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82
@82. 당신이 들어오겠다고 한 겁니다
하지만 이 어색한 공기에 압박을 느낀 이아페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구석으로 걸어갔다.
“오랜만에 많이 마셨네. 조금 걸어야 하나.”
“산책하기 좋은 곳을 알려 줄까.”
일로제도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이아페의 근처로 다가갔다. 그들 사이에 다시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
그때, 타다다… 발소리가 들렸다.
걸음부터 시샤로 추정되는 그 소리에 일로제와 이아페의 시선이 떨렸다.
지금… 그녀가 들어오면 얼굴에 동그라미가 생긴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근처의 옷장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닫아, 빨리 닫아라.”
일로제의 말에 이아페가 황급히 옷장 문을 당겨 닫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벌컥,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뭐야, 어디 갔어?”
시샤가 방 안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귀신의 목소리 같은 음산한 노래가 방 안에 울렸다. 몇 번 타닥, 타닥대던 발소리가 멀어졌다.
아마 다시 밖으로 나간 모양이다.
“다행이다.”
“그러게.”
“…….”
좁은 옷장 안. 어둠 속에서 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아마도 같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이아페였다.
“기억… 났어. 그때, 형이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튀어 나갔잖아. 그래서 어머니가….”
이아페가 말끝을 흐렸다.
일로제는 가슴이 갑갑해져 왔다. 속이 울렁거렸다. 이 어둠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오늘, 지금 이 순간과 그날 벽장에 숨었을 때가 겹쳐져서 일로제의 기억을 파고들었다.
어둠 속에 홀로 고립되어 있는 것도, 어머니의 슬픈 눈동자와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것도 모두 끔찍했다.
그중 가장 끔찍한 것은, 밖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알면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던 자신이었다.
그날, 결국 벽장은 아무도 열어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자신 혼자서 밀고 밖으로 나갔다.
기댈 곳은 없었다.
오로지 홀로 벌벌 떨었다.
〈거기서 본 건 잊어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권력을 잡았으니 끝이라는 건가? 일로제는 강한 환멸에 사로잡혔다.
그날 이후로 집은 끝없는 어둠일 뿐,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헤헤 웃으며 저를 쫓아다니는 제 동생을 볼 땐 더욱, 복잡한 감정들이 저를 찔러 왔다.
이아페의 탓이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그는 탓을 돌릴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에.
“형은 내가 많이 밉겠지.”
문득 옆에서 들리는 잠긴 목소리에 일로제는 감상에서 깨어났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울컥함이 치밀어 올랐다.
일로제는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이아페는 항상 제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일로제는 그것을 알면서도 무시했다.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아픔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고, 저 아이는 오색찬란하게 밝은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
이 정도 말들은 상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 몸을 태우려 했다고? 이아페에게도 그날이 그리 아픈 기억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하자 미친 듯이 도망치고 싶었다. 그만 숨바꼭질을 끝내고 갇혀 있는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를 비웃듯,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결국 이 문은 아무도 열어 주지 않겠지. 그때처럼.
그들의 관계도 이 정도가 최선일 것이다.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나 그 순간.
“찾았다!”
문이 활짝 열렸다.
환한 빛이 그들을 감싸듯 비췄다.
그 앞에는 즐겁고 따스한 표정의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의 눈은 충만한 기쁨을 담고 있었다.
일로제의 눈에, 그때의 어머니가 겹쳐 보였다.
“여기 있었구나, 다들.”
시샤가 그들을 양손으로 와락 끌어안았다.
* * *
손님 방에 시샤를 눕힌 이아페가 얇은 이불을 끌어 올려 그녀의 어깨까지 덮어 주었다.
옷장 문을 열고 그들을 찾아낸 시샤는 그들을 와락 끌어안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동그라미를 그리겠다며 함박웃음을 짓던 입술이 지금은 작게 꼬물대고 있다. 살짝 벌어졌다가 이내 다시 꾹 다물린다.
“시샤.”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면, 그 이름이 한낮의 바람 소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홀로 들판에 선 제게 산뜻하게 불어오는 이름. 하나 잡는 순간 스치듯 빠져나가 버리는 이름.
“얼마나 더 자연스러워야 합니까?”
텅 빈 방 안에 그의 질문이 조용히 울렸다. 대답 대신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아페는 시샤의 얼굴 앞으로 내려온 머리를 부드럽게 넘겨 주었다. 그렇게 한참 그녀를 바라보다 밖으로 나왔다.
문 앞의 어두운 복도에는 램프 불빛 하나가 일렁이고 있었다.
“잠드셨나 보구나.”
일로제가 문 앞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
설마 여기서 자신을 계속 기다린 걸까.
그런 생각을 한 찰나 이아페는 고개를 저었다.
기다리다니, 그럴 리 없지.
하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일로제는 예상치 못한 말을 건넸다.
