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78
@78. 알고 있었어요?
“들켜 버렸네요.”
르디엘이 내 손을 이끌고 기둥 뒤로 숨었다. 그가 날 감싸듯 안은 자세로 소리가 난 쪽을 살폈다.
어떡하지? 대충 듣기에 ‘침입’, ‘기운’ 등의 단어가 들어간 걸로 봐서,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걸 알아채고 온 모양인데.
“다시 포탈을 열 수 있어요?”
나는 그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르디엘이 태평하게 음, 하고 고민하더니 싱긋 웃었다.
“열면 바로 들킬걸요. 신성력이 느껴질 테니까.”
“지금 웃음이 나와요?”
“우는 편이 더 취향이세요?”
“미친 건가.”
내 본심에 르디엘이 풉,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금 탈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마법을 쓰는 거겠지. 하지만….’
이제 마법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지만, 나도 모르게 마법사가 아닌 사람 앞에서 마법을 쓰는 게 망설여졌다.
내가 겪은 짧은 경험들에서 비롯된 태도인지, 시샤의 기억 속에서 숱하게 받아 온 마법사에 대한 차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가씨.”
그때 르디엘이 나를 불렀다. 그의 하얀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맴돌고 있었다.
“신성능력자는 신성력은 느낄 수 있지만, 마법은 못 느낀답니다.”
“……!”
나는 놀란 눈으로 르디엘을 바라봤다.
“알고 있었어요?”
“제가 아가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가씨한테 관심이 많거든요. 그보다….”
르디엘이 기둥 뒤편을 향해 가볍게 눈짓했다.
“곧 들킬 것 같은걸요.”
몇 명의 사제가 실시간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더는 생각할 틈이 없다.
「순간 이동!」
르디엘과 나는 순식간에 중앙 신전을 빠져나와 아르비나 저택의 후원에 당도했다.
“오….”
르디엘이 주위를 둘러보며 박수를 쳤다. 마치 아까 본인의 신성력을 자화자찬했을 때처럼.
“언제부터 알았어요? 나 마법사인 거.”
내 물음에 르디엘의 시선이 나에게로 와 닿았다. 그가 음, 하고 고민하더니 내게로 한 발짝 다가왔다.
“얼마 안 됐어요.”
“그러니까 언제요?”
“오늘요.”
…정말 얼마 안 됐네.
“어떻게?”
“낮에 에르트르 광장에서 아가씨를 봤어요. 대놓고 얼음 저택을 관광객이 아니라 설립자의 시선으로 보고 있으시던데요. 게다가 마법사 모집 포스터도 붙이셨잖아요?”
“포스터는 제가 안 붙였는데?”
“어어, 위치는 거기가 좋아요, 조금만 더 위에,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었….”
“인정합니다.”
르디엘이 되지도 않는 내 성대모사를 시전했고, 나는 겸허히 고개를 끄덕였다. 르디엘도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함께 끄덕였다.
“…안 놀랐어요?”
“지금도 놀라고 있는데 안 느껴지세요? 평소보다 심장이 1.2배 정도 빠르게 뛰고 있거든요.”
“아… 네.”
놀라운 관찰력과 심장이다. 그래도 내가 마법사라는 걸 알고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르디엘의 태도에 왠지 안도를 느꼈다.
그러자 급격히 피곤함이 몰려왔다. 먼 곳으로 순간 이동을 쓴 영향도 컸고. 집에 왔으니 빨리 가서 잠이나 자야지.
“음악극 재밌었어요! 그럼 전 이만.”
“엥, 벌써 가시게요, 아가씨?”
르디엘이 돌아서는 내 앞을 막아섰다. 나는 그를 스윽 밀며 말했다.
“르디엘 경. 저는 지금 에너지 총량의 법칙의 영향을 매우 세게 받고 있어요.”
“……?”
“저는 평소, 가늘고 길게 하루를 보내는 사람인데 오늘은 너무 타격감 있는 일들을 겪었더니 오늘치 에너지를 다 써 버렸어요.”
“저와의 도피극 때문에요?”
묘하게 낭만적인 용어를 갖다 붙인 감이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르디엘이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에스코트를 하듯 손을 내밀다가, 아닌 척 손을 바로 부드럽게 꺾어 제 앞으로 웨이브를 그렸다.
“…뭐 해요?”
“요즘 연습하는 유연성 기르기?”
너무 아무 말이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은 지난번에 내가 우리 집에서 에스코트하지 말라고 한 게 기억난 거면서 시치미 떼기는.
하지만 그냥 그가 자연스럽게 넘어갔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두기로 했다.
“아참, 르디엘 경. 뭐 없어진 거 없는지 확인해요. 단추나… 머리 끈이나… 거기 하나쯤 떨어뜨리고 왔을 수도 있거든요.”
팔 웨이브를 멈춘 르디엘이 과장되게 입을 벌리며 제 몸을 샅샅이 훑었다. 그러더니 흠칫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봤다.
“왜요, 역시 뭐가 없어졌어요?”
“그게… 이런… 어떡하죠?”
“혹시 소중한 거예요? 어떡하지, 거기로 다시 가야 하나?”
“아무것도 없어진 게 없어요….”
“…그럼 저는 이만.”
나는 휙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르디엘의 웃음소리와 함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의 기억에 남을 거예요.”
“뭐가요?”
“저랑 함께한 아가씨의 오늘.”
불어온 바람이 르디엘의 금빛 머리칼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에 따라, 농축되어 엑기스만 담은 하루니까.”
