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83
@83. 예전처럼 대해 줘요
“목마른데 물 있어요?”
이아페가 컵에 마법으로 깨끗한 물을 채워 시샤에게 건넸다.
그녀는 물이 뜨겁지도 않은데 습관처럼 호호 불었다. 그러고는 아, 하더니 머쓱하게 헤헤 웃었다. 그러는 동안, 이아페는 그녀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등에서부터 목뒤까지 열이 올랐다. 어쩌자고 이곳에 들어 온 건지. 그녀는 경계심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시샤의 작은 입이 열렸다. 미처 말릴 새도 없이, 그녀가 질문을 쏟아 냈다.
“축제 이후로는 형과 처음 만난 거죠…? 괜찮아요?”
아, 이걸 물으려고 온 거였구나. 안도감이 번졌다. 그녀에게서 거절을 듣는다 해도 태연하게 대하려 했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시 남부로 찾아와도 된다 하더군요.”
“정말요? 잘됐네요!”
시샤가 환하게 웃었다.
“당신이 많이 신경 쓴 것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형의 마음이 풀어진 듯합니다.”
“하하, 그래요? 마차 사고 한 번 더 나도 좋겠….”
“그런 말씀은.”
갑작스레 싸늘해진 이아페의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하지 마십시오.”
그의 냉기에 시샤가 한순간 움찔했다.
이아페의 눈에서 짙은 노기가 번뜩이듯 일렁였다.
그녀가 마차 사고를 당했다 했을 때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녀를 홀로 보낸 자신이 미칠 듯 원망스러웠다.
아까의 기억이 되살아나자 이아페의 표정이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그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시샤 님이 사고를 당하신다는 생각만으로도 저는….”
이아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그렇게 무해한 목소리로,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말한단 말인가.
“안 할게요.”
그때 시샤가 이아페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아페가 고개를 들었다. 애처롭게 떨리던 보랏빛 눈동자가 그녀에게로 고정되었다.
시샤의 동그란 눈이 이아페를 향하고 있었다. 놀람과 걱정이 뒤섞인 눈이었으나, 올곧게도 이아페를 향했다.
안 한다는 말이 뭐라고. 저 맑은 눈동자가 뭐라고. 허무하고 얄궂게도 그녀의 말 한마디에 다시 안심이 되었다. 이아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나는 이 사람을 놓을 수 없다.
나를 밀어낸다 해도, 싫어한다 해도 이 사람을 떠날 수 없다.
그러니까, 지금은 왜 나를 싫어할지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이 사람이 나를 밀어내겠다는 결심을 할 동안 바보 같은 짓거리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시샤 님.”
부딪쳐야겠다. 그녀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물어야겠다.
“제 잘못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녀가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지도 않고. 일단 그녀의 옆에 있어야겠다.
“네?”
“저를 다시 찾으시는 것은 생각이 정리되었기 때문이겠죠.”
시샤가 아, 하고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잡고 있던 이아페의 옷자락을 놓았다. 이아페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어쩌면 저의 행동들이, 제가 가진 어두운 기억들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기대기만 한다 생각하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쏟아 내는 동안 시샤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그 반응에 더 불안해진 이아페가 시샤의 팔을 절박하게 잡았다.
“외면하셔도 됩니다. 밀어내지만 마십시오.”
시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가 입을 꾸욱 오므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이아페의 잘못은 없어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줘서,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서 저는 정말로 기뻤어요.”
“정말입니까?”
“외면하라니, 그런 말을 하면 저도 서운해요.”
시샤의 눈에서는 억울함마저 느껴졌다.
그래,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아페의 아픔을 보고 더 마음을 쓰면 썼지,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역시 당근이….”
“당근?”
“아닙니다.”
“도망 다닌 건 미안해요, 이아페. 그냥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좀 있었어요. 이제는 안 피해요.”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아페를 밀어내야 할지, 이대로 둬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확실한 거절이 아니라 지금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었겠지.
다행이다. 이아페의 눈이 안도로 떨렸다.
그때였다.
“나 피하지 마요.”
시샤가 이아페에게 잡히지 않은 팔을 뻗어 그의 볼을 감쌌다.
“예전처럼 대해 줘요.”
희망적인 해석은 하지 않기로 했다. 기대했다가 나락으로 곤두박질친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으니. 예전처럼 대해 달라는 건, 그를 받아 줄 수는 없지만 옆에 있는 것은 허락하겠다는 뜻일 터다.
하지만 시샤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을 밀어내지 않기로 결심했다면.
그녀의 마음속에 누가 있다 해도, 이아페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이제는 떨어지라고 해도 계속 옆에 있을 겁니다.”
“그럼 저야 좋죠.”
시샤가 눈을 휘어 웃었다.
