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77
@77. 커튼콜
당연하지. 그래서 지금 같이 있잖아. 나는 르디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이 끝나면 바로 떠나요.”
어디로? 의문을 품은 눈을 깜빡였다.
무대에선 딱 봐도 마지막 넘버로 추정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가 당신을 찾지 못하는 곳… 그곳으로오!”
나는 시선을 돌려 노래를 부르는 배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절로 시선이 이아페에게로 향했다. 그는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표정이 매우 구겨져 있었다.
‘투잡을 들켜서라기엔 상당히 화가 나 보이는데. 다른 일이 있나?’
고민을 하는 새에 공연이 끝이 났다. 배우들이 전부 나와 인사를 했지만 이아페는 처음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대사도 없는데 대체 무슨 역할이었을까?’
나는 진지하게 박수를 치며 르디엘에게 말했다.
“가기 전에 저기 이아페한테 잠깐 인사….”
“안 돼요.”
“왜요, 정 없게.”
“저분은 지금 저한테 화가 나 있거든요.”
르디엘이 부러 눈썹을 내려 슬픈 표정을 지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평소보다 텐션이 낮은 걸로 봐서 진심인 모양이었다.
나는 내려가는 막 너머의 이아페를 흘끗 살폈다.
‘나를 보던 게 아니었구나.’
내가 아니라 르디엘을 계속 바라보던 거였다. 저 날 선 시선이 날 향한 게 아니라는 것에 안도를 느끼는 동시에 괜히 씁쓸하고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아가씨.”
르디엘이 다시 한번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생글 웃음 지었다.
“지금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문제예요. 도와주시면 안 돼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오늘 르디엘이랑 약속인 건 맞으니까. 이아페랑은 내일도 볼 테고.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르디엘이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 * *
이아페는 내려가는 막 아래로 르디엘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았다. 순식간에 저를 덮쳐 오는 불길함에 이아페는 막을 들추어 빠져나왔다.
동상 역할의 배우가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내자, 박수를 치던 관객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커튼콜인가 본데요?”
“어쩐지.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아무 대사도 없어서 아쉬웠어요.”
다시 없을 커튼콜에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이아페를 바라보았다.
이아페 또한 저에게로 집중되는 시선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무대는 끝났고, 그가 움직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더는 참을 수 없다.
시샤가 바로 눈앞에서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데도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바라봐야만 하는 이 상황이, 그에게는 그 어떤 고문보다 길었으니.
“이아페?”
이아페에게로 시샤의 조금 놀란 듯한 시선이 감겼다. 그녀 역시 나가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이아페의 표정이 굳었다.
이렇게까지 피하고 싶은 건가.
시샤가 자신과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그녀는 멀어져 갔다.
그리고 오늘, 그가 아닌 다른 남자와 음악극을 보러 왔다. 어쩌면 이것이 그녀의 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선택이 제가 아닌 다른 이일 수 있다는 것. 정말로 자신이 부담스러워서 피한 것일 수 있다는 것. 불안은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이아페는 경직된 채 시샤를 바라봤다.
설령 그렇다 해도 자신이 무대에 선 것을 알면서 인사도 없이 떠나려 하다니. 마음에 누가 돌을 던진 듯 아파 왔다.
이아페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걸음을 옮겼다. 한 발, 한 발. 시샤에게로 옮겨지는 그의 발걸음이 조급했다.
르디엘이 몸을 기울여 시샤에게 뭐라 속삭였고, 시샤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아페를 향해 약간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공연 잘 봤어요!’
시샤는 입 모양으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아페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제길. 안 좋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르디엘이 손을 까딱하자 커다란 빛의 원이 생겼다. 신성력으로 만든 순간 이동 영역이었다.
“시샤 님, 잠깐….”
거기까지였다.
르디엘과 시샤가 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리에는 텅 빈 정적만이 감돌았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
이아페는 한참을 가만히 시샤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한기가 공연장 내에 퍼졌다.
숨죽이던 관객들은 이아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침묵 속 파멸이네요.”
“신성력까지 동원하다니!”
“정말 멋진 커튼콜이었어요.”
마치 실제처럼 리얼한 파멸의 서사에, 관객들의 박수가 울려 퍼졌다.
* * *
안으로 들어서자 빛의 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순간 이동을 쓰려면 신성력이 굉장히 풍부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놀란 눈빛으로 르디엘을 바라보는데, 그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와, 대단하네요.”
“……?”
“정말로 성공할 줄 몰랐어요.”
“르디엘 경이 포탈을 열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잖아요?”
“뭐든 자신감 있는 게 좋잖아요.”
르디엘이 생글생글 웃었다. 그의 천연스러운 표정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 짓고 말았다.
“빨리 아가씨도 박수 쳐 주세요.”
“와, 대단하다. 그보다 여긴….”
그의 강요에 나도 박수를 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은 정원 너머로 높게 뻗은 하얀 건물이 보였다.
“중앙 신전?”
“아, 급하게 오다 보니 익숙한 곳으로 와 버렸네요.”
“중앙 신전이 익숙해요?”