르디엘이 양손으로 뭔가 꾹꾹 누르는 시늉을 하며 눈을 휘어 웃었다. 어째서인지 그는 하나도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뭐, 확실히 기억에는 남을 하루였다.
* * *
“…없어졌네.”
르디엘이 제 팔을 들어 올리며 손목을 살폈다. 반대쪽 손목에 매인 붉은 끈과는 반대로, 이쪽에 차고 있던 다른 팔찌가 사라졌다.
“없어질 수 있는 거였구나.”
찾으러 가야겠네, 그에게서 권태로운 독백이 새어 나왔다. 르디엘이 무심하게 손을 까딱하자 빛의 원이 열렸다.
그가 그곳으로 들어가자 중앙 신전 내의 정원이 나왔다. 르디엘은 잔디 위에 떨어진 성석 팔찌를 주워 들었다.
“…….”
그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당연한 손짓으로 팔찌를 손목에 다시 채웠다.
“르디엘. 역시 너였군.”
주변을 배회하던 사제 2명이 이리로 걸어왔다. 하얀 사제복이 달빛을 받아 빛났다.
“와, 오랜만이네요!”
해맑은 그의 인사에도 사제들은 인상을 찌푸린 채였다. 그중 사제 엘딕이 가까이에 와서 주변을 살핀 후 물었다.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글쎄요.”
“슬슬 데려올 준비를 하라고 하셨잖아.”
“음, 그랬나?”
르디엘의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에 엘딕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미쳤구나.”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투.
이에 르디엘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제가 알아서 해요. 아직 시간은 있는데 왜 참견이지?”
엘딕이 입술을 깨물었다. 옆의 사제 미르셀이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그래. 네 역할이니까 우리는 왈가왈부하지 않을게. 하지만 말야.”
미르셀이 르디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우리에겐 다른 루트도 있다는 거 알지?”
르디엘이 미르셀을 노려보았다. 서슬 퍼런 안광에도 미르셀은 하하, 하고 웃으며 돌아섰다.
엘딕과 미르셀이 떠난 자리.
르디엘은 오늘 하루를 채운 감정들을 모른 척하려 노력했다.
“정말… 기억에 남을 하루야.”
바람 같은 저릿함이 그의 가슴속을 슬며시 맴돌았다.
* * *
드디어 찾아온 물빛 축제의 마지막 날.
소문은 착실히 퍼져 수많은 마법사들이 쿨링 마도구 제조법을 배웠다. 이에 마도구의 공급 문제는 예상보다 더 수월하게 해결이 된 채 축제가 마무리되었다.
“신전에서도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반발이 크지 않습니다. 정세를 잘 이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남부의 행정관과 만나는 일정도 잡혔어요. 3일 후에 출발할 거예요.”
하루 종일 수레바퀴는 빠르게 돌아갔고, 다른 사항들도 착실하게 진전이 되어 갔다.
하지만 지금 공적인 것과 다른 사적인 분야에서는 상당히 삐걱대는 전개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아페 봤어요?”
“여기 있… 엥, 어디 갔지?”
또다. 지난번 음악극을 잘 봤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는 이아페와 몇 번이고 둘만의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실패하고 있었다.
처음엔 타이밍이 안 맞은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아… 어디 갔지?”
조금 후에도.
“이아페!”
“시샤 님. 제가 지금 급한 일로….”
오늘, 일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도!
그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1분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아페는 도도도도 마차로 쌩하니 걸어가고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
“너를 피하는 것 같은데. 둘이 쌍으로 술래잡기하냐?”
카실이 무심한 말투로 정곡을 찔렀다. 눈치 없는 카실마저 알 정도면 정말 그런 모양인데.
“네가 보기에도 그래?”
“응. 심각하게 화가 나서 얼굴 보기도 싫은, 그런 거 알지? 내가 사람 얼굴을 잘 보는데 쟤가 딱 그래 보여.”
역시 그를 피한 게 많이 서운했던 걸까? 아니면 어제 르디엘을 데리고 튀어서 그런가?
“카실, 뭐 때문에 화가 난 것 같아?”
“음….”
나는 카실을 향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시선을 내뿜었다. 그는 손을 턱에 대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다. 직접 물어봐.”
“아이고.”
그래, 이럴 때 가장 좋은 건 정면 돌파지.
“이아페!”
나는 마차에 타려는 이아페에게로 달려갔다. 타다다 세차게 들리는 발소리에도 이아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마차의 문을 쿵 닫더니, 쌩하니 떠나가 버렸다.
“어떡해, 진짜 화났나 봐.”
3일 후 남부로 갈 때까지는 이제 볼 일이 없는데.
“아냐, 찾아가면 되지.”
나는 서둘러 마차를 타고 카일라인 공작저로 향했다. 어느새 이아페의 마차는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져 있어서, 혹시 그가 저택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갔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안녕하십니까, 아르비나 아가씨.”
지난번보다 더 수염을 정교하게 다듬은 집사가 내게 인사했다. 나는 황급히 그에게 물었다.
“오랜만이에요, 집사님. 혹시 이아페 공자님 계신가요?”
“그렇습니다. 하오나….”
“다행이다. 시샤 아르비나가 찾아왔다고 전해주시겠어요?”
나는 안도하며 밝게 물었다. 하지만 집사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께서는 바쁜 용무가 있어 며칠간 누구의 방문도 받지 않겠다 하셨습니다. 누가 찾아오든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