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81
@81. 어리광
“으으….”
가늘게 눈을 뜬 나는 눈알만 굴려서 주변을 확인했다. 나는 낯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창밖이 꽤나 어두운 것을 보니 저녁을 넘긴 모양이었고.
“이건 또 무슨 전개지.”
“아르비나 단장께서 제 마차에 뛰어들어 쓰러지셨기에 제집으로 데려온 전개입니다.”
“……!”
문가에 선 일로제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는 나를 팔짱을 끼고 바라보았다.
“연통을 넣어 두었습니다. 곧 누군가 데리러 오겠죠. 그럼.”
“저기…!”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리려는 일로제를 불러 세웠다.
빠르게 두 가지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첫째, 무드 있는 최적의 장소 찾기가 어느 정도 망했다는 것.
둘째, 어쩌면 나를 데리러 오는 사람이 이아페일 수 있다는 것.
비록 그가 지금 날 피해 다니고 있다고는 하나, 그 이유가 내게 서운해서라면. 그에게 있어 나는 소중한 친구 정도로는 생각이 되는 모양이니까.
그리고 그런 두 가지 전제하에, 나는 일로제에게 제안했다.
“저녁! 아직 안 드셨으면 같이 먹어요. 아니, 야식…?”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로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저에게 관심이 있으십니까?”
“예? 어느 포인트에서?”
굉장한 자의식 과잉 발언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아까 한번 까였음에도 다시 밥을 같이 먹자고 말했다는 게 떠올랐다.
“아, 그건….”
“아니면.”
일로제가 삐딱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애가 하소연했습니까?”
“하소연이라니, 누가요?”
“이아페. 제가 그 애의 형이라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까 들은 모양이군요.”
“얼굴을 보는 게 달갑지 않다고 전해 주십시오. 이렇게 남을 시켜서 접근하는 건 더욱.”
아무래도 내 행동이 일로제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이야기했다.
“두 사람이 밥 한번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맞아요. 하지만 이아페가 시킨 건 아녜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에요.”
“그 아이가 저에 대해 뭐라던가요?”
“당신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어요.”
“뱀처럼 속을 숨기고 살아온 위선자? 아니면,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친 무책임한 자?”
“일로제 경.”
“…….”
나는 가만히 일로제를 바라보았다. 낯선 내게도 이렇게 날을 드러내다니. 좋든 싫든 이아페와의 관계는 그에게도 너무나 큰 부분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지금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이아페와 일로제 경 사이의 오해를 풀어 주고 싶었어요.”
“…….”
“그런데 당신 이야기 들으니까 알겠어요. 당신…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거였군요.”
위선자와 무책임한 자. 아마도 일로제가 생각하는, 혹은 이아페가 그렇게 바라볼까 두려워하는 일로제 자신의 모습이겠지.
“저는 감히 이해할 수 없겠죠. 그때 일로제 경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지만, 이아페는 당신이랑 같은 상처를 받았잖아요.”
“…….”
“이아페는 그때 당신보다 4살이나 어린 8살이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그 사람은 당신 동생이고요.”
“동생이라 생각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정말로 이아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나요?”
내 질문에 일로제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가 복잡한 감정이 섞인 보랏빛 눈동자를 아래로 깔았다.
대답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었다.
“일로제 경과 이아페가 서로 하하호호 웃으며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을지 몰라요. 제가 이런 이야기하는 것도 참견이라 여겨지시겠죠. 하지만….”
마음 한쪽이 쓰려 왔다. 진심을 꾹꾹 눌러 말을 뱉었다.
“서로 미워하지는 말아요. 그건 너무… 슬프잖아요. 이아페도, 당신도.”
일로제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처음의 건조함이 사라져 있었다.
일로제가 문가에 몸을 기대어 섰다. 내 말에 한참을 생각하던 일로제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 이아페 그 아이는 중요한 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도 아십니까? 괴로운 기억은 제게만 남았고, 저는 그 아이를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남처럼 살아가는 것이 서로에게 최선입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아페를 제대로 바라보려고도 하지 않았으면서, 그저 그가 행복하게 살아온 것처럼 말하는 것이 화가 났다.
“…물빛 축제에서 일로제 경을 본 날. 이아페가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아세요?”
이아페는 몇 년을 심연 속에서 살아왔는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찾고 나서는 얼마나 큰 죄책감에 사로잡혔는데.
“불을 만들어서 자신을 태우려고 했어요.”
일로제가 움찔했다. 그의 눈이 충격을 받은 듯 흔들렸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게 묻는 일로제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자신을 태우다니, 그런….”
