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80
@80. 마차 사고
“…코레아리아어 연구단장, 시샤 아르비나입니다.”
나는 한 박자 늦게 인사를 하며 일로제의 손을 맞잡았다.
‘여기서 일로제를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이아페는… 괜찮은가?
“이안입니다.”
다행인 건지 아닌지. 이아페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명을 말했다. 일로제 옆의 다른 이들을 의식한 모양이었다.
일로제도 마치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미묘한 기류를 애써 무시한 채 테이블 위에 준비해 온 마도구들을 늘어놓았다.
일로제가 찬찬히 마도구를 들어 살피더니, 손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확실히 더위가 사라진다면 여름 훈련의 시간을 늘릴 수 있겠지만, 그 이득이 지출에 상응하는 정도일지 의문이군요.”
“더위를 없애서 늘릴 수 있는 건 훈련 시간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시간이라도 밀도를 훨씬 높일 수 있겠죠. 그만큼 양성할 수 있는 인력 또한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나는 일로제의 옆에서 고민 중인 보좌관에게 말을 덧붙였다.
“여름만 되면 멈추는 게 당연했던 남부의 산업들이 다시 움직일 거라는 것까지 감안하면, 절대 손해가 아닙니다.”
일로제와 보좌관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내 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한 개에 1실루트 꼴로, 십만 개 구매를 제안드립니다. 더는 당장 구매하기에 부담이 있습니다.”
십만 개. 여름 내내 사용할 것으로 보았을 때 내 생각보다 적은 양이었다. 하지만 부담이 된다는 의견도 맞는 말이다.
음,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
“그럼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기대어 있던 소파에서 허리를 떼어 낸 이아페가 입을 열었다.
“일시 구매 방식이 아닌, 남부의 자원 수확 시점에 납부하시는 것.”
이아페의 제안에 보좌관이 호오, 하고 반갑게 응답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중앙에서도 남부의 풍부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면 충분한 이득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결국 협상은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일어나며 힐끗 이아페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포커페이스로 일로제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이렇게 끝내면 안 되는데.’
결국 나는 일로제를 향해 밝게 말을 건넸다.
“저기, 저희랑 함께 식사라도 하실래요?”
“죄송합니다. 일정이 있어서. 즐거운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일로제는 칼같이 철벽을 치고는 자리를 떠나갔다. 여기서 더 잡아 봤자 소용이 없을 듯한데.
‘다른 기회를 잡아야겠네.’
나는 이아페를 바라보았다. 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시선이 일로제가 사라진 문에 붙박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아페, 괜찮아요?”
나는 그의 손을 잡아 살짝 당겼다. 항상 따뜻했던 그의 손이 오늘은 차가웠다.
그가 약간 착잡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지 않은 게, 티가 났습니까?”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너무 안 나서. 그래서 물었어요. 저 사람, 축제 때 말한… 형이잖아요.”
나는 차가운 이아페의 손을 꾹꾹 눌러 주며 말했다.
“이아페는 정말 대단해요. 나라면 못 숨겼을 거예요.”
“솔직하지 못한 겁니다.”
“그렇게 말하지 마요. 전부 다 잘될 거예요.”
아, 그리고 지난번에 음악극을 잘 봤다고, 정말 멋있었다고도 이야기해 줘야지.
“이아페, 지난번….”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 먼저 가 보겠습니다.”
이아페가 불현듯 내 손을 떼어 내고 걸음을 옮겼다.
“잠깐, 10분만 이야기….”
“나중에 말씀 주세요, 시샤 님.”
이아페는 부드럽게 철벽을 치고는 쌩하니 가 버렸다. 그를 따라갔지만 그는 걸음을 점점 빨리하더니 심지어 뛰어가 버렸다.
저절로 입이 튀어나왔다. 이쯤 되니 오기가 생기고 서운했다. 이아페가 내게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알 것 같았다.
“너무해.”
일로제랑 화해하고 나면 나랑도 화해해야 하게 생겼잖아.
‘그래, 까짓 거 화해하면 되지!’
인간관계에 굴곡도 좀 있어야 더 단단해지지. 결의가 한층 거세게 타올랐다.
남부에는 며칠 정도 더 머무를 예정이었다.
내일부턴 남부의 마법사들을 모집하고 설명하는 것 또한 진행해야 했기에.
‘최적의 장소를 찾으러 다닐 수 있는 건 오늘밖에 없겠어.’
이아페와 일로제가 대화를 하게 하는 것부터가 어렵지만, 아무래도 평범하게 자리를 주선했다가는 지금처럼 겉핥기식 딱딱한 대화만 하고 끝날 것 같다.
그렇다면 무드를 만들어 줘야지.
편안한 분위기에서 와인 한잔하면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한 곳.
그런 곳에서라면 조금은 더 편하게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아르비나 님, 점심은….”
