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입술을 꾹 깨문 릴리가 터뜨리듯 말했다.
“저 봤어요.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찾아온 거.”
뭐라고? 검은 로브?
“그 사람들이랑 관계된 거라면…!”
“안 된다, 릴리!”
공작이 릴리의 입을 막았다. 릴리의 두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공작은 떨리는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가 천천히 마른침을 목 안으로 쑤셔 넣고는 중얼거렸다.
“모른 척해라. 너는 관계없는 일이지 않니, 릴리.”
그렇게 말하는 공작의 음성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딸의 입을 막은 손을 떼어 낸 공작이 홀연히 돌아섰다.
“……!”
그가 이쪽으로 걸어왔기에, 나는 기둥 뒤로 더욱 깊이 몸을 숨겼다.
다행히 공작은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몰래 뒤를 쫓았다.
‘역시 분명 그 사람이야.’
아까는 긴가민가했는데 다시 목소리를 들으니 확실히 알겠다.
몇 달 전 별궁 거울의 방에 잠입한 남자.
바닥을 부수고 땅을 파헤쳐 무언가를 가져갔던 사람.
누구인지 찾으려고 해도 궁에 출입한 이들이 너무 많아 특정할 수가 없었는데….
‘그게 로디스 공작이었다니.’
지금 저 사람을 따라가면 대체 뭘 가져간 건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힘겹지만 조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넘어질 듯하면서도 자석에 이끌리듯 앞으로 걸어가는 그는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 같았다.
“…그 문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겠지?”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코너를 돌았다.
문이라니, 대체 뭘 말하는 거지?
그를 쫓는 내 발걸음이 조금 초조해졌다.
그렇게 코너에 다다른 찰나.
“아르비나 영애?”
뒤편에서 의아함과 경계를 담은 목소리가 들렸다.
릴리였다.
“…로디스 소공작님!”
나는 한껏 안도하는 표정을 꾸며 내며 단번에 뒤를 돌았다. 그리고 미련 없이 그녀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질문했다.
“어휴, 다행이에요. 출구가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까 가신 줄 알았는데….”
“두고 온 게 있어서 다시 들어왔다 길을 잃었지 뭐예요.”
나는 손에 든 마도구 주머니를 부러 들어 보이며 눈썹을 양옆으로 기울였다.
“저기 공작님이 지나가시길래 여쭤보려고 했는데 초면이라…. 사용인들도 보이지 않아서 완전히 길을 잃는 줄 알았어요.”
그러고 보니 정말 1층에는 사용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지 않았다. 공작의 어딘가 미묘한 상태를 보면 왜인지 알 것 같기도 하지만….
릴리는 이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은 듯, 다소 모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돌렸다.
“따라오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다행히도 그녀가 내게 숨기는 것이 있는 만큼 나에 대한 의심은 버린 것 같았다.
‘로디스 공작을 따라가지 못한 건 아쉽게 됐지만… 마법을 핑계로 다시 찾아와야겠어.’
오늘만 기회는 아니겠지.
그날 무언가를 가져간 이가 로디스 공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마법이 가져올 수 있는 변화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어요, 아르비나 영애.”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부디 이 투자가 우리 모두에게 윈윈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나는 릴리에게 싱긋 웃음을 지어 보이곤 마차에 올랐다. 미묘한 의문들을 남겨 두고 공작저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나는 생각에 잠겼다.
‘분명 검은 로브들과 함께 있었다고 했지.’
검은 로브.
나는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다.
‘흑마법사들.’
원작에서 일로제와 함께 나타나 이아페를 공격한 이들이었다.
결국 이아페의 손으로 형을 죽이는 그 사건에서, 분명 일로제는 검은 로브를 입고 나타났지.
과연 릴리가 보았다는 이들과 원작의 그 검은 로브가 같은 집단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조만간 다시 로디스 공작저를 찾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우선은… ‘침묵 속 파멸’부터!”
지방에서부터 순회공연 중이라 수도에서도 공연은 이틀밖에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이너한 극임에도 불구하고 예매에 실패했었는데, 르디엘이 용케 표를 구했지.
“기대되네.”
나는 마차 벽에 머리를 기대어 무릎에 손가락을 콩콩 튀겼다. 마차는 부드럽게 톤다 거리를 향해 바퀴를 굴렸다.
* * *
로디스 공작이 어느 책장을 밀었다. 미닫이 장치가 되어 있는 책장이 밀리고 작은 문이 나타났다.
“아직… 문을 없애지 않았군.”
꽤 깊은 곳까지 계단이 이어졌다. 그 끝에는 복도가 있었다. 어두운 지하 복도는 간헐적으로 놓인 횃불에 의존해 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복도가 여러 개의 갈림길로 나뉘었다. 공작은 기억을 더듬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개미굴 같은 그곳을 휘적휘적 걸어간 끝에, 그는 머리부터 발목께까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두 사람을 마주쳤다.
“그분… 그분을 만나게 해 줘!”
로디스가 절규하듯 외치며 달려가자 검은 로브들이 천천히 돌아섰다.
검은 로브들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더니 누구인지 알겠다는 듯 아, 하고 중얼거렸다.
“많이 말랐네요, 로디스 공작님. 못 알아볼 뻔했어요.”
“그러게, 그분을 왜 배신해서는….”
“나는 배신을 하려던 게 아니다. 그저 그분이 드시기 전 맛을 보았을 뿐이야!”
공작의 말에 검은 로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뭐, 배신하는 것까지 예상대로인 게 우스웠는걸요. 그래도 아직은 쓸모가 있으니… 얌전히 집에 보내 드릴게요, 공작님.”
“흐음, 그런데 어떻게 들어온 거지?”
로브들이 의아한 시선을 교환하고 있을 때, 코너 뒤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쥐새끼를 끌고 왔나?”
“아, 아니, 나는 아무도….”
한 사람이 공작의 멱살을 거칠게 잡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코너를 돌았다.
“아… 뭐야. 너였어? 이쪽으로는 어떻게 들어왔어?”
코너를 돈 사람이 눈에 띄게 안심했다. 그곳에는 검은 로브를 걸친 또 다른 이가 서 있었기에.
“문을 없애지 않았던데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새로운 로브가 무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어련히 우리가 알아서….”
“들킬 뻔했는데도?”
코너의 로브가 변명을 하려다가 새로운 로브의 표정을 보고 항복한다는 듯 두 손바닥을 올렸다.
“그래, 조심할게. 정예 멤버 말을 들어야지. 가자, 공작님 바래다 드리고 문도 없애러.”
그곳에 있던 두 사람이 로디스 공작을 끌고 자리를 떠났다. 새로운 로브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