중앙 신전은 사제 중에서도 엘리트들만 몸담을 수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르디엘은 사제는 진작에 때려치웠다고 했는데 언제 여기에….
“어릴 때 잠시 살았거든요. 신전 최고의 아웃풋이 저라고 할 수 있죠.”
“마음도 읽어요?”
“가끔?”
정말? 내가 이렇고 저렇고 그런 생각 하는 것도 전부?
표정을 구기며 한 발짝 물러서자 르디엘이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에요. 아가씨 머릿속은 못 읽어요. 대신.”
대신? 르디엘이 나를 관찰하듯 눈을 가늘게 뜨고 허리를 숙였다. 그가 손가락을 펴 뱅글뱅글 돌리며 내 이마를 가리키듯 뻗었다.
천천히 날 꿰뚫는 듯한 시선에 나도 덩달아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손가락이 내 미간에 콕 하고 닿았다.
“요 표정은 읽을 수 있죠. 지금도 이거 봐요! 완전 불신과 경계의 표정. 아, 상처받았어요.”
허리를 편 르디엘이 제 가슴을 부여잡고 비련의 남주인공 같은 얼굴을 지어 보였다.
“그렇구나.”
대충 아무 대답이나 해 주며 고개를 돌렸다. 길게 늘어진 하얀 기둥들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중앙 신전은 처음 와 봤어요.”
“그럼 산책할까요, 아가씨?”
나는 들뜬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발아래에 닿는 포근한 잔디의 촉감이 좋았다.
“그 전에. 축성을 해 드릴게요.”
밖에 나갔다 오면 손소독제 바르는 것 같은 건가.
머리 위로 따스한 빛이 차올랐다. 약간 찌르르한 느낌이 머리를 울렸다가, 전기가 나가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윽, 뭔가 따끔했는데. 축성이라는 거 원래 이런 느낌이에요?”
“더 잘되었나 봐요.”
르디엘이 손을 내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뭐지, 저 고민 가득한 표정은.
“진짜죠?”
“왜 이렇게 저를 못 믿으세요?”
다시 평소의 르디엘처럼 뻔뻔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뭐, 쓴 약이 몸에 좋은 법이니까.
조금 못 미덥긴 했지만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걷자니 문득 한 가지 질문이 생각났다.
“아, 그 성석 말이에요. 꿈을 정확히 어떤 식으로 만드는 거예요?”
두어 번 꾸었던 아이론의 꿈. 그것이 성석과 관련이 있을까 싶어서.
“아가씨의 기억이나 소망, 걱정 등을 이끌어 내고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어요. 이번엔 무슨 꿈을 꾸셨는데요?”
“혹시 꿈에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많죠. 그냥 거리에서 스쳐 지나간 이들을 무의식 속에서 끌어오는 일도 있어요. 특히 꿈에서 나쁜 짓이나 부끄러운 짓을 했을 때는 더욱.”
“나쁜 짓 안 했어요.”
“뭐,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죠. 아는 사람이면 아가씨가 현실에서 그들을 보기가 민망하거나 죄책감이 들 수 있으니까.”
갑자기 분위기가 심리학 이론 수업이 되어 버렸지만,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꿈에서는 끌어안고 뽀뽀하고 난리가 났었으니까.
“…딱히 원한 건 아닌데.”
“원하던 게 나왔나 보네요. 아가씨는 정말 표정 못 숨기시는 거 알죠?”
“저 포커페이스로 유명한데요?”
“하하하.”
농담이 아닌데 르디엘이 웃었다.
그럼 그 안에서 들은 주문은 뭐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어쩌면 주문서에서 봤다가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요즘 너무 마법에 몰두해서 그렇지, 사실 아이론과 내가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이번엔 무슨 꿈을 꾸셨는데요?”
“얘기 안 할래요. 아, 그런데 설마 여기까지 출입하려면 허가받아야 하는 건 아니죠?”
나는 콩콩 발을 옮기며 르디엘에게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에이, 아가씨도 참. 당연히 허가받아야죠!”
“다행… 네?”
“여기는 외부인이 들어올 수 있는 외신전이 아니라 출입을 엄격히 금하는 내신전이거든요. 하지만 이미 들어와 버렸잖아요? 그럼 못 막은 사람이 잘못이죠.”
르디엘이 너무 당연하게 무단 침입을 정당화했다. 나는 경악해서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들키면 어떻게 돼요?”
“글쎄요. 보통 무단 침입을 하는 이는 자객뿐이라 사형을….”
“가장 가까운 출구가 어디예요?”
“벌써 나가시게요? 정 없어요!”
“쉿, 쉿! 그 주둥아리 좀…!”
“주둥아리라뇨, 아가씨….”
앗,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르디엘이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며 말했다.
“조금은 돌아다녀도 돼요. 중앙 신전에 사람도 몇 없는데 마침 저희가 있는 곳에 돌아다닐 리가 없잖아요.”
‘안 돼, 플래그 세우지 마!’라고 생각한 순간, 사그락하고 풀 밟는 소리와 몇 사람이 대화하는 소리가 저편에서 웅성이듯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