“저도 먼저 가 볼게요, 여러분끼리 밥 먹어요!”
오늘 기필코 이아페와 일로제의 사이를 부드럽게 풀어 줄, 무드 있는 장소를 찾아내고 말리라.
나는 단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도도도 밖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시그나의 중심가를 돌아보며 최적의 장소를 탐색했다.
하지만….
“오늘 예약도 가능한가요?”
“손님, 죄송하지만 일주일 후까지 예약이 다 차 있어서요.”
여기는 실패.
“조명을 좀 조절할 수 있을까요?”
“너무 어두운 것을 싫어하시는 손님들이 많이 계셔서….”
여기도.
“자리 간격을 조금만 더 넓힐 수는 없을까요?”
“그럼 한 테이블을 덜 받아야 할 것 같아 곤란합니다, 손님.”
여기도!
“후우….”
몇 시간째 돌고 있었지만, 다들 2% 부족했다. 그렇다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싶진 않았다.
“어쩌면 골목 맛집들이 더 좋을지도 모르지.”
나는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골목까지도 열심히 돌아다녔다. 하지만 결국 원하는 곳을 찾지 못한 채, 터덜터덜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때였다.
“어어, 조심!”
내 옆으로 드리운 불안하고 거대한 그림자에 고개를 돌아본 순간. 나는 심장이 멎을 뻔했다.
히이잉!
두 마리의 말이 급하게 멈추면서 앞굽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듯 몸이 굳었다. 하지만 최대한 이성을 부여잡고 외쳤다.
「순간 이동.」
말이 내가 있던 자리를 앞굽으로 강타한 찰나, 나는 몇 미터 떨어진 자리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나는 위기 상황에서 꽤나 침착한 사람인 모양이다.
“다… 다행….”
“엇! 괜찮으셔요?”
문제는 급박한 상황이 종료되자, 긴장이 탁 풀리면서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 * *
시샤가 홀로 외출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부터 이아페는 괜스레 불안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까도 뭐라 말하려는 그녀를 무시하고 가 버렸다.
일로제를 만나며 약해진 마음에 그녀의 거절까지 듣는다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잠시만 더 기다려 주길 바랐다.
그도 시샤를 설득할 수 있는 말을 찾은 후에. 그녀가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하면 친구로라도 지내자고 담담히 말하는 법을 연습한 후에.
그때 이야기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시샤의 표정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이아페는 시샤가 없는 동안 수없이 연습했다.
“부담 갖지 마십시오. 친구로서 한 행동들이었습니다.”
그런 말들을.
그래, 이제는 정말 피하지 말자. 그녀가 돌아오면 먼저 말을 걸어 보자. 친구로서 할 수 있는 행동들을 찾아서 보여 주자.
그는 씁쓸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결심했다.
그때 숙소 로비로 들어오는 라온이 보였다. 로비의 소파에 앉아 있던 이아페는 그에게 손짓했다.
“라온. 이리 와 봐.”
라온이 휴식 시간을 뺏겼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며 그에게로 왔다.
“친구라면, 뭘 할 수 있지?”
“……?”
라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고용주 놈, 왜 이런 걸 묻는 거지?’
라온은 고민에 빠졌다. 애초에 저놈이 ‘친구’라는 단어를 아는 사람인지조차 몰랐는데!
“음, 같이 밥을 먹거나, 술을 먹거나? 나들이를 가거나. 음악극을 같이 보러 갈 수도 있겠죠. 근데 이거 무슨 테스트인가요?”
“…그렇군.”
“그렇군? 이아페! 아니, 이아페 님, 테스트가 맞다는 거예요?”
이아페가 라온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가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옮겼다. 이아페의 눈에 니니안과 셀라임이 들어왔다.
니니안은 셀라임의 팔에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함께 무도회에 참석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그쪽으로 걸어갔다. 시선만 아래로 내리깔아 그들의 팔을 바라보았다.
“왜 팔짱을 낀 겁니까?”
“그냥요. 친하니까요!”
“친하다라… 친구라면 팔짱이 가능하단 겁니까?”
니니안이 셀라임의 팔을 꼬옥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아페가 그들의 팔짱을 빤히 바라보았다.
친구라면 이게 가능한 거군.
평소 친교는커녕 무도회에도 잘 참석하지 않기에 이런 부분은 무지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제라도 새로운 사실을 습득했으니.
“그렇군요.”
이아페가 돌아섰다. 이제는 시샤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시샤가 홀로 밖으로 나간 지 몇 시간째인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차오르는 불안한 감정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창밖을 내다보고, 괜히 숙소 로비를 서성였다. 그러나 저녁 즈음 그에게 당도한 소식은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다.
“시샤 아르비나 님께서 가벼운 마차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이아페는 정말로, 그 순간 돌아 버릴 것 같은 심정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