그녀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이아페가 제 뺨 위에 얹어진 시샤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쳤다. 그가 그것을 조금 힘주어 잡았다.
이 작은 몸을 안으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토끼처럼 동그랗게 눈을 깜빡이든, 뭘 하냐고 날카로운 물음을 던지든 상관없이 그대로 품에 가두고 싶다. 그렇게 그녀를 안고 침대에 몸을 던진다면. 커다란 눈 위에, 발그레한 뺨에, 부드러운 입술에 입을 맞춘다면….
“이제 그만 돌아가십시오.”
생각을 멈춘 이아페가 시샤의 손을 떼어 냈다.
“벌써요? 우리 방금 화해했잖아요.”
시샤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아페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더 있다가는, 자격 없는 욕심을 부릴 것 같습니다.”
“욕심?”
이아페의 마음도 모르고, 시샤가 그의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가 몸을 돌리자 콩, 콩 한 발로 뛰어 함께 돌았다. 그러다 몸이 휘청거렸다. 이아페가 놀라서 시샤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
이아페의 상상처럼, 그들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위험합니다.”
나지막한 말소리가 시샤에게 가 닿았다. 긴장감이 밴 더운 숨이 그들 사이에 맴돌았다.
얼어붙은 시샤가 마른침을 삼켰다.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이아페가 살짝 헝클어진 시샤의 머리를 부드럽게 정돈해 주었다.
그들은 말없이 시샤의 방으로 향했다. 조용한 저택 안에 작은 발소리만 울렸다.
“좋은 꿈 꾸십시오.”
시샤를 안으로 들여보낸 이아페가 문을 밀었다. 그런데 방문이 닫히기 전, 시샤가 손을 꼬물대며 말했다.
“내일 같이 아침 먹을까요?”
“…….”
“아, 일로제 경… 형님한테 같이 먹자고 하면 어떨까 해서요.”
“이미 먹기로 했습니다.”
“정말요?”
시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정말 화해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메뉴가 뭐예요?”
“틸라 토스트.”
“뭔지 몰라도 이름만 들었는데 벌써 맛있네요. 그럼 내일 아침에 봐요.”
시샤가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문을 닫았다. 그녀의 빛이 한동안 사라지지 않아서, 이아페는 문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돌아갔다.
* * *
언제 잠이 든 걸까. 창문 새로 들어오는 어슴푸레한 빛에 가늘게 눈을 떴다.
“어제는 술을 너무 많이 먹었나.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
…는 개뿔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어젯밤의 일들이 탄성 좋은 공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며 머릿속을 마구 어지럽혔다.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올라서,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시샤 님이 사고를 당하신다는 생각만으로도 저는….〉
〈외면하셔도 됩니다. 밀어내지만 마십시오.〉
〈이제는 떨어지라고 해도 계속 옆에 있을 겁니다.〉
〈더 있다가는, 자격 없는 욕심을 부릴 것 같습니다.〉
이아페가 내게 한 말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의문인 것들투성이었다.
자격 없는 욕심이라니, 대체 뭔데? 보통 그런 말을 친구한테 해?
어제의 일을 떠올리자 다시 열기가 목덜미까지 치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와 얼굴이 가까워졌던 순간. 나도 모르게 그의 붉은 입술로 눈길이 갔다. 이아페는 눈치채지 못했겠지. 아니, 못했어야 한다.
감당할 수 없이 민망한 기분이 올라와서 나는 주먹으로 침대를 퍽, 퍽 쳤다.
“…….”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이불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이아페는 칼린느를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연구단에 들어온 거잖아. 그건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그가 지금 이토록 마법에 몰두하는 것은 칼린느의 힘이 되기 위한 것일 테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행복 회로가 돌아가지?
“배가 고파서 그런가?”
몸이 허기지니, 정신적인 포만감이라도 찾으려는 건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침엔 틸다? 튄다? 토스트를 먹는다고 했지. 하지만 아직 새벽인 것 같은데.
“못 기다려.”
나는 조용히 주방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금방 작은 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손에 들고 조용히 집을 돌아다녔다.
평화로운 저택을 걷자니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이래서 명상을 하나 봐.
일로제의 집은 크지 않았지만 꽤나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데 이상하게 품위가 뿜어져 나온달까.
“요것 때문일지도 모르고.”
일로제가 기사단에서 입은 제복과 배지, 훈장을 걸어 놓은 벽. 누려 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남부에서 새로이 자신이 일군 것들. 어찌 보면 이것들은 일로제의 삶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때, 내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 이건 설마.”
제복 하나에 브로치가 걸려 있었다. 진하고 깊은 붉은색의 루비가 달린 브로치.
내 예상이 맞다면 저건 분명….
“맞아요. 이아페가 준 겁니다.”
“힉!”
나는 깜짝 놀라서 옆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일로제가 바로 옆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