일로제가 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의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목숨으로 남겨진 삶이라 죽지는 못하고, 죽기 전까지 스스로를 태우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단장님이 착각하신 겁니다. 아까도 그리 담담했는데.”
“너무 담담했죠. 지난번 당신을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이아페를 알잖아요. 아마 당신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게 더 미안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겠죠.”
일로제가 제 입술을 깨물었다.
본인만이 아파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이 그런 선택을 했다니.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똑똑.
문이 열리고 사용인이 들어왔다.
“손님이 방문….”
사용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님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시샤 님….”
“이아페?”
이아페의 얼굴이 너무도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는 한달음에 침대 앞으로 달려왔다. 침대맡에 꿇어앉은 그가 나를 살폈다.
“괜찮습니까? 마차… 마차 사고라 들었습니다. 어디 다치지는 않았습니까? 치료를 해야….”
“아니, 이아페! 스치지도 않았어요. 그냥 깜짝 놀랐을 뿐이에요.”
이아페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정신이 없어 보였다. 어쩐지 마차에 치일 뻔한 나보다 더 깜짝 놀란 것 같은데.
그의 창백해진 얼굴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 괜찮습니까?”
“그럼요. 아, 이아페 단추 빼먹은 것 때문에 집에서 순간 이동 연습 많이 했거든요. 이아페 덕분에 살았어요.”
나는 이아페를 만나면 한마디 해 줘야겠다고 생각한 건 금세 잊어버리고,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내가 배시시 웃자, 이아페는 그제야 안도한 듯 한껏 힘을 주고 있던 몸의 긴장을 풀었다.
“다행… 다행입니다. 당신이 다쳤다면 저는 정말….”
그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그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그리고 지금은 얼마나 안도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아페의 몸이 잘게 떨리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야식… 먹어야겠어요. 따뜻, 아니, 뜨끈한 걸로.”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같이, 몸보신 좀 해야 할 것 같다.
* * *
“원카드!”
재빠르게 외친 시샤가 꺄르르 웃었다.
“…….”
“…….”
이아페와 일로제는 그저 황망히 그녀의 손에 들린 한 장의 카드를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손에 있던 카드를 모두 털어 버렸다. 아무것도 없는 손을 들어 올려 박수를 치는 퍼포먼스까지 잊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섯 번 연속 박수였다.
그녀가 다섯 번째 이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아페와 일로제가 제 앞에 놓인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시샤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들뜬 고민을 뱉었다.
“음, 이제 묶을 머리가 거의 없네요. 아! 얼굴에 동그라미 그리기 할까요?”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군요, 아르비나 단장님.”
일로제가 말을 꾹꾹 눌러 뱉었다. 머리를 다섯 갈래로 묶은 채였다.
“왜요, 너무 귀여울 것 같은데! 이렇게 동그라미 모양으로 수염 그리면 웃기겠다, 그렇죠?”
손가락으로 제 입가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시샤를 보고 이아페는 순간 설득을 당할 뻔했다.
하지만 이내 그건 시샤라서 귀여운 것이지, 대상이 저가 되었을 땐 웃기기만 할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제 생각에도 좋은 선택이 아닌 듯합니다, 시샤 님.”
이아페도 다섯 갈래로 머리를 묶은 채 고개를 저었다.
시샤는 그들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두 사람, 진짜 닮은 거 알죠? 처음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닮았어요.”
그녀는 취한 채였다. 밥과 함께 곁들인 위스키가 너무 맛이 좋다며 홀짝홀짝하더니 결국 지금 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이 미묘하고 이상한 자리는 몇 시간째 계속되었다.
이아페와 일로제가 주고받은 마지막 대화가 서로를 상처 입히는 것이었다는 점으로 볼 때 그야말로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시샤 님이 즐거워하시니까.’
‘공식적으로 남부를 방문한 손님을 함부로 내보낼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시샤를 핑계 삼아 자리를 이어 나가면서도, 서로를 굉장히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채지 못하는 두 사람이었다.
“일단 제가 펜을 좀 찾아와야겠네요.”
시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릴 새도 없이 그녀는 펜을 찾으러 밖으로 달려갔다.
문이 쾅 닫히고, 방 안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동그라미, 괜찮겠어?”
일로제가 먼저 말을 던졌다. 그 말에 이아페는 눈을 다른 곳에 두며 대답했다.
“…세모보다는 낫지.”
“어, 그래. 네모보다도 훨씬 좋겠군.”
“동그라미는 예쁘게 그리기 어려우니까 세모가 되거나 네모가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제대로 그렸을 때 뿌듯하지.”
“그래, 맞아.”
그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