“네 잘못이 아닌 거 안다. 그냥 탓을 돌리고 싶었어. 너한테.”
이아페는 잠시 굳었다. 평소 말문이 막히는 경험과는 거리가 먼 그였지만, 지금 형의 말에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 그가 생각하기에 일로제가 가장 들었어야 할 말을 했다.
“…미안.”
그 순간 일로제가 든 램프가 흔들렸다.
일로제는 한순간 치솟은 불쾌한 감정에 미간을 찌푸렸다.
가슴에 먹구름이 낀 듯 너무도 갑갑하고 불편했다.
미안, 미안하다니.
일로제는 참을 수 없는 불편함과 죄책감을 느꼈다. 심장이 바늘에 찔린 듯 아파 왔다.
그는 다시 한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자신이 지난 몇 년간 탓을 돌릴 대상을 찾아 왔을 뿐이라는 걸.
“차라리 날 미워해라. 네가 미안해할수록 내가 더 못난 놈이 되니.”
일로제가 램프를 든 손을 내렸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이따금 숨기지 못한 감정이 드러났다.
차라리 이아페가 저를 미워하는 게 낫지 않나. 그렇게 서로의 빚을 없애면, 다시 시작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니.
하지만 아무래도 제 동생은 빚을 없애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내가 어떻게 형을 미워하겠어.”
이아페가 무언가에 억눌린 듯 힘들게 눈을 내리깔았다.
“그날을 기억하고서는 나도 나 자신이 원망스럽더군. 형은… 어떻게 지금까지 날 받아 줬는지 모르겠어.”
일로제의 마음이 불안으로 물들었다.
자신이 몰아세운 탓에 이아페의 생이 어둠으로 점철될까 봐.
“어쩌면 그때 뛰쳐나가지 않았다면. 제대로 숨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지.”
이아페가 힘겹게 말을 눌러 뱉었다.
그날을 되새기고 또 되새기며 괴로워했던 제 모습이 이아페에게서 보이자, 일로제는 조급함과 아픔을 느꼈다.
“너 때문이 아니다. 널 끌고 가려던 사람들이 나빴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처음으로 제 입으로 진실을 말했다. 동생도 이 사실을 알았으면 했다. 제 앞에서 항상 작아지던 이아페이기에, 이것을 말해 주지 않으면 모를 것 같았다.
하지만 제 동생은 어느새 일로제의 생각보다 더 단단해져 있었다.
“…알아. 아무리 슬퍼도, 후회돼도, 내가 나쁜 건 아니란 거.”
이아페가 조금은 쓸쓸하게, 그러나 확고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형한테는 미안해. 많이 아팠을 테니까.”
그 순간 일로제는 알았다.
제 동생은 이미 한 번 자신을 탓하며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직접 부딪히고 깨달으며 얻은 날개로 다시 올라왔다는 걸.
그리고 그 날개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 준 게 누구인지도.
“남부로 찾아와도 돼. 그렇게 모질게 말해서 미안하다.”
부드러운 일로제의 목소리에 이아페의 시선이 흔들렸다. 가만히 일로제를 바라보던 그의 눈은 형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후에야 작은 빛을 머금었다.
“…응.”
이아페가 옅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네가 좋아하던 틸라 토스트야.”
“어머니가 해 주시던 거?”
“그래. 열심히 연구했거든. 아침, 꼭 같이 먹고 가.”
“그럴게.”
이번에는 조금 더 밝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친밀하게, 보통의 형제처럼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선 자리에 희망을 품은 온기가 감돌았다.
* * *
똑똑.
누군가 이아페의 방 문을 두드렸다. 일로제가 손님 방을 안내해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안내해 줄 내용이 더 남았나. 이아페는 대수롭지 않게 문을 열었다.
“……!”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굳었다.
시샤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싱긋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깊게 잠이 든 줄 알았는데, 언제 깨서 이곳에 온 걸까. 아직 취기도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요! 들어가도 돼요?”
“…내일.”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시샤의 앞을 이아페가 막았다.
“내일 물으십시오.”
위험했다. 관능적인 위협감이 목 뒤로 번졌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속도 모르고, 입을 불만스럽게 내밀었다.
“멍청이.”
이아페는 제 귀를 의심했다. 역시 그녀는 취한 것이 분명했다. 내일이면 이렇게 제 방을 찾아왔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것은 그때의 가면무도회에서 이미 겪었다.
하지만 시샤는 이대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잠깐만 들어갈래요. 맨날 나 피했잖아.”
“…….”
그래, 이제 피하지 않기로 했지. 다음에 마주하면 된다고 합리화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아페는 문을 막아섰던 몸을 떼어 냈다.
“…당신이 들어오겠다고 한 겁니다.”
시샤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이아페가 문을 좀 더 열자, 그녀가 다람쥐처럼 쏘옥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